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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기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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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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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2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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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해미 2-24

DUMMY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시야에 처음 보인 것은 해미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게 어젯밤 귀신의 얼굴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해미가 누워 있는 내 옆에 앉은 채 그렇게 물었다. 아마 노크를 해도 내가 깨어나지 않자 직접 방문 열고 들어와 나를 깨운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어젯밤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서 깨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대신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해미는 방에 잠깐 나갔다가 물 한 잔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나는 일어나 앉아 그녀가 가져온 물을 벌컥 들이켰다. 밤새 땀을 흘려서 수분이 부족했던지 물이 목으로 잘 넘어갔다. 배 속에서 나왔던 귀신도 함께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몸 아픈 거야?"


해미가 물었다.


"아니, 나 어제 귀신 봤어."


내가 답했다. 그런 얘기는 해미가 무당이니까 그녀한테 솔직히 말해도 될 듯싶었다.


"귀신? 여기서?"


해미가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자고 있는데 배 속에서 그림자 같은 게 올라왔어. 몸도 움직이지 않고. 가위에 눌렸었나 봐."


"배 속에서 나왔다고?"


"응, 사실 나 어제부터 배가 많이 아팠거든."


"뭐 잘못 먹었나? 돈까스, 그게 문제가 있었나?"


"아니야, 그런 아픔이 아니야. 뭐라 설명하기 힘든데 배탈 같은 건 절대 아니야."


"귀신이 어떻게 했는데?"


"울면서 얼굴 들이밀더니 이상한 춤을 췄어. 막 팔다리 꺾는 춤."


"그 정도면 엄청 사악한 놈이네. 혹시 당집에서 따라온 건가?"


"맞아. 내가 일한 날 기절했다고 했잖아. 그때 복도 방에서 본 귀신과 똑같았어."


해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너한테 귀신을 심어 놨나 보네."


"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귀신을 본 것도 끔찍한 일인데 몸속에 심어 놨다니 나는 당장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을 분해하고 싶었다.


"잠깐 다시 누워 봐. 내가 일단 조치를 취할게."


나는 해미가 시키는 대로 이부자리에 다시 누웠다. 내 자신이 수술대에 누운 환자 같았다. 해미는 내 명치에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하듯 잠시 가만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영적인 감각으로 내 배 속에 숨은 귀신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한 그녀의 손이 배에 닿자 나는 정말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기하네."


해미가 말했다.


"왜?"


내가 얼른 물었다.


"어제 그게 다시 배 속으로 들어갔어?"


"모르겠어. 기절한 뒤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


해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한의원에서 맥을 짚는 것처럼 배의 다른 부위에도 손을 대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귀신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도망간 거 같아. 지금 네 배에는 없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안도할 수 있었다. 일단은 나한테서 나간 거니 다시 아프거나 가위에 눌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왜 나한테 귀신을 넣은 거지?"


"상자에 요괴를 만든 걸 보면 그런 식으로 사람한테도 악귀를 전염시키는 것 같아. 바이러스처럼 말이야. 그게 그들의 목적이자 진짜 하는 일인 거지."


나는 내일 일하러 가기가 싫었다.


우리는 씻고 외출 준비를 마친 뒤 차를 타고, 어제 왔던 손님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아픈 딸이 있으니 와서 봐 달라고 한 것 때문이었다.


해미가 사는 포남동과 손님이 사는 교동은 서로 붙어 있어서 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네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몇십 분 가니 네 개 동으로 이루어진 작은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강릉에 온 후 주택만 보다가 높은 아파트를 보니 서울에서 느끼는 것과 달리 아파트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파트 공동 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해가 뜬 낮이었고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보였기에 초입부터 무섭거나 그러지 않았다. 나는 손님 집에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해미가 거기서 무얼 할지 몰랐지만 적어도 내가 일한 당집과 사신을 추적한 지하실처럼 불쾌한 사건을 경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손님이 사는 아파트는 지극히 평범했고 귀신 혹은 저주와는 무관해 보였다. 당집과 지하실처럼 음기가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해미가 6층을 눌렀다. 준공된 지 오래된 아파트여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쾨쾨한 냄새가 나고 문도 느리게 닫혔다.


"엘리베이터에 귀신 많은 거 알지?"


해미가 뜬금없이 그런 얘기를 꺼냈다. 사람 무섭게 말이다.


"그래? 지금 여기에 있어?"


내가 궁금해 물었다.


"아니. 왜, 누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멈추고 문이 열리는 때가 있잖아."


나도 아파트에 살고 있으므로 아는데 가끔 누르지도 않은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는 때가 있다. 해미는 그런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응, 있지. 그게 귀신 때문에 그런 거라고?"


"응, 같이 타 있거나 사람이 탄 걸 알고 밖의 층에서 누르는 거지."


귀신이 같이 타 있던 상태에서 나 몰래 층수 버튼을 누르거나 엘리베이터 밖에서 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안에 있는 사람 몰래 같이 탑승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기분이 오싹해졌다.


"근데 왜 그러는 건데?"


"재밌잖아."


해미는 웃으며 짧게 답했다. 그 웃음이 귀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순간 그녀조차 무서웠다.


엘리베이터가 빠르지 않아서 6층까지 도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체감상 1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문은 역시 느리고 아슬아슬하게 열렸고 복도식 아파트 특유의 휑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는 공간이었는데 낮인데도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나는 아까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받았던 이미지와 달리 점점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엘리베이터 대기 공간을 지나 현관 복도에 이르니 왼편으로 사람 허리 높이까지 오는 담이 늘어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각 집의 현관문이 정확한 간격으로 배열돼 있었다. 나는 담 너머로 아래에 있는 지상을 내려다봤는데 약간의 고소 공포증을 느껴 바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손님이 사는 집의 현관문 앞에 서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손님으로 왔었던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안에 들어갔고 부엌 딸린 좁은 거실에 자리하고 섰다. 세 식구 혹은 네 식구가 살기에는 좁은 집이었다.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 있는 크기였다.


