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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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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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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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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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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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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47. 조상신(20)

DUMMY

마을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마필리가 유산했다는 것은 당연히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무거움’이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다.


단순히 마필리의 유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슬뱀은 큰버루에 돌아와 부족원 한 명에게 들은 말을 되새기며, 이를 갈았다.


이번에도 우레노을이었다.


마필리가 유산하자 우레노을이 마필리에 대고, 저 사악한 것이 불운을 몰고 왔으니, 큰버루는 몇 년간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레노을... 도대체 왜...’


안 그래도 유산하여 슬플 마필리를 그렇게 몰아붙이는 것일까.


서슬뱀은 성큼성큼 우레별의 천막으로 향했다.


안에서 많은 이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레별.”

서슬뱀이 천막을 걷고 들어가자,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마필리와, 그런 마필리를 달래는 우레별.


그리고 억센꽃과 검은바위 등이 있었다.


“서슬뱀...”


우레별의 시선이 서슬뱀과 마주쳤다. 동시에 억센꽃과 검은바위 역시 고개를 돌렸다. 억센꽃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무시했고, 검은바위는 찌릿한 살기를 쏘아보내다가 서슬뱀을 알아본 후 멈췄다.


“무슨 일이야, 우레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우레별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레노을께서 마필리를 크게 꾸짖으셨어.”


“이번에도... 또 다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어?”

서슬뱀이 이를 갈았다. 하지만, 우레별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야. 서슬뱀.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얘기해 주셨어. 마필리를 싫어하던 이유를... 큰버루의 신이, 마필리가 언젠가 부족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했다는군.


그리고 그 때가 지금이라고... 마필리가 부족에 재액을 몰았으니, 한동안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하셨어. 얼마간 아이를 낳으면 기형아가 날 것이니...”

“그게, 이유라고...?”

우레별은 고개를 떨궜다. 검은바위는 고개를 저었다.


억센꽃은 말없이 마필리에게 줄 약초즙을 젓는 중이었다.


“그딴 게 이유라고...?”

서슬뱀이 이를 악물으며 되물었다.


억센꽃이 서슬뱀에게 쏘아붙였다.


“그딴 거라니. 신이 말하셨다. 너는 주술파면서 신에 대한 예의도 없는거야?”

서슬뱀의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는 주술파 혈통이었다. 서슬뱀 역시 한때 차기 제사장이었으니 주술파라 부르는 게 옳았다. 하지만 서슬뱀은 고개를 저었다.


“신...? 그게 큰버루에 뭘 해줬다는 거지?”

“뭐...? 서슬뱀. 아무리 그래도...”

검은바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서슬뱀을 만류했다.


하지만 서슬뱀은 오히려 버럭 소리질렀다.


“너희야말로 뭐 하는거냐! 마필리가 울고 있잖아! 아이를 잃어 눈물을 흘리는데, 신이라는 것이 아이 잃은 어미를 오히려 꾸짖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서슬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우레별, 도대체 왜 네 아버지한테 또 대들지 않은 거야! 왜 마필리를 데려갔으면서도, 이번에는 목숨을 걸지 못한 거야!”

“너 이새끼, 지금 그게 우레별한테 할 말이라고...”

억센꽃이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서슬뱀은 억센꽃을 무시한 채 다시 소리쳤다.


“우레별, 대답해라! 왜 마필리가 모욕을 받게 놔둔 거냐!”

“...신이. 말했으니까.”

우레별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서슬뱀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마필리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서슬뱀. 큰버루의 신이 말했는데...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 그 말대로, 내가 액의 기운을 품은거지.”

“...마필리.”

우레별은 힘없이 마필리의 손을 잡았고, 서슬뱀은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열불이 치솟는 것 같았다. 무언가, 가슴 속의 뜨거운 기운이. 자신의 가슴을 고통스럽게 했던 그 열기가.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마필리. 우레별.”


서슬뱀은 씹어뱉듯이 뇌까리며, 등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귀신굴을 향했다.


“내가 다녀오지.”

