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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8.05 01: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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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30
글자수 :
258,868

작성
21.06.0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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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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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해미 2-18

DUMMY

내가 그렇게 말하자 무당이 들고 있던 상자에서 시선을 떼고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말 들었어?"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이, 아니면 믿는데 정말 신기하지 않느냐는 듯이 물었다. 나는 일단 그녀의 관심을 상자로부터 내 쪽으로 돌려서 한시름 놓았다.


"네, 새벽 2시에 상자 열어 놓고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문 밖에서 숨소리가 들렸어요."


무당이 손에 있던 상자를 탁자에 내려놓은 뒤 본격적으로 내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또 뭐 느낀 거 없어?"


"발자국 소리도 들었요. 근데 그게 되게 느렸고 발이라기보다 손바닥으로 짚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어요."


무당이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너 귀신 볼 수 있어? 신기가 느껴지진 않는데···."


무당 앞에서 귀신 본다는 거짓말까지는 할 수 없어서 귀신은 못 보는데 평소 촉이 좀 빠르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그래? 어렸을 때 사고 당한 적 있어? 신줄이 있는 게 아니니까 어디 아프거나 다쳐서 그런 거 같은데."


무당은 상자를 잊고 나에게 빠져 있었다. 나는 상상력을 총동원해 저번처럼 없는 얘기를 막 지어냈다.


초등학생 때 자전거 타고 놀다가 차에 부딪혔다고. 기절을 해서 3일 만에 병원에서 일어났다고. 의식을 잃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꿈에서 저승사자를 봤다고. 그가 나를 배에 태우고 어디론가 데려갔다고. 갑자기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나 나를 구해줬다고. 그 뒤로 영적인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게 되었다고. 어렸을 때는 영감이 강했는데 커 가면서 점점 약해졌다고. 지금은 거의 일반인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소설을 지어내면서도 무당이 거짓말임을 알아챌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왠지 그녀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모두 꿰뚫고 있을 것 같았다.


"조상신이 도왔구먼. 아마 네 할아버지나 증조쯤 됐겠지. 지금은 그분 말고 다른 분이 계시네."


무당이 내 어깨 너머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일전에 해미가 얘기해 준 큰아버지가 생각났다. 감투 같은 걸 쓴 그가 나를 뒤에서 지켜주고 있다고 그랬었다.


"혹시 중년 남자 분 말하는 거예요?"


나는 마치 내가 직접 보고 아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야 영감이 있다는 내 말에 신빙성이 더해질 것 같았다.


"맞아. 알고 있는 거야?"


무당이 분명 놀란 눈치였는데 나한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금방 감정을 절제했다. 그녀의 눈빛은 다시 무섭고 예리한 기세로 돌아와 있었다.


"꿈에 종종 저한테 나타나셔요."


"꿈? 예지몽 같은 것도 꿔?"


그녀는 여전히 무당 같은 위엄 있는 태도를 견지했지만 나는 그녀가 분명히 놀랐고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지몽이라기보다 위험한 일 생길 것 같으면 경고해 주죠. 좋은 일도 알려주고."


"수호신까진 아닌데 꽤 대단한 일을 하는군. 생전에 어떤 관계였는데?"


"제 큰아버지였어요. 저희 아빠의 형."


"직업은?"


"공무원이셨죠."


"나랏밥 먹었던 양반이었으니 감투를 쓰고 있었구먼."


"네, 맞아요."


무당이 내 거짓말에 말려들자 나는 좀 의기양양해졌다. 내 뒤에 수호신이 있다고까지 하니 더욱 그랬다.


"근데 그렇게 좋아할 거 없어."


무당이 내 속을 꿰뚫어 보듯 말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무서웠다.


"왜, 왜요?"


"너 지켜주다 싸운 건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영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상태야."


