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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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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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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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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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 만나면요

DUMMY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하고 이동을 하였다. 물론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 일렀다는 것이지 출발이 빠른 것이 절대 아니었다.

‘여알못’의 대명사 헤리오스로 인해 알게 모르게 공주와 카밀레아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마치 공공의 적이 있으면 그 공공의 적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서로 친해지는 것과 같은 것처럼.


마차에 육포도 없고 따로 비상식량도 없어 그저 개울물 한바가지 마시고 출발할 따름이지만 마차가 움직인 것은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른 후 였다.

두 귀족 여인들이 볼일도 해결하고 세안도 하고 머리도 빗고,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치고, 거울을 보고, 머리를 다시 만지고, 거울을 보고, 화장을 보강하고, 거울을 보고...

여기까지 보고 헤리오스는 더 지켜보는 것을 포기했고, 이 귀한 집 딸내미들은 서로서로 도와가며 꾸미느라 시간이 자꾸 늦어졌다.


헤리오스의 불퉁한 표정을 보며 삼공주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게 사실 시녀들이 도와주면 금방 끝나기는 하는데...”


물론 믿지 않았다.


“마차가 흔들리면 화장이 더 어려워서...”


역시 믿지 않았다.

21세기에서도 나오는 유머 아닌가? 여자들이 화장을 하면서 거의 다 되었다고 이야기 하면 기본 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고, 화장은 눈 감고도 할 수 있고, 지하철에서도, 심지어 친구들과 소주에 삼겹살을 구워먹다가도 바로 고치고 점심 이후 두 반 잔 마신 것처럼 연기도 할 수 있지만 아닌 척 하는 것이 여자라는 것을...

그러다 생각이 이어진다.

남자라면?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시다가도 여자가 부르면 또다시 삼겹살에 소주를 무한 흡입 할 수 있는 것이 남자고, 아무리 씻고 다니라고 집에서 난리를 피워도 얼굴에 물 한번 슥 묻히고 모자 눌러쓰면 외출 준비 끝인 남자...


“아... 이런 때에 ‘현타’가...”

“현타가 뭐죠?”

“항상 공자는 알 수 없는 말을 쓰고는 해요.”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 그냥... 생각이 깊어졌네요.”


헤리오스의 말에 공주의 눈이 커졌고, 카밀레아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니요?”


공주의 물음과


“남자가 여자에 대해 생각할 것이 뭐가 있을까요? 예쁘고 집안이 좋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 아닌가요?”

“그... 인간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 생각한 것 뿐입니다만...?”


그 말에 더 이해를 하지 못하는 두 여자.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의 지구의 삶. 무림에서도 힘은 없다고 하지만 평등한 남, 녀의 삶. 그리고 인구가 모자라 노동력이나 군사적인 부분까지 남녀가 함께 책임을 지던 벨로시아 영지의 환경으로 인해 헤리오스의 이야기는 두 여인에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니 당연히 남자의 말대로 행동하는 것이 맞아요. 차이를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맞아요. 그러니 남자는 자신의 소유물을 가꾸고 아름답게 보여 그 권위와 체면을 내보여야 하는 것이고요.”


그 말에 헤리오스는 또 뒷골이 땡겨졌다.


‘여자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남자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귀족가의 여인이라면 이 왕국의 귀족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똑같이 햇빛을 받고, 식사도 같이 하며, 같은 공기로 숨을 쉬고 사는 같은 사람인데,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차이를 둘 필요가 있을까요?”


헤리오스의 말에 공주의 얼굴이 엄숙해지며 말했다.


“물론 다릅니다. 귀족의 피와 평민의 피가 다르듯이 남자와 여자도 다른 것입니다.”


귀족이 자신의 핏줄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같은 아비와 어미의 배에서 나와 남과 여로 나뉜 것 뿐인데 아쉽지 않아요?”


이번에는 카밀레아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같을 수도 없잖아요. 작위는 남자의 것. 여자는 그 핏줄을 잇기 위한 중간 매개체일 뿐이에요.”


그 대답을 하는 사람의 모습에 자신감이나 신념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배우고 익혀온 대로 힘없이 순응하며 대답하는 것이 빤히 보인다.


“바꿔볼 생각 없으세요?”

“바꾸다니요?”


이제야 관심을 보이는 카밀레아.


“여자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제가 무슨...”


