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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기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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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8 23:1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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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글자수 :
25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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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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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해미 2-20

DUMMY

촛불만 켜진 어두운 방에서 신령상을 닦고 있으니 그들이 마치 살아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단에는 옥황상제와 대신할머니와 장군과 동자, 동녀가 있었는데 그들은 한 가족인 것처럼 하나 된 맘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 듯했다.


방의 빨간 분위기 때문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어서 무당이 천장의 등 좀 켜주기를 바랐는데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 앞에만 서 있었다. 차라리 일 좀 편하게 하게 비켜주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녀는 방을 나갈 생각을 안 했다. 아직 나를 못 믿는 모양이었다.


"거긴 됐어!"


신령상을 닦으면서 구석으로 가 제단 뒤의 병풍으로 고개를 슬쩍 넣어 봤는데 무당이 갑자기 소리쳤다. 나는 너무 놀랐다. 내 행동에 어떤 의도가 있었기에 스스로 긴장한 것도 있었지만 무당이 그렇게 큰 소리 칠 줄 몰랐기에 더욱 놀란 것도 있었다. 그녀는 마치 내가 병풍 뒤를 살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신령님들 뒤는 함부로 보는 거 아니야."


문 앞에 있던 무당이 바로 내 옆까지 와 있었다. 나는 내 팔뚝에 바짝 붙은 그녀를 보고 더욱 놀랐다.


"앞으로는 여기까지 청소해. 그쪽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무당이 손가락으로 제단까지만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꿈에 나왔던 동자상이 나를 보며 낄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깨끗이 빨아서 밖에 널어 두고 와."


나는 무당이 시키는 대로 화장실에 가 신령상을 닦았던 수건을 깨끗하게 빨았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방에 나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는지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과 후 텅 빈 운동장처럼 쓸쓸한 거실과 발코니 밖에서 해가 지는 풍경만이 눈에 띄었다. 나는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해가 좀 느리게 지는 것도 바랐다.


화장실이 무슨 공중 목욕탕처럼 넓었다. 변기와 욕조와 세면대만 있을 뿐인데 남아도는 공간이 많았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불쾌한 한기를 감지했다. 진짜 찬 바람이 분 건 아니었고 그냥 기분이 그랬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건물의 화장실에 혼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세면대에서 수건을 빨고 돌아섰을 때 나는 벽으로 가려진 뒤에 숨은 공간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입구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세면대 쪽에서 보니 벽과 벽 사이에 틈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딱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의 너비였다. 분명 그 뒤에 벽으로 가려진 어떤 공간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보았다. 화장실은 넓고 조용해서 내 손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크게 날 듯한 분위기였다. 만약 숨겨진 공간에 어떤 존재가 있다면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알아챌까 봐 나는 진짜 우주 진공에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벽과 벽의 틈으로 고개를 슬며시 집어넣었을 때 나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아직 고개가 반도 안 들어간 상태였다. 틈 사이의 공간에서 갑자기 남자 발이 보여서 순간적으로 내가 당황한 것이었다.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물건을 보관해 놓은 공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그의 소리를 듣거나 인기척을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안에서 처음 보인 것은 발가벗은 남자의 발이었다.


나는 무척 놀랐지만 소리를 지르지 못했고 그렇다고 미안하다 사과하고 바로 돌아설 수도 없었다. 소리 지르는 건 목욕하고 있는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고, 그리고 순간적으로 놀란 것이기에 소리가 나올 겨를이 없었고 미안하다 사과하는 것은 내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면 내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그렇게 되면 그가 나를 알아채고 무섭게 쫓아올까 봐 어쨌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3초 정도 멈칫해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로봇처럼 굳은 걸음으로 화장실을 나갔다. 나는 거실을 가로질러 발코니에 갔고 거기 설치된 빨래 건조대에 수건을 널었다.


'내가 방금 무얼 본 거지? 분명 남자의 발이었다. 상체는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발가벗고 있었다. 아마 목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그 좁은 틈 안에 목욕탕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지? 손님을 관리하는 그 직원인가?'


나는 빨래를 널면서 생각에 잠겼다. 근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의 발이 정상이 아니었단 것이다. 전체적인 형체는 발이 맞았는데 발가락 부위가 자라다 만 것처럼 모양이 희미했다. 그러니까 자세히 설명하자면 뚜렷한 발가락이 없고 발이 그냥 하나의 살덩이로 돼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발가락이 잘린 것은 아니었다. 발가락의 대강의 형태는 있는데 그게 명확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가 발등이고 발가락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무당이 갑자기 나타나 생각에 잠긴 나를 깨웠다. 그녀는 발걸음 소리도 없이 발코니 앞에 와 서 있었다. 커다란 흰자와 하얀 소복이 귀신을 연상케 했다.


"아, 다 널었어요."


내가 거실로 나가려고 하자 그녀가 건조대에 걸린 다른 수건을 가져오라고 했다. 신령상을 닦았던 수건처럼 그것도 하얗고 깨끗했다. 건조대에 그런 게 몇 개는 더 걸려 있었다.


"가서 빨아 와."


