표지

독점 기억 연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로맨스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8 23:1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691
추천수 :
128
글자수 :
253,458

작성
21.05.15 19:04
조회
690
추천
2
글자
12쪽

샤샤 1-4

DUMMY

여행을 떠나려면 내가 찾는 그녀가 일단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데 무작정 떠돌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녀를 만나, 잃어버린 내 기억을 찾는 데 있기 때문이었다.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은 그녀가 나와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이었다. 내가 간 영화관에서 그녀를 발견했고 같은 상영관에 있었으므로 그녀도 그 근방에 거주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우리 둘의 사이가 그리 멀지 않음을 느끼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래도 그녀의 정체는 불투명하지만 조금만 더 궁리하면 거리가 가까우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다시 멀티플렉스에 가 보았다. 그녀를 우연히 보았던 그때 그 시각에 말이다. 정말로 인연이란 게 있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에 그녀가 있었던 서점과 영화관을 어슬렁거렸다. 종교 코너에서 한 책을 오래 보던 그녀. 로비 테이블에 앉아 엎드려 있던 그녀. 하지만 그녀는 내가 다시 간 그때에는 보이지 않았다. 있을 거라고 확신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로 없으니 허탈했다. 그녀가 존재했던 장소는 비어 있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멀티플렉스 안의 식당으로 들어가 밥 한 끼를 주문했다. 어차피 점심도 먹을 생각이 있던 차였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 나는 혹시나 그녀가 이곳에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관심과는 무관한 아줌마 나이의 여자들만 보일 뿐이었다.


평일 오전에 영화관에 왔던 그녀는 현재 무얼 하고 있을까?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걸까? 미대 진학을 꿈꿨으니 지금쯤 미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는 음식을 씹으며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가 닿기 위해 생각을 거듭했다.


멀티플렉스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중 한 건물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융 최면센터'라는 상호였다. 그곳은 5층짜리 꼬마 빌딩의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길을 종종 지나다녔는데 난생 처음 보는 간판이었다.


새로 생긴 정신 병원인가? 아니야, 최면과 정신병은 다른 거지. 최면은 무의식을 밖으로 끌어내는 거잖아. 저기는 환자가 아니라도 갈 수 있는 데라고. 어쩌면 저기서 손실된 기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무의식적으로 그곳 건물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그렇게 강했던 것이다.


3층에 도착해 '융 최면센터'라는 곳의 문을 여니 데스크 안쪽에 한 직원이 앉아 있었다. 베이지색 블라우스를 입은 단정한 차림의 여자였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거기 달린 종이 울렸고 내가 데스크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그녀는 무얼 하고 있는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아마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듯했다.


"저···."


내가 운을 떼자 그제서야 그녀가 나를 알아보았다.


"예약하셨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사무적이었다. 하지만 착하게 생겨서 불쾌감은 들지 않았다.


"아니요, 그냥 왔는데요."


"최면 검사 하실 거죠?"


그녀는 데스크에 계속 앉은 채 고개만 들어 나를 응대했다.


"네, 지금 가능한가요?"


"네, 근데 조금 기다리셔야 해요. 1시까지 선생님 점심시간이거든요."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가격은 얼마예요?"


이런 건 처음 받아보기에 가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비싸면 그냥 나갈 생각이었다. 왠지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검사라 은근 돈이 들 것 같았다.


"단순 최면 검사는 5만 원이고 전생 체험은 8만 원이에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값이 나가서 나는 속으로 놀랐다.

무슨 최면 하나 하는데 5만 원이나 받아?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니면서. 선생님이란 사람도 의대 나온 의사는 아닐 거 아니야.


"최면이랑 전생은 뭐가 다른데요?"


하지만 나는 그곳을 나가지 않았고 검사를 받을 것처럼 두 서비스가 뭐가 다른지 물었다.


"최면은 현생의 무의식을 살피는 거고요. 전생은 이전 삶의 기억을 알아보는 거죠."


그럼 나는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그녀는 현생의 인연이니 최면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자 여직원이 질문을 건넸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데요?"


"제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있거든요. 그걸 좀 찾고 싶어서요."


"인생의 어떤 부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럼 최면이 맞겠네요. 하지만 현생이란 것도 전생과 다 연결되어 있으니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전생 체험을 해야 될 거예요."


그녀는 고객을 위해서 친절하게 설명하는 듯했으나 내가 듣기에는 더 비싼 검사를 받게 하기 위해 나를 꼬드기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속으로 최면을 선택했지만 돈 없어서 싼 걸 결정한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계속 고민하는 척했다. 왠지 이런 데서 돈 때문에 싼 걸 선택하면 손님을 좀 얕잡아 보고 검사도 제대로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최면으로 할게요."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돈 없어서 최면을 선택한 게 아니라 전생보다는 최면이 내 의문을 해결하는 데 적합하겠다는 판단으로 그리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말이다.


"네, 근데 찾고자 하는 기억이 뭐예요?"


여직원이 물었다. 그런 건 선생님이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직원도 이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손님의 편의를 위해 미리 물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굴 찾고 싶은데요. 기억이 잘 안 나서···."


나는 처음 보는 여자한테 좋아했던 여자를 찾는다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싫었다. 더욱이 대화 상대가 여자였기에, 좋아하는 여자 찾으려고 이런 센터까지 들른 한심한 남자로 오해할까 봐 더 말하기 싫었다.


