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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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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최근연재일 :
2021.07.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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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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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34. 조상신(7)

DUMMY

“여기가... 맞니?”


아샤를 따라가자 나온 곳은, 전혀 의외의 장소였다.


공터.


반얀 마을 중앙의 그 공터였다.

아침에 조상신들이 아이들에게 깃들었던 곳.


“여기가 우물터라는 곳이니?”


“네. 세티아가 여기가 우물터라고 했어요.”


“허...”


귀신굴 같은 음기(陰氣)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지다. 아무것도 없는.


“우물터... 우물터... 아샤, 이곳은 아까 조상신들이 나타났던 그곳 아니냐?”


“네.”


“이곳 이름이 우물터니?”


“사실 전 잘 몰라요. 세티아가 우물터라고 했어요.”


“우물터라...”


우물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이름이었지만, 우물은 고사하고 구덩이 같은 것 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티아가 나를 이리로 가라고 했다고?”


“네.”


“왜인지는 말 안해주고?”


“네... 그냥 데려가라고만 했어요.”


“흠...”


하지만 이곳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평지였다.


“하긴, 아이들이 그렇게 뛰노는 곳인데 뭐가 있을...”


말을 하던 중, 나는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그렇군. 아이들이 뛰노는 곳이니 아무것도 없는 거야.”


우물이든 구덩이든.

아이들이 뛰노는 곳에 그런 걸 멀쩡히 놔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나는 영력을 눈에 집중하고 땅 밑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노는 곳에 구덩이가 있다면, 메우는 게 당연하지...”


영력을 점차 끌어올려 눈에 집중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밑.

땅 속 깊은 곳.

그곳에, 어마어마한 음기(陰氣)가 축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음기는 어떠한 주술에 의해 옴싹달싹 못하고 올라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귀신굴 달래기...!”


각 부족에 있는 음지(陰地)는 이계와의 영적 통로.

열어놓는다면 이계의 귀신이 쏟아지거나, 부족원의 영혼이 빨려들어갈 수 있으니 제사장들은 귀신굴 달래기 등의 주술로 음지를 막아놓는다.


저 밑에서 발동하는 주술은 귀신굴 달래기와는 다른 이름이겠지만, 같은 역할을 하는 주술이었다.


“귀신굴 달래기... 아니, 주술이 더 있군.”


귀신굴 달래기에 의해 막혀서, 축적되는 중인 음기 아래로 무언가 주술들이 더 보였다.

상당히 정교한 주술들이었다.


나는 온 집중을 지하로 쏟으며 주술의 정체를 알아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눈에 무슨 불을 그리 켜고 있는가?”


“....!”


어느새, 내 뒤로 샤크티가 다가와 있었다.


“첫 번째 전사...”


나는 화들짝 놀라 그와 거리를 벌렸다.

샤크티가 이마를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주술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건 딱 봐도 주술이군.”


“...!”


영력을 너무 많이 모아두어서인지, 내 눈 주변으로 희미한 영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강 보아하니... 뭔가를 ‘보는’ 주술이군. 그래, 우물터를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얻은게 있으셨나, 주술사 양반?”


샤크티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아무래도 세티아란 무녀가 마을에서 주술사에 대한 공신력을 떨어뜨린 것이 큰 이유 같았다.


“함부로 주술을 써 죄송합니다. 다만...”


“아샤!”


샤크티가 소리쳤다. 그 외침에 아샤는 움찔하며 내 뒤로 숨었다. 샤크티는 한숨을 쉬었다.


“아샤, 아까 보아하니 네가 우레가람을 이리로 데려오더구나. 왜 그런거지?”


아샤는 우물거리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보다못한 내가 나섰다.


“아샤가 귀신목 사이에서 세티아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었다 합니다. 그녀가 나를 우물터로 데려가라 했고, 아샤는 따랐을 뿐입니다.”


“... 세티아의 영혼과... 대화를 했다고...?”


