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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기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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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삭개5
작품등록일 :
2021.05.12 18:42
최근연재일 :
2021.08.05 01:2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6,806
추천수 :
130
글자수 :
258,868

작성
21.07.24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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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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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해미 2-40

DUMMY

손과 등에서 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서 있다가 뭔가 결심한 듯 그걸 돌리고 문을 열었다.


외부의 전경이 열린 문을 통해 펼쳐졌다. 비가 심하게 내렸고 하늘은 검고 어두웠다. 나는 주장자를 든 채 비를 맞으며 옥상 위를 걸었다. 개방된 그곳은 길고 넓었지만 설치된 구조물은 별로 없었다. 여느 옥상에나 다 있는 정화조 같은 시설이 전부였다.


문을 열기 전 내 상상으로는 무당과 그 딸이 제단을 차려 놓고 이상한 의식을 벌이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것과 정반대였다. 제단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시야가 뻥 뚫려 있었기에 나는 옥상을 다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 전체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별게 없었기 때문에 굳이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뒤를 돌아 내가 왔던 길을 보았다. 고양이가 비를 맞기 싫었는지 옥상 문의 지붕 아래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도 계속 비를 맞을 수 없어서 얼른 그쪽으로 갔다.


옥상 문을 닫고 다시 내려가려는데 어디선가 나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바로 지상에 내가 차를 세워 둔 곳이었다. 옥상에서는 주차된 그곳까지 멀리에서도 보였다.


차가 숲길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주변 색과 너무 다른, 굉장히 튀어 보이는 무엇이 있었다. 엄청 까매서 처음에 고릴라인 줄 알았다. 그것은 짐승처럼 덩치가 컸고 어슬렁거리며 차 안을 살피고 있었다. 마치 누가 타고 온 건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공포감과 죄책감이 혼합된 감정을 느꼈다. 내가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한 게 없는데도 지금 이곳에서는 몰래 침입한 게 잘못이나 마찬가지므로, 또 그걸 상대한테 들켰으므로 나는 내가 잘못을 해서 곧 처벌 당할 것이라는 위험과 공포를 느낀 것이다.


옥상에 계속 있으면 그에게 발각될 게 뻔했다. 아무리 우리 둘 사이가 떨어져 있다 해도 지상에서는 2층 옥상의 풍경이 너무 쉽게 보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라도 어떤 건물의 옥상을 올려다보기만 하면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래에서는 위가 쉽게 노출되는 법이다.


나는 슬그머니 뒷걸음질해 옥상 문을 조심히 닫고 계단을 내려왔다. 다행히 내가 문을 닫을 때까지 고릴라 같은 녀석은 옥상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아까 봤던 하얀 그것은 물론이고 그 검은 것과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2층의 방들은 숙사 형태였으므로 더는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현재는 수련원에서 사람을 받지 않는 기간이었다. 나는 중앙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다시 내려왔고, 옥상에서 봤던 검은 녀석이 건물로 들어올까 봐 내가 이곳 건물에서 처음 출발했던 사무실로 향했다. 거기서 창문을 통해 녀석이 들어오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주차된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사무실은 아까처럼 한적한 상태였다. 들락거린 사람이 나밖에 없는 듯, 바닥에 내가 흘린 빗물이 아직까지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나는 책상에 있는 의자를 꺼내 창문 밑에 댄 다음 그 위에 올라갔다. 창문이 머리 위 높은 곳에 있었기에 무언가 받칠 물건이 필요했다.


