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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8.05 01: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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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2
추천수 :
130
글자수 :
258,868

작성
21.06.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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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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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해미 2-19

DUMMY

"상자를 병풍 뒤에서 가져왔다고?"


"응, 아마 그 뒤에 보관하고 있던 거 같은데."


저녁을 먹고 우리는 거실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날이 좀 더워서 따뜻한 것은 마시기 싫었지만 해미가 직접 끓여 왔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해미는 여름이라도 따뜻한 걸 마시는 게 몸에 좋다고 했다. 따뜻한 것은 생명을 살리고 차가운 것은 생명을 죽인다고도 했다.


"어쨌든 네가 거기서 일하면서 상자 뚜껑을 열어 놔야 돼."


해미가 비장하게 말했다.


"근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


나는 확신할 수 없어서 말을 흐렸다. 차라리 그 무당의 눈을 1분간 쳐다보고 있으라 하는 게 더 성공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무조건 해야지. 거기 들어가는 게 힘든 거지 뚜껑 여는 건 어렵지 않잖아."


해미는 너무, 자기가 하는 일 아니니까 쉽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그 무당집 분위기와 무당 얼굴만 상상해도 손발이 떨렸는데 말이다.


"만약 내가 일 제안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뚜껑을 열 생각이었어?"


나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굳이 열지 않더라도 그 속에 봉인돼 있던 영가는 구해줘야 하니까. 그리고 언젠가 열릴 것을 대비해 우리 인형을 넣어 둔 거지. 안 열려도 악귀 하나는 없앤 셈이니까 상관없지. 상자는 그냥 여러 방법 중에 하나인 거야."


"그럼 안 열어도 되겠네. 네 말대로 다른 방법도 있는 거니까."


나는 상자를 열기 싫어서, 즉 그 당집에서 일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했다.


"직접 찾아가서 무당 년을 족치고 상자를 다 없애던가. 근데 그렇게 되면 경찰이 오겠지? 이런 영적인 일은 증거도 불충분해서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불리해질 거야. 또 다른 방법은 굿이나 꿈을 통해 영적 싸움을 하는 건데 그건 내가 집 밖에서부터 귀신과 싸워서 집 안까지 들어가야 한다는 고충이 있지."


해미는 말을 마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생각해 보니 내가 상자 뚜껑을 열고 그 속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게 일종의 지름길 같은 거였다.


"하다 걸리면 어떡하지?"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을 물었다.


"도망쳐야지."


해미가 간단하게 답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끝?"


"한수 남자잖아. 그래 봤자 상대는 나이 든 여자라고."


물리적인 차원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주먹으로 싸우면 내가 이길 것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싸움은 물리적인 것을 넘어선 영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악귀를 모시는 무당과 영감 없는 일반인이 싸우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침묵으로 이어졌고 나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갑자기 목이 타 뜨뜻한 차를 벌컥 들이켰다.


그날 밤 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내가 묵는 손님방 창문에서 이상한 느낌이 나 눈을 떠 보니 웬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정말 천연덕스럽게 창틀에 앉아서 발을 흔들고 있길래 나는 처음에 그게 진짜 사람인 줄 알았다.


"뭐지?"


내가 말했다.


남자애는 나를 쳐다보는 게 재밌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곧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무당집에서 그림 그렸던 동자상이었다. 무서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굉장히 난감했다. 그래도 귀신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사탕 사 줘. 안 주면 귀신 보이게 한다."


마치 걔가 내 맘을 읽었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그때 동자가 무얼 본 건지 놀라며 도망쳤고 마당에 늘 있던 황금색 길고양이가 대신 나타나 동자 쪽으로 하악질을 했다. 나를 지켜주기 위해 일부러 온 것 같았다.


나는 바로 꿈에서 깼고 정신을 차린 뒤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여름이라 더워서 조금 열어 놨는데 내가 고개를 내밀어 창밖을 보자 정말 그 고양이가 날랜 몸으로 바닥에 착지해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날 나는 무당집에 전화를 걸어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웬 여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자신이 선생님께 그리 전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전화가 왔고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명을 받았다. 형식적으로 보면 취업에 성공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출근하기 싫은 합격 통보는 처음이었다.


근무 시간은 오후 6시부터 8시까지였다. 나는 당연히 오전에 일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어서 뭔가 꺼림칙하고 날이 어두워지는 것 때문에 더욱 걱정되었다. 해가 활동하는 시간이라면 빛 때문에 덜 무서울 텐데 해가 지는 때라 당집 분위기가 안 그래도 원래 으스스한데 더 소름 끼칠 것 같았다.


다음 날 출근 시간에 맞춰 나는 준비를 마쳤고 집을 나가기 위해 현관에 섰다. 방에서 나온 해미는 외출복 차림이 아니었다. 집에서 입는 편한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나는 그녀의 복장을 보고 놀랐음이 당연했다.


"같이 가는 거 아니야?"


내가 물었다.


"손님으로 가는 게 아니니까 나는 못 가."


그녀가 나를 이해시키려는 듯 답했다. 내가 당황해서 가만있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같이 가서 차에 있다면 분명히 그쪽에서 눈치 챌 거야. 저녁이라 손님도 안 받을 텐데 주차장 공터에 나 혼자 주차하고 있어 봐. 너무 뻔한 그림 아니야?"


나는 해미 혼자 차 안에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 말대로 그 무당이 본다면 저 여자 누구냐고 물을 것 같았다. 서로 무당이니 영적인 기 싸움도 분명 일어날 것이었다.


