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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8.05 01: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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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6
추천수 :
130
글자수 :
258,868

작성
21.06.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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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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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해미 2-27

DUMMY

다음 날 아침, 나는 어젯밤 있었던 일을 해미에게 말하지 않았다. 유체 이탈을 경험했다는 것. 귀신이 내 몸을 탐하고 빼앗으려 했다는 것. 머릿속에서 그 귀신이 내는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


해미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귀신의 존재는 언젠가 퇴치해야겠지만 일단은 두고 보기로 했다. 어제 해미는 손님의 집에 찾아가 축귀 의식을 거행했다. 지금 내 안에도 귀신이 있으니 오늘은 나에게 축귀를 해 달라고 하는 것은 그녀에게 민폐 끼치는 일이라 생각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또 그때 가서 잘 해결될 것이었다. 나는 그런 낙관적 생각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이따 점심에 손님 올 거야. 어제 그 엄마랑 딸."


거실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해미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서 조금 부끄러웠다. 옛날에 사귀었을 때는 늘 그렇게 앉았을 테지만 말이다.


"딸은 완전히 나은 건가?"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응, 잡귀 쫓아냈어."


해미가 간단하게 답했다.


"누구나 그렇게 나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귀신 들려도 그런 의식만 하면 괜찮아지는 거냐고."


"어떤 귀신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어제 것은 강하지 않은 녀석이었으니까···. 왜? 한수 걱정돼?"


"아니, 뭐가?"


나는 어젯밤 겪은 유체 이탈과 귀신 사건을 감추려고 일부러 모른 척했다. 하지만 해미는 다 안다는 듯이 턱짓으로 내 배를 가리켰다.


"이제 괜찮아. 나 말짱해."


나는 이제 배 속에 귀신이 없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배를 몇 번 두드렸다. 하지만 분명 어제 그 귀신이 검은 연기로 변해 내 배꼽을 후비고 들어왔고 울음소리까지 들렸기 때문에 진짜로 말짱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해미 앞에서 갑자기 배가 아플까 봐 되게 신경 쓰였다.


해미는 내 배를 유심히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며칠만 고생해. 내가 일부러 손 안 대는 거니까."


그녀의 말은 내가 거짓말해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뜻 같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녀가 정말 배 속의 귀신을 보았는지 반신반의한 상태였다.


"무슨 말이야?"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물었다.


"딸에게 했던 것처럼 너한테도 축귀를 하면 분명 그 무당이 알아채겠지? 그럼 의심하겠고 우리가 상자를 열고자 하는 계획도 실패가 되겠지."


해미는 깔끔하게 답했다. 역시 그녀는 무당이었다. 이미 내 속에 귀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 녀석도 잡귀야?"


내가 물었다. 나한테 해당되는 문제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제 것보다는 세지."


해미는 명랑하게 답했지만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맘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떡해?"


"쉿! 들을지도 몰라."


해미는 손가락을 입술에 댄 뒤 그렇게 말했다. 정말로 귀신이 내 몸속에 있으니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을지 몰랐다. 나는 찝찝한 마음으로 오전을 보냈다.


오후 1시에, 어제 우리가 찾았던 엄마와 딸이 손님으로 왔다. 해미는 그들을 거실로 안내했고 나는 여름이니까 주방에서 시원한 물을 내왔다. 우리는 모두 거실 탁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점을 보는 게 아니었고 어제 나도 축귀 의식을 도왔으니까 그 자리에 함께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기분 어때?"


해미가 딸에게 물었다.


"좋아요. 고맙습니다."


어제 나에게 덤벼들어 함께 바닥을 굴렀던 그 애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나는 검은 눈을 하고 빨간 펜으로 찍어 대던 어제의 모습이 생각나 지금의 얌전한 그녀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얘기해 줄래?"


해미가 딸에게 귀신 씐 사연을 물었다. 그건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딸의 엄마도 그녀가 왜 귀신에 씌게 되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딸은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친구 따라 수련원에 갔어요."


