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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8 23:1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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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6
추천수 :
128
글자수 :
253,458

작성
21.05.30 18:22
조회
432
추천
2
글자
12쪽

해미 2-12

DUMMY

천장에 얼굴을 내민 악귀는 불쾌한지 빨간 눈을 희번덕거렸다. 제단에 있는 새를 만지지 말라는 경고의 뜻 같았다. 하지만 녀석은 새의 목을 비틀어 버리려고 하는 해미의 손과 그녀의 영적 능력 때문에 우리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네 두목 지금 어디 있어? 그것만 알려주면 그냥 떠날게."


악귀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우리 쪽으로 더 들이밀었다. 꿈에서 들었던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반씩 섞인 그 음성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은 게, 녀석은 본래 빨간 눈을 가진 게 아니라 위아래 눈꺼풀이 뒤집혀서 그 속살 때문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눈꺼풀 안쪽의 빨간 살을 눈동자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악귀는 눈을 감은 채로 눈꺼풀만 뒤집혀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차라리 빨간 눈동자가 덜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귀는 약간 우는 소리를 냈다. 해미의 요구에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을 내비친 것 같았다.


"그럼 널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야? 누가 널 모시고 있냐고."


해미가 수사하는 형사처럼 질문했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악귀가 벌써부터 을이 된 것 같았다. 큰 키, 흉측한 얼굴, 살벌한 낫이 주는 이미지와 다르게 그는 나약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이 줄어들었다.


"빨리 말해. 나 시간 없어."


해미가 제단 위에 있는 새의 목을 콱 잡았다. 악귀가 더욱 괴로운 소리를 냈다. 나는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지만 그 소리는 외부에서 들리는 게 아니었기에 귀를 막아도 여전히 컸다. 마치 고막 안쪽에서, 더 자세히 말하면 뇌 속에서 들리는 기분이었다.


"진짜 비틀어 버린다."


해미가 마지막으로 협박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눈앞에 보이는 건 아니었고 사람이 생각을 하거나 어떤 모습을 떠올릴 때처럼 환상이나 상상 같은 게 그려진 것이었다. 분명히 내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내가 스스로 만든 이미지는 아니었다.


해미도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지 일단 가만있었다.


그 생각 속에서 한 남자가 이 지하실에 들어와 초를 켜고 가방에서 무얼 꺼내기 시작했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 시체와 양 혹은 염소의 머리였다. 인상이 순하지 않고 뿔 4개가 기괴하게 난 것으로 보아 염소의 머리가 맞는 듯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제단의 형성 과정이 중계되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긴 회칼로 고양이 머리를 모두 잘랐다.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강제로 영상 시청하는 것처럼 그 생각의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아서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염소 머리를 테이블 중앙에 놓은 뒤 그 곁에 고양이 시체를 나란히 깔았다. 그리고 물통에 담아 온 빨간 피 같은 걸로 벽에 알 수 없는 문양을 그렸다.


남자의 입에서 낮고 불쾌한 주문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커지는데 차라리 악귀의 음성을 듣는 게 나을 정도였다. 나도 그 주문에 홀려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남자의 태도는 나름 지극정성이었고 이곳에 여러 번 찾아온 듯했다. 제단 앞에서 절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나는 대충 이 지하실의 비밀을 알 것 같았다.


귀신이 보여준 이미지는 거기까지였다. 그 환영 같은 것은 이제 사라졌고 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까처럼 눈앞에 해미와 제단과 귀신이 있는 게 보였다. 해미는 손으로 잡았던 새의 목을 놓았고 귀신은 여전히 천장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여기서 물러날게. 근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넌 저승사자가 아니거든. 나중에 그 벌을 꼭 받게 될 거야."


해미가 악귀에게 경고한 뒤 돌아섰다. 나는 이제 끝난 건가, 하고 생각했다. 구석에 줄지어 있던 영가들은 여전히 벽을 본 채 가만있는 상태였다. 해미는 이곳 작은 지하실에서 나가 큰 지하실을 저벅저벅 가로질렀다. 나도 얼른 그녀를 따라 지하실을 나갔다. 이런 곳은 절대 다시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빌라 밖으로 나온 우리는 입구 쪽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 긴 팔 남자 말이다. 해미는 그에게 다가가 흔들며 그를 깨웠다. 나는 그가 다시 깨어나서 우리를 공격할까 봐 해미를 말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태도가 너무 완강해서 그럴 수 없었다.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 봐."


해미가 남자의 얼굴에 대고 소리쳤다. 영영 쓰러져 있을 것 같았던 그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들고 상체를 일으켰다. 나는 그가 여전히 귀신인지 아니면 이제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눈동자를 보았다. 마네킹처럼 생기 없었던 눈이 지금은 사람의 것처럼 최소한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는 좀 불안한 듯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의 팔도 확인했다. 괴물처럼 길었던 팔이 지금은 사람의 것처럼 정상 길이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리 귀신에 씌었다 해도 물리적인 팔 길이가 저렇게 변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아저씨 뭐야? 무당이야?"


정신을 차린 남자에게 해미가 다짜고짜 따졌다. 제삼자가 봤다면 분명히 해미를 나쁜 쪽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네? 무슨 말이에요?"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가 존댓말을 하며 당황해했다.


"뭐 하는 놈인데 지하실에서 저런 것을 키우냐고."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누구세요?"