무당은 그 수건도 빨아 오라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나는 그곳만큼은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행동을 망설였는데 내가 계속 머뭇거리면 그녀 또한 나를 보며 부동의 자세로 서 있을 것 같아서 얼른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일반인인 내가 악귀 모시는 무당을 기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살짝 뒤를 돌아봤다. 내가 거실을 가로질러 간 사이 무당은 자기 방에 들어간 듯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나는 그냥 주방 싱크대에서 수건을 빨았다. 소리가 크게 나면 무당이 알아채고 나올까 봐 일부러 물도 조금 틀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주방에서 빨든 화장실에서 빨든 큰 상관은 없는 것이었다.


무당이 있는 방으로 돌아오니 바닥에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있었다.


"이걸로 먼저 쓸어. 먼지 하나 없게 해야 돼."


아직도 진공청소기가 아니라 이런 청소 도구를 쓰는 집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무당이 시키는 대로 빗자루로 마루를 쓸고 쓰레받기에 담았다.


'요즘 군대에서도 청소기 쓰는데 이게 뭐람.'


나는 청소 도구가 불편해서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신령님 방 청소하는데 시끄럽게 무슨 청소기야?!"


무당이 내가 인상 쓰는 것을 본 건지, 아니면 내 속을 읽은 건지 그렇게 다그치듯 말했다. 나는 기가 죽은 척하며 마루를 열심히 쓸었다. 아무튼 조심해야 할 노인네였다. 나는 왠지 병풍 뒤로는 한 번도 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일 일할 때마다 뒤에서 감시할 텐데 언제 뒤에 가서 상자를 열어 놓나.


방 청소가 끝나고 무당은 2층에 올라갔다. 신당의 방문은 무당이 직접 잠갔다. 저렇게까지 신경 쓰는 걸 보니 확실히 병풍 뒤에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거실 청소만 마치고 퇴근하라고 했다. 나는 기분 좋았지만 그녀가 2층으로 사라질 때까지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녀에게 감정을 들키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을 듯했다.


거실 할 때는 청소기를 돌려도 괜찮다고 했으므로 나는 구석에 얌전히 놓인 그것을 신 나게 이용했다. 거실이 아무리 넓어도 빗자루와 쓰레받기보다 낫다 생각하니 힘이 별로 들지 않았다. 나는 두더지가 땅을 구불구불 층을 내 파는 것처럼 이쪽과 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청소기를 밀었다.


일을 끝내고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더러워진 손도 씻어야 해서 화장실에 들러야 했는데 아까의 존재가 생각나 절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명 그 남자는 아직도 화장실 틈 안의 공간에서 알몸으로 그렇게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본 게 헛것인지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굳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오줌은 참고 손은 주방에서 씻기로 했다.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물을 잠근 뒤 손을 좀 털었는데 옆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흐. 흐. 흐. 흐."


여자가 우는 소리 같았다. 갑자기 무슨 여자? 그리고 왜 울지? 나는 그게 무당이 내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들리는 곳으로 따라가 보니 소리의 근원은 2층이 아니라 주방 옆에 있는 1층의 통로였다. 나는 그 통로가 다른 발코니로 이어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직접 가서 고개를 빼고 보니 통로 옆에는 몇 개의 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방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각각의 문 옆의 높은 곳에 작은 창문이 달려 있었다. 기숙사 복도와 흡사한 형태였다.


나는 이 집이 굉장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설계한 집일까? 또 왜 이렇게 설계했을까? 나는 조감도로 집의 모든 구조를 파악하고 싶었다. 왠지 지하에 비밀 벙커도 있을 것 같았다.


"흐. 흐. 흐. 흐."


그 소리가 또 났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너무 처량해서 동정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위로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슨 일인지 한번 가서 보고 싶었다. 울음의 근원을 알면 왠지 이 집의 정체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얻을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소리가 나는 방으로 다가갔다. 한 발자국 딛을 때마다 나무로 된 마루에서 소리가 날까 봐 매우 걱정되었다. 나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귀에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드디어 그 방 앞까지 도착했고 이제 허리를 펴 창문을 들여다보면 되는 순간이었다. 여자는 규칙적으로 흐느꼈다. 직접 가까이 와서 들어보니 누가 녹음기를 튼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이 저렇게 같은 어조와 같은 속도로 소리를 낼 수 있나?


나는 담을 넘는 구렁이처럼 천천히 허리를 펴고 창문 틀 위로 머리를 드러냈다. 창문이 반쯤 열려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방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아까 화장실에서 틈을 보고 멈칫한 것처럼 3초간 정지해 있다가 바로 고개를 돌려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 한 여자가 있었는데 입으로는 우는 척 흐느끼면서 몸으로는 팔다리를 꺾으며 괴상한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몸짓은 분명히 기쁜 마음의 표현이었다. 절대 슬퍼서 추는 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키는 비정상적으로 커서 거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팔다리 또한 모델처럼 길었다. 다행인 점은 그녀가 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쇼크를 받은 듯 몸이 경직되어 빨리 도망칠 수 없었다. 한 발자국 내딛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 발소리를 듣고 방 안에 있던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와 그 기괴한 춤을 추며 나를 쫓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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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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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해미 2-31 21.06.28 156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33 해미 2-28 21.06.21 209 2 13쪽
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89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8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30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3 4 11쪽
»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6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8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90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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