"수련원?"


해미가 놀라며 물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녀가 왜 '수련원'이라는 말에 그렇게 반응했는지 알지 못한 상태였다.


"네, 교회에서 하는 2박 3일 체험이라고 해서 간 거거든요. 아무래도 그거 때문에 안 좋게 된 거 같아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거 얘기하기 전에 하나 말해 둘 게 있는데 갑자기 친해진 친구가 있거든요. 원래는 같은 반이었어도 서로 잘 얘기하지 않고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걔가 어느 순간부터 저한테 접근하더라고요."


"걔가 가자고 한 거구나?"


"네, 맞아요. 자기도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처음에는 제가 다녔던 교회에 같이 갔어요. 신앙심이 깊은 친구 같아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어느 날은 걔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수련회 같은 걸 가는데 너도 가지 않겠냐면서 같이 가자고 졸랐어요. 얘기 들어보니까 괜찮은 거 같아서 놀다 올 겸 간다고 했죠."


딸이 친구와 간 수련원은 강릉 시내를 벗어난 곳이었다. 출발 당일 그녀는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서 관광버스를 탔고 여러 사람과 함께 수련원으로 향했다. 친구가 옆에 있었고 여러 사람이 동행했기에 그녀는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산길을 지나 버스는 외지고 황량한 곳에 도착했다. 신기한 게 주변은 온통 산인데 그곳만 넓은 평지였다. 인위적으로 산을 깎아 만들었다 해도 너무 광활한 공간이라 인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조성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또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은 절대 아니라서 그 장소에 대한 미스터리를 지울 수 없었다.


공터 가운데에 2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작지도 않은 사이즈였다. 저기가 아마도 수련원인 듯했다. 아니, 건물 하나 달랑 있으니 확실히 수련원이 맞았다.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건물 외벽은 칙칙한 회색이고, 평지의 바닥에 잡초가 듬성듬성 나 있어서 딸은 수련원에 대한 첫인상이 안 좋았다. 무슨 흉가나 폐가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수련원이란 원래 인적이 많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고 사람들이 일정한 목적 하에 가끔 방문하는 곳이므로 그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박 3일간 자연에 있다 보면 곧 그 분위기에 적응할 거라고 딸은 생각했다. 몇십 명 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막연한 불안함도 차츰 사라질 것이었다.


숙소는 6인실이었다. 여자 여섯이 한 방을 썼다. 딸과 친구만 학생이었고 나머지는 성인이었다. 건물 외관과 다르게 실내는 나름 깨끗해서 딸은 만족했다. 그녀는 신앙심 때문에 왔다기보다 친구와 여행하는 기분으로 놀러 온 것이기에 잠만 자고 불편한 것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강당 같은 데 모여서 오리엔테이션을 했어요. 목사님이 앞에 나와서 설명했고 우리는 앉아서 들었죠. 그 뒤로 자유 시간 좀 보내고 밤에 야간 예배를 했어요. 첫날은 그냥 그렇게 보냈어요. 문제는 다음 날이었는데···."


딸이 말끝을 흐리고 엄마의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다음 얘기가 좀 충격적이어서 엄마 있는 자리에서 말하기가 껄끄러운 것 같았다.


"괜찮아. 이미 끝난 일이고 네 잘못 아니니까···."


해미가 말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그렇게 달래주었다.


"둘째 날 밤에는 철야 형식으로 새벽까지 예배했거든요. 근데 되게 신기한 게 거기 있던 사람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에 와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데 분위기 탓인지 눈물도 나고 정말 하나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방언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평소와 다르게 모두 격양되고 고조된 느낌?"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초등학생 때 수련회 가서 캠프파이어 했던 게 생각났다. 커다란 불 앞에서 슬픈 음악 띄워 놓고 집에 있는 부모님 얘기를 하니 그 어린 학생들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딸이 겪은 현상도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목사님이 신도들 중 몇 명을 앞으로 불러내더니 악마를 퇴치해 주겠다고 했어요. 당시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 목사님 말을 전적으로 따르고 의존했거든요. 그중에 저도 있었던 거죠."