식탁이 있는 벽에 예수님 그림이 걸려 있었다. 흰옷을 입은 그가 푸른 초원에서 양 떼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집을 다 둘러본 건 아니지만 그 전체적인 인상과 예수님 그림이 어울리지 않아서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왜 무당을 찾은 거지? 목사와 기도로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인가?'


해미 집에 엄마와 함께 손님으로 왔던 딸은 거실 구석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근데 틀어 놓기만 했을 뿐 그녀가 정작 보는 것은 휴대폰 화면이었다.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주말의 풍경이었다.


"딸이 이 방에 있거든요."


어머니는 우리를 작은방으로 안내했다. 해미는 문 열기 전에 닫혀 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어머니와 나는 그녀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가 무당이니까 방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절차를 행하는 것 같았다.


사각의 문틀 중 위의 인방과 양옆의 설주에 빨갛게 칠한 자국이 있었다. 누가 크레파스로 칠해 놓은 것 같았다.


"딸이 그랬어요?"


해미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네, 지워도 소용없어요. 또 칠해 놓거든요."


어머니가 답했다.


해미는 고개를 내려 문지방을 살폈다. 나무로 된 그것에 칼자국이 수십 개 나 있었다. 흉측하고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는 딸의 상태가 예상한 것 이상임을 짐작했다.


"이것도?"


해미가 물었다.


"네, 말릴 수가 없어요, 정말 미친 사람 같아서."


어머니가 답했다.


해미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나는 방 안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귀신 들린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갔을 때 거기 있는 사람은 평범한 모습의 여학생이었다. 고등학생인 듯했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책상은 문 반대쪽 벽에 붙어 있었고 그녀는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외부인이 방에 들어왔으면 궁금해서라도 고개를 한 번 돌릴 법한데 그녀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공부만 했다.


"하나야, 선생님 오셨어."


어머니가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는 딸에게 우리가 왔음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딸이 반응했다. 근데 역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채로 말로만 인사했다. 예의 없다는 느낌보다 독특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선생님 오셨으니까 얘기 좀 나누자."


어머니가 딸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딸이 또 그렇게 말했다. 근데 이상한 건 인사를 반복했다는 게 아니라 그 말의 어감과 어조가 방금했던 말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 인사와 다음 인사가 녹음기 틀어 놓고 반복하는 것처럼 동일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록 짧은 말이었지만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공부 그만 하고 선생님 좀 보자."


어머니가 달래듯이 말했다.


이번에는 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하던 대로 등을 돌린 채 공부만 했다. 우리와 얘기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여고생이라면 엄마가 집에 무당을 데려오고 자기를 환자인 것처럼 대하니까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어머니가 딸이 말을 안 들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렵게 데려온 무당인데 딸이 거부를 하니 어머니 입장에서도 답답한 게 사실이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해미가 어머니를 위해 그렇게 말해주었다.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 상태인 것 같은데···. 말이 아예 안 통하는 건 아니거든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 순간, 해미와 어머니가 대화를 하는 중에 딸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가 또 같은 말을 해서 엉뚱함을 느꼈으나 곧 그 감정은 소름 돋음으로 바뀌었다. 첫째 인사와 둘째 인사, 그리고 지금 한 셋째 인사가 말의 어조와 어감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그녀가 진짜로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미리 녹음한 것을 튼 게 아닐지 궁금해서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해미의 표정을 보니 그녀는 이미 그 딸이 지금도 정상이 아님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옆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미가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는 듯이 어머니를 위로하는 제스처를 보이고 딸에게 다가갔다.


"하나야, 너 만나고 싶어서 온 무당 선생님이야. 공부하느라 바빠?"


해미가 딸의 등 뒤에서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딸은 해미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안 하다가 또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똑같은 인사를 네 번 했으니 정상이 아닌 게 확실했다. 무당이 아닌 일반인도 그 상황에서는 다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응, 반가워. 무슨 공부 해?"


해미는 그 반복적이고 이상한 대답에 당황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저 정도는 돼야 무당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공부 안 하는데···."


놀랍게도 딸이 해미의 질문에 인사 말고 정상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일이 진척되고 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인사했으면 그냥 발길을 돌려 집을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럼 뭐 하는데?"


해미가 물었다.


"그림 그려요."


딸이 답했다.


"무슨 그림? 궁금한데 보여줄 수 있어?"


해미는 그 질문으로 딸이 몸을 돌리고 우리를 맞이하길 바란 것 같았다. 하지만 딸은몸을 돌리지 않았고 그대로 앉아 손만 들었다. 그녀의 손에는 그림 그린 공책의 한 면이 들려 있었다.


나는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궁금해서 고개를 빼고 들여다봤다. 그림을 확인한 순간 "안녕하세요." 말을 네 번 했을 때보다 강력한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방 전체를 사로잡았다. 해미와 나, 그리고 어머니까지 순간 얼어붙었다.


딸이 보여준 공책에는 나와 해미의 모습이 똑같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부터 복장까지 그 묘사가 정확했다. 우리를 본 적도 없고 방에 들어와서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그 애가 어떻게 우리를 그린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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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89 3 12쪽
» 해미 2-24 21.06.12 319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30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3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24 해미 2-19 21.06.05 386 3 12쪽
23 해미 2-18 21.06.04 388 3 12쪽
22 해미 2-17 21.06.03 39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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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해미 2-14 21.06.01 40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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