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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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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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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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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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현인신(13)

DUMMY

“......”


[......]


사방은 조용했다. 나는 공손을 바라보며, 창을 잡은 손에 힘을 빼지 않았고, 원혼들은 극한의 원기를 풍기며 공손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반인반충의 형상을 한 공손은 나와 원혼들을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다들 내게 궁금한 게 아주 많은 모양이군. 그래. 누구의 의문부터 풀어줄까...”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 원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답해라, 공손!]


쿠구구구구!


그 진득한 귀곡성에 최하층이 흔들거렸다. 공손은 나를 흘긋 보며 말했다.


“내 전사들이 궁금한 게 있다고 하는군. 저들에게 먼저 답을 하고 싶네만.”


촤르륵!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스물 여섯가지의 속박주술을 짜내 공손에게 던졌다. 녀석은 의외로 순순히 속박주술을 받아들였다. 녀석의 주술과 영력은 모조리 속박되어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이제 말해봐라.”


“철저하시군...”


공손은 씁쓸한 어투로 고개를 흔들고는, 잔수를 비롯한 원혼들을 바라보았다.


“좋다. 너희를 버린 이유를 말해주지.”


원혼들은 한 마디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시뻘건 안광을 흘리며 공손을 둘러쌌다.


치이이...


공손의 피부 위로 시커먼 반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극심한 원독에 녀석의 육신이 오염되는 것이었다.


“너희를 버린 이유는...”


잔수의 원혼이 공손의 바로 앞에 가서 선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공손의 말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리고, 공손이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고오오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전신에 방어주술과 정화주술을 여섯 겹씩 엮어 둘렀다. 원독이 더욱 짙어져, 숨쉬기조차 힘들다. 원혼들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채, 붉은 안광으로 공손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희가 용맹하게 가서 반얀 놈들을 쓸어버리면 그것대로 좋겠지만. 그런 일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희를 죽으라고 반얀에 보낸게지.

그런데 반얀 놈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더만 너희는 내 힘이 끊기자마자 후퇴하더군. 물론 실망하진 않았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으니까. 해서 그럴 때를 대비하고 너희에게 불어넣은 주술로 너희를 반얀 부족에게 죽게 했다.

처음부터 너희를 원혼으로 제련하기 위해서 원정을 보낸 거였거든.”


치이이... 치이...


석실의 바닥, 천장, 벽에도 반점들이 피어난다. 공손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고, 영혼들도 담담하게 듣고는 있었다. 하지만 저들의 분노는 그 어떤 때보다 위험해 보였다.


‘지옥이 있다면 저들의 마음속이겠군.’


저들의 신이 말한다. 너희는 처음부터 고통받을 운명이었다고. 원혼들의 안광이 더욱 짙어진다. 그 어떤 말로도 형용이 불가한 슬픔과 분노다.

공손은 그런 원혼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난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그래, 너희는 처음부터 원혼이 되어 수백년을 그 숲에서 썩을 계획이었다. 숲을 완전히 오염시키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한을 가진 무시무시한 악령체가 되어 내게 찾아오는 것이 너희의 운명이었단 말이다.”


치이이이...


“....!”


공손에게 걸어놓은 스물 여섯겹의 속박주술이, 가공할 원독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오오오오오...


깊은 원독, 깊은 슬픔. 깊은 분노. 저 속에서, 원혼들이 낮게 울부짖는다.


“잠깐, 잠깐! 저 자의 이야기를 더 듣지 마라!”


오오오오오오...


“저 놈이 뭔가를 꾸미고 있어!”


하지만 내 얘기는 낮은 귀곡성에 막혀 저들에게 닿지 못한다.


“오로지 내 힘을 되찾기 위해... 떠나갔던 내 신을 대신하기 위해... 너희는 악령이 되었고.”


지금 저들을 지배하는 것은.


“너희 후손들은 내 밑에서 노역을 하였다. 센유엔의 희생으로, 나는 영생할 것이니라.”


저들의 신(神)이었다.


“이제 너희가 나를 찾아와 내 밑에 무릎꿇고, 내 발에 입을 맞출 것이니, 나는 진정한 현인신이 될 것이노라!”


공손의 말이 기묘한 언령이 되어 원혼들을 자극한다.


파앙!


이윽고 공손을 뒤덮었던 속박주술이 모조리 녹아버렸고, 녀석은 기묘한 언령으로 원혼들의 한을 부추겼다.


“그 입 닥쳐라, 공손!”


최하층에 즐비한 가공할 영기를 이용해 거대한 주술을 짜냈다.


