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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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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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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0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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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해미 2-23

DUMMY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해미와 거실에 함께 있기가 불편해졌다. 우리가 과거에도 친구 사이였다고 생각했을 때는 현재에도 친구니까 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사실은 우리가 과거에 사귀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럼 현재의 그녀는 전 여자 친구인 것이므로 더 이상 친구처럼 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방에 들어갔다. 해미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았다. 티브이 속에서 연예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내 방문을 뚫고 들어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나가서 같이 티브이를 보고 싶었지만 전 여자 친구와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몰라 일부러 나가지 않았다.


해미는 나를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데 나는 우리의 연애 사실을 안 후로 그녀가 어색해졌다. 서울에 있는 샤샤에게도 미안했다. 그녀는 내가 전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준비했고 지금 전 여자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를 것이었다.


남녀 바꿔 생각해 보자. 자기 여자 친구가 전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갔고 전 남자 친구 집에서 며칠 머물렀다는 사실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일 남자는 없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죄지은 느낌이 들어서 여행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버인 것 같아서 생각으로만 그쳤다. 내가 정말 떠난다면 해미가 나에 대한 안 좋은 인상과 기억을 가질 것 같았다. 자기 전 여자 친구도 못 알아봤는데 전 여자 친구인 걸 알았다고 해서 떠난 남자라면 내가 여자여도 다시는 영영 안 볼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에서 휴대폰을 보며 뒹굴다가 결국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거실로 나갔다. 나 혼자 심각한 척해 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해미는 우리의 연애 사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내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게 다시 생각해 보니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전 여자 친구라면 더 잘 해주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는 사귀기까지 했으니 엄청난 인연 아닌가. 내가 서울로 돌아갈 때 그녀가 나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게 해야지.'


거실에는 텔레비전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해미가 소파에 앉아 있던 흔적은 느껴지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시 그녀가 1층 신당에 있을까 봐 그곳 방문에 귀를 대 보았으나 안에서도 인기척은 없었다.


발코니 쪽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집에서 입는 편한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그녀가 마당에 쪼그려 앉아 무얼 하고 있었다. 발코니 창에 가려 몸의 반밖에 보이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뭐 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내가 물었다. 그녀는 황금색 줄무늬의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무얼 하는지 보였음에도 나는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뭐 하는지 물어본 것이다.


"밥 줬어. 오늘따라 애교가 많네."


이미 식사를 끝내서 고양이 밥그릇은 비어 있었고 녀석은 해미에게 자신의 몸을 부비고 있었다. 해미는 그의 배와 등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네. 역시 밥을 줘야 따르는 건가."


내가 그렇게 말하며 나도 만져보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녀석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며 하악질하기 시작했다. 털과 꼬리가 섰고 눈빛이 무서워졌다. 공격과 경계의 의사가 다분한 태도였다. 나는 겁을 먹고 만지려던 손을 떼었다.


"왜 이렇게 사납지?"


해미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직 친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


나는 섭섭함을 느꼈고 녀석은 내가 일어나서 물러날 때까지 경계의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때리고 괴롭힌 적도 없는데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니까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편견이 강해졌다. 역시 인간의 친구는 개지. 강아지가 최고야.


해미가 마당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나도 대화를 하기 위해 그녀 앞에 앉았다. 늦은 오후였는데 아직도 한낮인 듯 태양이 높게 떠 있었다. 고양이 녀석은 언제 사라졌는지 금세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완전 여름 같아."


내가 말했다.


"맞아. 점점 여름이 빨라지는 거 같아."


해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고개를 들자 그녀의 가녀린 목이 더 길어 보였다.


"나는 봄하고 가을만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 겨울도 있어야지. 봄, 가을, 겨울. 우리나라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뤄질 수 없는 내 소망을 말했다.


"실제로 그런 나라가 있지 않아?"


해미가 물었다.


"그런가? 매우 춥거나 매우 더운 나라는 있지."


"미국 어떤 주는 거의 봄과 가을만 있다고 들었어. 날씨가 항상 맑고 선선하대. 그래서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라고."


아마도 미국 서부의 어떤 주를 말하는 듯했다. 나도 비슷한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다. 거의 1년 내내 반팔이나 긴팔 셔츠만 입는다고.


"마당이 있어서 참 좋은 거 같아. 이렇게 쉬기 딱 좋네."


나는 머리를 좌우로 돌려 마당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바닥에는 초록 잔디가 깔려 있고 둘레에 작은 나무도 심어져 있는 게 정말 미국 집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렇지? 이 집 살 때 정원이 제일 맘에 들었어. 근데 처음에만 좋지, 나중에는 관리하기 귀찮고 벌레도 많아서 좀 그래."


"자가야? 어떻게 산 거야? 이 정도면 비쌀 텐데."


나는 서른 살의 그녀가 벌써 집을 샀다는 데 놀라고 궁금해서 물었다.


"여기 안 비싸. 지방은 저렴하잖아."


해미는 그렇게 답한 뒤 내게 고개를 들이밀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귓속말하듯이 속삭였다.


"나 옛날에 돈 많이 벌었거든."


그런 말 하는 그녀가 평소의 해미답지 않아서 나는 조금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도 무당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그런 농담쯤은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그걸 대변했다.


해미는 덧붙였는데, 본래는 친할머니를 따라 속초에서 무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해미 가문의 신줄이 격세로 유전되듯이 할머니에서 그녀한테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할머니 밑에서 배우기만 했는데, 그때 했던 일은 주로 굿에 필요한 잡일을 하거나 가끔은 혼령받이 역할을 했다, 어쨌든 그렇게 할머니에게 무당 수업을 받았는데 본인이 신내림을 받은 후로는 따로 무당 일을 하다가 몇 년 전에 이곳 강릉에 내려와서 정착하게 되었다.