샤크티의 얼굴 근육이 씰룩였다.

그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샤는 눈을 감으며 더욱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샤크티는 아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잘 했다.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서 놀려무나.”


아샤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샤크티를 번갈아 보았다. 그 모습에, 샤크티는 고개를 까딱했다.


“우레가람과 할 얘기가 있으니 가서 놀고 있거라. 어서!”


“네, 네...”


아샤가 물러갔고, 샤크티는 멀어지는 아샤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 우물터에서 뭘 보았지?”


“... 내가 곧이곧대로 말하라 생각합니까?”


“사람의 입에서, 항상 바른 말이 나오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이겠지... 하지만, 필요한 때에 바른 말을 기대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다음 순간, 나는 그의 눈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부탁함세... 우물터에서 무얼 보았는가...?”


나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둠’을 보았습니다. 음한 기운이 잔뜩 뭉쳐 있더이다.”


“음한 기운이라...”


백태가 낀 왼눈으로 나를 보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곳이 왜 우물터인지 아는가?”


“모릅니다. 다만 예전 구덩이 같은 게 있던 곳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옳네. 이곳은 예전... ‘검우물’이란 이름의 우물이 있던 터일세. 지금은 다들 공터라고만 부르지만... 나이가 있는 이들은 안다네. 그리고...”


샤크티가 우물터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세티아가 죽기 전, 조상신의 사당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지. 그녀가 죽은 후, 마을은 저 언덕으로 옮겨졌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병자들이 사는 움막이 보였다.


“저 집이 본래 사당이었습니까...?”


“본래는 언덕 위의 집이 병자들이 머물던 곳이었네. 전염병이 최대한 퍼지지 않게 언덕 위에 지은 집이었네만...”


샤크티는 고개를 저었다.


“조상들께서 병자들의 집과 자신들의 집을 바꾸라 하셨네. 그리고 병자들은 마을 한복판으로 들어섰지.”


어쩐지 전염병에 걸린 이들이 마을 한 복판에 있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 마을 사람들은 주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네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네. 서슬뱀이 우리를 도와준 힘 또한 주술이 아니었던가...? 무엇이든 힘이란 쓰기 나름이야.”


샤크티가 돌도끼를 들어올렸다.


“도끼는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사냥하는 데에 쓰는 피의 도구지. 하지만 손잡이를 뽑아 손도끼로 만들면, 요리를 하고 조상들의 위패를 만드는 건설적인 도구야. 무릇 보는 법에 따라 만물이 바뀌는 법이라네.”


수 년을 살아온 노회한 전사가 삶에 대해 느낀 나름의 깨달음이었다.

은은한 현기(賢氣)가 느껴진다.


“... 나는 사실 조상신들을 모시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일세.”


“그렇습니까...?”


“내 아버지 역시 조상신이 되셨고, 다른 조상의 영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며, 어머니였겠지. 하지만 근래 들어 요구가 과해지셨네. 많은 식량이 제사에 바쳐지고, 조상들께서 제대로 알려주시는 건 무기에 관한 것 밖에 없네.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이, 어떤 날씨엔 어떤 옷이, 어떤 문제엔 어떤 해결이 맞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조상 아닌가...? 하지만 최근 조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나는 세티아를 죽인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네...”


말을 하는 샤크티는 힘이 없어 보였다.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우물터 밑을 살펴 보려면 보게나. 세티아는 이유 없는 짓을 시키는 여자는 아니었으니... 자네에게 뭔가 부탁할 것이 있는게야...”


말을 한 후, 샤크티는 천천히 아샤가 사라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말없이 샤크티를 쳐다본 후, 아까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며 우물터 밑을 바라보았다.


저 정교한 주술은 무엇일까.

나는 주술의 해석에 들어갔다.



* * *



우레노을은 새벽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 땅을 살피며 제례를 지낼 준비를 하였다.


“서슬뱀, 우레별! 이번 제례는 도울 것이 없으니 어디 가서 놀고나 있거라.”


