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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6 22:10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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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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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237

작성
21.05.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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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해미 2-11

DUMMY

해미와 나는 사정없이 달렸다. 남자는 무서운 분위기와 다르게 내가 밀치자 픽 쓰러졌다. 마네킹을 쓰러뜨릴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빌라를 빠져나온 우리는 차 있는 데까지 뛰었다. 나는 해미가 뒤처질까 봐 그녀의 뒤를 봐주었다. 다행히 남자는 쫓아오지 않았고 우리 시야에, 세워진 차가 보였다. 그걸 보니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제 차에 타기만 하면 된다,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리는데 갑자기 앞에서 남자가 튀어나왔다. 어떻게 쫓아왔는지 주차된 곳 옆의 빌라 모퉁이에서 깜짝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긴 팔을 너덜너덜 흔들며 괴상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끄아!"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생각할 겨를 없이 해미와 나는 뒤로 돌아 왔던 길로 다시 뛰었다. 그를 지나쳐 차까지 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리였다. 꿈에서 본 사신이 꽤나 덜 무서운 귀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도망쳤던 빌라 앞에 다시 왔고 힘들어서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해미는 상체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다 금방 허리를 폈다. 긴 팔 남자와 싸울 태세를 취한 것 같았다. 나도 그를 피해 계속 도망 다니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네가 나보다 힘이 세잖아."


해미가 말했다.


"응? 무슨 말이야?"


나는 그녀의 의중을 몰라 물었다.


"일단 나한테 오지 못하게 막아줘.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할게."


해미가 비장하게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우리에게 달려오는 긴 팔 남자를 몸으로 밀쳤다. 그와 부딪치기 죽기 만큼 싫었지만 해미를 믿었으므로 눈 질끈 감고 아까 그를 밀쳤던 것처럼 다시 한 번 그를 공격한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그가 마네킹처럼 쓰러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밀리게 되었다. 힘이 장사처럼 세서 그와 몸을 맞대고 있는데 내가 쓰러질 판이었다. 그래도 나는 뒤에 있는 해미를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맞섰다. 그놈은 팔을 늘어뜨린 자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등 뒤에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 해미가 그것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끄아아!"


나는 이제 버틸 힘이 없어 해미까지 그놈에게 공격당할 판이었다.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길어질수록 녀석의 힘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미는 힘이 그가 미는 힘보다 강해졌을 때 나는 그를 완전히 떨어뜨릴 수 있었다. 서로 교차한 내 두 팔로 그의 가슴팍을 밀자 아까 빌라 층계참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가 픽 쓰러졌다. 매우 허무한 결과였다. 아마도 해미의 주문이 통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정말로 마네킹이 된 것처럼 쓰러진 자세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눈은 인조처럼 생기가 없었다. 심지어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다.


"이제 됐어."


해미가 말했다.


이제 끝났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무서움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고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우리 앞에 쓰러진 긴 팔 남자의 존재를 이해하려고 애썼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내 정신만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현실의 존재일까, 아니면 영적인 존재일까.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귀신에 씐 사람일까.


"한수 보여?"


해미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남자의 몸에서 빌라 쪽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녀의 눈이 가는 대로 나도 따라 보았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쓰러진 남자의 몸만 있을 뿐이었다.


"왜? 뭔데?"


내가 물었다.


"검은 기운이 저 사람 몸에서 빠져나와 빌라 쪽으로 들어갔어. 역시 지하에 있는 게 맞아. 지금 들어가자."


해미가 답했다.


나는 더 험한 꼴을 당할까 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오늘 일은 긴 팔 남자를 상대한 것만으로도 내게 벅찬 수준이었다.


"괜찮아. 내가 힘을 많이 빼 놨으니까 힘든 건 없을 거야."


내가 진입을 망설이자 해미가 위로하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꿈의 편의점에서 그녀가 사신의 뺨을 때린 게 생각나 조금 덜 무서워졌다. 이번에도 지하에 내려가 뺨을 때리면 그놈이 겁을 먹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신발을 신은 발바닥이 계단에 닿을 때마다 지하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게 느껴졌다.


지하는 너무 캄캄해서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암흑뿐이었다. 현실의 공간에서 이 정도로 까만 어둠이 실존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우주에 있는 블랙홀보다 더 검을 것 같았다.


해미가 휴대폰을 꺼내 손전등을 켰다. 전방의 시야를 밝히자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빌라의 전체 외관보다 지하의 크기가 훨씬 큰 것 같았다. 나는 밖의 세상과 다른 공간에 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지상의 규칙이 지하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 같았다.


넓은 지하실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손전등을 아무리 비춰도 사신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긴 팔 남자가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올까 봐 슬쩍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으나 다행히 그의 인기척은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지하실 구석에 버려진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책상, 화분, 자전거 등. 그리고 누가 술판을 벌였는지 소주병 몇 개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상태로 보아 매우 오래전인 듯했다. 아마 흉가 동호회 같은 곳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 술을 먹고 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실 끝에 문 하나가 보였다. 딱 봐도 열면 바로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길함이 들었다. 다른 벽에는 문이 없는데 그쪽에만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문은 재질이 철이 아니라 나무였다. 시멘트 벽에 나무 문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해미는 손전등으로 그곳을 비추며 천천히 다가갔다. 지하실이 넓어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까 봐 나도 그녀 뒤를 따랐다. 해미는 내게 쉿 하는 손가락 모양을 보인 뒤 문고리를 잡고 잠깐 뜸을 들였다가 뭔가 결심한 듯 그걸 돌렸다.


