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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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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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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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부족의 신(23)

DUMMY

“ ‘낮을 바치는 주술’... 이딴 건 누가 대체 왜 만든 겁니까?”


우레노을에게 주술을 배울 때였다.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제사장이 본인의 ‘낮’을 신에게 바치는 주술로, 자신의 낮을 바친 제사장은 영원한 잠에 빠져든다. 눈을 뜨고, 사고(思考)를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신에게 넘기고, 영원한 밤을 지새게 되는 것이다.

이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단 하나.

제사장이 현실에서 늙어 죽어, 그 혼이 귀신굴을 경유해 본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 뿐.

신조차도 이미 바쳐진 낮은 돌려줄 수 없다. 이미 신의 구성요소가 되었으니까.


한 마디로, ‘낮을 바치는 주술’은 혼의 절반을 바치는 주술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제사장이 자신의 영혼 절반을 신에게 떼어준단 말인가?


내가 그 질문을 했을 때, 우레노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쪽 광야에 사는, 어떤 미친놈이 만들었다. 정작 본인도 만들고 나서 안 써봤다 하더구나.”


“...그럼 이걸 대체 왜 가르쳐 주는 겁니까?”


“신에게 낮을 바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낮을 바쳐 신과 하나 되는 것이지. 연구하다 보면 신과 교감하는 법에 대해 심도 있게 알 수 있을게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미치광이나 쓸 주술을, 내가 쓰게 될 것이라는 걸.


소슬바람은 눈을 감았다. 무너지려는 그녀의 영혼은 우레미르의 신력에 의해 안정되어 있었다. 사악한 힘 역시 우레미르와 연결된 소슬바람의 혼을 건드리지 못했다. 소슬바람의 숨소리는 아주 평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않는다.

우레미르에게 혼을 저당잡힌 것과 다름없으니.


“.....”


잠시 소슬바람의 머리칼을 쓰다듬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큰바위를 비롯한, 수많은 부족원들이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제사자의 지팡이를 내리찍으며 외쳤다.


“... 오늘! 우리의 자매가 눈을 감았다! 저 먼 동쪽 끝 주술사의 손에!”


타앙!


다시 한번 지팡이를 찍었다.


“오늘! 큰버루의 전대 족장이 동쪽 끝 주술사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팡이를 찍으며 외쳤다.


“오늘! 족장이 물소가죽을 써야 할 신성한 이 날에! 우리의 많은 관습과 제례가 유린당했다!

하지만 부족원들이여!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은 그대들이 아니다! 우리를 유린한 동쪽 끝의 주술사는 자신의 부족에서 신성시 받으며 배부르게 잘 지낼 것이다! 부족원들이여! 우리가 이 수모를 어떻게 참아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오늘보다 강해져야 한다! 우리는 버루 무리를 손에 넣었고, 수많은 역경을 넘었으며, 위대한 신과 강인한 족장이 있는 부족이다!”


주술을 맺자, 저 멀리 버루산 아래에서 무엇인가가 빠르게 정상을 향해 날아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 제사장 우레가람은 하늘과 땅에 대고 고한다! 새로이 물소가죽을 쓸 자를 도와, 다시는 유린당하지 않을 큰버루를 만들겠다고! 다시는 굴하지 않을 의지를 부족에 흩뿌리리라고!”


촤락!


주술에 의해 날아온 물소가죽을 잡아들었다.


“족장이 될 새로운 세대의 위대한 전사는 앞으로 나오라!”


큰바위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큰버루 부족의 전사 큰바위. 이 자가 족장이 되는 데에 이의가 있는 자는 나오라!”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큰바위는 버루뼈 창을 내려놓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오늘부로, 큰버루의 정식 족장은 큰바위임을 선포하노라!”


타앙!


제사자의 지팡이를 내리찍자, 하늘에서 수십 줄기의 벼락이 내리치며 새 족장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족장 취임식이 끝났다.


* * *


“죄인 우아미니부는 할 말이 있는가?”


버루산을 내려온 우리는 각자 일을 맡았다. 나는 죽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했고, 큰바위는 아직 살아있는 우아미니부의 심문을 시작했다.