“이번에는 안 도와드려도 되나요?”


서슬뱀의 질문에, 우레별은 새벽산맥 뒤편의 광활한 숲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펼치는 주술과 제례는 어떤 실수도 있어선 아니된다. 하니 우레별과 같이 놀고 있고...”


우레노을은 진중한 표정으로 서슬뱀에게 경고했다.


“너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진, 새벽산맥 너머로 나가면 아니된다. 그러니 이 인근에서만 놀고, 특히, 절대, 저 숲으론 내려가지 말거라.”


“저 숲이요?”


서슬뱀은 광활한 숲을 쳐다보았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아름다운 숲이었다.


“왜 내려가면 안 되는 것이죠?”


“허허, 네가 너무 뛰어나서 그런단다. 네 존재가 저 숲에 사는 영들을 자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야.”


“네.”


말을 마친 우레노을은 바로 제례를 시작했다.

서슬뱀은 본래 우레노을의 제례를 관찰하려 했지만, 우레별이 멋대로 산 밑을 내려가는 바람에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레별! 어디 가는 거야?”


“못 들었어? 아버지가 우리 둘이 놀라고 하셨잖아. 그러니까 내려가는 거지.”


“그냥 옆에서 놀아도 되는데 왜 내려가는 건데?”


“흥! 쫄보 자식. 겁나면 그냥 거기 있어!”


우레별은 고집을 피우며 계속 산맥을 내려갔고, 서슬뱀은 한숨을 쉬며 우레별을 따라나섰다.


어찌되었든 우레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도와주어야 했다.

우레별은 신이 나서 쭐레쭐레 온 산맥을 돌아다녔고, 서슬뱀은 말없이 우레별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레별! 이제 스승님한테 돌아가자. 이제 비가 올 거야.”


“흥, 웃기시네. 구름은 얼마 후에 지나갈 거야.”


우레별은 서슬뱀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산맥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서슬뱀의 말대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비가 오자, 새벽산맥 곳곳에서 흙탕물이 흘러넘쳤다.


“우레별!”


서슬뱀은 우레별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제 더 고집을 부리면 기절시켜서라도 끌고 갈 요량이었다.


다행히 우레별도 정신이 들었는지, 얌전히 서슬뱀에게로 왔다.


“미안... 돌아가자.”


“그래, 어서...”


서슬뱀은 우레별과 함께 우레노을에게로 돌아가려 했다.


우지끈!


근처 나무가 갑자기 뚝 부러졌다.

그리고, 나무 위에서 비를 피하던 새하얀 것도 같이 떨어졌다.


“끼이이익!”


그것은 흰비늘원숭이였다.

전신이 새하얀 비늘로 덮힌 원숭이가 공포에 당황하여 마구 날뛰었다.


그리고, 녀석과 우레별이 눈을 마주쳤다.

무엇이 그리 화가 났는지, 흰비늘 원숭이는 난폭하게 우레별에게 달려들었다.


“으, 으아아아!”


우레별은 멍청하게도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져 버렸고, 흰비늘 원숭이의 팔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우레별!”


서슬뱀은 나무가 부러지면서 떨어져 나간 가지를 하나 잡아들고, 즉시 흰비늘 원숭이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둘을 배우면 백을 깨쳐온 서슬뱀이었다.


부웅!


그동안 수많은 큰버루 전사들의 창을 보고 배우며, 나름대로의 창을 쓸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집이 무너져 분노한 원숭이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최대한 흘리고 쳐냈음에도, 원숭이의 무시무시한 근력에는 비할 바 되지 않았다.

거기에 나약한 것들이라 무시하던 상대가 반격을 하자, 원숭이는 더욱 분노했다.


콰드득!


원숭이의 손톱이 인근 나무에 자국을 내며 서슬뱀에게 내리쳤다.


서슬뱀은 뒤로 세 발자국을 피해 거리를 벌린 후, 땅에 발을 박아넣었다.


