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나도 안심하고 일을 벌일 수 있겠어
“후퍼의 솜씨가 많이 늘었구나.”
넓은 식당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후퍼도 많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헤리오스의 칭찬에도 공작의 뒤에 서 있는 후퍼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뭐 헤리오스가 그렇게 갈구는데 노력이 아니라 노력 할아버지를 하더라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예전에 넓은 식당에 단 세 명만이 앉아서 침울하게 하던 식사가 지금은 그 수가 배로 늘었다.
공작성의 부부와 헤리오스. 그리고 라이비아 삼공주와 카밀레아. 항상 즐거운 얼굴의 클라라. 식탁 아래에는 클라라와 떨어지지 않고 항상 같이 있는 늑대 세 마리도.
“이제 여기도 제법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나서 좋구나.”
뿌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은 공작. 그런 공작의 표정을 보고 헤리오스가 찬물을 끼얹는다.
“그런데 조만간 또 나가보려고요.”
“뭣?”
헤리오스의 말에 얼른 임신한 부인의 눈치를 본 공작이 헤리오스를 말린다.
“네 엄마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출산 이후에 가는 것이 어떻겠니?”
“뭐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영지의 겨울이 끝나고 곧 봄이 오면 파종도 해야 하고, 겨울동안 잠잠했던 맹수들과 괴물들이 나올 지도 모르니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정론에 반박을 하려던 공작은 슬쩍 공작부인을 바라보던 얼굴을 돌려 헤리오스를 향하게 하고 물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겠다는 거냐? 수도? 아니면 중부귀족 중에 한 명?”
“고대의 숲이요.”
“그래... 뭐?”
또 다시 나온 고대의 숲. 엘프의 숲이라고도 하고 저주의 숲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매우 오래되고 매우 험한 그 숲.
“또... 소금을 어쩌고 하면서 갈 생각이면 그만 두는 것이...”
“아... 그게... 소금을 얻는 수는 있는데 그 방법을 생각해봐야 겠어요.”
전생의 기억에서 헤리오스는 염전을 견학간 적이 있었기에 단순히 바닷물을 끌어 말리고 가루를 삽으로 퍼서 곱게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전생의 기억에서는 바다에서 나오는 소금에서 독을 추출하여 상대에게 손을 쓰고는 했다. 심지어 그 독은 사람의 상처에 닿으면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헤리오스는 쉽게 소금을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뭐 잠시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소금은 염화나트륨 외에 염화칼슘과 염화칼륨 같은 것도 소량 있으니까...’
나름 학창시절 공부했던 것이 생각 난 헤리오스. 그래서 과감히 소금에 대한 것은 미루기로 했다. 뭐 지금은 서부에서 준 소금이 잔뜩 있으니 소금으로 걱정할 필요도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그럼 한 번 들어보세요. 라이비아 공주님께서 정리한 영지 현황을 보면 중부귀족이 우리에게 주고 간 식량과 무기 갑옷으로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기사들에게도 장비를 보강했더니 확실히 전투력이 올랐어요. 지금도 토벌을 하러 기사단장과 경비대가 움직이고 있다고요.”
“그건 보고를 받아 알고 있다.”
“식량도 마찬가지에요. 중부귀족영지에서 이동하던 식량을 우리가 되찾아 영지민들에게 배분해서 상당수의 영지민들이 굶어죽는 일이 거의 없고, 내년 봄에 농사를 지을 인원도 상당하다고 해요.”
“그 역시 알고 있다.”
“몇 개월 동안 영지군과 기사단의 예비대의 인원들은 제이크경과 키사경이 훈련을 시켜서 치안도 기강도 확실히 잡혔고요.”
“너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중부 귀족이 준 금화와 각종 보상금으로 이주민들의 집을 짓거나 개간하는데 필요한 농기구들도 충분하고요.”
“그래... 동쪽의 개척지에도 보급을 하고 있지.”
“그러니까 제가 고대의 숲을 한 번 뚫어볼게요.”
“아! 왜?”
그러자 조용히 식사를 하던 라이비아가 입을 열었다.
“말씀 중 잠시 제가 대화에 끼어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공주님.”
“지금까지 영지의 재정상태가 극히 나쁘다가 이번 중부귀족들의 실책을 이용해 상당한 재화가 들어왔지만 지속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저에게 소식을 알려주는 이가 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서부와 중부의 사이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추후 한 번이라도 흉년이 들 경우 왕국 전체에 많은 아사자가 나올 것입니다.”
“흐음... 하지만 꼭 흉년이...”
“서부에서 중부에 군사행동을 취할 경우 다음 농사의 수확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또한 국왕령에서 나는 소출을 왕께서 여기에 지원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여기서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흐음...”
이번에는 카밀레아가 말했다.
“서부의 힘은 자유민들의 상업활동입니다. 하지만 식량이 부족하다면 생산활동도 위축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자유민들은 식량을 찾아 움직일 것이고, 서부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을 얻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쟈이네크 후작의 성정을 바탕으로 생각한 경우이지만 가능성이 높은 상황 중 하나입니다.”
“결국 식량을 수급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건가?”
공작의 물음에 헤리오스가 대답했다.
“올해에 파종을 하고 밀과 각종 곡식을 심는다고 해도 수확이 제대로 된다면 다행이지만 처음 농사를 짓는 땅이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고, 잘못 될 경우도 대비해서 여러 가능성을 찾으려는 거에요.”