“잠깐, 서슬뱀...”

“야...”


그는 귀신굴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귀신굴은 굴막이 바위로 막혀있었다.


그는 굴막이 바위의 한쪽을 잡고, 힘을 써서 한쪽으로 밀었다.


구그그그-


굴막이 바위가 서서히 옆으로 밀렸다.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틈이 열렸다.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귀신굴 안쪽으로 빛이 한줄기 들었다. 서슬뱀의 그림자가 굴 안쪽으로 쭈욱 늘어졌다.


서슬뱀의 그림자가 닿는 곳. 그 끝에서 우레노을은 어두운 동굴 벽을 보며 명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서슬뱀.”

“목소리도 안 들었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다 아시는군요.”

“용건을 물었다.”

“이 마을의 모든 상황이 다 당신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압니다.”

“.....”

“방금 전, 저와 마필리, 우레별이 있던 천막 역시 들여다 보셨겠지요.”

우레노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내 대화도 다 엿들었겠지요. 다 알고 왔습니다. 내가 정말로 무슨 일 때문에 온 건지 모르겠습니까?”

“내게서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게냐...”

우레노을은 나긋한 목소리로, 서슬뱀을 타이르듯이 말했다.


언제나 그랬다. 이상하게도 우레노을은 그를 대할 때면 늘 필요 이상으로 부드러워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마필리가 아이를 유산했는데 위로는커녕 앞에서 꾸짖으셨다고요? 그 아이가 무슨 기분이 들었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알고 있다.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들려고 우는 척을 할 뿐. 덤덤하더구나. 뇌파가 아주 잠잠했어. 소름끼치는 것이야.”

우레노을의 눈에 은은한 노기가 치솟았다.


“자신의 아기를 잃어도 그토록 태연한 것이니, 여기로 보내진 것이겠지. 그런 것인줄 알고 신께서 내게 경고하신 게야.”

“신!”

서슬뱀의 언성이 높아졌다.


“신! 신! 도대체 그놈의 신이 큰버루에,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해 줬다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입니까!? 진짜 신이라면 마필리가 가져온 액을 씻어줘야 하는 게 아닙니까!”


“씻고자 하여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너는... 큰버루의 신을 모시는 내 앞에서 그런 말이라니. 신들의 귀에 들어갈까 두렵지 않으냐?”

“안 두렵습니다.”

서슬뱀은 살면서 진정으로 신에게 기도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능력과, 부족의 힘만을 믿었을 뿐. 정말로 신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미신에 매달리는 부족의 사람들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주술사의 주술이야, 본인의 능력인데 부족원들이 잘 알지 못하니 두려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고함을 질렀다.


“내가 왜 그들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어쩐지 우레노을이 그리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우레노을에게 소리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들이 내게 해 준 것이 있습니까? 나는 내 힘으로 살아오며 내 능력으로 경지에 올라 내 힘으로 짝까지 찾아냈습니다. 신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아니, 우리에게 악한 것을 주입하는 신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악신이 아닙니까!”

말을 다 내뱉고도, 서슬뱀은 잠시 아차 싶었다.


너무 나갔다.


하지만, 우레노을은 그를 꾸짖지 않았다. 다만 괴로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서슬뱀아... 적어도 너는... 너만은 그런 말을 해선 아니된다. 너만은 그래선 안 돼...”


“내가 차기 제사장인 적이 있어서입니까? 됐습니다. 이젠 다시 제사장이 되라 하셔도 되지 않을 겁니다.”

“서슬뱀...”


서슬뱀은 등을 돌려 귀신굴의 입구로 향했다.


“마필리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녀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저 역시, 당신이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 역시 없는 사람 셈 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자, 잠깐... 서슬뱀...”


“.....”

“아들아...”


애타게 그를 부르는 우레노을을 등지고, 그는 완전히 귀신굴을 벗어났다.