나는 그런 소리를 또 처음 들어봐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릉에 와서 해미를 만나면서부터 귀신들을 본 일이 생각났다. 혹시 큰아빠가 나를 지켜주려고 그 귀신들과 싸웠던 것일까. 나는 수호신이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에 섭섭함이 들었고 큰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하는 일이 뭐야?"


무당이 대뜸 물었다.


"저 그림 그려요."


나는 웹툰 작가라고 하면 나이 든 그녀가 못 알아들을까 봐 그렇게 답했다.


"무슨 그림? 화가야?"


"화가라기보단 뭐 이것저것 그리며 먹고살고 있어요. 만화 같은 것도 그리고."


"그래? 잠시만···."


무당이 제단 아래에 있는 서랍장에서 무언가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엉덩이를 떼고 반쯤 일어나 물건을 찾는 게 너무 무당스러워 보이지 않아서 그녀에 대한 신비감과 위압감이 조금 줄어들었다.


"저거 한번 그려 봐."


무당이 탁자에 올려놓은 것은 어떤 공책과 검은 사인펜이었다. 공책은 보통 상점에서 파는 것과 다르게 표지가 누리끼리한 종이 재질로 되어 있었다. 동양의 고서나 절의 스님들이 보는 법문집 같았다.


무당이 그려 보라고 가르킨 것은 제단의 가장 왼쪽에 있는 동자승 인형이었다. 크기가 좀 있고 특징이 뚜렷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충분히 보고 그릴 수 있었다. 나는 대학 실습 시간에 했던 캐리커처가 떠올랐고 그때처럼 동자승을 공책에 그렸다.


몇 분도 되지 않아 완성했다. 공을 들이지 않았지만 꽤 닮게 표현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무당은 내 그림을 보더니 나를 좀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잘 그리네."


그녀의 평은 간략했다. 나는 그녀가 왜 나한테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는지 의문스러웠다. 당집에 점 보러 와서 그림을 그린 손님은 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자네 혹시 일해 볼 생각 없나?"


무당이 다시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아주 잠깐 그녀의 눈을 쳐다본 뒤 시선을 내리깔았다. 갑자기 일? 만약 같이 일한다면 매일같이 저 눈을 봐야 할 텐데 내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요?"


내가 물었다.


"자네 보니까 영감도 있고 그림도 잘 그리는구먼. 그냥 여기서 나 도우면서 몇 가지 잡일만 하면 돼. 돈은 두둑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여기서 일하라고요? 전 무당 될 사람도 아닌데···."


"제자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야. 여기도 회사나 마찬가지라고. 그냥 직원 뽑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않아도 돼."


무당의 목소리가 조금 온화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절대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눈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데요?"


나는 일할 생각은 당연히 없었지만 만약 여기서 일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할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여기 청소. 별거 없어 그냥 마루 좀 쓸고 깨끗이 닦으면 돼. 그리고 내가 그림 좀 그려 달라고 하면 그려주고."


나는 왜 당집에서 그림을 그리는지 의아했으나 거기까지 깊게 묻지는 않았다. 그냥 잡일 시키는 직원으로 나를 뽑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루에 2시간만 일하면 돼. 일당 10만 원씩 줄게. 어때? 해볼 생각 있어?"


무당이 입가에 어떤 미소를 띄며 말했다. 내게는 그 웃음이 굉장히 음흉해 보였다.


"일단 생각해 볼게요."


바로 거절하면 내게 저주를 내리거나, 아니면 탁자에 놓인 상자에 다시 관심을 가질까 봐 나는 일을 할 것 같은 뉘앙스를 조금 주었다. 하지만 절대로 진짜 할 생각은 없었다. 일당 50만 원을 줘도 하루면 모르겠는데 그 이상은 절대 불가능이었다. 저런 으시시한 분위기의 무당 아래서 일하면 나도 암흑의 기운에 휘말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 방을 나왔다. 내가 나간 뒤에도 무당이 상자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냥 저번처럼 병풍 뒤에 가서 제자리에 놓기만 하기를. 절대 뚜껑은 열어보지 않기를.


