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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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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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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글자수 :
248,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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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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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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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해미 2-3

DUMMY

강릉에 대게가 유명하다고 해서 해미가 나에게 그쪽을 권유했지만 나는 점심에 그런 음식이 당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원래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따뜻한 밥 한 끼를 파는 식당이 보여서 나는 그리로 가자고 했다. 해미는 여행 온 손님에게 비싼 것을 사 주고 싶은 눈치였으나 나는 점심은 간단히 하고 싶었다.


"잘사는 모습 보니까 좋아."


식당에 들어가 밥 먹기 전에 내가 말했다. 왠지 꼭 그런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근데 꼭 그렇지도 않아."


해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순수한 얼굴에는 정말 스트레스의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하얘서 더 그런 느낌이었다.


"서울 갈 생각은 없는 거야?"


나는 물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근데 또 모르지. 인생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무당이라서 그런지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건 삶에 대한 체념이라기보다 자연에 대한 순응이었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근데 너는 뭐 해? 아직도 그림 그려?"


해미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얘기하지 않고 있었다.


"나 웹툰 일 해. 인터넷에서 만화 그리는 거."


"아, 정말? 웹툰 작가야?"


그녀가 신기해했다. 내가 무당인 그녀를 신기해한 것보다 더 격한 반응이었다. 상식적으로 무당이 더 특이한 직업인데 말이다.


"응, 그리고 가끔 돈 받고 캐릭터나 일러스트 같은 것도 그려."


"어울려. 왠지 그런 일을 할 것 같았어. 잘됐네."


해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스무 살에 서로 그림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한 탓인지 그 순간 우리는 너무 잘 통했다.


"어떤 거야? 네가 그린 만화."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린 만화니까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막상 질문을 받고 보니까 나도 내가 무슨 만화를 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까지 네 작품 그렸는데 자랑할 정도로 성공한 건 없었다. 장르 또한 확실히 규정할 수 없어서 애매하기만 했다. 주로 로맨스 위주였는데 그렇다고 남녀의 사랑이 주제는 아니었다. 그냥 형식만 로맨스일 뿐이었다.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내가 생각에 잠겨 있으니까 해미가 그렇게 말했다. 이해심 많은 그녀가 나를 배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침묵으로 질문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웹툰 작가라는 사람이 자기 작품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게 내가 봐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남학생이 있거든."


내가 운을 뗐다.


"남학생?"


"응, 남자 대학생. 걔가 우연히 인터넷 방송에서 자기 첫사랑을 발견한 거지. 그래서 그 여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팬 사인회도 가고 결국 다시 친해지게 돼. 그러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야."


내가 들어도 재미없는 만화였다. 도대체 내가 말한 거에서 어떤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왜 못 나가는지 알게 되었다. 내 만화는 내가 봐도 재미없었다.


"그래? 특이하네. 한번 보고 싶다."


나는 그녀의 말이 예의상 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따로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도 연재 중이야?"


그녀가 물었다.


"아니, 새 작품 쓰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 그래서 여행도 온 거야."


"어쩌면 이번 여행이 아이디어가 될지도 모르겠네."


해미가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듯 그렇게 말했다.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와 차로 드라이브를 즐겼다. 강릉에 왔으면 이곳은 꼭 가봐야 한다면서 해미가 나를 그쪽으로 데려갔다.


경포호를 둘레로 해서 잘 포장된 도로가 죽 이어졌고 차가 달리는 동안 창밖을 통해 파란 물과 초록 나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차가 별로 많지 않아서 우리는 쌩쌩 달렸고 그래서 속도감과 자연의 청량감을 동시에 느꼈다.


경포대에 도착해서는 바다를 보았다. 백사장이 구렁이 등처럼 길었고 우리는 그곳에 서서 잠시 말없이 수평선을 마주했다. 살면서 그렇게 오래 수평선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세상의 시초가 그 선인 것처럼 내 초점은 그곳에 계속 머물렀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에서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숙소는 정했어?"


등 뒤에 있는 호텔을 의식했는지 해미가 물었다. 그녀는 잠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 다시 앞의 바다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니, 일단 알아보려고. 근처에 모텔 많으니까 방 구하기 어렵지 않겠지."


"며칠 있다 갈 건데?"


"길면 일주일?"


나는 해미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그럼 우리 집에서 묵어. 일주일이면 숙박비 엄청 들 텐데."


나는 그녀의 제안이 고마웠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머무르는 게 미안하고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서 거절했다.


그녀와 한집에 있으면 내가 불편할 것 같았다.


"여기 뒤에 있는 호텔에 묵으면 되겠지."


나는 여유 있게 말했다.


"그래? 무서우면 언제든지 연락해."


해미가 더 여유 있게 말했다. 나는 무섭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내가 방에서 혼자 자게 될 거니까 그게 무서울 거라는 말인가.


바다를 본 뒤 정말 방금 말처럼 나는 등 뒤에 있던 호텔에 들어갔고 즉석에서 숙박을 예약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일단 2박 3일만 머무르기로 했다.