서슬뱀은 귀신굴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것으로, 어쩌면 우레노을은 마필리를 조금이라도 인정하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그는 어릴 적부터 서슬뱀이 원하는 것은 뭐든 이뤄주려 노력하였다. 조금 말이 안 되는 일도 서슬뱀이 조금만 고집을 부리면 냉큼 들어주었다.


이번에도 역시 들어줄 것 같았다. 그 역시 우레노을과 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것은, 상당히 큰 결심을 한 것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도 우레노을은 마필리를 같은 태도로 대했다. 여전히 그녀를 보면 얼굴을 노골적으로 찌푸리며 돌아갔고,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호통을 쳤다.


서슬뱀과 우레노을의 사이 역시 틀어졌다.


그 날을 기점으로 서슬뱀은 우레노을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을의 중요한 행사나, 여러 전사가 같이 인사할 때에만 고개를 까딱이는 정도였다.


우레노을은 서슬뱀에게 뭔가를 말하려 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서슬뱀은 무시했다.




하지만 우레별과는 여전히 친하게 지냈다. 여전히 누가 형의 칭호를 가지냐 투닥거리며, 둘은 마필리를 달래려 열을 냈다.


첫 유산 후 웃음을 잃었던 마필리는 점차 웃음을 되찾았고, 얼마 안 가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부디 문제 없겠지...?”

우레별이 한숨을 쉬었다 서슬뱀은 피식 웃었다.


“아무 문제 없어. 걱정하지 마. 연속으로 아이를 유산할 리는 없잖아?”

“그래야지. 네가 느끼기엔 어때?”

“음... 괜찮지 않을까?”

서슬뱀은 요 근래, 조금 둔해진 기분이었다. 전사로서의 역량은 날마다 성장했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 흐려진 느낌이었다.


‘영력 수련을 안 한지... 오래됐군.’


차기 제사장의 직위를 박탈당한 날부터, 영력 수련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었건만, 점차 감이 둔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있었던 강한 예감 역시 많이 흐릿해져 있었다.


서슬뱀은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우레별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걱정 할 바에 사냥이나 해 오자고. 누가 더 많이 사냥하느냐로 형 칭호를 가지기다.”


“호오, 좋아.”


우레별은 걱정을 떨치고 창을 잡았다. 어느새 그 역시 무기와 하나된 전사가 되어있었다.


서슬뱀은 검은바위가 먼저 무기와 하나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먼저 무기와 하나된 전사는 우레별이었다.


“자, 가자!”

둘은 그렇게 걱정을 떨치고 시간을 보냈다.




마필리가 아이를 가진지 반 년이 되었다.


또 다시 액이 닥쳐왔다.


마필리의 두 번째 유산이었다.


그리고, 심란해하는 마필리의 앞에 다시금 우레노을이 나타났다.


“네년이 또 다시 재액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이라도 다시 네 부족으로 돌아간다면 모두가 무사할 것이야. 당장 썩 꺼져라! 신께서 말하신다. 이번 해 역시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서슬뱀은 여지껏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분노를 느꼈다.


저것이, 아이를 잃은 어미한테 할 말인가!?


서슬뱀은 하마터면 우레노을에게 달려들 뻔하였다. 하지만 옆에서 같이 분노하는 우레별을 보며, 간신히 화를 참을 수 있었다.


자신은 덤벼들어도 용서받을 테지만, 우레노을의 편애적 성격이라면 분명 우레별에겐 큰 벌을 내릴 터였다.


유독 친자식에게 엄격한 우레노을이었으니.


“... 우레별. 분노하지 말고, 마필리를 달래줘.”


“고맙다. 서슬뱀...”


우레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마필리를 안아주었다.


둘은 쓸쓸하게 천막으로 들어갔다. 서슬뱀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신은 없어.’


그것이, 서슬뱀이 느낀 바였다.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왜 우레별과 마필리에게만 가혹하게 구는 것인가.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우레노을에게 쳐들어가 몇날며칠이라도 토론하고 싶었지만, 그를 없는 사람 치겠다고 했던 맹세가 떠올라 고개를 돌렸다.


