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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8 23:1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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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글자수 :
25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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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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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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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해미 2-9

DUMMY

편의점 문에 들어서자마자 해미는 거기에 장군처럼 우직하게 서 있던 사신을 밀어버렸다. 녀석은 거대한 몸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뒤로 자빠졌다. 귀신이 넘어지는 걸 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신은 금새 일어나 등에 차고 있던 낫을 휘둘렀다. 이걸로 공격할 수 있으니 자기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였다. 하지만 해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당돌한 여자인지 처음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뒤에 서서 우리 쪽이 한 명이라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뿐이었다.


사신이 거대하고 날카로운 낫을 해미의 목에 들이댔다. 나는 그걸로 그녀의 목이 정말 베일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꿈인데 저 낫으로 베이면 어떻게 될까? 현실에서 다치지는 않을 거다. 그냥 꿈에서 깨어나는 건가?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그래도 꿈임을 감사했다.


"해봐. 베어 보라고."


해미가 턱을 들며 당당하게 말했다. 사신과 그녀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한 명이라도 먼저 움직이면 무조건 누군가 죽을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이었다. 나는 해미 뒤에서 침을 꼴깍 삼켰다.


사신은 이렇게 겁 없는 사람은 처음 본 모양인지 스스로 괴로워했다. 그렇다고 귀신 체면에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신의 눈이 붉어졌다. 그를 감싼 몸 주변의 검은 연기도 더 활활 타올랐다.


낫의 칼날이 목을 겨눈 상태에서 해미가 불경 같은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한국말은 당연히 아니고 무슨 동양의 고대 언어 같았다. 사신이 그걸 듣고 비명을 질렀다.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반반 섞인 음성이었다. 괴상하고 변태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듣기 싫어서 귀를 막고 싶었다.


해미가 점점 빠르게 주문을 외자 사신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겨누고 있던 낫을 해미의 목에 깊숙이 찔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낫은 해미를 관통하지 못했다. 그 강철 같은 무기가 직접 그녀의 몸에 닿자 연기처럼 기체가 되어 흩어졌다. 주술 때문인지 어떤 신비한 힘이 해미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격에 실패해서 사신이 놀라는 순간, 해미가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 해미가 다시 때렸다. 쾅! 또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 무슨 손바닥에 번개를 달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신은 반격할 의지를 잃었다. 자기도 놀란 반응이었다. 귀신도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너 어디서 온 놈이야? 너희 대장 어디 있어?"


해미가 사신의 턱을 잡고 물었다. 녀석은 큰 키 때문에 구부린 등을 더 낮게 구부렸다. 그의 몸에 타오르던 연기도 잠잠해졌다. 그가 완전히 승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디 있냐고. 빨리 말해."


해미가 다그쳤다. 사신이 괴로워하더니 갑자기 검은 새 한 마리로 변신해 도망쳤다. 까마귀 같은 거였는데 형체만 비슷할 뿐 까마귀는 아니었다. 해미는 그 새를 잡기 위해 편의점 안을 달렸다. 하지만 너무 빨리 날아서 잡을 수가 없었다.


새는 내가 아까 화살표를 따라 구석 통로에 갔던 곳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문 앞을 지키고 있으니 녀석이 향할 곳은 역시 그쪽밖에 없었다. 해미와 나는 구석 통로로 따라 들어갔다.


아까 봤던 대로 사람들이 벽을 보고 일렬로 서 있었다. 해미는 전혀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도 해미와 함께 있어서 이제는 무섭지 않았다.


새는 줄지어 있는 사람들 머리 위로 날아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이 새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해미는 한 명이라도 구해 내려고 팔을 뻗어 새의 비행을 방해했다.


새가 파드닥 날개를 치며 통로 안을 요란스럽게 날다가 다시 편의점 내부로 나가 문 밖으로 탈출했다.


"젠장. 놓쳤네."


해미가 아쉬워했다.


새에게 영혼이 흡수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은 여섯 명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해미가 그들의 어깨를 차례로 치자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그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저씨, 아줌마, 형, 오빠, 동생 들이었다.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그들은 해미를 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왜 곱게 가지 못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해미가 그들에게 물었다.


"저승사자인 줄 알고 따라 나섰는데 알고 보니 악귀였어요."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가 답했다.


"오토바이 타다가 갑자기 저게 나타나서 시선을 끌었어요. 저는 분명히 브레이크 잡았다고요. 이렇게 죽기 싫어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울면서 답했다.


"저승길 가지도 못하고 여러 해 동안 저것에 붙잡혀 끌려 다녔어요. 편히 죽지도 못하고 영영 잡귀로 남아야 하는 건가 걱정했는데 고맙습니다."


중년의 여자가 답했다.


거기 있던 망자들은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나는 살아 있는 내가 괜히 미안해졌다.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되는 건가. 기분이 우울해졌다.


"여러분은 제가 다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릴게요. 그 대신 악귀가 어디에 머물렀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그놈을 꼭 잡아야 합니다."


해미가 영가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이제 이승을 떠돌지 않고 편한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정말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지하실이었지? 아마도."


나이 많은 남자가 말했다.


"저는 여기 사람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겠어요."


중년의 여자가 말했다.


"제가 알아요. 춘천지방법원 지나서 경포동으로 산길을 올라가면 빌라 단지가 나오는데 거기 건물 하나 중 지하실이에요. 거의 폐촌이나 다름없어서 금방 눈에 띌 거예요."


