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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기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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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8 23:1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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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7
추천수 :
128
글자수 :
253,458

작성
21.05.1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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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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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해미 2-1

DUMMY

학생 정보를 기록한 저장 파일이 남아 있다면 좋았을 텐데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런 게 없었다. 원장 선생님은 도와줄 수 있는 게 여기까지라고 했다. 그래도 그녀의 이름을 알아서 나는 흡족했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운 채 어떻게 하면 해미를 찾을 수 있을지 궁리했다. 이름 외에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하나라도 더 있다면 좋을 텐데 학원 방문 이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제 없었다.


나는 속으로 해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여러 번 곱씹었다. 생각을 거듭하면 다른 정보와 이미지도 덩달아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진척은 없었다.


멀티플렉스와 최면 센터를 다녀온 탓인지 금방 잠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수면에 빠졌다. 꿈을 꾼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잠을 깬 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해미의 마지막 통화를 받았던 장면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끊은 뒤 나는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본 채 멍하니 있었다. 그게 꿈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거의 열어보지 않은, 옛 물건이 보관된 서랍이었다. 거기에 해미의 마지막 전화를 받은 휴대폰이 있을 것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버리지 않은 채 간직되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살면서 물건을 버려본 적이 거의 없다. 특히 휴대폰 같은 물건은 더욱 그렇다. 오래 쓰거나 추억과 정보가 담긴 물건은 꼭 한곳에 보관해 둔다.


나는 서랍을 깊숙히 뒤지며 희망을 가졌다. 물건을 보관하는 특성이 이럴 때 장점으로 작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휴대폰은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왔다. 전체가 두 겹으로 되어 슬라이드를 올리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구형의 모델이었다. 너무 오래된 것이라 작동이 될지 미지수였다. 휴대폰을 찾아서 기분 좋았지만 전원 버튼을 누르기까지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전원이 켜지기까지 체감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은 왜 이럴 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걸까. 다행히 휴대폰은 잘 켜졌다. 작동에도 이상이 없었다. 나는 얼른 저장된 연락처를 확인했다. 인간관계가 좁아서 번호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해미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정말로 해미의 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해미였다. 나는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빨리 서둘러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부정 타서 해미가 받지 않을 것 같았다. 10년이 흘렀으니 그녀의 번호가 바뀌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몸과 맘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스스로 차분해졌을 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게 뭔가 순리에 맞는 행동 같았다.


5분 정도 명상하는 것처럼 앉아 있은 뒤 해미의 과거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 번호가 현재의 번호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신호가 오래 갔다. 이번에도 체감상 시간이 느리게 갔다. 그래도 없는 번호가 아님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0초 정도 지났을 때 한 여자가 "여보세요." 하며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젊은 여자가 아니었다. 곧바로 실망감이 들었다.


"네, 혹시 오해미 씨 휴대폰 아닌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미의 휴대폰이지만 다른 사람이 받았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누구세요?"


저쪽의 여자가 경계하듯 물었다. 나는 살짝 불쾌감이 들었지만 뭔가 진척이 있을 것 같아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저는 이한수라고 하는데요. 해미의 오랜 친구입니다."


여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뭔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학교 친구예요?"


그녀가 물었다.


"옛날에 미술 학원 같이 다녔어요."


"아···."


나는 그녀가 해미와 관련 있음을 확신했다. 아마도 엄마 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바로 끊지 않고 나에 대해 물은 것일 터였다. 해미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잘못 걸었다 하고 끊는 게 상식이니까 말이다.


"꼭 좀 연락하고 싶은데 근황을 몰라서요."


나는 약간 불쌍한 척했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작전이었다.


"해미는 지금 서울에 없어요."


그 말이 나에게는 거절처럼 들렸다. 서울에 없으니 찾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꼭 해미와 재회해서 그녀의 현재 삶을 보고 우리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다.


"네, 지방에 갔다고 들었어요. 연락이라도 하고 싶거든요."


"그럼 문자로 번호 알려줄게요. 한번 연락해 보세요."


나는 뛸 듯이 기뻐서 소리 지를 뻔했다. 이렇게 쉽게 알아 낼 수 있는 것을 왜 최면 센터까지 가서 6만5천 원을 냈을까. 나는 갑자기 최면을 환불받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실례지만 해미와 어떤 관계시죠?"


나는 전화 끊기 전에 한번 물어보았다. 예상대로 그녀의 엄마가 맞는지 무척 궁금했다.


"해미 엄마에요. 원래 해미가 쓰던 번호 지금은 제가 쓰고 있어요."


어머니가 교양 있게 말했다.


"저는 해미가 재수했을 때 미술 학원에서 가르쳤던 강사입니다. 나이는 동갑이고 그때 아르바이트로 잠깐 일했거든요. 사실 며칠 전에 영화관에서 해미를 봤는데 아는 척을 못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옛날 번호로 전화해 본 거예요."


나는 어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그래도 괜찮을 듯싶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님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그녀가 정말로 나에게 해미의 번호를 알려줄 것 같았다.