그런 토론보다는 마필리의 건강을 챙겨줄 약초나 캐러 가기로 했다.




또 다시 한 해가 지났다.


마필리는 다시금 회복했고.


우레별과 서슬뱀에게는 사소한 변화가 생겼다.


우레별은 신을 믿기 시작했고.


서슬뱀은 신을 헛된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우레별은 늘 신을 입에 달고 다녔다. 마필리를 위한 약초를 캘 때면 신을 찾았다.


사냥을 할 때면 신을 찾았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레별, 그런 거 믿을 틈에 약초나 하나 더 캐.”

“... 약초는 푸르가람께서 주시지.”

“좀! 우레별!”

“푸르가람께서 주신 약초를 먹으면... 마필리도 더 건강해지고, 이번에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거야. 우리 아이를...”

서슬뱀은 한숨을 내쉬며 같이 약초를 캤다. 아무래도, 신이 점점 우레별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시 마필리는 아이를 가졌다.


“신이시여. 제발... 해달별 귀신이여. 큰버루의 혼이여. 푸르가람이여... 제발 마필리가 무사히 아이를 낳게 해 주십시오.”

“우레별. 나라면 그럴 틈에 마필리한테 보양식이나 해주겠어.”


“좋은 생각이야! 번뜩 떠오르는 생각은 버력미르가 주시는 거지.”

“하아...”


우레별의 기도가 통한 것인지.


마필리는 거의 아홉 달 동안이나 무사히 아이를 가졌다.


우레별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열달을 채웠다.


결국 출산일이 되었다.


“신이시여... 제발...”


우레별은 천막 앞을 왔다갔다하며 손톱을 미친 듯이 깨물었다.


안에서는 마필 리가 힘겹게 아이를 낳고 있었고, 대모가 아이를 받고 있었다.


얼마 후, 마필리의 비명소리가 흩어졌다.


“끄, 끝난 건가...?”


우레별은 황급히 천막을 바라보았다. 서슬뱀 역시 두근대는 기분으로 천막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는 우레별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얼마 후, 대모 디딤달래가 천막을 나왔다.


“아이의 아버지는 들어오시게...”


“어, 어찌 된 것입니까...”

“......”

디딤달래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우레별은 그녀를 밀치고 천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비명이 터져나왔다.


서슬뱀 역시 천막으로 들어갔다.


우레별은 울고 있었다.


아이는 시체가 된 상태로 나왔다고 했다.




세 번째 유산이었다.






“...우레별. 괜찮나?”

“.....”

우레별은 마필리를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썩은 고목나무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 같았다.


“우레별. 마필리.”


두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서슬뱀은 한숨을 쉬었다. 우레노을은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둘의 눈은 죽어 있었다. 세 번 연속의 유산이었다. 어미도, 아비도, 마음이 괜찮을 리 없었다.


서슬뱀은 두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야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해야 할 말이었다.


“나는 내일 넓은머리로 떠난다.”


답은 없었다.


“넓적머리에, 내 짝을 너무 방치해두었어. 첫날밤만을 보내고, 거의 이 년은 찾아가지도 않았지. 어제 넓은머리 편에서 연락이 왔다. 내 짝이 넓은머리의 무녀로 오르게 되니, 찾아오라고.”


“.....”


“난... 가 본다. 미안하다.”


서슬뱀은 무어라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어 천막을 나섰다.


시간만이 둘을 치료해 줄 것이다.


“후우...”

서슬뱀은 그날 몇 마리의 사냥감을 잡아 마필리와 우레별의 천막에 가져다 준 후, 늦은 밤 넓은머리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서슬뱀이 짐을 쌀 때였다.


“서슬뱀.”

“....?”

서슬뱀은 천막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형상이 보였다.


“큰꽃향기...?”

그가 넓은머리로 가 있을 동안. 검은바위와 짝을 맺은 큰꽃향기였다.


“무슨 일이야. 검은바위는?”

“검은바위는 사냥을 갔어. 내일 돌아올 거야.”

“...왜 온 거야.”