해미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셨어요. 그 악귀는 이제 못 올 테니까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세요. 제가 꼭 약속 지킬게요."


해미가 영가들을 위로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통로를 나와 편의점 출입구로 향했다.


알바생이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나는 궁금해서 해미에게 여기 이런 사람이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해미가 그의 어깨를 툭 치니 그가 정신을 차린 듯 두리번거렸다. 얼음처럼 굳어 있다가 급하게 해동된 느낌이었다.


"내일 아침에 올 테니까 너무 놀라지 마세요."


해미가 그에게 말했다.


"네?"


그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아, 네. 근데 누구세요?"


"방금 졸다가 가위 눌렸죠?"


"네, 맞아요."


알바생이 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저쪽 구석 통로에서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맞죠?"


"네, 그래요. 무서워서 그쪽으로 가지도 않아요."


"내일 아침에 와서 제가 해결할 테니까 시간 좀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알바생이 공손해지며, 나가는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이게 지금 내 꿈인데 정말로 알바생이 가위에 눌렸다가 깨어난 건지 궁금하고 의심스러웠다.


편의점을 나가자 눈이 떠졌다. 칠흑 같은 방의 어둠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해미도 깨어났는지 확인했다.


"나 이제 잘 거야. 너도 자 둬."


내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해미가 누운 침대에서 그런 말이 들렸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싸고 다시 소파로 와 누웠다. 뭔가 해결된 느낌 때문에 잠이 잘 왔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는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나는 알바생이 우리를 알아볼지 무척 기대됐다. 정말 알아본다면 나는 해미를 평생 따를 각오가 돼 있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알바생이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입을 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우리를 계속 쳐다봤다.


"구석 통로 잠깐 빌릴게요. 괜찮죠?"


해미가 그에게 말했다.


"네, 네, 괜찮아요."


그는 굽실거리며 우리를 구석 쪽으로 안내했다. 해미가 따라올 필요까지는 없다고 손짓하자 그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해미는 여섯 개의 생수병을 냉장 칸에서 꺼내어 뚜껑을 연 다음 그것을 통로 바닥에 일렬로 진열했다. 부적을 썼던 것처럼 일종의 의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옆에서 잠자코 있었다.


해미는 아무 말 없이 그 생수병들을 지켜보았다. 따로 하는 행동은 없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생수병 하나를 들어 물을 반쯤 들이켰다.


"한수, 네가 나머지 반 마셔. 다 비워야 해."


그녀가 들고 있던 생수병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나머지 반을 들이켰다. 근데 물맛이 좀 이상했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신기해서 물맛이 왜 이러냐고 물으려 했으나 해미의 의식에 방해가 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미는 다 비운 생수병을 다시 바닥에 놓고 기도를 하더니 잠시 후 뚜껑을 닫고 그 생수병 하나만 챙기고 돌아섰다. 나는 의식이 끝났음을 인지하고 그녀와 함께 통로를 나와 카운터로 갔다. 알바생이 타조처럼 목을 빼고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어제 진짜로 가위에 눌렸고 해미가 풀어준 게 맞은 모양이었다.


"생수 여섯 개요."


해미가 계산을 하려고 그렇게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가세요. 제가 계산할게요."


알바생이 서둘러 말했다.


"나머지 다섯 개는 통로에 있는데 이따 그냥 버리면 돼요."


해미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알바생이 나가는 우리에게 꾸벅 인사했다. 심할 정도의 예의였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가 이해됐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부터 귀신과 영혼의 존재를 믿으며 살아갈 것이었다.


우리는 짐을 챙기고 호텔을 나왔다. 이제 숙박은 의미 없는 것이었다. 사신의 소굴을 알았으니 이제 그리로 향할 차례였다.


해미는 가져온 생수병을 소중히 보관해 달라고 내게 맡겼다. 나는 그것을 가방에 깊숙이 넣었다. 외부 충격에 찌그러지지 않게 가방 자체를 내 앞에다 메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유부남처럼 말이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각자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뭔가 뿌듯한 일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해미와 함께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편의점에 있던 영가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거기에 있잖아."


해미가 태연하게 답했다. 나는 곧 그녀가 말하는 거기가 내 가방 속에 있는 생수병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나를 비웠던 거구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또 물었다.


"내일 아침에 서낭 나무에 올라갈 거야."


그녀가 답했다. 나는 그 서낭 나무가 일전에 그녀가 기도했던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거기서 천도를 하려는 것 같았다.


"또 물어볼 거 있어?"


해미가 약간 짓궂게 말했다. 나는 진짜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우리 예전에 밥 같이 먹은 적 있어?"


해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몰라서 그래? 10년 동안 어디 멀리 가 있던 거야?"


해미의 놀란 반응에도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실은 나 아무것도 기억 안 나. 네가 미술 학원에 엎드려 있던 거랑 마지막 우리 전화한 거밖에···."


나는 뭔가 미안해서 그녀의 동그랗게 뜬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녀는 충격 받은 사람처럼 정지해 있더니 곧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자기가 먼저 고백해 놓고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번에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해미는 나를 놀리려는 속셈인지 밥 다 먹을 때까지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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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해미 2-39 21.07.22 22 2 12쪽
43 해미 2-38 21.07.17 41 2 12쪽
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7 2 12쪽
37 해미 2-32 21.07.01 129 2 12쪽
36 해미 2-31 21.06.28 157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33 해미 2-28 21.06.21 209 2 13쪽
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90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9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30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3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7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8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90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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