남자의 목소리에서 겁 먹음이 느껴졌다. 나는 해미의 말을 통해 그가 귀신이 보여주었던 이미지 속의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그가 맞았다.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듯 긴 팔 남자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염소 머리랑 고양이 시체 뭔데? 응? 아저씨가 악마한테 빌었잖아."


급기야 해미가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남자는 마치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오해에요. 제가 나쁜 짓 한 건 아니라고요."


남자가 살려 달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해미는 그의 멱살을 놔주지 않았다.


"저딴 거 키운 게 나쁜 짓인 거 몰라? 어디서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있어."


해미는 계속 남자를 윽박질렀고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실토했다.


자기는 원래 신가물이 있어서 무당이 될 팔자였는데 어쩐 일인지 신굿 도중에 신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버렸다고 했다. 남자는 무당 될 팔자를 면해서 기분이 좋았지만 그때부터 몸이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근데 병원에 가도 이상 없다고 하고 무당집에서는 신 내림 해줌의 대가로 거액을 요구했다고 한다.


몸과 맘이 모두 아파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던 그는 우연히 시장에 갔다가 한 여자를 만났다.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며 그를 위로해 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서 남자는 그녀를 경계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위로에 감동을 받아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여자는 그를 토닥이고 안아주었다. 남자는 왠지 모를 맘의 평화를 느꼈다.


그 뒤로 그는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녀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여자의 직업은 무당이었다. 남자는 그녀의 제자로 일하면서 몸과 맘의 고통에서 많이 벗어났다. 여자는 남자에게 신 내림을 약속했다.


몇 년이 흘렀을 때 여자는 남자를 개인적으로 불렀고, 지금부터 네가 신을 받으려면 한 가지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걸 수행하면 너도 신을 받아 무당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일러준 건 바로, 귀신이 지하실에서 아까 우리에게 보여줬던 이미지 속 행위였다. 버려진 건물의 지하실에 동물 시체를 놓고 제단을 만드는 것. 매일같이 찾아가 빌고 또 비는 것. 그렇게 100일을 하면 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저씨, 그게 정상적인 신이야? 악귀라는 거 몰라?"


해미가 운전을 하며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탄 차는 이제 빌라의 폐촌을 벗어나 강릉 시내로 향하고 있었다.


"저도 미쳤었나 봐요. 생각으로는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신을 꼭 받아야 한다는 마음에 그만···."


남자는 다행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다시 귀신에 홀려 눈이 까매지고 팔이 길어질까 봐 조수석에서 신경을 놓지 않고 있었다.


"말 들어보니 그 여자도 진짜 무당은 아니네. 그치?"


해미가 물었다.


"근데 진짜 영험하긴 했어요. 점사도 다 맞히고. 굿도 잘해서 돈도 많이 벌고."


남자가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답했다.


"무당이 돈이야? 돈 잘 벌면 신도 진짜인 건가?"


해미가 다그치듯이 말했다.


"아, 아뇨. 절대 아니죠."


남자가 수그러들었고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저한테는 스승이자 은인입니다. 그분 만나고서 몸 아팠던 게 나았으니까요."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만. 그게 다 악귀의 꾐인 거야. 허주한테 당한 거라고. 무당 중에 그런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해미가 목소리를 높였다. 남자가 자기도 잘못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 채 가만있었다.


우리는 그를 강릉 시내의 어딘가에 내려주었다. 그는 가까운 곳에 본가가 있으니 걸어 가겠다고 했다. 해미는 그에게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 새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자는 알겠다 했고 고맙다고도 했다.


우리는 그 뒤로 해미의 집에 도착했고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집에 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둘 다 몸에 기운이 빠진 상태라 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일과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보다 해미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었다. 운전도 하고 영적 능력으로 귀신과 싸우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가 한 일은 귀신에 씐 남자를 상대했던 것밖에 없었다. 긴 팔 남자와 눈꺼풀 뒤집힌 악귀 중 다시 상대하라고 하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었다. 후자는 지하실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고충이 있으니 이제 영영 만나기도 싫은 상대였다.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미는 긴 소파에 편하게 누운 채 자고 있었다. 매우 피곤했는지 코를 약간 골기도 했다. 나는 그 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아직 소녀 같은 그녀가 무당이 되어 영적인 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걸까? 나이가 서른이라고 해도 충분히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요즘 서른은 사회에서 애기 취급 받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녀의 인생이 좀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내가 쓰는 손님방에 들어가 이불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내가 이불을 덮어준 것도 모른 채 계속 곤히 잤다. 얼굴 표정을 보니 매우 평안해서 아무 꿈도 꾸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 집 밖으로 나가 마당에서 노을이 지는 하늘을 감상했다. 맥주 한 캔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하늘은 영원할 것처럼 주황빛을 구름 곳곳에 품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쉬워하며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자연은 야속하게도 내 맘을 알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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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해미 2-40 21.07.24 9 2 11쪽
44 해미 2-39 21.07.22 22 2 12쪽
43 해미 2-38 21.07.17 41 2 12쪽
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7 2 12쪽
37 해미 2-32 21.07.01 129 2 12쪽
36 해미 2-31 21.06.28 157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33 해미 2-28 21.06.21 209 2 13쪽
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90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9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30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3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7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8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90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18 해미 2-13 21.05.31 41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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