"혹시 너를 눕히고 배를 만졌니? 배 속으로 뭔가 들어오는 느낌이 났어?"


해미가 물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왜 아까 '수련원'이라는 말에 반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전에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요괴가 보여준 이미지에서 딸이 말한 것과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넓은 강당. 교주처럼 보이는, 내가 일하는 당집의 무당. 거기에 무릎 꿇고 앉아 주절거리며 기도하는 사람들.


해미는 '수련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상자 속 요괴가 보여준 그 장소를 떠올린 것이고 내가 무당 집에서 귀신을 달고 온 것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딸이 당했을 것이라 생각해, 배를 만지고 그 속으로 뭔가 들어오는 느낌이 났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네, 맞아요. 뭔가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저를 눕히더니 손가락으로 이쪽을 꾹 눌렀어요."


딸이 가리킨 '이쪽'은 어제 귀신이 검은 연기가 되어 내게 들어왔던 배꼽 부위였다. 나는 그걸 보자 갑자기 배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 배가 아팠니?"


해미가 물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네, 집에 오고 나서 일주일 뒤부터 아프기 시작했어요. 밤에 잠도 못 자고 가위도 눌리고 꿈에서 귀신도 봤어요."


딸이 말한 증상은 내가 겪은 것과 동일했다. '그럼 나도 눈이 거멓게 되고 여자 목소리를 내며 공책에 죽을 사(死) 자를 쓰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목사님은 여자였어? 좀 늙어 보이는···."


해미는 무당 집의 그 무당을 염두에 두고 물은 것이었다. 상자 속 요괴가 보여준 환영에서 교주처럼 사람들을 이끌었던 게 그 여자 무당이었다.


"아뇨, 남자였어요. 근데 되게 특이한 게 일반 사람 같지 않았어요."


딸이 지금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일반 사람 같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머리가 좀 길었어요. 머리카락이 길었다는 게 아니라 혹시 콘헤드 아세요? 두상이 위로 뾰족한 거. 약간 티가 날 정도로 머리 모양이 그랬어요. 그리고 눈동자가 일자였고. 보통 사람은 검은자가 동그랗잖아요. 근데 그 목사님은 펜으로 찍 그어 놓은 것처럼 일자였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아 혼자 멍해졌다. 내가 일하는 무당 집에 갔을 때 공터 주차장에서 봤던 남녀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당 집에서 나와 나를 지나쳐 간 그 두 남녀 역시 머리가 뾰족하고 눈동자가 일자였다.


나는 딸이 다녀온 수련원이 내가 일하는 무당 집과 확실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미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수련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해미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처음 가는 길이었고 버스 안에서 좀 졸았거든요. 근데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서 강릉과 멀지 않은 곳인 건 확실해요."


딸이 답했다.


"그럼 그 친구는 어디 살아?"


"그것도 모르겠어요. 워낙 비밀이 많은 친구라 안 알려주던데요."


"연락은 하고 지내? 네가 만나자고 하면 걔가 나와?"


"아뇨, 수련원 갔다 온 뒤로 연락도 안 되고 걔 자퇴했어요."


"자퇴? 왜?"


"모르겠어요. 선생님도 안 말해줬어요. 워낙 조용하고 혼자 다니던 애라 친구들도 별 관심 없었어요."


"걔에 대해 아는 거 하나도 없어?"


"제 친구가 걔랑 초등학교 같이 나왔거든요. 어렸을 때 걔네 집에 놀러 간 적 있다는 얘긴 들었어요. 걔가 초대해서 간 게 아니라 엄마 따라 유명한 무당 집에 갔는데 걔가 거기서 살고 있었대요. 그래서 엄마가 점 볼 동안 걔랑 놀았다고."


딸의 말을 듣고 해미는 나를 쳐다봤고 나도 그녀를 쳐다봤다. 우리는 서로가 생각하는 바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눈을 깜빡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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