호텔은 최근에 지어진 신식이었고 위치가 훌륭해서 어느 방에서도 바다와 호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역시 비싼 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해미는 나를 따라 호텔 방까지 들어왔고 그녀도 또한 창밖으로 바다 뷰를 감상했다. 그러나 방금까지 바다를 오래 봤기 때문에 그 감흥은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었다.


내가 짐을 풀고 방 내부를 구경하는 사이 그녀는 계속 창 앞에 서 있었다. 바다는 이제 질릴 법도 한데 그녀는 그곳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뭐 해? 뭐가 보여?"


내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나도 창밖을 보았지만 특이할 만한 건 없었다. 혹시 고래라도 발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한곳에 시선을 오래 두었다.


내가 물어도 대답하지 않은 채 그녀가 갑자기 창에 입김을 불어 뿌옇게 만든 다음 거기에 손가락으로 무얼 그렸다. 나는 처음에 그걸 보고 그녀가 애들처럼 장난 치는 줄 알았다. 나한테 하트라도 보이려는 건가. 그럼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하지만 그녀가 창에다 그린 것은 하트가 아니라 이상한 한자 같은 것이었다. 창에 번진 입김은 금방 사라져 버려서 그 글자가 무엇인지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쓴 그것과 유리창은 금방 구별 없이 하나가 되었다.


"뭐 한 거야?"


내가 물었다.


"절대로 여기에 손 대면 안 돼. 알겠지?"


마치 엄마가 아이한테 가르치듯이 그녀가 답했다.


"왜? 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절대로 손대지 마."


의미심장하게 그녀가 답했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넘겼겠지만 해미가 무당이었기에 나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호텔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우리는 함께 쉬었다. 나 혼자 여행 온 건데 마치 그녀와 함께 와서 방을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웠고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애인 있는 내가 다른 여자와 이렇게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가끔씩 깔깔 웃는 해미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시간이 좀 흘렀을 때 어느덧 해가 저문 듯 밖이 깜깜해졌다. 순식간에 누가 호텔 밖에서 검은 도화지를 내려 창을 모두 가린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이 너무 어두운 것에 의문을 느끼고 침대에서 창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밖의 어떤 불빛에 의해 먼 바다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뭐에 홀렸는지 검은 바다를 주시했는데 아까 오후에 백사장에서 본 수평선에서 정말 무언가 비집고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정말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세상 밖의 어떤 존재가 하늘과 바다의 맞닿은 경계를 뚫고 세상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놀랍고 신기한 광경 탓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존재는 사람처럼 머리와 팔다리가 있었고 깜깜해진 세상보다 더 어두운 색을 하고 있었다. 정말 시커먼 녀석이었다. 그것은 내가 있는 호텔로 점점 다가왔고 점점 그 크기가 커졌다.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큰 키였기에 나는 지금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해미를 부르려고 소리를 질렀는데 목이 닫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해도 몸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발버둥 쳤지만 누가 양쪽에서 꽉 잡고 있는 것처럼 일어날 수도, 깨어날 수도 없었다.


내 시야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해미의 옆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가위에 눌렸다는 것을. 이건 모두 꿈이었다.


창밖의 검은 존재는 어느덧 호텔 앞까지 와서 긴 팔다리로 벽을 짚으며 내가 있는 층까지 올라왔다. 나는 무서워서 벌벌 떨며 깨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왠지 그것이 나를 노리는 있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어떤 힘 때문인지 그 녀석은 나를 찾지 못했다. 마치 내가 투명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내가 있는 층까지 올라왔음에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해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와 동시에 나는 진짜로 눈을 뜰 수 있었다. 잠에서 팍 깨어나자 실제로 해미가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소파에 앉아서 그녀가 물었다.


"나 꿈꾼 거지?"


그녀가 무당이니까 왠지 다 알고 있는 듯해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뭔가 괴로워하길래 쳐다봤어. 계속 끙끙 앓던데."


그녀가 답했다.


"나 가위 눌렸어."


"그랬구나."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좀 서운했다. 엄청 걱정해 줄지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무당이니까 그런 경험을 많이 봐서 그런 듯했다.


"저기 바다에서 검은 귀신 같은 게 여기까지 올라왔어."


"응, 그랬을 거야."


"뭐야? 알고 있었어?"


"응."


너무 해맑게 그녀가 답했다. 나한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은 그녀가 미웠다. 마치 내가 실험 동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왜 말 안 했어? 여기 귀신 있는 거야?"


나는 공포감과 당혹감을 숨길 수 없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건 아니고. 그래서 내가 창문에 부적 써준 거잖아."


아까 창에 입김을 불고 한자 같은 걸 적은 게 알고 보니 부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나름 나를 위해 비방을 쓴 셈이었다. 그 커다란 귀신이 왜 나를 찾지 못했는지 이해되었다.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물었다.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집에서 자라고 했지."


나는 그녀가 거기까지 내다본 줄은 몰랐다. 내가 호텔 방을 잡을 때 옆에서 가만있던 그녀가 얄미웠다. 좀 말려주지.


"일단 하룻밤 자봐. 한수, 너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나는 그녀를 보고 있다 입김의 부적이 쓰인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매우 맑은 하늘에 바다가 잔잔히 잠들어 있었다. 긴 수평선에서 귀신 같은 건 절대로 나오지 않을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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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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