사무실에 창문이 여럿 있었는데 그 어떤 것도 차가 있는 숲길까지 시야를 제공하는 것은 없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겨우 그 주변만 어설프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별다른 소득이 없었으므로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사무실을 나갔다. 복도에 머물고 있으면 검은 녀석이 건물로 들어왔을 때 나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에 얼른 정문과 가장 가까운 방에 들어갔다. 거기 창문에서는 정문 쪽 공터가 보일 것이었다. 그럼 검은 녀석이 언제 들어오고 어디로 갈지 내가 알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내가 새로 들어간 곳은, 그러니까 정문과 가장 가까운 방은 2층에 있던 휴게실처럼 널찍한 공간이었다. 근데 2층처럼 바닥에 장판이 깔려 있진 않고 교회 의자처럼 여러 사람이 길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겹겹이 나열돼 있었다. 실내 가장 앞에는 바닥보다 조금 층이 높은 강단이 있었고.


아무래도 설교를 진행하는 곳 같았다. 오래 비워 둔 모양인지, 그리고 밖에 비가 오는 것 때문인지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처음 실내에 들어선 순간부터 오랫동안 손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그 정도로 냄새가 지독했다. 내가 보지 못한 의자 사이나 그 밑에 사람 시체가 썩어 있는 게 아닌가 했다.


창은 아까 있었던 사무실보다 낮은 곳에 위치했다. 보통 건물의 보통 실내에 있는 창 높이 수준이었다.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의 눈 위만 내민 채 정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까 옥상에서 봤던 검은 녀석이 반드시 건물로 들어올 것이고, 그럼 내 시야에 보이는 정문을 통과할 것이었다.


나는 녀석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봤다가 그가 건물 내 어디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방에서 나와 따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괜히 시간 아낀다고 그가 들어오기 전에 건물을 돌아다니면 서로 우연히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끝이 낭떠러지였던 복도에 엎드려 하얀 존재를 내려다본 것을 떠올렸다. 검은 녀석을 기다리며 창을 주시하고 있으니까 상황이 비슷해서 그때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 흰 녀석은 무엇이고 내 차를 살폈던 검은 녀석은 누구일까? 둘이 무슨 관계지? 사람 몸이 그렇게 검을 수가 있을까? 검은색 옷을 입어서 내가 착각한 것일까? 멀리서 봤고 비도 와서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녀석이 정문으로 들어오면 그때 자세히 보자.


나는 비 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흙바닥에 비 떨어지는 장면이 동영상 반복되는 것처럼 계속됐다. 나는 똑같은 장면을 연달아 보는, 어떤 고문 같은 걸 당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잠시 후 멀리서 뭐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작은 점이었는데 그것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졌다. 아까 내가 봤던, 지금까지 기다렸던 그 검은 녀석이었다.


나는 녀석이 눈에 띄자마자 머리를 창틀 아래로 내렸다. 그와 내 위치가 직선상에 있었기에 내가 계속 쳐다보면 그도 나를 발견할 것이었다. 나는 그의 발걸음 소리와 다가오는 인기척만으로 그의 존재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질척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비에 젖은 흙바닥과 그걸 밟는 인간의 발이 자아내는 끈적한 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귀 옆에서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창틀 밑의 벽에 벌레처럼 딱 달라붙었다. 들키지 않으려는 필사적 자세였다.


녀석은 예상대로 정문을 통해 건물로 들어왔고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내가 있는 방을 지나쳐갔다. 복도 쪽 창을 통해 그가 지나가는 모습이 다 보였다. 그가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면 내 모습을 분명히 봤을 것이었다. 다행히 긴 의자들이 나를 가리고 있었고 그는 따로 목적지가 있는 듯 앞만 봤기 때문에 나는 들키지 않았다.


