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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8.05 01:2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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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10
추천수 :
130
글자수 :
258,868

작성
21.06.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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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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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해미 2-29

DUMMY

나는 방문 앞에 서 있는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고 방을 나와 거실 텔레비전에 있는 일당 봉투를 집었다. 저번처럼 10만 원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무당 딸이 계속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기에 봉투 안을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또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아 얼른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가면 오늘 일은 끝나게 된 거고 무당 딸의 시선에서도 해방되는 것이었다.


"배 많이 아파요?"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내 등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질문에 몸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어··· 아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기에 좀 뜸을 들인 뒤 답했다. 배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면 무당 딸이 내 속의 귀신을 꺼내주기는커녕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절대 선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밤에 가위 눌리죠?"


그녀가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역시 무당의 딸이었기에 나는 애초에 그녀를 속일 수 없는 것이었다. 도박판에서 초짜가 타짜를 속일 수 없듯이.


"괜찮아지겠지, 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그녀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은 절대 도움을 줄 눈이 아니었다.


무당 딸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씩 웃었다. 정말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눈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정지돼 있었고 입꼬리만 양옆으로 찢어졌다. 나는 비상식적인 그 태도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신발을 제대로 신고 현관문을 나가는 순간까지, 그때까지도 그녀가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아마 얼굴 표정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집을 나와 주차장에 있는 차까지 가는데 그녀가 옮겨 놓은 불쾌한 기운이 내 등에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차를 타고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에 타자마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르르 쾅쾅. 신이 어떤 일로 노했는지 내가 있는 자리에만 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운전해 무당의 집과 그 동네를 빠져나갔다.


해미의 집 앞에 도착했고 대문 쪽에 주차를 하자 집 안에서 해미가 우산을 들고 나왔다. 내가 마당을 지나 집 안까지 들어가는 데 비를 맞을까 봐 일부러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고생했어."


내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그녀가 우산을 씌워주며 말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귀가한 가장이 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만 그녀는 내 아내 같았다. 우리는 큰 우산 속에서 함께 걸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낙하하는 빗방울의 충격에 땅이 뚫릴 것 같았다.


"뜨거운 물 받아 놨어. 일단 씻어."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자 해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왠지 모를 감동을 느꼈다. 으스스한 당집에서 일을 마치고 빗속의 귀갓길을 거쳐 집에 돌아왔을 때 여자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다면 좋아하지 않을 남자가 없을 것이었다.


나는 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온 다음 욕조가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온수를 방금 받아 놓았는지 욕탕 내부가 뜨뜻했다. 나는 옷을 벗고 천천히 발부터 욕조에 담갔다. 뜨뜻한 기운이 내 몸을 녹이는 것 같았다. 무당 딸의 눈 따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한수, 갈아입을 옷 가져갔어?"


해미가 문 밖에서 말했다.


"응, 다 있어."


내가 욕조 안에서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케이."


해미가 귀엽게 영어로 답하고 사라졌다.


내가 만약 갈아입을 옷을 챙기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녀가 가져다줬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됐을 상상을 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이런 생각 또 하면 안 되는데 그냥 이 집에 눌러앉아 해미의 남편으로 살고 싶었다.


목욕을 마치고 거실로 나오니 해미가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바로 옆에 앉은 건 아니고 한 칸 떨어져 앉았다. 그녀는 내가 소파에 앉자 묘한 웃음을 지었다.


"별일 없었어?"


상자를 열었느냐 하고 물어볼 법한데 그녀는 내 사정을 생각해서 일부러 돌려 말한 것 같았다. 상자를 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병풍 뒤에 확실히 방 같은 게 있더라. 미닫이 문으로 닫혀 있어서 못 들어갔어."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거기에 상자가 있고 진짜 제단도 있겠네."


"제단?"


해미가 말한 '진짜 제단'의 의미가 궁금해 내가 되물었다.


"점 보는 방에 있는 건 형식적인 거고 실제 제단은 그 병풍 뒤 방에 있을 거야."


나는 일전에 상자 속 요괴가 보여주었던 환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빨간 벽지의 방에서 무당이 기도를 올리던 모습, 제단 중앙에 걸려 있는 악마 그림,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괴한 분위기. 아마도 그 장면의 공간이 내가 열어보려고 했던 병풍 뒤의 방인 듯했다. 그런 예상이 들자 다음에 당집 갔을 때는 병풍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고 싶었다.


"내가 문 반쯤 열었는데 눈치챈 건 아니겠지?"


나는 병풍 뒤 방의 미닫이 문을 원래대로 닫지 않은 것이 걱정되기 시작됐다. 무당이 문 열린 것을 보면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열어 놓고 나온 거야?"


"응···. 맞다! 무당 딸도 봤어. 그 손님 딸이 말한 친구. 걔가 갑자기 방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문 닫을 시간이 없었어."


"봤어? 정말 딸이야?"


해미의 반응이 좀 격해졌다.


"응, 어렸어. 딱 고등학생처럼 보였어. 눈이 자기 엄마랑 똑같이 생겼어. 내가 말했지? 온통 흰자고 검은자만 점처럼 있다고."