헤리오스의 말에 삼공주도 조용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제가 보고 판단을 내린 여자는 별로 없지만, 일단 저 밖에 있는 키사경은 누구보다 뛰어난 검술의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키사경이 어느 정도 경지를 이룬다면 그녀의 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왕국에 몇 되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지금도 그녀는 우리 기사단에서 매우 강한 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검술을 저희가 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은 키사경의 재능 때문에 그리 느끼신 것이겠지요.”


삼공주의 반박에 헤리오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제가 두 번째로 재능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공주님입니다. 저번에 그 행정관의 서류를 그렇게 훓어보시고 문제점을 바로 찾아내셨죠? 보통은 그런 일 아무나 못합니다.”

“그야 전 귀족이고 글자를 읽을 줄 아니까...”

“아뇨. 글자를 그냥 글자로 보는 사람과 글자를 보고 세상의 흐름과 돈의 흐름. 잘못 흐르는 것을 파악하는 전체를 파악하는 눈을 가진 사람은 그 능력 자체로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파악하는...”


자신에 대한 칭찬이 기대보다 컸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재능이 있다는 것이 기쁜 것인지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가 가슴이 펴지는 공주.


“그럼 저는 어떤 재능이 있나요?”

“네?”

“저의 재능을 말해줄 차례잖아요.”

“제가 왜?”

“어머? 저는 재능이 없다는 이야긴가요?”

“제가 어떻게 압니까?”

“공주님은 알잖아요.”

“공주님은 보여주셨으니까요.”

“저는요?”

“저에게 뭘 보여주셨는지 생각 해보시죠?”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는 카밀레아. 생각해보니 정말 못보일 꼴만 보였다.


“유혹하고 말테야!”

“네. 다음 생에 만나면요.”

“흥!”


그렇게 떠들며 마차는 어느 덧 해안가의 길을 달리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파란 바다의 풍경. 그리고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나무와 풀이 해풍을 맞으며 기울어져 비뚤비뚤하게 서 있고, 저 멀리 작은 배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의 모습도 보인다.


“저기 어부가 있으니 마을이 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작은 마을에 마차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나왔다가 왕실 마차의 문양을 보고 행정관과 촌장이 바짝 엎드리고,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을로 들어온 마차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이윽고 마무석에서 내린 제이크와 키사가 마차문을 열자 헤리오스가 먼저 내리고, 뒤 이어 내리는 공주와 카밀레아를 에스코트 해주었다.


“흠... 여기가 국왕령의 드루앙 마을이 맞나?”


헤리오스는 바다를 보며 말을 했고, 대답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엎드린 촌장의 입에서 나왔다.


“예! 예! 제가 이 마을의 촌장입니다.”

“그래... 며칠 이 곳에서 머물겠다. 공관이 어디지?”


이번에 튀어나온 사람은 더벅머리에 작은 키의 사내였다. 앞니 두 개가 덧니로 나있어 얼핏보면 비버처럼 보이기도했다.

이 작고 왜소하고 덧니 두 개의 검게 그을린 얼굴의 사내가 말한다.


“제가 이 마을의 행정관 베이버입니다.”

“좋아. 여기 공주님도 계시니 잠시 후 공관으로 가 묵을 것이다. 제대로 해놓도록.”

“네! 정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물론이다.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넌 내일부터 행정관이 아니라 어부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혀가 없는 놈은 행정관을 하지 못할 테니...”

“...?!”


헤리오스의 협박에 베이버의 눈이 부릅떠졌다.


“전 이 나라의 왕의 명령을...”

“바꿔달라고 하면 돼. 여기 공주님도 계시니까.”

“...예.”

“잘 해라. 저번 영지 행정관 놈도 공주님께서 직접 감옥에 쳐 넣으셨으니까.”


후다닥!


협박이 제대로 통했는지 행정관의 발소리가 바쁘게 들렸다. 행정관의 허둥대는 모습이 마을사람들에는 더욱 공포스럽게 보였는지 어쨌는지 땅에 이마를 박은 채 누구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촌장. 마을 구경 좀 하지. 여기 특산품이 뭐야?”


촌장을 일으켜 세우고 두 귀족 여인들과 함께 마을의 여기 저기를 천천히 걸으며 안내받았다.


“오! 이런 생선은 처음인데? 이대로 구워먹어도 좋겠어.”


바닥에 널어 말리고 있는 생선을 보며 헤리오스가 관심을 보이자 촌장은 공주보다 헤리오스가 이번 일행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옆에 붙어 이것 저것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 생선은 이 해안 근처에서 그물로만 잡는 것인데...”