'거기 가서 직접 일하는 것도 무서운데, 게다가 시간은 저녁때고, 요즘은 해가 길어 늦게 진다고 하지만 퇴근하는 8시는 분명 깜깜할 거고, 그런데 나 혼자 가야 한다고?'


나는 출근하기도 전에 머릿속이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귀신이고 추억이고 나발이고 다 접고 서울로 올라가 다시 만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현관까지 와서 배웅하는 해미의 얼굴을 보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출근하는 남자를 위해 볼에 뽀뽀까지 해주면 정말 출근 의욕이 강해질 것 같았는데 나는 도덕적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얼른 그런 생각을 그쳤다.


"이게 지켜줄 거야."


해미가 나를 보내기 전에, 노란 봉투에 담긴 무엇을 내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그녀의 손이 주머니 안까지 들어와 내 엉덩이 닿았다. 나는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뭔데? 부적?"


내가 물었다.


"맞아. 잡귀 정도는 무서워서 접근도 못 할 거야."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혼자 운전해서 가려고 하니 길이 멀고 힘들게 느껴졌다. 왠지 귀신에 또 홀린 양 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 것 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계속 이어지는 건 산길이었고 주변에 마을이나 함께 달리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해가 높게 떠 있어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도착한 6시쯤에는 주차장에 차가 한 대밖에 없었다. 아마도 마지막 손님인 것 같았다.


주차를 하고 내렸는데 무당집에서 두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걷다가 그들과 가까워졌을 때 본능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살짝 쳐다봤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별 생각 없이 지나쳤겠지만 나는 다시 뒤를 돌아 그들을 자세히 보고픈 충동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본 것은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솟아 있고 눈동자가 특이한 남녀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편두를 한 것처럼 두개골이 봉우리처럼 솟아 있었고 눈동자는 사람처럼 둥근 것이 아니라 굵은 펜으로 그어 놓은 것처럼 일자였다.


처음에 내가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해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했으나 무서움도 들어서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나는 가던 길을 갔고 직진해서 무당집에 도착했다.


나는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멀리서 차에 타고 있는 그들을 관찰했다. 그 정도 떨어진 거리라면 그들이 나를 의식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멀리 있는 탓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복장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에 봤을 때와 같이 그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근데 그것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완전 현대식 복장이 아니라 한복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개량 한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함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얼른 고개를 돌리고 당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손님을 관리했던 남자가 문을 열어주고 나를 들였다. 그는 나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지 여전히 불친절했다.


나는 그의 지시대로 잠깐 거실에 앉아 있었다. 어떤 설계도를 가지고 집을 지었는지 거실이 무척이나 넓었다. 무당 방과 비교했을 때 위화감이 들 정도로 널찍했다. 나는 커다란 자신의 몸에 작은 수컷을 달고 사는 암컷 아귀가 생각났다. 아무래도 이 넓은 거실은 손님 접대를 위한 공간인 듯했다. 그렇게 추리해 보니 그 널찍함이 납득되었다.


분명히 더운 여름인데 나는 한기를 느꼈다. 에어컨을 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는데 선풍기만 몇 대 있을 뿐 에어컨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선풍기 또한 나를 향한 한 대만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무 일이나 하고 싶었다. 지루하니까 몸이 더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방에서 무당이 나왔다. 그녀는 처녀 귀신처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워 보여 지난번보다 겁을 먹었다. 내가 첫 출근 한 것을 겨냥해 어떤 의식을 치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얀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 신당부터 청소해."


무당이 자기가 나온 방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넓은 거실을 가로질러 그녀가 나온 방에 들어갔다. 그녀를 지나쳐 갈 때 최대한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방에는 천장의 등이 꺼져 있고 촛불만 켜져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방의 조명이 전체적으로 붉었다. 빨간 등이 켜져 있는 것도 아닌데 촛불만으로 정말 그랬다. 나는 신기함을 느끼면서도 불쾌했다. 기분 좋은 빨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살아 있는 괴물의 장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무당은 일단 물건부터 정리하라고 했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비뚤어진 게 있으면 바르게 잡으라고 했다. 근데 내가 쓰던 방도 아니라서 나는 어떤 물건이 본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청소 전의 상태를 봐서도 딱히 건드릴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 등 뒤에는 여전히 무당이 문을 막고 서 있었기 때문에 나는 탁자에 놓인 물건들을 조금씩 만져 정리하는 척했다. 그것밖에는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조금 사선으로 놓인 오방기를 직선이 되게 방향을 돌렸고 그 옆에 있는 방울과 부채도 오방기와 평행이 되도록 맞추었다. 진짜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런 게 조금 어질러져 있다고 해서 점사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닌 듯했다.


"자, 이걸로 신령상이랑 제단 위 먼지도 닦아."


어느새 무당이 하얀 수건을 가져와 내게 건넸다. 정말 그녀가 입은 옷처럼 땟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수건이었다. 아무래도 신령을 위해, 아니 자기가 모시는 악귀를 위해 청소하는 거니까 더러운 걸 쓸 수 없는 듯했다.


나는 수건을 들고 제단 가운데에 있는 신령상에게 다가갔다. 어디 중국 황제처럼 평평한 네모 판에 방울이 주렁주렁 달린 관을 쓰고 있었고 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아마도 옥황상제인 것 같았다. 방의 빨간 조명 때문에 지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수건으로 어린애 씻기듯 그것의 몸을 닦았다.


"정성스럽게 해야 돼. 건성으로 하면 안 된다고."


뒤에서 무당이 다그쳤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신령의 손바닥까지 깨끗이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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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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