근데 내가 여기서 일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에 무당이 나를 어느 정도 신뢰할 것이고 그 인간적인 믿음 때문에 상자에 대한 의심 같은 건 별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당집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안심했다.


"줬어? 뭐래?"


조수석에 타자마자 해미가 물었다. 그녀는 내가 무당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정말 궁금했을 것이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하자."


나는 숨을 좀 돌릴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무당 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인사하고 나올 때까지 다 들려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차가 출발하고 어느 정도 몸과 맘을 추스를 여유가 필요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지어냈어?"


내가 무당에게 거짓말한, 어렸을 적 겪었던 영적 이야기를 듣더니 해미가 놀라며 말했다. 나는 그녀 또한 놀라게 해서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진짜 무당까지 놀랄 정도면 내 얘기가 정말 그럴싸했나 보다.


"긴박한 순간이니까 머릿속에서 술술 나오더라.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해."


"상자는 계속 열어보지 않았고?"


"응,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 설마 진짜로 열어봤겠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일반 사람이라면 무서울 테니까 절대로 못 열어보지."


"그리고 또."


해미는 내 얘기를 재밌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 반응이 맘에 들어서 계속 신 나게 떠들었다.


"큰아빠 얘기도 했었어.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사라진 상태래."


해미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알게 모르게 너 많이 지켜주셨어. 원래 수호신이라 해도 평생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영가들도 휴식을 취해야지."


나를 위해 그녀가 꽤 돌려 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건 배려이자 위로였다. 나는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더 이상 큰아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나보고 일할 생각 없냐고 묻더라."


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가장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일?"


정면을 보며 운전하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예상한 반응보다 더 놀란 눈치였다.


"응, 나한테 그림 그려 보라고 하더니 같이 일할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


"그림? 뭘 그렸는데?"


매우 중요한 사항인 듯 그녀가 흥분했다.


"동자승 인형이 있길래 그거 그렸지. 왜 문제 있어?"


나는 왠지 그림 그린 것 때문에 저주나 방법에 걸린 게 아닐지 걱정되었다.


"너한테 그림 그리는 일을 시킨대?"


"방 청소하고 그림 좀 그려 달라고 하던데. 하루에 2시간만 일하면 된대."


해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녀가 빨리 아무 말이나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가 운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보챌 수가 없었다.


"방법 할 때 쓰는 초상화를 그리게 하거나···."


해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양옆을 보며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는 그녀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궁금했다.


"너를 제물로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제물?"


내가 놀란 반응을 보인 건 너무나 당연했다. 누구라도 자신이 못된 무당의 제물로 쓰인다고 들으면 화들짝 놀랄 것이었다.


"그년이 악귀를 만드는 데 너처럼 건장한 청년이 필요했던 거지. 귀신들은 원래 사람 몸에 들어가서 조종하는 걸 좋아하니까."


나는 일당이 100만 원이라 해도 절대 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고, 비싼 대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럼 절대로 안 해야겠네. 생각해 보고 연락한다 했는데."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 해야지."


근데 해미가 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갑자기 그녀가 미쳐버린 게 아닐까 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나를 제물로 쓴다매."


"제물로 쓰기 전에 우리가 선수 치면 되지."


해미는 그 말을 너무 쉽게 했다. 자기가 제물로 당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걱정하는 어조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얄미웠다.


"어떻게?"


내가 물었다.


"어쨌든 상자 뚜껑은 누가 열어야 되거든. 그걸 네가 그 집에서 일하면서 열어 놓는 거지.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무슨 첩보 영화가 생각나서 머릿속이 갑갑해졌다. 나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해미 집에서 상자 뚜껑을 여는 것과 그 무당집에서 뚜껑을 여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결국 잘됐네. 상자 뚜껑을 어떻게 열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수, 잘할 수 있지?"


해미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일을 무슨 어린이 드라마에서 대수롭지 않은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그냥 빨리 서울로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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