대규모 주술.

액 쫓기.


대규모 주술.

도깨비 죽이기.


공손을 뒤덮은 원독을 쫓아내고, 녀석의 영혼을 즉살시켜버릴 대규모 주술 두 개가 녀석에게 날아간다.


“그러고 보니, 너 역시 내게 궁금한 게 있었지, 우레가람.”


[우오오오오오오!]


공손이 비웃듯 나를 쳐다보았고, 원혼들이 모여 악령체를 형성한다. 거대한 악령체는 내가 급조해 쏘아낸 두 개의 대규모 주술을 그대로 흩어버리고 귀곡성을 내질렀다.


“크윽...!”


원혼들의 한이 이전보다 수 배는 더 깊어졌다. 내가 일전 싸웠을 때보다 더욱 강해졌다. 거기에 이성조차 잃어버린 듯,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기만 한다. 극심한 분노에 말조차 잊어버린 듯 했다.

악령체의 등 뒤로 공손이 히죽 웃었다.


“범.”


그 작은 언령에, 악령체의 형체가 변화하고, 범의 줄무늬가 악령체를 뒤덮는다. 녀석의 육신이 변화하며 흑호의 형상으로 변해버렸다.


“돌아와라, 센유엔의 신이여.”


“....!”


그리고 그렇게 변한 흑호는 그대로 공손의 몸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치이이이...


“크윽...으윽...! 으하, 으하하하하!”


녀석이 미친 듯이 웃는다. 나는 황급히 수 개의 살상주술을 더 엮어 던져냈지만 녀석에게서 흐르는 원력에 전부 흩어져버린다.

공손을 뒤덮은 반점들이 모이더니 범의 줄무늬와 같이 변했다. 다만 악령체를 뒤덮은 범의 줄무늬보다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줄무늬였다.


동시에, 녀석에게서 가공할 영력이 뿜어져 나왔다.


“으하하하하하하!”


원혼들이 가진 원력과 영력이 모조리 공손에게 빨려들어갔다.


“궁금한 게 있다고 했나, 우레가람?”


녀석의 눈을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고, 놈의 목소리에서 수십 명의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원혼들에게 강력한 힘을 내려준 이유를 물었었나? 그거야 당연하지, 결국엔 내게로 귀일(歸一)할 권능이기 때문이다.

흐하하... 드디어... 백칠십년의 세월을 넘어, 제사장의 힘을 가지게 되었도다.”


쿠릉, 쿠르릉!


나는 창 속에 밀어넣어두었던 천둥의 힘을 다시 꺼냈다. 전신이 번개의 형체로 일그러진다.


파앙!


번개의 속도로 이뤄진 지르기!


콰득!


창 끝으로 공손의 심장이 으스러지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러나, 녀석은 쓰러지지 않았다.


“잊었나, 우레가람. 이 몸은 시체야. 단순히 주술로 움직일 뿐인 시체. 그 정도로는 날 해할 수 없다네. 그리고...”


공손의 안광이 붉게 물든다.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자리를 비운 강철의 산을 향해 손을 뻗는다.


“차라리 저걸 지키고 있는 게 훨씬 나을 뻔했는데 말이지.”


“....!”


파스스!


민들레뿌리로 엮어둔 결계는 원독에 의해 빠르게 썩어버렸다. 나는 황급히 준비해둔 주술을 눈과 귀에 둘렀다.


제사장에 버금가는 영력으로 기이한 술식을 짠 공손이 외쳤다.


“강철의 산에게 명한다. [유적]. 가동!”



* * *



웅성웅성...


센유엔 부족은 여전히 우레가람이 갈라놓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쪽이 맞느니, 어느쪽이 틀리느니 하며.


샤오허를 중심으로 한 반 공손파. 호양을 중심으로 한 친 공손파. 그리고 누조를 중심으로 한 중립파들.


센유엔이 셋으로 분열되어 다툴 때였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지에서 황금빛 광채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이건...”


“공손! 공손의 힘이다!”


“공손께서 축복을 내리실 때에 오는 힘이야!”


센유엔 부족원들이 흥분하여 광채를 바라보았다.


“어, 어매 저것이 마을 안에까지 들어오네?”


말 그대로였다. 지금껏 황금빛 힘은 그들이 파온 땅굴을 통해 솟아나곤 했지만, 땅굴이 없는 센유엔 부족 안으론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땅굴뿐이 아닌, 대지 자체에서 빛이 솟아나는 듯, 센유엔의 안쪽까지 황금빛 광채로 뒤덮였다.