“...왜 날 두고 간거야?”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 큰꽃향기는 서슬뱀에게 다가왔다.


“서슬뱀. 내가 널... 얼마나...”

“저리 가. 넌 검은바위의 짝이야.”

“서슬뱀!”

큰꽃향기가 서슬뱀에게 안겨왔다. 서슬뱀은 그녀를 밀쳐내지 못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검은바위와 짝을 맺고서... 우린 둘 다 노력했어...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 족장파라서 주술사님의 말을 잘 따르지 않고, 액이 내리는 기간 아이 가지는 걸 시도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하지만... 기형아도 아니야. 아예 내게 어떤 아이도 와주질 않아.”

“큰꽃향기...”

“나도... 마필리처럼 액을 품은 걸까? 그래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걸까?”

“.....”

“이대로... 있어줘. 내게 희망을 줘, 서슬뱀.”

서슬뱀의 눈에, 세 번 아이를 유산한 마필리와, 삼 년 동안 노력했어도 아이를 가지지 못한 큰꽃향기가 미묘하게 겹쳐보였다.


그는 큰꽃향기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그날 검은바위의 짝이 된 큰꽃향기를 안았다.








다음 날 큰버루를 떠난 서슬뱀은, 며칠 후 넓적머리에 도착했다.


넓적머리는 잔치 분위기였다.


하늬바람이 무녀에 오른다.






하지만 즉위식 이후, 밤에 본 하늬바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첫날밤만 보내놓고, 그 다음날 사라져서, 이제 부르니까 나타나...?”


“하늬바람. 그게...”

“됐어. 얌전히 내가 무녀의 승계를 받는 거나 바라봐.”

그날, 하늬바람은 봄바람의 뒤를 이어 넓적머리의 다음 무녀가 되었다.


“드디어 무녀가 됐네. 어릴 적엔 그렇게 멋진 자리였었는데... 지금은 답답한 자리야.”

“그래?”

“무녀는 이제 부족의 흥망이 걸린 일이 아니면 부족의 밖을 나서서도, 부족 바깥의 일은 알아서도 안 된데. 이전에는 네가 큰버루에 가 있으면 소식이라도 전해들었지만, 이젠 그런 것도 안 돼. 부족 바깥의 일이라.


네가 큰버루에 가면... 난 네 소식을 들을 수도 없어.”


“.....”

“그러니까. 큰버루에 안 가면 안 돼...?”

하늬바람은 서슬뱀을 마주보며 물었다.


서슬뱀은 대답할 수 없었다.


하늬바람은 그 침묵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서슬뱀과 떨어져 잤다.


서슬뱀은 누운 채로 하늬바람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몇 달이 지났다.


서슬뱀은 하늬바람과 함께 지내주었다. 넓은머리에서 지내며, 말들을 몰고, 무리를 이끄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하늬바람의 서운함을 풀어주려, 나름 노력도 하였고, 그 덕에 어느 정도 둘의 관계는 회복된 후였다.


넓직한 즈믄평원. 그 평원의 절반을 차지한 넓적머리 부족에서, 서슬뱀은 큰버루에서의 일을 잊는 듯 했다.




몇 달이 지났다.


넓적머리에 손님이 찾아왔다.


우레별이었다.


“서슬뱀,”


“우레별, 무슨 일이야.”


“하하, 이쪽이 네 짝인가.”

우레별은 하늬바람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잡담을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쯤에야 노을을 바라보며 본론을 꺼냈다.


“서슬뱀. 큰버루로 돌아와줘.”

“뭐? 무슨 일이야.”

큰버루 부족은 딱히 거처에 까다로운 부족이 아니었다. 대부분 큰버루가 고향이라 그곳에서 살기는 하지만, 인근 부족에서 가족을 이루어 그 곳에서 살고 싶으면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우레별의 질문은 의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레별의 다음 말에, 서슬뱀은 납득했다.