무속에 관련된 얘기는 내게 너무 진중한 주제여서 나는 그녀에게 깊게 묻지 않았다. 그녀 말에 적당히 반응해 주면서 그녀의 입장에 공감한다는 느낌을 전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어느 정도 말이 서로 오가고 침묵이 이어졌다. 해미는 밖의 경치를 보며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었다. 하얗고 매끄러워서 내가 덥썩 잡기라도 하면 미끄러질 것 같았다.


나는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사귀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혀 과거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해미는 10년 전의 미술 학원 재수생이었던 오해미가 아니라 지금의 강원도 무당인 오해미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실존과 행복에 과거를 들먹여 추억 여행 따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는 게 그녀한테 민폐인 것 같아서 할 마음이 없어진 것이었다.


저녁부터 밤까지 아무 일 없었다. 우리는 평범한 날을 보냈다. 내일 손님 집에 가기로 했으니 자기를 도와 달라고 해미가 부탁했다. 나는 당연히 도와주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를 도와주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내 창작 세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도 있었다. 나는 벌써부터 한 여자 무당이 악귀와 싸워서 세상을 구하는 만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무속과 공포에 관한 웹툰은 흔하지 않으니 독자들이 신선하게 느낄 것 같았다.


밤에 잠을 자는데 오전에 느꼈던 복통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너무 아파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편하게 자면 다시 잠잠해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전의 고통보다 밤의 것이 훨씬 컸다. 정말 누가 내 배 위에 앉아 손가락을 직선으로 세운 채 꾸욱 누르는 것 같았다.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든 다음 내 배를 쳐다봤다. 방과 밤의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고 두 손을 명치 있는 곳에 얹었다. 어렸을 적 엄마가 해주었던 약손 방법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는 것이라서 그게 통할 리 없었고, 애초에 그런 심리적 방법으로 치유할 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나는 해미를 불러 병원 응급실에 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갑자기 어떤 그림지가 내 배 위에서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내 배에서 피어올랐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검은 연기 같은 그림자가 내 아픈 부위에서 솔솔 올라왔다. 복통도 복통이지만 그 현상이 너무 신기해서 나는 잠자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너무 아파서 헛것을 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봐도 그건 여전했다. 정말 실제였다.


그 그림자는 점점 커지더니 천장에까지 닿았고 형체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을 소리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은 떠졌는데 놀랍게도 팔다리는 절대 움직일 수 없었다. 무슨 산 채로 미라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검은 그림자가 완성되면 왠지 나를 공격할 것 같아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힘도 줘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 이런 게 가위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까지 살면서 가위 같은 거 경험한 적 없는데 당시 느꼈던 증상이 평소 사람들한테 들었던 가위 현상과 거의 일치했다. 눈은 떠지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온다. 갑자기 방 어딘가에서 귀신이 나타나 괴롭힌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귀신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건 정말 싫어서 살기 위해 해미를 불렀고 깨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림자의 완성체를 보고 말았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키가 컸고, 머리가 바닥에 끌릴 만큼 길었고,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당연히 여자였다.


그것은 느린 속도로 나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 눈이라도 감으려고 했으나 그것도 되지 않았다.


"흐. 흐. 흐. 흐."


그것이 다가올수록 그런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그 귀신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무당집 1층 복도 방에서 보았던, 소리는 우는데 얼굴은 웃고 있고 팔다리 꺾는 괴상한 춤을 추었던 여자 귀신이었다.


그것이 어쩌다 내 배 속에서 나왔을까. 확실히 그날 내가 기절하고 나서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게 확실했다. 내가 깨어난 빨간 방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여자가 괜한 존재가 아닌 것도 확실했다.


여자 귀신은 나와 코를 맞댈 정도로 가까이 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귀에 걸릴 정도로 양옆으로 찢어진 입꼬리에서 슬프게 우는 소리가 났고, 마치 어렸을 적 소문으로 들었던 빨간 마스크가 생각났다,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어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 귀신, 그리고 그 여자 귀신은 웃는 입과 다르게 눈은 아무 감정도 없다는 듯이 깜빡이지도 않고 가만있었다.


차라리 웃는 입과 우는 소리의 반대 현상이 눈보다 덜 무서웠다. 그녀의 눈은 정말 마네킹처럼 영혼 없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고, 가장 무서웠던 이유가 그 무당의 눈과 정말 똑같았기 때문이다.


온통 흰자 투성인 눈알에 검은자만 점처럼 작게 찍힌 모습. 그 무당집의 내력인 듯했다.


"흐. 흐. 흐. 흐."


여자 귀신은 계속 울더니 갑자기 내가 그 복도 방에서 보았던 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온전치 못할 정도로 꺾였고 그 속도가 인간이 경험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나는 그걸 보고 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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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해미 2-41 NEW 23시간 전 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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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해미 2-39 21.07.22 2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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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8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6 2 12쪽
37 해미 2-32 21.07.01 128 2 12쪽
36 해미 2-31 21.06.28 154 2 12쪽
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7 2 12쪽
33 해미 2-28 21.06.21 209 2 13쪽
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89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16 2 13쪽
» 해미 2-23 21.06.10 329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4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2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59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5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7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89 4 12쪽
21 해미 2-16 21.06.02 419 3 13쪽
20 해미 2-15 21.06.02 404 3 13쪽
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18 해미 2-13 21.05.31 417 2 13쪽
17 해미 2-12 21.05.30 4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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