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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기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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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7.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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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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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8,237

작성
21.06.09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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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해미 2-22

DUMMY

오전 11시쯤 손님이 왔다. 여자 둘이었다. 엄마와 그의 딸로 보였다. 나는 거실에 있다가 손님이 온 것을 보고 예의상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내가 묵는 방에 들어가 손님이 갈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해미가 영업을 하는 데 내가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방해가 될 것은 분명했다.


해미는 현관에서 손님을 맞이한 뒤 그들을 데리고 신당이 있는 1층 방에 들어갔다. 나는 내 방에서 휴대폰을 보며 딴짓하는 척했지만 귀로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듣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손님이 찾아왔고 그들 앞에서 무당인 해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각자의 방에서 문을 닫고 있었기에 해미와 손님이 방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거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게으름이 몰려와, 아침에 갰던 이부자리를 다시 펴고 거기에 누웠다. 한가한 주말에 그러고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도 주말마다 해미 집에 와서 이렇게 쉬고 싶었다. 아니, 차라리 이번 기회에 나도 강릉에 눌러앉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 좋고 공기 맑은 이곳에서 만화를 그리면 일이 더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았다.


나는 잠들 듯 말 듯 몽롱한 상태로 누워 있다가 갑자기 배가 아픈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뭘 잘못 먹어서 복통이 일어난 줄 알았다. 해미가 차려준 아침밥에 문제가 있었나? 하지만 먹을 때만 하더라도 음식이 상했거나 이상하다는 점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 느끼는 복통은 설사를 하거나 소화가 안 됐을 때의 고통과는 성질이 달랐다. 아랫배가 아니라 배꼽 위의 명치 어디쯤이 아팠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마치 누가 내 배 속에 손을 넣어 장기를 잡고 확 비트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이리저리 눕혀 보았지만 고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 가야 하는지 고민했으나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고통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신당이 있는 1층 방에서 문이 열리고 손님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을 다 보고 이제 끝난 모양이었다. 나는 내 방에 누워 있는 상태로 귀만 쫑긋 세워 해미가 손님을 집 밖까지 배웅하는 걸 엿들었다.


"제가 내일 한번 찾아갈게요."


해미가 인사하며 그렇게 말했다. 손님 중 엄마 되는 사람이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이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집에 귀신이 붙었나?'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나는 잠을 깼다. 해미가 손님을 보냈을 때 방에 누워 있던 나는 그 후로 낮잠에 잠깐 빠졌던 것 같다. 노크할 사람이 해미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방문을 열기 위해 상체만 일으키고 다가가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린 틈으로 해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 해? 자?"


그녀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장난기가 느껴졌다.


"아니, 누워서 쉬고 있었어. 완전 끝난 거야?"


"손님은 아까 갔지. 주말인데 나가자.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우리는 차를 끌고 안목해변에 갔다. 바다까지 가는 길에 차도 옆으로 강이 나 있었는데 그게 바다까지 쭉 연결돼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정말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었다. 인류가 왜 물가에서 문명을 발생시켰는지 알 것 같았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놓고 바다를 따라 옆으로 길게 늘어진 상가 거리를 걷다가 적당한 식당에 들어갔다. 수제 돈까스를 파는 집이었다. 보통의 맛과 보통의 가격을 가진 평범한 식당이었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여행객인 듯했다. 나는 단 것이 당겨서 시원한 망고 주스를 시켰고 해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얀 해변 뒤로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게 보였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여행객임을 자각했다. 이런 풍경을 감상하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해미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려고 온 것인데 그동안 귀신 같은 무서운 것만 경험해서 내가 여행 온 것임도 스스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과일을 좋아하네."


내가 마시고 있는 망고 주스를 보고 해미가 말했다.


"내가 과일 좋아하는 거 알았어?"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럼 몰라? 카페 올 때마다 과일 주스 마셨잖아."


나는 그녀가 '카페 올 때마다'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그 말은 우리가 함께 카페에 종종 갔다는 소리였다. 근데 내 기억에는 그녀와 카페에 간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카페에 자주 갔었어?"


해미가 내 질문을 듣고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납치됐었어?"


그녀가 물었다.


"무슨 말이야?"


"외계인한테 납치돼서 기억을 전부 삭제당한 거 아니야?"


농담이었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점점, 정말 내가 외계인한테 납치돼서 기억을 전부 잃은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외계인이 납치된 기억까지 지웠을 테니 내 스스로 납치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정말 외계인한테 납치된 사람은 자기가 납치된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미안한테 정말 기억이 안 나. 네가 도와줘야 해."


해미는 내 말을 듣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숙인 채 빨대로 얼음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휘휘 저었다. 나는 그녀의 미소와 그런 행동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카페에서는 어느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느린 피아노 연주에 맞춰 외국 여자가 흐느끼듯 노래를 불렀는데 그 음악 분위기가 바깥 해변의 느낌을 가볍지 않게 해주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해변이라고 하면 젊은 남녀들이 떼 지어 놀고 술판 벌이는 이미지가 강한데 카페의 그 재즈 음악이 그곳에서만큼은 해변의 이미지를 그렇지 않게 격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은 건가?"


잠시 침묵했던 우리 사이에 내가 입을 열었다.


"응?"


바다를 보고 있던 해미가 반응하며 내게 고개를 돌렸다.


"옛날에는 바다 같은 데 오면 물에 발 담그고 수영하는 걸 좋아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앉아 경치 구경하는 게 제일 좋네."


해미가 내 말을 듣고 웃더니 자기도 말했다.


"나도 그래. 뛰노는 건 이제 재미없잖아. 아이돌 가수 같은 것도 이제 안 좋아하고."