"딸까지 허주한테 물들었나 보네. 둘이 대화했어?"


"했지. 나보고 배 아프지 않냐고 물었어. 확실히 나한테 귀신 있는 걸 아는 것 같아."


해미는 내 말을 듣더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딸의 등장과 내가 문 열어 놓고 온 것이 우리의 계획에 차질을 빚은 것 같았다.


"네가 문 열어 놓은 거 분명히 알아챌 거야. 문제는 그걸 그냥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아니면 뭔가 계획을 가지고 한 짓이라 생각할지 모른다는 거지."


우리는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 채 대화를 마무리했다. 밤이 다가왔기에 각자 방에 들어갔고 나는 일찍 자기 위해 이부자리를 깔았다.


천장을 향한 채 누웠는데 당집에서 보았던 딸의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의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그녀 이미지를 물리치기 위해 다른 재밌는 상상을 했지만 그녀는 다른 상상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것 때문에 잠을 설쳤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잠이 늦었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나는 낯설고도 익숙한 장소에 누워 있었다. 해미의 집이 아니었기에 나는 스스로 꿈을 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자각몽이었는데 내가 있는 곳은 무당의 집이었다.


나는 그 집의 1층 신당 방에서 눈을 뜨고 일어났다. 분명 꿈인데도 생시처럼 모든 것이 현현했다. 방에는 제단 위의 촛불만 켜져 있었고, 그래서 음울한 분위기가 가득했고 신령상들은 무표정이고 움직이지 않았지만 나를 의식하듯이 노려보는 것 같았다. 내가 처음 그곳에 일하러 갔을 때 받았던 느낌과 동일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병풍 뒤를 살피려고 했으나 무당 혹은 그 딸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그러지 못했다. 꿈이라서 그들이 들어오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꿈이라도 그 공포감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저녁 8시에 일 끝났을 때처럼 그때에도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먼지 하나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한적함 때문에 나는 한 발짝마저 내딛기 힘들었다. 내 발소리가 그 정적을 깨면 갑자기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것도 엄청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여름인데 날씨가 겨울처럼 추웠다. 분명 발코니 창이 닫혀 있는데 어디서 한기가 들어오는지 냉장실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주방으로 발길을 돌리고 그 깊은 데까지 걸어갔다. 그곳도 거실만큼 한적하고 으스스하긴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가보았던, 방이 일렬로 늘어져 있던 복도 쪽이 은근히 신경 쓰였다. 물론 거기까지 발을 딛지 않았지만 왠지 가보고 싶은 충동이 계속 들었다.


내 몸에서 생시 때 느껴볼 수 없었던 호기심이 마구 샘솟았다. 그곳에 가지 않으면 엄청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거실로 향하려 했지만 누가 복도 쪽에 자석을 붙여 놓은 양, 그리고 내 몸이 그에 맞는 자석의 극인 양 계속 그쪽으로 끌렸다.


하지만 나는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체에 힘을 꽉 주었다. 마음이란 게 정말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몸을 뚫고 복도에 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냥 지금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자각몽이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으므로 꿈 자체도 내가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방법을 몰랐다. 나는 위로 펄쩍 뛰어보고 팔다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보고 소리도 막 내보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꿈속이었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심란함까지 더해지니까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러다 꿈에서 미치는 게 아닐지 걱정되었다. 언젠가 누구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었다. 자다가 돌아가신 분들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그들은 죽어서도 영원히 꿈속에 갇혀 있다고.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세상이 무서워 땅속으로 숨는 것처럼 몸을 바닥에 움츠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굼벵이처럼 몸을 말아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오히려 그게 조금 편했다.


'깨어나게 해주세요. 꿈에서 깨고 싶어요. 제발요.'


나는 속으로 빌었다. 비는 대상은 하느님일 수도, 부처님일 수도, 예수님일 수도, 아니면 내가 현실에서 자고 있는 해미 집의 신령님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무나 내 기도를 들어주길 바랐다.


갑자기 여자 비명이 들렸다. 꺅 하는 소리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2층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그 짧은 비명만 들었음에도 그 소리의 주인공이 해미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2층에서 그녀가 나쁜 짓을 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얼른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그 전까지 느끼고 있었던 무서움과 불안함은 그녀의 위험 앞에서 어느 정도 누그러진 상태였다.


천천히 올랐다면 계단도 거실이나 주방만큼 무서운 공간이었을 텐데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오직 내 머릿속에는 해미를 구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2층에 올라왔을 때 복도의 한 방에서 소리가 났다. 꺽꺽대는 소리였다. 그 방은 저번에 내가 기절했다가 그쪽으로 옮겨져 깨어난 곳이었다. 사방이 온통 붉은 벽지로 둘러싸여 있고 내 곁에 입 벌린 여자가 있었던 방.


나는 심각함을 인지하고 그 방으로 얼른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의 줄에 목이 매달린 채 있는 해미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걸 본 순간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 정말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무서움과 기괴함이 나를 짓눌렀다. 목매달린 해미 옆에는 무당 딸이 입만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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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해미 2-38 21.07.17 4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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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해미 2-34 21.07.05 9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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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해미 2-32 21.07.01 13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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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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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9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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