원숭이가 달려든다. 녀석은 네 발로 뛰어들어 서슬뱀을 할퀴려 했고, 서슬뱀은 허리를 굽혔다가 튕겨내며 원숭이의 귀를 후려쳤다.


촤르륵!


비가 와 진창이 된 환경 속에서, 서슬뱀은 마치 뱀처럼 진창을 미끄러져 원숭이의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귀를 맞고 그 충격에 비틀거리던 원숭이는 펄쩍 뛰어올라 늘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았다.


“키이이익! 키에에엑!”


흰비늘원숭이는 원채 포악한 놈인데, 놈은 지금 완전히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상태였다.


녀석이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다니며 서슬뱀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서슬뱀은 녀석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녀석이 그를 가장 공격하기 쉬운 곳.


서슬뱀의 바로 위 가지.


예상대로, 흰비늘원숭이는 서슬뱀의 바로 위 가지로 펄쩍 뛰어들었다.

그때, 서슬뱀의 눈이 빛났다.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더욱 억세게 쥐고, 하늘을 향해 나뭇가지를 던졌다.


큰버루의 어른 전사들이 간혹 보여주는, 투창이었다.


퍼억!


나뭇가지는 흰비늘 원숭이에게 맞지 않았다.

대신 녀석이 잡으려던 나뭇가지에 맞았다.

나뭇가지는 크게 흔들렸고, 흰비늘원숭이는 그 나뭇가지에 미쳐 매달리지 못하고 떨어졌다.


“죽어...!”


서슬뱀은 가지고 다니던 손도끼를 내밀어 정확히 흰비늘원숭이의 미간이 떨어질 곳에 가져다 대었다.


이변은 다음 순간 일어났다.


흰비늘원숭이가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 긴 팔을 벌려 나무줄기를 잡아챈 것이었다.


콰드득!


흰비늘원숭이의 억센 악력에, 나무줄기는 그대로 파였고, 파인 부분을 잡은 녀석은 떨어지던 와중 가까스로 멈춰 섰다.


“끼에에에엑!”


녀석은 죽을 뻔했단 것이 못내 열에 뻗쳤는지, 그대로 서슬뱀에게 달려들었다.

서슬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따악!


흰비늘원숭이가 나가떨어졌다.


“끼에에에엑!”


흰비늘원숭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울어댔다.

돌이었다.


서슬뱀은 돌이 날아온 쪽을 보았다.

우레별이, 가죽끈에 돌을 감아 빙빙 돌리고 있었다.


“이 원숭이 새끼가, 내 동생을 죽이려 해?”


붕!


다시 한번 돌이 날아왔다.

놀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돌이었다.

흰비늘원숭이도 가까스로 피할 정도였다.


“우레별, 안돼!”


적절한 도움이었지만, 서슬뱀은 비명을 질렀다.

눈알이 시뻘겋게 물든 흰비늘원숭이가 우레별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뻐억!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레별이 돌을 던지는 정확도가 올라갔다.


“끼에에에엑!”


원숭이가 다시 한 번 비명을 지른다.

서슬뱀은 빠르게 입술을 꺠물어 피를 내고, 손끝에 피를 묻혀 얼굴에 발랐다.


기이한 문양이 서슬뱀의 얼굴에 그려졌다.

우레별에게 배운 주술이었다.


치이이이-


피로 그린 주술이 뜨거운 열기를 내었다.


다음 순간, 서슬뱀은 자신의 몸에 놀랄 정도로 힘이 넘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콰악!


그리고, 방금전 하늘로 던져서 흰비늘원숭이를 떨어뜨렸던 나뭇가지가 다시 땅에 떨어졌다.


“우레별, 조금만 기다려, 간다!”


서슬뱀이 나뭇가지의 뾰족한 부분을 내밀며 달려나갔다.

주술로 인해 증폭된 힘과 속도가 원숭이를 따라잡게 해 주었다.