나는 무당인 그녀의 입에서 아이돌 가수 얘기가 나와 정말 신기했다.


"아이돌? 너도 연예인 같은 거 좋아해?"


"그럼.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는 많이 좋아했지."


"너 무당이잖아."


"무당은 사람 아니야?"


듣고 보니 그랬다. 무당도 직업 이전에 사람이었다. 신을 모신다고 연예인 좋아하지 말라는 법 없었다.


우리는 음료를 다 마시고 카페를 나와 해변으로 향했다. 카페 바로 앞이라서 별로 많이 걷지 않아도 되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다에서 뛰노는 게 이제 재미없다고 말했는데 바다를 가까이에서 직접 보니 뛰어들고픈 욕구가 생겼다. 보트처럼 올라탈 수 있는 거대한 상어 튜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미는 파도가 물러났을 때 깊숙이 다가갔다가 파도가 밀려오자 도망가는 짓을 반복했다. 뛰노는 게 재미없다고 말한 그녀도 직접 바다를 보니 어렸을 적 욕망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나는 짓궂게 그녀를 뒤에서 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일 어디 가? 손님이랑 얘기한 거 같던데."


내가 물었다. 우리는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딸이 있는데 상태가 안 좋은가 봐. 한 번 봐 달라고 해서 가는 거야."


해미가 모래사장에 밟히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발자국의 감촉을 신기해하는 듯했다.


"딸이 하나 더 있나 보네."


손님으로 엄마와 딸이 왔기 때문에 집에 한 명 더 있을 거라 생각해서 말한 것이었다.


"응, 외출 같은 거 못 할 정도로 심각한가 봐."


대화가 끝긴 뒤에도 우리는 계속 해변을 걸었다. 옆에 보이는 바다는 하늘과 그 색이 비슷해서 수평선이 어디에 걸쳐져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해변에 떠 있는 태양은 평소보다 따가웠지만 해풍이 에어컨 역할을 했기에 더위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우리 만났던 건가?"


내가 갑자기 물었다. 일전에 해미가 내가 자기한테 고백했다는 말을 한 게 떠올라서 그랬다. 그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사귀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만났다는 게 무슨 말이야?"


해미가 걸으면서 내 쪽을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사귀었냐고. 내가 너 남자 친구였어?"


나는 답답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전 여자 친구보고 남자가 자신이 전 남자 친구가 맞느냐고 묻는 게 내가 들어도 어이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됐나 보네."


해미는 실망했다는 듯이 그렇게 답했다. 나는 그녀의 어조를 통해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 맞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미안해. 나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사실 그래서 너 찾아온 거야. 보고 싶기도 했고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지 알고 싶어서."


해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나도 멈추고 그녀를 봤다. 그녀의 얼굴은 지금 여기에 있는 어떤 것보다 하얬다.


"자기 여자 친구도 기억 못 하는 남자가 어딨어. 비록 오래 사귄 건 아니지만 학원에서 거의 매일 만나고 놀았잖아."


해미가 약간 핀잔하듯 말했다. 나는 머쓱해서 손가락으로 목을 긁었다.


"아, 그랬지. 맞아. 기억이 나려고 해. 내가 너무 정신 없이 살았나 봐."


사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해미가 책상에 엎드려 있던 것과 마지막 통화 하고 이별했던 것 외에는 거의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기분을 생각해 일부러 아는 척했다.


"한수가 나한테 고백했던 장소는?"


해미가 손에 마이크를 쥔 것처럼 내게 주먹을 들이밀고 물었다. 장난기 있는 그녀의 행동이 내게는 귀여웠다. 하지만 답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당황했다.


"바다. 해변."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 답했다. 이런 장소에서 물어봤다는 것은 높은 확률도 내가 과거에 이런 장소에서 그녀한테 고백했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그녀의 센스와 내 센스가 통함을 믿었다.


"오, 딩동댕! 기억 났어?"


오히려 답을 듣고 놀란 쪽은 나였다. 정말 그랬구나. 내가 해미한테 바다에서 고백을 했구나.


"응, 대충 기억 나. 그때 참 좋았지."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학원에서 2월쯤에 학생들을 데리고 바다에 놀러 갔다. 나는 미대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아르바이트 강사로 일했으므로 거기 껴 있었고 해미도 재수를 시작할 때라 학생으로서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근데 우리는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연인이 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호감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밤에 우리 둘은 숙소에서 잠깐 나와 해변을 걸었다. 나는 춥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고 맞잡은 두 손을 내 잠바 주머니에 넣었다.


적당히 걸었을 즈음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했다. 나 너 좋아한다고. 우리 사귀자고. 그녀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미소를 지었지. 생각났다. 그 미소는 아까 카페에서 잔에 담긴 얼음을 휘저을 때 지었던 미소와 똑같았다. 나는 10년 전 내가 고백했을 당시가 정확히 떠올랐다.


"응? 사귈 거야?"


나는 대답 없는 해미를 보채며 확답을 받으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안달 나게 하는 게 재밌었는지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조금 멀리 도망쳤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 잡으면 가르쳐 줄게. 대신 한 번 잡으면 놓아선 안 돼."


해미는 공영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그녀를 따라갔다. 옆에 같이 걷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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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6 2 12쪽
37 해미 2-32 21.07.01 128 2 12쪽
36 해미 2-31 21.06.28 154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33 해미 2-28 21.06.21 209 2 13쪽
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89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6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29 2 13쪽
»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2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59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5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7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89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18 해미 2-13 21.05.31 417 2 13쪽
17 해미 2-12 21.05.30 4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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