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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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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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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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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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 아게르

DUMMY

펜나가 화살과 같은 속도로 달려듦에도 벨가는 여유 있게 혈마법을 전개하는 데 열중했다.


“아아, 신의 의지가 느껴진다. 세 명이 곧 그 곁으로 갈지어니···!”


밑에 쌓인 수십 구의 시체에서 뽑혀 나오는 혈액이 혈마법을 강화한다.


“순교자의 고귀한 혈액이 너희를 단죄하리라!”


십자회를 믿는 놈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빠져있다.


일리야는 예쁘기라도 하지.


나는 벨가 주변으로 흑마력을 흩뿌렸다.


촤라락!

스스-


의지를 가진 채 벨가의 주변을 부유하던 붉은 액체가 균열을 맞이한다.


위험성을 깨닫고 경로를 바꾸지만, 한번 반경에 든 혈마법은 균열 속으로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간다.


순식간에 생긴 수십 개의 균열.


사방에서 빨아들이는 인력이 벨가 본신의 마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무슨 사악한!”

“남의 피 뽑아다 쓰는 새끼가 사악함을 운운하네.”


혈마법이 사방으로 흩어진 타이밍을 캐치한 펜나의 직검이 번개같이 벨가의 목으로 짓쳐 들었다.


마력 칼날을 한데 모아 강도와 위력을 증가시키는 대인 전용 기술.


직검 위를 감싼 수천 개의 깃털이 잘게 진동한다.


“이크!”


피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다급히 주먹을 뻗는 벨가.


쾅!


충돌의 여파로 주변의 시체가 사방으로 날아간다.


“사도 목이면 진급 확정이지!”


마치 물결치는 것처럼 보이는 직검을 연달아 휘두르는 펜나.


연신 주먹으로 걷어내던 굳은 표정의 벨가가 별안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제법 매섭군.”


사도 전용 로브에 부여된 체공으로 멈춰서 동력실을 내려다본다.


교리에 적혀있기라도 한 건지, 십자회 놈들은 곧 죽어도 허세를 부리기를 멈추질 않는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또 헛소리를 찍찍 뱉을 게 뻔해, 나는 펜나의 발밑에서 백마력을 터트렸다.


“우왓!”


갑작스런 반동에 잠시 주춤하다가도 곧잘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른다.


캉!


대처를 못한 벨가의 정강이와 검이 맞부딪힌다.


동시에 낙하하는 둘. 그 잠깐 사이에도 수차례 합이 오고 간다.


이미 동력실 중앙의 키메라는 곤죽이 되어 빛을 잃은 상태.


마력으로 극대화된 신체를 가진 이들의 전투는 주변 환경을 이리도 쉽게 초토화 시킨다.


쾅쾅! 캉!


도약에 쿨타임이 있는지 지상에서 연신 펜나의 검을 막아내는 벨가.


나는 그녀가 시선을 끌고 있는 사이, 동력실 바닥에 흥건히 뿌려진 혈액을 지우는 데 주력했다.


“의미 없는 전투···.”

“으라쌰!”

“검을 거두고 잠시···.”

“호얏!”

“말 좀 하자! 이 빌어먹을 요원년아!”


텅!


붉은빛 파동에 튕겨져 나온 펜나가 날랜 고양이처럼 내 곁에 착지했다.


반투명한 보호막을 두른 벨가는 흥분으로 얼굴이 벌게진 상태였다.


“이런 낭만 없는 배교자들 같으니라고! 신념과 정의를 나누던 옛 기사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자신의 피까지 뽑아내 다시 혈마법을 펼친 중년 남성이 소로 주아르가 좋아할 만한 투정을 부렸다.


백양구원십자회는 기본적으로 이상주의자들의 모임이다.


신정왕국의 관습과 법률을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이고, 이에서 벗어난 것들을 비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즉, 자신들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 집단이고, 전투에는 반드시 신념의 충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멍청이들이다.


“지랄도 정도 것이지.”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구보다 십자회를 싫어하는 펜나가 침을 뱉고 다시 달려들었다.


나는 벨가의 혈마법과 이동을 제한하는 데 중점을 두고 흑마력을 운용했다.


“이익! 이 귀찮은 균열은 뭐냐!”

“신이 네게 하는 손짓이다. 그러니까 곱게 따라가라.”

“아직 신을 뵈러 갈 때가 아니다!”


신나게 입을 놀리는 것과 반대로 벨가는 연신 수세에 몰려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순조로운 상황. 나는 신중히 흑마력을 압축했다.


성녀의 이름 하에 뭉친 십자회는 4명의 제사장과 13명의 사도가 각국과 연방에 점조직처럼 흩어져 순교자들을 이끈다.


각 국가에 제사장과 3명의 사도가 퍼져 있음을 생각하면 벨가가 제도를 담당하는 책임자일 확률이 높다.