“끼에에에엑!”


원숭이는 서슬뱀을 향해 긴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서슬뱀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알고,

둘을 보면 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새, 원숭이와 굉장히 비슷한 움직임으로 유연하게 팔을 피했다.


“타앗!”


서슬뱀은 마치 흰비늘 원숭이처럼 움직이며 창을 휘둘렀다.

무기와 하나된 전사만큼은 아니지만, 흉폭한 흰비늘원숭이를 몰아붙일 정도의 강력한 창법이 그의 손에서 터져나왔다.


“끼에에에에엑!”


“하아압!”


거울을 보는 듯, 서로 비슷한 흉폭한 움직임이 서로를 공격했다.

서슬뱀은 흰비늘원숭이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원숭이를 붙잡아 놓았다.


하지만, 찰나의 틈.


그 틈으로 원숭이의 팔에 오른팔을 얻어맞았다.


“끄아아악!”


“끼에에에엑!”


원숭이가 최후의 승리를 탐하기 위해 서슬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돌이 날아왔다.


퍼억!


이번에 날아온 돌은 상당히 커다랬다.

성인 전사의 주목보다도 약간 큰 돌이, 정확히 원숭이의 뒤통수에 직격했다.


“끄...르르...”


흰비늘원숭이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뒤로 큰바위가 보였다.


“어때, 서슬뱀! 나 쫄보 아니라고!”


서슬뱀은 큰바위의 모습을 보며, 절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늬바람 말을 아직도 신경쓰고 있었어?”

“아니, 네가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잖아. 다 알고 있다고. 으윽...”


우레별의 신음에, 서슬뱀은 황급히 달려갔다.

우레별의 한쪽 발이 뒤틀려 있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으윽... 조금 힘들어...!”


치이이이...


서슬뱀은 피로 그려낸 주술이 힘을 다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몸에 가득 차올랐던 힘이 급격히 빠지고 있었다.


“우레별...! 일단 이걸 잡고 일어나.”


우레별은 서슬뱀이 건낸 나뭇가지를 잡고 힘겹게 일어섰다.


“빨리 스승님한테 가야 해. 어서 가자...”


“아니, 못 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린 못 간다고. 이 빗속에서 가다가, 아까처럼 흰비늘원숭이라도 만나면! 진흙탕에 미끄러져서 떠내려가면!”


서슬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맞는 말이었다.

우레별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쯤에서 동굴을 봤어! 거기서 비를 피하자!”


“저기에 뭐가 사는지 어떻게 알고!”


“서슬뱀!”


우레별이 소리쳤다.


“넌 아까 비가 올 걸 맞췄지? 평소에도 그런 건 잘 맞추고. 귀신들이랑 말도 하고. 주술도 잘 배우고. 그러니까... 알 수 있지? 말해봐 서슬뱀. 저 동굴이 위험할 거 같아?”


“...아니.”


서슬뱀은 고개를 저었다.

불길한 예감은 들지 않았다.

우레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널 믿을게.”


“...그래.”


서슬뱀은 우레별을 부축하며 굴 속으로 들어갔다.


천연동굴이었다.

귀신굴처럼 소름끼치는 기운도 없었고, 그믄굴처럼 치유자들이 인위적으로 안쪽을 파놓은 굴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굴이었다.


“휴우, 살겠다...”


우레별은 굴 안쪽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으윽...”


뒤틀린 다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서슬뱀은 한숨을 내쉬며 우레별의 다리를 붙잡았다.


“우레별, 참아.”

“야 잠...”


우드득!


“끄아아아아악!”


뒤틀린 뼈를 맞추자 우레별은 동굴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우레별의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너, 너...! 뼈 맞추는 법도 안 배웠잖아...!”


“그걸 꼭 배워야 알아?”


서슬뱀은 핀잔을 주었다. 인체의 구조 정도는 눈대중으로 깨친 서슬뱀이었다.

이 정도는 배울 필요도 없이 알 수 있었다.