나는 시신을 수습한 후 제례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심문 당하는 우아미니부와 큰바위 사이에 섰다.


“이 녀석은 큰버루 어는 잘 할 줄 모르니 내가 통역하지. 말해라, 우아미니부. 네 말은 통역해주마.”


“...감사합니다.”


우아미니부는 자기 부족의 말로 감사를 표했다.


“부족을 어지럽힌 죄는 기꺼이 받겠습니다. 하지만 서슬뱀님은 어떤 죽음을 맞이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우아미니부의 말을 전달했다. 큰바위는 고민하는 듯 하더니 내게 말했다.


“네가 설명해줘, 우레가람.”


“... 동쪽 끝의 악신에게 영혼을 바치고, 소슬바람을 억지로 제사장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한 후 천벌을 받아 죽었다.”


“그렇습니까...”


우아미니부의 얼굴에 허탈한 기색이 감돌았다.


“...본래 서슬뱀께선, 동쪽 끝의 현자에게 힘을 받기 전 항상 그를 의심했습니다. 무언가를 꾸밀지도 모른다 하며 경계하고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힘을 받은 후 무언가 이상한 기색을 보이면 바로 숨을 끊어달라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동쪽 끝의 현자에게 힘을 받은 후, 의심을 하는 기색은 전부 사라졌고, 복수심만을 불태우며 이곳으로 달려오셨습니다.”


우아미니부가 입술을 짓씹었다.


“저는 서슬뱀님의 고결한 영혼을 압니다. 하지만 동쪽 끝의 현자에게서 힘을 받은 후, 그분의 각오가 미묘하게 뒤틀린 것을 얼핏 느꼈습니다. 전에는 큰버루를 향한 복수와, 공정한 심판을 원했습니다만, 그 힘을 받은 후부턴 복수심과 권력욕만을 드러내시더군요. 어쩌면 그 분께선... 동쪽 끝의 현자에게 조종을 당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우아미니부는 흥분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그의 생각을 말했고, 통역 주술이 끊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거짓도 없었다.


“지금 저것이 죄인 서슬뱀이 무고하다는 것이요!?”

“저 녀석도 서슬뱀처럼 산제물로 바쳐야 하외다!”


우아미니부의 말을 전해들은 큰버루의 주술파는 격노했고, 대모파와 족장파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몇몇 족원들은 아예 산제물로 바쳐버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우레미르께 어찌 더러운 죄인의 피를 하루에 둘씩이나 바칠 수 있는가! 이 자는 큰버루의 법도대로 처리하라!”


한 마디로, 족장의 처우에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내 손으로 소슬바람의 낮을 바쳤었던 만큼, 두 번 다시 인신공양 같은 건 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내 말을 들은 큰바위는 담담히 우아미니부를 바라본 후 외쳤다.


“오늘은 이미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하오니 이 녀석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하여도, 그 죄는 마을의 혼란함이 가라앉은 후에 다스릴 것이다!”


큰바위는 직후 우아미니부를 넝쿨로 묶어 그믄굴에 가둬놓게 하였다. 부족의 대부분은 그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피가 흐르는 결정은 후로 미뤄도 될 것이다.


우아미니부의 일마저 해결하자, 나는 정말로 모든 사건이 끝났음을 느꼈다.


“...디딤소리, 다 끝났습니다.”


모든 사건이 끝났으니, 이젠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 때였다.


* * *


타닥, 탁.


디딤소리의 시체가 타들어갔다.

디딤소리뿐이 아니었다. 서슬뱀은 오늘, 그에게 반항했던 자 몇몇을 죽여서 족원들을 공포로 지배하였다.


“그대들의 저항이 있었기에, 큰버루의 정신 역시 남아있습니다.”


화르륵!


지금 불타는 이들은 끝까지 서슬뱀에게 저항한, 신의를 아는 이들이다. 이 죽음은 무겁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술을 써서 불길을 더욱 키우고, 그 연기를 하늘로 올려보낸다.


“하늘뫼로 올라가실 지혜롭고 용맹한 이들이여, 제사장 우레가람은 그대들의 영혼을 기억할 것입니다.”