인근의 대지가 전부 황금빛 속에 침잠해버린 듯 했다.


그리고, 황금빛 기운이 모여 부족의 상공에 강철의 산을 만들어내었다. 거대한 강철의 산의 허상을 본 부족원들의 얼굴에 희비가 갈렸다.


“초대 공손께서 현인신에 오르셨을 때...”


한 부족원이 중얼거렸다. 모든 부족원들의 뇌리에, 그들이 들어온 신화가 떠올랐다.


“강철산의 수호신이 내려와 그를 축복해 주셨으니...”


저것은 센유엔의 신. 그들의 전설속을 떠돌던, 현인신을 축복하는 상징이었다.

샤오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호양은 잔뜩 밝아졌다. 누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상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강철의 산은 고고히 떠있을 뿐이었다.




우레가람이 남겨둔 열두 창들이 몸을 떨었다.



* * *



쿠드드드드...


최하층 전체가 흔들린다. 동시에, 강철의 산에서 가공할 용맥의 힘이 벽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어두침침했던 최하층이 황금빛 용맥에 의해 곳곳이 밝아졌다.


“드디어... 내 힘을 찾았다...”


공손이 감격한 목소리로 강철산을 향해 다가갔다. 나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섬찟할 정도의 용맥의 권능이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이 용맥 중 공손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


만약 이 무수한 용맥의 줄기가 전부 녀석의 손에 있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우레노을... 대체 이런 힘을 어떻게 이긴 겁니까...!’


새삼 우레노을이 어떤 존재였는지 실감이 난다. 강철의 산에 다가간 공손이 작은 산 위에 손을 얹고 중얼거렸다.


“관리자 권한. 개방.”


파아앗!


황금빛 광채가 지하를 메웠다. 동시에, 녀석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치짓, 파앙!


공손의 손바닥이 강철의 산에서 튕겨져 나왔다. 녀석이 혀를 찼다.


“이런, 죽은 몸으론 온전한 권한은 못 얻는다는 건가... 살아있는 몸으로만 힘을 얻을 수 있다라...”


혀를 차던 공손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동안 녀석과 하나되어 있던 지네의 술체가 놈에게서 분리되어 있었다. 지금껏 공손의 영혼을 담고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공손의 영력 일부만 담긴채 독립적으로 분리된 듯 했다.


“산 육체를 가져와라.”


파바밧!


지네 술체는 그 말을 듣고서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금이다!’


나는 때를 틈타 상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등 뒤의 용맥이 움직이며 황금빛 벽을 만들어냈다.


‘제길...’


온전한 상태였다면 뚫을 수 있을 정도의 벽이었지만, 천둥의 힘을 한껏 소모한 지금으로선 뚫기 힘들었다.

하늘을 마주보는 지상이 아닌, 깊숙한 지하이기 때문에 방전된 힘을 보충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공손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우레가람. 다시 한번 건설적인 대화를 좀 나눠볼까?”


촤르륵...


내가 뚫어놓았던 공손의 시체는 용맥의 힘이 몰려들며 다시 복원되는 중이었다.


“유적의 관리자 권한은 얻지 못했어도, 알고있던 수식으로 준 관리자 권한은 얻었으니, 헛짓거리는 안 했으면 좋겠군. 네가 우레노을 급의 제사장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벗어날 생각은 않는 게 좋을거다.”


“.....”


“그래, 아까 하던 이야기부터 마저 해주지. 원혼들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한 이유는 이미 설명해 주었고, 내가 반얀 족의 용맥마저 얻어야 했던 이유가 궁금했었댔나?”


공손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바닥의 돌조각이 솟아올라 의자와 같은 형상을 취하였다.


‘준 관리자 권한을 얻었다고 했었나, 이곳을 자유자재로 다루는군...’


놈은 이 제단을 유적이라고 했다. 이곳은 대체 무엇인 걸까.

공손이 입을 열었다.


“그거야 사실, 적당히 지어낸 말이다. 반얀족의 용맥따위. 아무 필요도 없었어. 나머지 용맥만으로도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는데에야 충분했고. 자 그럼 반얀족을 침략한 이유가 궁금하겠지? 사실 별 것 없다.”


녀석의 눈빛에 어쩐지 아련한 감정이 서렸다.


“바얏크 그 년이 감히 숲을 만들어서 내가 그 너머로 찾아가기 어렵게 만들어놨거든.”


“숲 너머?”


“그래. 저 너머...”


공손은 그리운 얼굴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넓은머리 부족으로 향하는 길을... 그 년이 막아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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