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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기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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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8 23:1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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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4
추천수 :
128
글자수 :
253,458

작성
21.05.18 18:19
조회
631
추천
3
글자
12쪽

해미 2-2

DUMMY

오전 11시께 강릉역에 도착했다. 여름에 접어들 봄날이라서 그런지 날이 맑았다. 신이 손바닥으로 세상의 먼지를 깨끗히 걷어 낸 기분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나는 고개를 들고 그런 생각을 했다.


강릉역은 신축이라서 정갈했다. 지방 특유의 모습처럼 커다란 원형의 역 주변에는 별로 높은 건물이 없었다. 그래서 허허벌판 같은 공허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산과 강이 보이고 사람이 적어서 대체적으로 여유 있는 느낌이 맘에 들었다. 정말로 여행에 온 기분이었다. 성수기였다면 그 느낌이 매우 달랐을 것이다.


나는 강릉을 보고자 여행 온 게 아니었으므로 즉시 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분명 역에 도착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었다. 통화 연결음이 내 심장처럼 두근거렸다. 나는 그녀를 보기 전까지 설렘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벌써 도착했어?"


해미가 받았다.


"응, 나 지금 강릉역 앞이야."


"바로 나갈게. 10분 정도 기다려."


"알겠어."


우리의 통화는 시답지 않게 끝났지만 나는 그녀와 만날 생각에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내 심장 어딘가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샤샤와 처음 데이트할 때보다 더한 감정의 격정이었다.


나는 해미를 기다리면서 역 주변의 자연을 감상했고 정거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대부분이 나 같은 여행객인 듯했다. 몇몇은 버스를 탔고 또 다른 몇몇은 택시를 탔다. 산과 산 사이를 가로지는 차도 끝에는 멀리 있는 주택 단지가 보였고 나는 왠지 해미가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시야가 머문 그 집들에서 해미가 부지런히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한수!"


누가 내 어깨를 치며 나를 불렀다. 나는 뒤돌아봤다. 해미였다. 10년 전 미술 학원에서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들었던 그때의 얼굴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통화 목소리를 듣고 예상한 것처럼 그녀는 아직도 스무 살의 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늙어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해미 맞지?"


내가 반가워 물었다.


"응, 맞지. 오랜만이다. 정말."


그녀도 얼굴에 미소를 띠며 반가워했다.


우리는 강릉역에 죽치고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없었으므로 곧 그녀의 차로 이동했다. 그리 비싸지 않은 국산 중형차가 그녀의 자동차였다. 나는 조수석에 탔고 그녀는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시작했다.


배려심 있는 그녀가 내 쪽의 유리창을 열어주었고 차가 달림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내 볼을 적셨다. 나는 바람을 맞았을 뿐인데 서울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전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바다가 가까워서 해풍이 많이 불지. 어때? 좋아?"


그녀가 운전을 하며 내게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앞쪽을 향하고 있었다.


"진짜 좋네. 네가 왜 계속 여기에 사는지 알겠다."


"딱히 불편한 건 없어. 여기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자연 경치도 좋고 사람들도 순박하고. 언젠가 서울로 올라갈 줄 알았는데 계속 있게 되네."


그녀가 덤덤하게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학생처럼 가방을 메고 학원을 들락거렸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차까지 몰며 지방에 정착한 성인이 되어 있으니 그녀를 바라보는 내 기분이 묘했다. 나는 10년 동안 무엇을 한 걸까? 아직도 부모 집에 얹혀살고 운전 면허도 따지 못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림만 그리고 있다. 나는 계속 그녀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운전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사는 집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강릉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포남동에 살고 있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단독 주택이 그녀의 집이었다. 뜰도 있고 집 재료처럼 동일하게 빨간 벽돌로 쌓여진 담도 있었다. 근처에는 그녀의 집과 비슷하게 생긴 주택이 많았는데 층수와 형태는 조금씩 달랐다.


나는 그녀를 따라 낮은 대문을 통과했고 담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도 보았다. 처음에는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인 줄 알았다. 황금 줄무늬를 가진 그 녀석은 우리가 지나치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마치 여기가 자기 집인데 너희가 왜 들어오냐고 노려보는 듯했다.


"신경 쓰지 마. 여기에 길고양이 많아."


내가 계속 고양이를 쳐다보자 해미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코를 찌르는 향 냄새를 맡았다.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 절에 갔을 때 맡았던 냄새와 똑같았다. 일반 가정집에서 웬 향이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거실은 특별할 게 없는 보통의 모습이었다. 소파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고 탁자가 있고 화분도 보였다. 거실에서 보이는 부엌에는 흔한 식탁과 냉장고가 있었다.


"너 혼자 살아?"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응, 혼자 살아."


그녀가 해맑게 답했다.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어색하게 거실 중앙에 서 있었다. 주인의 허락 없이 거실 소파에 대뜸 앉는 게 무례하게 느껴졌다. 해미와 나는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까.


"나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하지 않아?"


차 키를 탁자에 놓은 해미가 내 옆으로 와 물었다. 그렇지. 그건 정말 궁금한 것이었다. 세상 제일 궁금한 게 그녀의 직업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현재 지방에 살고 있는 이유일 것이었다. 10년 전에 나를 떠난 이유이기도 하고.


"궁금해. 알려줄 거야?"


내가 말했다.


"잠깐 이리 와봐. 보여줄 거 있어."