그 대답에 말없이 지켜보던 공작부인이 헤리오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왜 고대의 숲이니? 그곳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돌아온 이가 아무도 없어.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어떠니?”
이번에는 라이비아 공주가 말했다.
“아까 헤리오스 공자가 말했듯이 방법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다른 방법도 함께 진행이 되어야 겠지요.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제가 잠시 남쪽으로 가 후크 백작령과 팔미크 백작령을 다녀오는 것입니다.”
“방법이 또 있습니까?”
“네. 제가 중부귀족의 영지로 가 서부의 위협에 지원을 해준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문서를 받아올 생각입니다.”
카밀레아의 말까지 들은 공작은 살짝 무안해졌다.
“험! 확실히...”
“아버지. 아무리 태어날 동생이 좋다고 하지만 저에게 너무 미뤄놓은게 맞아요. 이번 이야기도 식사시간이 아니면 두 분만 침실에서 서로 배를 쓰담쓰담하면서 그렇게 지나치게 사이가 좋으니 가신들이 들어가지도 못한다고요.”
“험험!”
“어머... 여기 먼지가...”
무안해진 부부는 잠시 딴짓을 한다.
“동생 태어나면 그 때 듬뿍 사랑해주시고, 동생 태어나기 전까지 돌아올게요. 이번에는 고대의 숲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거기를 개발을 할지, 엘프들이 있어 그들과 교류를 할지, 아니면 적대적이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할지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알겠다.”
“저 역시 남쪽을 다녀와야 하니 행정업무를 다시 공작님께 전달해드리도록 하지요. 시간을 내주신다면 빨리 전달해드리고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려고 합니다.”
“마찬가지에요. 그 동안 행정관들의 이동과 업무보고서는 대략 정리해서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어요. 그러니 공작님께서 업무에 복귀하시는 즉시 저는 중부귀족의 영지로 향해 그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교섭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공작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배도 더부룩해지는 것이 소화가 잘 안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헤리오스를 보니 헤리오스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편안하게 식사를 하며 공작의 시선을 외면했다.
“여보... 힘내세요. 뱃 속의 아이도 당신이 잘 할거라 믿고 응원할 거에요.”
그간 아들을 믿고 영지의 모든 업무를 헤리오스에게 맡겨 상당히 편했던 공작의 반들반들 해진 얼굴에 그늘이 졌다.
다음 날 헤리오스는 떠나기 전 영지의 병력 점검에 들어갔다. 헤리오스를 수행하는 두 기사 제이크와 키사는 어느 덧 그 기도가 상당해서 둘은 기세만으로도 어지간한 병사들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그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무기의 상태는 좋네. 대장간에서 잘하고 있어.”
검열을 받는 병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윽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유! 격! 유! 격!”
“누가 제일 보고 싶습니까? 큰 소리로 외치고 뛰어 내립니다.”
“어머니!”
헤리오스에게는 왠지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헤리오스가 특별히 제작한 빨간 모자를 쓰고 눈에는 어렵게 만든 검은 색의 얇은 천으로 만든 안대를 쓴 교관들이 허리에 손을 얻고 당당한 자세로 서서 병사들의 훈련하는 모습을 감시하고 있다.
“준비된 사로부터 다섯 발 연속해서 발사!”
“발사!”
한 쪽 사격장에서는 화살을 발사하는 병사들의 모습도 보였고, 또 다른 곳에서는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며 목표를 향해 입에 칼을 물고 돌진하는 각개 전투훈련 및 여러 시설에서 뛰거나 달려가고, 기어가는 여러 훈련을 동반한 유.격.체.조를 하며 악!악!거리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훈련장을 가득 메웠다.
“훈련은 충분히 진행되고 있는건가?”
헤리오스의 말에 영지군 대장은 헤벌쭉 해진 얼굴로 대답한다.
“확실히 병사들의 전반적인 체력과 전투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이런 훈련은... 정말 놀라워... 말이 안나올 정도입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겨 기사단을 향해 갔다.
“여기가 왕국의 중부귀족들의 세력이고, 이쪽이 서부의 세력이다. 그리고 이쪽이 우리 영지가 있는 곳으로 각 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이용하여 침투 및...”
칠판에 그림과 글을 적으며 수업을 하는 부기사단장과 갑옷을 입고 수업을 듣는 기사들. 그리고 그 기사들 뒤에서 조는 사람의 뒷통수를 대나무 막대기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제시.
“응? 제시?”
붉은 머리의 제시는 헤리오스의 전속 시녀로 일전에 이왕자의 유인작전에 큰 공을 세운 아이였다.
“저번 작전 이후 기사단의 마스코트라고 하셨던가요? 그런 것이 되어 기사단의 훈련에 저런 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매니저인가?”
“예?”
“그러니까 기사단의 일정을 미리 조율하고, 컨디션에 따라 그 훈련의 난이도를 조절하거나 하는 일종의 관리자라고 할까?”
“음... 지금 하는 일과 거의 일치합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넓은 공터에서 서로 검을 휘두르며 죽일 듯이 편을 갈라 싸우는 기사들이 보였다. 물론 손에 든 검은 날이 서 있지 않은 연습용 검이지만 서로 싸우는 기세만큼은 실전 못지 않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석궁을 쏘고 있는 무리까지.
“좋아. 이 정도면 나도 안심하고 일을 벌일 수 있겠어.”
헤리오스의 말에 떨떠름해진 부기사단장의 얼굴과 무표정하지만 무언가 기대하는 키사와 제이크의 눈빛이 헤리오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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