“으윽... 이 자식...”


우레별이 고통스러워 할 때, 서슬뱀의 표정도 점차 일그러졌다.

흰비늘원숭이에게 맞은 팔이 점차 아파왔다.

힘과 전의를 끌어올렸던 주술이 풀리고 있었다.


“으, 으윽...”


서슬뱀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우레별이 눈을 빛냈다.


“맞아, 아까 원숭이한테 팔 맞았잖아...! 내가 봐 줄게.”


“저, 저리 가...!”


“나 억센가지한테 뼈 맞추는 법은 배웠어. 팔 내놔.”


“자, 잠... 끄아아아아악!”


이번에는 서슬뱀의 비명이 동굴을 울렸다.



시간이 지났다.

서슬뱀은 눈을 떴다.

우레별이 뼈를 맞춰 주고,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서슬뱀이 사용했던 주술은 사용 후 모든 힘이 소진되는 주술이었다.


“여긴...”


아직도 동굴 안이었다.

다만 전과는 달리 몸이 편했고, 주변도 따뜻했다.


밖을 보니 비는 거의 그쳐서 보슬비가 내리는 중이었고, 안에선 우레별이 작게 불을 피우고 뭔가를 하는 중이었다.


“우레별...?”


사각, 사각.


우레별은 주먹도끼로 뭔가를 깎고 있는 중이었다.

자세히 보니, 자신이 흰비늘원숭이를 잡을 때 쓴 나뭇가지였다.


“다 됐다! 너도 마침 일어났네.”


“그게... 뭐야?”


“딱 보면 모르냐, 멍청아?”


우레별이 자랑스럽게 서슬뱀에게 그것을 건냈다.


“창이잖아.”


“...나무 몽둥이가 아니라?”


“시끄러워! 여튼... 너 이거 받으라고.”


서슬뱀은 얼떨결에 창을 받았다. 그리고 직후, 아주 작은 우레별의 목소리를 들었다.


“...고마워.”


서슬뱀은 잠시 창을 내려다 보았다.

큰버루에서 또래간 창을 선물하는 건, 아주 친한 벗끼리만 하는 일이었다.


“...이걸 왜 나한테 줘?”


“왜긴, 멍청아.”


우레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형이 동생한테 창 정도는 선물할 수 있는거지.”


“웃기시네. 누가 형이야? 흰비늘원숭이도 못 잡은게.”


“마지막에 누가 잡았는지 기억 안 나냐?”


“그래, 내가 잔뜩 두들겨 패 놓은거, 네가 마지막에 와서 뒤통수 때려놓긴 했지.”


우레별과 투닥거리면서도, 서슬뱀은 속으로 조금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열패감이었다.


그것은 흰비늘원숭이 때문도, 자신이 먼저 기절했었다는 것 때문도 아니었다.

우레별이 먼저 자신에게 화해를 신청한 것 때문이었다.

항상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한 자신이, 우레별에게 화해를 받는다.


서슬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꼈다.


“웃기지 마! 나한테 형 소리를 들으려면, 나한테 이겨야 할 걸!”


그래서 괜히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흰비늘원숭이 잡았잖아!”


“백번 천번 양보해서 같이 잡은 거라고 해줄 순 있어.”


“마지막에 내가 돌 안 던졌으면 넌 지금쯤...”


둘은 그렇게 비가 멈출 때까지 투닥거렸다.





비가 멈추고, 날이 개인 후.

심각한 얼굴을 한 우레노을이 굴을 찾았다.


“미안하다, 얘들아. 어떤 놈이 내가 새벽산맥에 올라온 틈을 타 액운(厄運)의 주술을 보내와서... 음!”


우레노을은 서로 마주보고 잠을 자는 두 소년을 보았다.

서슬뱀은 우레별이 깎은 나무창을 꼬옥 쥐고 곤히 자고 있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서슬뱀과 우레별은 이 세상에서 피보다 진한 벗이 되었다.