“마필리가 네 번째 아이를 가졌어. 이제 다음 달이 출산일이야. 서슬뱀. 나와 함께 가서... 마필리를 위해... 아이를 위해, 같이 기도를 해 줘.”

우레별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그리하면... 아이의 대부는 널 시켜줄게.”

서슬뱀은,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서슬뱀은 하늬바람에게 말했다.


“하늬바람. 큰버루에 다녀올게.”

“이번엔 몇 년을 있을려고? 참 내...”

“그게... 내 형제가 이번에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서슬뱀은 미안한 어투로 하늬바람에게 말했다. 하늬바람은 한숨을 쉬었다.


“형제 아이는 중요하고, 네 아이는 안 중요해?”

“내 아이라니... 아!”

서슬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하늬바람의 배가 은근히 불러 있었다.


서슬뱀이 떨리는 손으로 하늬바람의 배를 매만졌다.


“...하늬바람.”

“됐어. 갔다 와.”

“응...?”

“들어보니까 다음 달에 나온다며? 그 우레별이란 사람의 아기. 어차피 나는 많이 남았으니까. 대부도 시켜준다더라? 큭큭. 그럼 갔다와야지.”

“...미안해. 하늬바람.”

“미안하면, 갔다 와선 꼭 붙어 있어.”

“...약속할게.”

그렇게, 서슬뱀은 다음 날 큰버루로 출발하였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서슬뱀은 큰버루로 향하며, 간절하게 비는 우레별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당히 마르고, 초췌해져 있었다. 마필리가 또 다시 유산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 모양이었다.


“모든 신이시여.. 제발...”

“......”

서슬뱀은 본래 신을 믿는 이를 우습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우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역시, 신에게 빌고 있었다.


‘신이시여, 이번만큼은... 우레별이, 상처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마필리가 아파하지 않게 해 주소서.’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하였다.




그리고 서슬뱀이 큰버루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났다.


우레별은 마필리의 천막 앞에, 푸르강에서 떠 온 물을 떠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해달별 귀신이시여, 큰버루의 혼이여, 푸르가람이여, 버력미르여. 우짖는 새시여. 모든 부족의 신이시여. 제발... 제발...!”

서슬뱀 역시 우레별의 뒤에서 나름대로 창을 잡고서, 기도하였다.


그는 신에게 기도하진 않았다.


태어나는 아기에게 기도했다.


‘제발 무사히 태어나 다오. 우레별의 아이야...’


그리고.


마필리의 비명이 얼마간 큰버루를 뒤덮었다.






마필리의 비명이 그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억센꽃이 대모 대신 천막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우레별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들어가봐, 아기 아버지.”

우레별은 마치 우레처럼 천막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곧이어 천막 안에서 우렛소리 같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서슬뱀의 만면에 미소가 퍼져올랐다.


드디어, 살아있는 아이가, 무사히 태어난 것이다.




천막 안에선, 마필리가 아이를 껴안고 웃고 있었고, 우레별은 마필리를 앉고 울고 있었다.


“우레별.”


서슬뱀은 씨익 웃었다.


“축하한다.”

“서슬...뱀.”

우레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필리에게서 아이를 받아, 서슬뱀에게 데리고 왔다.


“네가, 대부다.”

“그래.”

“그러니... 이름은 네가 지어다오,”


“내가...?”

서슬뱀은 아이의 눈동자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래, 보자. 우레별. 네가 그동안 가장 많이 울부짖었던 신의 이름이... 푸르가람. 장수와 치유. 생명과 활력을 상징하던 신이었지, 그래. 그럼... 푸르가람의 이름과, 네 이름을 따서.


우레가람. 우레가람은 어떠냐.”

그렇게, 아이의 이름은 우레가람이 되었다.


작가의말

으아아아아...! 서슬뱀 에피소드가 하나 남았어요! 늘어뜨려서 정말 죄송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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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현인신(2) 21.07.09 3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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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1. 조상신(24) +1 21.06.21 57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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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9. 조상신(22) 21.06.20 46 1 17쪽
49 48. 조상신(21) 21.06.20 49 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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