"여자예요? 첫사랑?"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의표를 찌르는 말이었다. 나는 놀라서 하마터면 표정으로 다 드러낼 뻔했다.


"아니요, 그냥 예전에 알던 사람인데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래요? 알았어요. 1시까지 앉아서 기다리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데스크 아래로 고개를 숙여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시야가 가렸기 때문에 그녀가 그 안에서 무얼 하는지 몰랐다.


나는 그녀가 시킨 대로 대기실 의자에 가 앉았다. 책이나 잡지라도 비치돼 있으면 그걸 읽으려고 했는데 주변에 읽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뻘쭘해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1시가 되려면 15분 정도 남은 상태였다.


잠시 후 데스크에 있던 여직원이 나를 호명하고 검사실로 안내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센테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문을 여니 뒤로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와 일반 의자가 중앙에 놓여 있었다. 한쪽에 자리한 책장에는 최면, 전생, 심리학과 관련된 서적이 꽂혀 있었고 하얀 휴지도 하나 보였다. 방 크기는 열 평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선생님 들어올 거예요."


여직원은 그 말만 남긴 뒤 나를 방에 두고 사라졌다. 나는 등받이가 뒤로 눕힌 소파에 앉았다. 누가 봐도 거기가 손님용 의자였다. 허나 선생님이 들어오기도 전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서 허리는 수직으로 세운 채 앉아 있었다.


1분 뒤쯤 여직원이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검사에 필요한 도구 같은 걸 놓고 가려고 들어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은 뒤 편하게 누우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 뒤로 젖힌 등받이에 몸을 대고 침대처럼 누웠다. 처음 본 여자 옆에서 그렇게 누워 있으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은 천장의 하얀 벽뿐이었다.


여직원은 방에서 나가지 않고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창살 같은 판자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창밖의 빛을 막았다. 실내가 금세 깜깜해졌다. 눈이 어둠에 적응되지 않아 나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직원이 내 옆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소리도 들렸고 인기척도 났다. 왜 나가지 않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손 안에서 무언가 빛나면서 내 시선을 끌었다. 나는 고개를 돌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커다란 수정 구슬이었다. 그녀의 머리 크기만 한 것이 자주색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런 건 어디서 구한 거고 언제 들고 온 거지? 최면 센터와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

나는 혹시 여기가 점성술을 보는 데가 아닐까 싶었다. 아마도 최면 센터라는 간판은 사기인 것 같았다.


"자, 이제 시작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아까 대기실에서 들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이 더 친숙한 느낌이었다.


"네? 시작이요?"


내가 이상해서 묻자 그녀가 뭐가 이상하냐는 표정으로 도리어 바라보았다.


"네, 찾고 싶은 사람 있다면서요."


"근데 선생님은요?"


"제가 선생님이죠."


"그냥 직원 아니에요? 아까 데스크에 있었잖아요."


"제가 손님도 받고 검사도 해요."


"진짜 선생님 맞아요?"


"네, 혼자서 운영하고 있어요."


사기 냄새가 나서 그냥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니 거짓말할 것처럼 생기지는 않아서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녀 말로는 본래 일하던 직원이 하나 있는데 휴가를 내는 바람에 잠시 본인이 데스크 업무도 보았던 것이라고 했다. 말투가 진중해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일단 방까지 와서 누웠으니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세요."


검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누워 있고 그녀는 나보다 높은 위치에서 허리를 펴고 앉아 있었는데 마치 내 귓가에 직접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이제부터 당신은 모든 긴장을 풀고 생각이 떠오르는 데로 보게 될 거예요."


목소리가 부드러워서 나는 그 말에 저항할 수 없었다. 내 몸은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나른해져 갔다.


"무얼 하려고 하지 마세요. 안 하려고 하는 것도 하는 거예요.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점심 먹고 난 후라 졸음이 왔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이거 정말 자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자도 되는 건가?


나는 금방 반수면 상태에 도달했고 의식이 옅어지는 걸 느꼈다. 내 생각이 내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물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분명 꿈꾸는 상태는 아닌데 정신이 술에 빠진 듯 몽롱했고 내가 스스로 생각에 관여할 수 없었다.


"당신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당신은 깨어날 수도 없습니다. 내 말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을 보기만 할 거예요."


갑자기 그녀의 어조가 좀 무서워져서 나는 몸이 정말로 안 움직이는지 시험해 보았다. 검지를 살짝 들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갔고 힘이라는 걸 애초에 어떻게 주는지 까먹은 상태가 돼 있었다.


"자, 무엇이 보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억 연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해미 2-42 21.07.28 5 2 12쪽
46 해미 2-41 21.07.26 9 2 12쪽
45 해미 2-40 21.07.24 9 2 11쪽
44 해미 2-39 21.07.22 22 2 12쪽
43 해미 2-38 21.07.17 41 2 12쪽
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7 2 12쪽
37 해미 2-32 21.07.01 128 2 12쪽
36 해미 2-31 21.06.28 156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33 해미 2-28 21.06.21 209 2 13쪽
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89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9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30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3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6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8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90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18 해미 2-13 21.05.31 417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삭개5'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