그녀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를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희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진입할 수 없었다. 문지방에서 딱 선 채 안에 있는 물건들을 찬찬히 살폈다.


벽 한쪽에 산신령 같은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곁으로 제사상 같은 재단이 차려져 있었다. 일반 가정집이 아니라 무당 집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사정이 이해되었다. 그림을 포기하고 여기에 와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점이나 귀신 따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방이 신비롭기도 하면서 거북스러웠다. 그래서 얼른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자, 여기 나처럼 절 한 번 해."


해미가 시범을 보이듯 신령 그림 앞에 절을 했다. 나도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뭐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무탈하게 잘 있다 가길 빌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그런 게 통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 안위를 빌어 주어서 고맙기는 했다.


거실로 나온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바로 붙어 앉는 것은 불편해서 나는 그녀와 한 칸 떨어져 앉았다. 한낮의 햇살이 발코니 창을 통과해 우리의 얼굴에 앉았다. 따스함이 그대로 서려 있어 나는 노곤함을 느꼈다. 갑자기 그녀의 무릎을 베고 한숨 자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한수."


그녀가 나를 불렀다.


"응?"


내가 반응했다.


"뭐가 불편해?"


왠지 신당을 보고 조금 거북해진 내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안 불편해. 왜 그렇게 생각해?"


도리어 내가 물었다.


"네 얼굴에 써 있어."


나는 그녀의 말에서 묘한 힘을 느꼈다. 그녀를 속이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네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놀랄 만하지. 근데 이런 삶도 있는 거잖아."


나는 그녀의 말에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10년 전에 서울을 떠난 거야?"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응,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매우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어."


"맞아. 그래 보여."


나는 그녀의 행복에 동의해 주었다. 정말로 그녀 얼굴은 밝아 보였다. 집도 깨끗하고 따뜻하고.


"너 무당··· 맞지?"


나는 겨우 물었다. 확실한 그녀의 직업을 알고 싶었다.


"대충 그런 셈이지."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 거지 대충 그런 셈이라는 건 아리송한 말이었다. 그러나 더 깊이 묻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서 나는 거기서 멈췄다. 아무튼 그녀가 신을 모시는 건 확실했다. 그냥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우리 둘 사이의 공간에 어색함의 기류가 흘렀다. 그건 뭐라고 정체를 밝힐 수 없는 분위기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녀를 한번 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근데 그러기에는 신을 모시는 집에서 그런 짓을 하기가 무서웠고 오랜만에 만나서 할 얘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할 얘기가 없어서 앞으로 그녀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기도 했다.


우리는 한 2분간 말없이 있었다.


"근데 가족이나 친척 중에 돌아가신 남자 분 있어?"


해미가 침묵을 깨고 말을 던졌다.


돌아가신 남자라면 할아버지가 있을 것이었다.


"할아버지 말고. 중년의 남자."


해미가 내 생각을 먼저 읽은 듯 그렇게 말했다.


중년의 남자라면 아빠의 형일 듯했다. 나는 그분을 큰아버지라고 불렀다.


"큰아버지가 계셨지. 근데 왜?"


"높으신 분이었나 봐. 감투 같은 걸 쓰고 있었어."


"무슨 소리야?"


"아까 우리 역에서 처음 봤을 때 네 뒤에 계시더라고."


나는 해미가 미쳤거나 진짜 무당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반신반의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큰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고시에 합격했고 평생을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경기도에서 큰일을 맡고 계셨다. 나는 '높으신 분'이었다는 해미의 말이 이해되었다. 그러자 약간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게 보였어?"


"응, 턱이 넓고 눈이 긴 분 맞지?"


정말 그랬다. 큰아버지는 그렇게 생긴 분이었다.


"맞아. 정말로 큰아빠가 내 뒤에 있었다고?"


"응, 너를 지켜주고 있나 봐. 근데 왜 그랬지? 혹시 자식이 없으셨어?"


해미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응, 결혼은 했는데 일찍 이혼하시고 평생 독신으로 사셨지."


나는 알고 있는 대로 말했다. 큰아버지는 그래서 나를 자신의 자식처럼 아껴주셨다. 많이 뵌 건 아니지만 명절에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같이 놀아주시고 용돈도 많이 주셨다. 큰아빠가 돌아가실 때 나는 장례식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며칠 후 꿈에 나타나서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래서 그런 거구나."


"지금도 계셔?"


나는 이제 진짜로 믿는 것처럼 물었다. 큰아빠가 내 곁에 아직도 있는지 궁금했다.


"아니, 가끔 있다 가시나 봐. 지금은 없어."


나는 좋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껏 큰아빠가 나를 보고 있었다고 하니 감시당한 것 같은 불쾌함도 들었다.


"혹시 점 봐주면서 사는 거야?"


내가 물었다. 나는 그녀의 생계가 궁금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집이라면 먹고살 만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것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하지."


나는 그 여러 가지도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강원도에 여행 온 내가 어디에 묵을 것인가 하는 거였고 또 그녀와 무얼 하며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은 좀 무리일 듯싶었다.


"배고프지? 밖에 나가서 먹을래? 아니면 내가 차려줄까?"


나는 일단 나가서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당 차려진 집에서 오자마자 음식을 먹는 게 왠지 죄짓는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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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해미 2-38 21.07.17 41 2 12쪽
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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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해미 2-31 21.06.28 157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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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90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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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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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7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8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90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18 해미 2-13 21.05.31 41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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