“오오! 그렇지! 생선은 크기도 중요하지만 그 식감이 특이한 것이 더 끌리지.”


참 재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헤리오스와 촌장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는 두 귀족 여인들.

평민들 앞에서 남자에게 따지거나 대가 센 모습을 보일 수 없어 헤리오스의 뒤를 따르지만 슬슬 다리도 아파오고 배도 고파지는 일행에게 헤리오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귀에 팍 꽂힌다.


“이런 생선요리를 먹는다면 정말 즐겁겠군.”

“그럼 오늘 저녁에 이 요리를...”


그리고 헤리오스가 살짝 돌린 미소띤 얼굴에서 한쪽 눈이 찡긋인다.


“이런 생선은 바다를 보며 바닷바람과 함께 먹어야 그 풍미가 살 것 같군. 가끔은 귀족적인 예의를 잠시 벗고 이렇게 자연과 함께 자연을 느끼는 것도 좋지. 촌장의 생각은?”

“역시! 무언가를 아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행은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구워주는 생선 직화 구이를 맛볼 수 있었다.


“과연! 바다를 아는 사람들이 바다 요리를 하니 정말 뛰어나군.”


배고파서 다 맛있는 거였다.


“이런 생선 요리는 정말 처음이에요.”


카밀레아도 한 마디 했다. 뭐 그녀의 영지는 내륙이니 당연히 바다 생선은 처음인 것도 사실이고...


“이런 풍미도 나쁘지 않군요.”


역시 배고프니 이렇게 먹어도 좋다는 소리였다.


와구와구...


키사와 제이크는 그냥 잘 먹었다.

배도 차오르고 바다 바람에 기분도 좋아질 무렵 해안 한쪽 언덕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 눈에 들어왔다.


“호오... 저런 곳에 집이 있다니 저 곳에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운치가 있군.”

“아... 저기는...”

“왜? 문제가 있나?”

“그... 얼마 전 배를 타고 나갔다가 폭풍우로 지금은 빈집이 되었습니다.”


폭풍은 어부들에게는 어려움이자 위험이고, 이 폭풍은 21세기 지구에서도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쯧... 괜한 것을 물었군.”

“아닙니다요.”

“그래도 이따 한번 가서 경치는 봐야지...”

“그게...”

“또 뭐지?”

“아니... 그게 그... 저 집은...”

“집은...?”

“귀신이 나온다고...”


귀신이라는 말에 촌장을 째려보는 공주와 카밀레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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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전쟁은 돈지랄이야 +3 22.03.12 561 16 15쪽
144 남기면 평생을 먹게 될지도 몰라 +3 22.03.09 586 18 11쪽
143 초대를 거절했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야 +3 22.03.09 525 15 10쪽
142 증명해 봐 +3 22.03.09 557 16 11쪽
141 깨끗이 금방 씻고 올라갈게 +3 22.02.01 905 26 12쪽
140 그 놈 머리 좀 가져와 +4 22.01.29 842 26 11쪽
139 제이크는 왜 +3 22.01.23 1,017 30 11쪽
138 어딜 가 +4 22.01.15 994 34 12쪽
137 그냥 여기다 묻고 갈까 +4 22.01.11 1,018 30 13쪽
136 니들... 미쳤냐 +3 22.01.09 1,039 32 11쪽
135 이제부터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야 +3 22.01.09 1,012 29 10쪽
134 해주시겠어요 +3 22.01.04 1,134 33 9쪽
133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 +3 21.12.31 1,136 34 12쪽
132 마음이 약하신 것 같단 말이야 +3 21.12.29 1,231 3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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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2 21.12.25 1,346 36 11쪽
129 저게 왜 저기에 있는건데 +3 21.12.25 1,292 33 15쪽
128 병신인가 보죠 +4 21.12.12 1,516 35 13쪽
127 저 너머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3 21.12.05 1,586 35 12쪽
126 그럴 듯 하군 +3 21.12.04 1,505 30 9쪽
125 우리의 기회는 끝났지 +3 21.12.01 1,639 38 10쪽
124 깜빡하고 말하는 것을 잊었네요 +3 21.11.28 1,688 41 10쪽
123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3 21.11.28 1,610 36 11쪽
122 적을 더 피로하게 만들어라 +4 21.11.22 1,703 40 8쪽
121 저들은 절대 꿈을 꿀 수 없다 +3 21.11.20 1,755 40 10쪽
120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이 맞는 것 같다 +3 21.11.20 1,682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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