끼이익.


나무 특유의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안에는 본래 지하실보다 작은 공간이 따로 있었다. 50평 아파트의 거실 크기 정도였다.


해미가 손전등을 좌우로 비췄을 때 나는 무얼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편의점 구석에서 보았던 사람들 줄이 똑같은 형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기에서도 벽을 보고 일렬로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이 진짜 사람인지 아니면 영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해미가 그들을 관찰하듯 손전등으로 오래 비췄다. 나는 벽 끝을 보고 나서야 그들이 영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있는 사람이 벽에 막혀 신체 반만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유령이 벽을 통과해 자기 모습을 반만 보여주는 장면 같았다.


우리가 손전등을 비췄는데도 그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벽을 보고 선 채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한 걸음 다가가자 바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무슨 껍질 같은 게 밟히는 듯했다.


해미가 손전등으로 아래를 비췄다.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서 목구멍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왔다.


"크헉!"


그 정도에서 그쳤으니 망정이지 정말 하마터면 크게 욕을 해서 지하실을 울릴 뻔했다.


해미가 비춘 바닥에는 각종 곤충과 벌레 들이 양지에 고추 말려 놓은 것처럼 죽은 채 넓게 깔려 있었다. 껍질을 밟은 듯한 느낌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그렇게 많은 떼거리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빌라 주변의 모든 곤충과 벌레 들이 여기 와서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 누가 일부러 잡아서 이렇게 했다는 것도 그 수 때문에 무리일 것이었다.


나는 계속 쳐다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높은 곳에서 앞만 보는 것처럼 나도 정면만 바라보았다. 바닥에 밟히는 것은 콩 껍질이라고 스스로 세뇌했다.


하지만 나는 그 공간의 한 지점을 봤을 때, 해미가 손전등으로 비춰 들어간 곳이었는데 거기가 우리의 종착 지점인 듯했다, 아무튼 그곳을 봤을 때 방금보다 더 심한 구역질을 느꼈다. 정말 토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리고 뒤로 물러섰다.


내가 본 것은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긴 좌식 테이블과 그 위에 놓여 있는 고양이 시체였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목이 없었다. 누가 칼로 자른 것처럼 거칠게 베여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테이블 중앙에 양인지 염소인지 사슴인지 모를 그런 동물의 머리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슨 제단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기괴한 광경을 맨정신으로 볼 수 없어서 해미의 손전등이 닿지 않은 어둠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공포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신기하게도 해미는 그리 놀라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녀는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았던 방울 막대를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흔들기 시작했다. 방울 소리가 어둠을 깨듯이 지하실 공간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바닥의 벌레들이 깨어나고 제단 위의 새가 날갯짓할까 봐 해미가 그만 멈춰주기를 바랐다.


다행히 동물 머리 위에 앉은 새는 깨어나지 않았다. 녀석은 자고 있는 듯 눈을 곱게 감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편의점에서 보았던 그 새가 확실했다. 사신이 해미에게서 도망칠 때 검은 새로 변했는데 그 새가 이 새였다. 나는 꿈에서 본 것을 현실에서 봐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귀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게 진리나 다름없었다.


"잠깐 이것 좀 잡고 있어 봐."


해미가 내게 손전등 켜진 휴대폰을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고 그녀가 노리고 있는 새를 비춰 주었다. 녀석은 자는 게 아닌지 방울 소리를 들어도, 눈앞에 빛을 비춰도 깨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박제 됐다고 하는 편이 옳을 듯했다.


해미가 방울을 흔들며 다른 손으로 그놈을 잡으려고 했다. 손을 거의 그놈 목덜미에 닿을 정도로 뻗었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전등 빛을 천장으로 올렸다. 해미의 고개도 빛을 따라 위로 들려졌다.


나는 천장에 있는 것을 보고 또 놀라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천장에 있는 것은 꿈에서 보았던 사신의 얼굴이었다. 꿈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얼굴이 정말 새하얗고 길쭉한 모양이었다. 약간 벌린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수십 개 박혀 있었다. 저걸로 사람들 영혼을 뜯어 먹었으리라.


나는 무서움 때문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어서 손을 벌벌 떨었다. 손전등 빛이 천장에서 나온 귀신 얼굴 위에 조금씩 흔들렸다. 계속 보니 그의 몸은 제단이 있는 수직 벽 쪽에 있고 키가 커서 허리를 수그린 자세로 얼굴만 수평 천장으로 들이민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각하면 된다.


"이거 잡아서 목 비틀면 너도 죽는 거 알지?"


해미가 새에게 손을 뻗은 채로 천장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건 일종의 협박이자 어떤 거래였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둘 사이의 신경전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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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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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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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89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6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2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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