여기서 죽여놓으면 앞으로 제도에서 일어날 소란을 반으로 줄여놓을 수 있다는 뜻.


펜나가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사도 벨가에게 치명적인 일격이 되도록.


직검이 목을 칠 찰나의 틈만 만들면 된다는 일념으로 압축한 마력을 전방으로 던졌다.


“뭐야!”


콩알만한 백마력으로 펜나 뒤통수를 때려 정신을 환기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곧 큰 거 온다.”


스스슷-


잠시 주춤한 펜나를 따돌리고 멀리 떨어진 벨가가 숨을 고르는 모습이 보인다.


피곤으로 얼룩진 얼굴 위로 자가수혈 혈마법의 부작용인 핏줄이 두드러진 가운데.


지잉-


그의 머리 위 1미터. 입체회로를 소형화시킨 폭탄이 빅뱅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순간적인 진공 상태가 형성되며 동력실 안에 돌풍이 불고, 먼지와 살점 파편이 흩날린다.


나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펜나를 당겨왔다.


“콜록콜록! 대체 뭘 한 거예요?”

“지원사격.”


상격의 마스터인 샬리 슈발리에도 막는데 고역을 면치 못한 폭발이다.


중간 보스 말단에도 끼지 못할 전투력을 지닌 사도가 막아내기는 요원하리라.


“꼴이 말이 아니군.”

“웩, 타이밍 한 번 절묘하구만. 꼭 지켜보고 있던 것처럼.”

“오해다, 광신도.”


청광이 퍼지며 시야를 가린 먼지구름을 지운다.


팔 한쪽이 날아간 채 피를 토하는 벨가, 그 옆에 우묵히 서 있는 거구의 반나체 사내.


나는 검은색으로 물든 그의 눈자위를 보고 곧장 예열해둔 마력을 거뒀다.


연방엔 다양한 불순 세력이 존재한다.


그 중 백양구원십자회가 퀘스트 주는 호구 취급을 받는다면, 저 어둠에 물든 외형이 특징인 싸이오닉 써클은 진정한 빌런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마력이 아니라 인페스티스의 싸이오닉 에너지를 사용하는 써클의 일원은 십자회의 사도 따위는 한 트럭을 데리고 와도 짓밟을 수 있는 전투력을 자랑한다.


지금 싸우면, 필패다.


어째서 두 집단이 합작하고 있는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 일단 도망쳐야 한다.


“늦게 온 탓에 모아둔 제물이 전부 산화했다! 빌어먹을 깜댕이 녀석아!”

“목숨을 구한 대가라 생각하라. 제물은 다시 모으면 되지 않겠나?”


오직 검은자뿐인 한 쌍의 눈이 이쪽을 향한다.


“마침 질 좋은 제물이 셋이나 기어 들어왔으니, 복구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싸이오닉 에너지의 전조인 자색 기운의 방출에 나는 다급히 펜나를 불렀다.


“펜나, 내가 시간을 끌 테니 검안(劍眼)을 펼쳐라!”

“당신, 어떻게 내 이름을···.”

“시간 없어! 빨리!”


허공에 생성된 싸이오닉 창에 나는 이를 악물고 고농축의 흑마력을 다수 떼어내 전방에 투척했다.


스스-

치지지지직!


미쳐 균열로 변하지 못한 몇 개의 흑마력이 창에 관통당해 분해된다.


연방이 인페스티스를 몰아내지 못하는 이유. 싸이오닉 에너지는 마력의 극상성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샬리의 창과는 다른 의미로 뚫고 들어오는 싸이오닉 창.


나는 뒤로 물러나며 전방에 균열을 열었다.


다행히 흑마력으로 형성된 균열은 싸이오닉 에너지 또한 빨아들였다.


시간을 버는 정도는 가능해진 셈. 나는 개수를 불려나가는 싸이오닉 창을 막아내며 뒤를 힐끗 확인했다.


혼란에 빠진 건지, 판단이 서질 않는 건지 여전히 검안을 전개하지 않고 있는 펜나.


“사도까지 합세하면 진짜 가망 없어진다고!”

“아이씨, 당신! 나중에 두고 봐요!”


로브 모자를 걷는 펜나. 내 은빛 머리카락보다 조금 탁한 쇳빛 홍채, 그 사이 동공이 좁게 변하며 검 모양을 이룬다.


“톨먼! 곁으로!”


전투가 일어난 시점부터 모종의 수단으로 숨어있던 작은 키의 요원이 펜나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스스스스스-

챙! 챙!


한두 개씩 쏟아지던 창이 이제는 수백 개에 이르렀다.


샬리처럼 압도적인 힘이 아닌 압도적인 물량으로 균열을 찢고 들어오는 상황.


나는 필사의 집중으로 창을 막아내는 데 주력했다.


전에 없던 양과 속도로 마력을 펼치느라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다.


턱밑이 불쾌한 게 코나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을 테지.