"해미가 잠깐 서울에 왔다가 어제 다시 돌아갔거든요. 그때 봤나 보네요."


영화관에서 사라진 그녀는 해미가 정말 맞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통화 하나로 모든 의문이 풀리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은 뒤 바로 문자가 왔다. 나는 해미의 새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물론 이번에도 바로 걸지는 않았다. 다시 몸과 맘을 침착하게 한 뒤 안정된 상태에서 천천히 번호를 눌렀다.


안타깝게도 해미는 받지 않았다. 다시 번호를 확인하고 통화를 시도했다. 두 번째에도 그녀는 받지 않았다. 나는 사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마도 일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모르는 번호라면 회신을 안 할 수 있으므로 그녀의 번호를 저장한 뒤 카카오톡에 들어가 문자를 남겼다. 나 이한수라고. 재수할 때 미술 학원에서 알고 지냈던 남자애라고.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영화관에서 너를 우연히 봤다고. 그래서 연락할 방법을 찾다가 옛날 번호로 전화를 했고 어머니가 받으셔서 너의 현재 번호를 알려주었다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그러니 답장 꼭 달라고.


나는 오타가 있을까 봐 거듭 문장을 퇴고했다.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오타가 있으면 나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오해할 것 같았다.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꼭 그래야 했다.


해미의 전화는 저녁 8시에 왔다. 휴대폰 벨이 울렸을 때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갑자기 몸이 너무 떨려서 휴대폰을 제대로 집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해미야."


나는 겨우 말했다. 그녀의 이름을 10년 만에 부르는 것이었다.


"한수 맞아?"


아직도 어린 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나는 서른 살의 아저씨가 됐는데 그녀는 아직도 스무 살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 이한수야. 기억나? 우리 미술 학원에 같이 다녔잖아."


"그럼 기억하지. 나한테 그림도 많이 알려줬잖아."


"그랬어? 정말 기억하는 거지?"


"응, 어떻게 잊겠어. 정말 오랜만이다."


"10년 만이지, 우리. 지금 어떻게 지내?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여기 강원도거든."


"강원도?"


나는 그녀가 지방에 있다기에 전라도나 경상도에 있는 줄 알았다. 강원도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응. 10년 동안 여기서 살았어."


"뭐하고 있는데? 혹시 그림 그리는 거야?"


"아니, 나 다른 거 하면서 살아. 그림은 포기했지."


그림을 포기했다는 말에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그녀가 현재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에 왠지 내 탓도 있는 것 같았다.


"나 얼마 전에 영화관에서 너 봤어. 우리 같은 영화 봤는데 내가 아는 척을 못 했어."


"영화? 나 영화관 안 갔는데."


"서울에 있다가 어제 간 거 아니었어? 너희 어머니한테 들었어."


"응, 맞아. 나 서울에 있다가 어제 왔어. 근데 영화관은 안 갔는데."


"정말? 나 거기서 너랑 똑같은 사람 봤어."


"잘못 본 거겠지.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거나."


"아니야, 네가 확실했어. 우리 같이 영화 봤다고."


"나 엄마랑 산에 가서 절에 다녀온 게 외출의 전부인데. 영화관은 간 적도 없어."


해미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내 주장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여행 계획에 대해 말했고 강원도에 잠시 들를 예정이라고도 말했다. 사실은 온전히 그녀를 만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내 의도가 너무 드러날까 봐 일부러 진심을 숨긴 것이었다. 여자 입장에서 남자가 자신을 보러 여행 간다고 하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 같았다. 스토커처럼 느껴지기에 나는 조금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해미는 강원도에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물어봐 줘서 고마웠다. 일정을 묻는다는 것은 나를 정말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싫었다면 자신이 강원도에 산다는 것을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나한테 전화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3일이면 여행 준비를 마칠 것 같아서 3일 후에 강원도에 가겠다고 답했다. 그녀는 강원도에 도착하면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가도 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어쩌면 예의상 하는 말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거절하기 미안할 때 그렇게 돌려 말하는 습관이 있다.


해미는 정말 와도 된다고,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고 답했다. 나는 적극적인 그녀의 태도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 당장이라도 열차 표를 끊고 강원도로 향하고 싶었다. 해미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직까지 머리가 길까? 얼굴이 하얄까?


나는 여행을 준비하는 3일간 해미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냈다. 샤샤가 있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해미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기에 스스로 당당하다고 생각했다. 잠시의 설렘은 분명히 외도가 아니었다. 나는 단지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내 여행의 진짜 목적은 다음 작품을 위한 휴식과 구상이었다.


여행 당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KTX에 탑승했다. 너무 설레서 열차가 오는 바람에 내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열차 안에서도 긴장과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강릉에 도착해 해미의 얼굴을 봐야 비로소 맘이 진정될 것 같았다.


해미는 강릉역에 도착할 즈음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이 마중을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을 떠나는 나는 샤샤를 잠시 잊고 그녀에게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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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해미 2-38 21.07.17 41 2 12쪽
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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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해미 2-31 21.06.28 157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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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90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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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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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7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8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90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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