그로부터 열 해가 지났다.


두두두두두두-


“하하, 이거 최곤데!”


우레별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서슬뱀이 오른손으로 창을 쥐여잡으며, 왼손으로 말의 목을 붙잡았다.


“넓적머리에서 훔쳐온 보람이 있는걸!”


“서슬뱀, 넌 천재야!”


서슬뱀과 우레별은 신나게 말을 타며 비명을 내질렀다.

즈믄평원을 말을 타고 내달리니, 세상이 자신들의 것 같았다.


“서슬뱀, 말 타고 사냥한번 해볼까?”


“말 타고 사냥을? 오, 그건... 음. 별로 안 좋은 생각 같은데. 감이 안 좋아.”


서슬뱀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말의 목을 더욱 꽈악 잡았다.

우레별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외쳤다.


“큰버루 떼라도 만나지 않는 이상 상관없어! 가자! 가장 먼저 잡는 사람이 형의 칭호를 갖는 거다!”


“잠깐, 오늘 정말 감이 안 좋아...!”


“그건 네가 넓은머리부족의 짐승을 훔쳤으니까 혼날 예감인가 보지! 혼나기 전까지 마음껏 놀자! 오늘에야말로 형 소리를 듣겠다!”


우레별은 신나게 말을 몰았고, 서슬뱀은 불길한 예감을 떨치고 주변을 살폈다.


두두두두-


평원을 달리던 서슬뱀의 눈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평원 한 구석의 풀들이 움직였다.

사냥감이다.


“넌 전사 훈련을 받으면서도, 제사장 수업을 받는 날 이긴적이 없잖아?”


서슬뱀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움직임이 보이는 곳을 향해 말의 고개를 꺾었다.


“하하, 오늘도 내가 형이다!”


그리고, 서슬뱀은 사냥감의 몸에 창을 박아넣기 위해 말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우레별, 내가 먼저 잡았...”


서슬뱀이 사냥감을 내리찍기 직전이었다.

서슬뱀은 ‘사냥감’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갈색 피부를 지닌, 사람이었다.


“으아악!”


그는 화들짝 놀라 말을 멈춰세웠고, 그 반동으로 앞쪽을 향해 튕겨나갔다.

허공으로 날아가면서도, 그는 천부적인 감각으로 공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아주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허억... 헉... 죽을 뻔했네.”


서슬뱀이 고개를 들자, 어느새 말을 멈춰세우고 내려서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우레별이 보였다.


“우레별! 누구래?”


“어? 어어...어...”


우레별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다소 멍청해 보이는 어버버 소리였다.

서슬뱀은 풀을 재치고, 우레별과 그자에게로 다가갔다.


“어...?”


서슬뱀이 사냥할 뻔한 것은, 다름아닌 여성이었다.

갈색 피부, 흑단같은 머리칼.

그리고, 묘한 매력을 가진 큰 눈.


“어... 어어...”


서슬뱀은 그녀를 보자마자, 우레별과 같은 소리를 내었다.


“죄, 죄송... 합니다. 누구...시죠? 어떤 부족의...”


우레별은 그녀에게 멍청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슬뱀은 대답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멍청하긴, 저 피부색, 눈을 봐! 이방 부족 사람이잖아! 당연히 큰버루어는 못 할텐데...’


하지만 서슬뱀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유창한 큰버루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놀라셨죠, 저는 동쪽 끝 마을에서 온 마필리(Mapili)라고 합니다.”


그녀의 옥구슬같은 목소리.

그 목소리로 하는 짤막한 자기소개.


서슬뱀은 그것에 불길한 예감마저 잊고서, 그 이름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마필리가 물었다.


“큰버루 부족은 어느쪽으로 가야하죠?”


작가의말

조상신 에피소드는 우레가람이 서슬뱀의 기억을 읽고 있다는 설정이기에,

서슬뱀의 과거와 반얀 마을에서의 에피소드가 병행됩니다.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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