그나마 수업으로 세밀한 컨트롤을 연습한 덕분에 백마력의 소모를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전이었다면 진즉에 흑마력의 통제를 잃고 폭사했을 것이다.


챠랑!


뒤에서 금속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검안의 전개를 알리는 시동음이었다.


“그다음은 어떻게 하라고요!”

“무너뜨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그래서 붕괴를 택했다.


“하앗!”


펜나의 직검에 머무르던 마력의 칼날이 분열되어 그녀의 곁에 선다.


제국의 검술 가문 사사투스의 혈통만이 갖는다는 검안. 그 효과는 마력 검의 선택적 아스트랄화.


그녀의 의지에 따라 수천의 마력 칼날이 실체와 허구를 넘나들며 원하는 목표만 베어낸다.


“진짜 무너뜨려요?!”

“죽기 싫으면 해!”


이제는 숫제 동력실 전체가 보랏빛으로 물든 걸 본 펜나가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지시를 따르는 수천의 칼날이 천장과 옆을 뚫고 지나간다.


카르르륵!

두두두두!


곧이어 드릴이 암석을 파고드는 듯한 굉음이 천둥소리처럼 동굴 내에 공명한다.


쩌적-!


금이 가는 천장.


평온한 태도로 싸이오닉을 운용하던 써클 회원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알량한 수작을 부리는구나!”


공세가 더욱 격해진다. 이미 한계에 달한 상태에서 나는 흑마력을 점검했다.


이미 샬리와의 전투에서보다 많은 흑마력을 운용했다.


아무리 바다와 같은 양이어도 이 정도 덜어냈으면 변화가 있는 법.


밀도가 줄어들며 단전에서 벗어나 가슴과 허벅지까지 팽창했다.


심장에 있는 백마력과 겨우 종이 한 장 차이까지 다가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쿨럭!”


아까부터 가슴 어림에서 계속 통증이 느껴지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챙!


또 하나의 균열이 깨진다. 나는 관조를 멈추고 다급히 마력을 던졌다.


“아!”


나는 탄식했다. 중요한 순간에 실수로 둘이 뒤엉킨 쪽의 마력을 던져버렸다.


시넬의 눈으로 보이는 회색빛의 마력이 쏜살같이 날아가 싸이오닉 창과 맞부딪힌다.


스스-


힘없이 부서지리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싸이오닉 창이 마치 균열에 닿은 듯 사라진다.


퍽!


나는 끝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배 한가운데 보랏빛으로 작렬하는 싸이오닉 창이 꽂힌 탓이었다.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콰르릉!


지지가 약해진 지반이 무너진다.


싸이오닉 에너지의 방해를 뚫느라 과도한 심력을 소모한 펜나가 주변을 파악했다.


이미 괴한과는 무너진 천장으로 이격된 상태. 이제 떨어져 내리는 수천 톤의 무게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펜나는 검을 거둬들여 주변을 보호하는 결계로 바꿨다.


“이봐요! 일단 무너뜨리긴 했는데···!”


한숨 돌리던 펜나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아게르를 발견하곤 급히 달려갔다.


그 옆엔 이미 톨먼이 붙어 포션을 들이붓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마지막에 창을 맞았어요. 마력 탈진 증세도 심하고.”


마력으로 싸이오닉을 상대할 때의 교환비를 고려하면 혼자 창의 폭풍을 막아낸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의 말을 듣고 바로 검안을 전개했다면.


펜나는 후회했다.


“침식은 멈춘 상태인데, 얼마 못 갈 거예요.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톨먼의 진단에 펜나는 곧장 마력을 풀고 칼날의 태세를 바꿨다.


목표는 지상. 햇빛이 보일 때까지 뚫고 올라간다.


톨먼이 아게르를 업은 걸 확인한 뒤, 펜나는 높은 경사를 유지한 채 지반을 뚫고 전진했다.


카르르륵!


앞의 암석을 분쇄하며 동시에 뒤로 밀어내는 일련의 작업을 치르길 1시간째.


지나친 마력 소모로 동공이 풀렸다 조이길 반복하던 펜나의 앞에 다른 암석보다 단단한 무언가가 드러났다.


“벽이에요!”


지하 건축물. 그 너머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펜나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검날을 집중했다.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통로만 뚫으면 된다.


쿠쿠쿠쿠쿠!


무슨 합금을 덧댔는지 강도가 성벽에 버금간다.


직접 직검을 들고 파내기까지 하고 나서야, 겨우 틈이 생기며 빛과 공기가 들어선다.


“아.”


결국 마력이 고갈되어 검안이 풀렸다.


다행히 사람 한 명 기어서 나갈 정도는 되는 구멍이 뚫린 상황.


펜나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그 구멍 바깥으로 탈출했다.


“꼼짝 마!”


그녀를 반기는 건, 연방은행의 가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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