제사자의 지팡이 끝을 불길 속으로 집어넣었다.

물소가죽을 쓴 큰바위가 옆으로 걸어왔다.


“나 족장 큰바위는 그대들의 용맹을 기억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며, 그는 버루뼈 창대 끝을 불길 속으로 집어넣었다.

정식으로 물소가죽을 쓴 족장은 형식상 제사장의 밑이 아니다.


나와 큰바위가 각기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섰다. 우리의 사이로 억센잎을 비롯한 열 명의 치유자들이 걸어들어왔다.


“우리 치유자 일동은 그대들의 지혜를 기억할 것입니다.”


억센잎이 대표로 약초더미를 불길 속으로 던져넣었다.


오랜 옛날, 큰버루의 장례 풍습은 매장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레노을이 제사장이 되며 수많은 장례풍습이 생겨났고, 죽은 이의 유언에 따라 원하는대로 장례를 치루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갑작스럽게 죽은 이들은 화장으로 장례를 치루는 것이 관습이었다.


제사장인 내 영안에, 불길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웃는 디딤소리의 영혼이 보였다.


그의 영혼은 나를 보며 한 번 웃어주고는, 망설임 없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흩어졌다. 뒤이어 용기있게 저항했던 몇 명의 영혼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마흔 아홉날 동안은... 머무를 수 있는데...”


뭐가 급하다고 벌써 가버린 걸까.

하기야, 큰버루의 사람들은 죽은 후엔 별로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디딤소리마저 완전히 떠난 것을 보자, 가슴이 아렸다.


죽은 자들은 전부 하늘로 가버렸지만, 제례는 하늘이 노을로 물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례가 끝난 후, 나는 내 천막으로 들어가지 않고 귀신굴로 향했다.

새로운 굴막이 바위를 찾아 귀신굴을 막은 후, 안에서 기도를 올렸다.


“가버린 이들은 평안히 쉬고, 남은 이들은 안정을 찾기를...”


누구에게 기도하는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날이 다시 밝아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굴막이 바위를 밀치고 귀신굴을 나가자, 족원 한명이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제사장님, 마침 잘 나오셨습니다.”


“무슨 일이냐, 급한 것이 아니라면 아침은 먹고 하지.”


밤을 샜더니 허기가 졌다. 먹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내 천막 안에서 잠자는 소슬바람에게 들려보아야 한다.

하지만 천막으로 향하려는 내 발걸음은 그대로 멈췄다.


“이건...”


내 의식에 무언가가 잡혔다. 의식이 감지하는 감지영역, 그 안으로 강인한 영력을 가진 존재들이 아홉이나 잡힌다.


큰버루의 족원들이 아니다.

내게 소식을 전하러 온 족원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사장님. 족장께서 빨리 뫼셔오라 하셨습니다.”


이어진 녀석의 말에 나는 큰바위의 천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근 아홉 부족의 모든 지도자들과, 주술사들이 새벽같이 도착하셨습니다.”


“... 분명 어제 아침에 오기로 하지 않았나?”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숨을 들이쉬었다. 지도자들보다는, 같이 왔다는 주술사들의 존재가 신경쓰였다. 다들 하나같이 일반인이 영력을 수련한 정도였지만 왠지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의식을 집중해 감지영역을 자세히 살피자, 어쩐지 익숙한 영력파동이 느껴진다. 소슬바람에게서 느껴지던 영력과 비슷한 영력파동.


익히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넓적머리의 무녀(巫女).


‘소슬바람의 어머니가, 큰버루에 찾아왔다.'


작가의말

오늘 평소보다 좀 늦게 올렸네요.

늘 봐주시고, 댓글 갈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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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 부족의 신(24) +3 21.05.27 502 20 17쪽
» 23. 부족의 신(23) +5 21.05.26 567 20 11쪽
23 22. 부족의 신(22) +6 21.05.25 566 25 19쪽
22 21. 부족의 신(21) +7 21.05.24 592 29 16쪽
21 20. 부족의 신(20) +5 21.05.23 587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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