그가 방을 지나갈 때 창으로 그의 머리가 보였다. 그로써 키가 그렇게 큰 건 아님이 확인되었다. 만약 하얀 녀석이었다면 창에 배나 가슴이 보였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의 출입문으로 이동했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다시 복도로 나왔다. 바닥에 그의 발자국이 찍혀 있어서 그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놀라운 건 그의 발 크기였다. 정말 고릴라라도 되는 양 발자국이 꽤 컸다. 내가 내 발을 대보았는데 나의 두 배는 되는 듯했다. 인간이라면 말이 안 되는 발 크기였다. 나는 그가 하얀 녀석처럼 예사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키가 큰 하얀 녀석과 발이 큰 검은 녀석 중 한 명만 고르라면 누구를 택해야 할까? 나는 아무도 고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금 현실이 싫었다. 절망적이었다. 나는 불가사의한 존재들을 목격하면서 점점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 한쪽 팔에 들려 품에 안겨 있던 고양이가 유연한 몸놀림으로 내게서 빠져나와 검은 녀석이 남긴 발자국을 뒤쫓았다. 순식간에 벌이진 일이었기에 나는 고양이를 잡을 수 없었다.


소리쳐 부를 수도 없어서 나는 고양이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검은 녀석의 발자국은 1층 복도에 있는 어느 방에서 끊겼고 그가 거기 안에 들어갔는지 고양이가 그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그 방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방금 있던 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였다. 다만 긴 교회 의자가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나는 검은 녀석이 아까 나처럼 창문 밑에 쪼그리고 앉아 숨어 있을까 봐 까치발을 딛고 창문 바로 밑 벽과 바닥까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거기에도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말이다. 검은 녀석에게 신경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무당과 그 딸을 찾아 나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그 방에 있었다.


바로 바닥에 난 어떤 구멍 때문이었다. 구석 쪽 바닥에 뻥 뚫려 있는 구멍은 누가 거기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해 놓은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다. 나는 그걸 보고 위화감뿐 아니라 그 생김새 때문에 불쾌감도 느꼈다. 미스터리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싱크홀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나는 방 안에 검은 녀석이 없었으므로 그가 그 구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발이 큰 존재가 따로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구멍 가까이 다가가 미지의 생명체를 보듯 그것을 관찰했다. 벌집처럼 팔각형 모양이었고 안에 또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참 신기한 구조였다. 지하로 내려가려면 1층 복도에 따로 계단을 만들면 되는데 굳이 이런 방에 계단을 설치했다는 게 건축가가 아닌 나로서는 절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심연에 빠져들듯 구멍 안을 오래 바라보았다. 내려가고 싶은 호기심과 자신을 보호하려는 공포심이 번갈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빼고 안을 들여다보면서도 발은 절대 들이지 않은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들어갈까, 말까? 나는 맘을 어느 한쪽으로 기울이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했다. 머릿속에서 해미가 누워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무당 집에서 보았던 그 딸의 다이어리 그림도 생각났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 반이 지나 있었다.


악귀의 의식이 30분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상자를 찾기 위해, 즉 해미를 살리기 위해 구멍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엄청 깊은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구멍 안은 심해의 중심처럼 어두웠다.


나는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아기 걸음처럼 한 걸음씩 내려갔다. 내 몸은 발, 무릎, 배, 어깨, 머리순으로 심연에 잠겼다. 고양이도 내 뒤를 따라 구멍 안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우리는 지상과 작별하고 지하의 세계로 그렇게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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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해미 2-38 21.07.17 42 2 12쪽
42 해미 2-37 21.07.14 48 2 12쪽
41 해미 2-36 21.07.12 57 2 12쪽
40 해미 2-35 21.07.09 78 2 12쪽
39 해미 2-34 21.07.05 99 2 12쪽
38 해미 2-33 21.07.03 117 2 12쪽
37 해미 2-32 21.07.01 12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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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해미 2-30 21.06.25 172 2 12쪽
34 해미 2-29 21.06.23 18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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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해미 2-27 21.06.18 234 2 12쪽
31 해미 2-26 21.06.16 256 3 13쪽
30 해미 2-25 21.06.14 290 3 12쪽
29 해미 2-24 21.06.12 320 2 13쪽
28 해미 2-23 21.06.10 330 2 13쪽
27 해미 2-22 21.06.09 335 3 12쪽
26 해미 2-21 21.06.07 363 4 11쪽
25 해미 2-20 21.06.07 36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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