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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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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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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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트 시

DUMMY

인간의 성질과 짐승으로서의 성질이 섞여있는, 수형 종족들은 예로부터 괴물로 분류되곤 했다.

가장 흔히 알려진 웨어울프 역시 그렇게 분류되었고, 오래 전 멸종했다 알려진 반인반마의 현인 종족 켄타우로스 역시 악명높은 괴물이었으니까.


그러나 요정족들 중에도 엘프와 같은 예외가 있듯,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기야 본디부터 괴물과 이종족의 분류 자체가 인간에 의해 이뤄진 것이니만큼 기준은 언제나 제멋대로였지만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캐트 시라 불리는 종족이었다. 이름에서부터 나와 있듯, 고양이 과의 종족을 일컫는 말이다.


오래토록 인간의 곁에서 살아왔으며, 그렇기에 괴물로 분류할 수 없는 종족.


계산이 빠르고, 귀찮은 일들을 싫어하며, 그렇기에 늘 숨어 지내는 그들.


"스승님!"


암흑가의 소년 잭이 소리를 질렀다. 웨엥하는 앙칼진 소리와 함께 골목길을 어슬렁이던 고양이들이 뿔뿔히 흩어졌다.

재빠르게 뛰쳐나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에 놀랄 법도 하건만, 잭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한 모습이다.

그는 그저 그 중앙에서 털을 고르는 한 치즈색 고양이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메리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채 주위를 살폈다. 잭과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여전히 낯선 광경이었던 탓이다.


"스승님!"


잭이 다시 한 번 고양이를 향해 소리쳤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그의 말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누가 보면 잭이 미쳤다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말 못하는 고양이를 향해 저리도 절실히 소리치는 일은 한 때 고양이었던 룽겔에게조차 꺼려지는 일이었을 테니까.


허나 만약 당신이 캐트 시를 안다면, 그들이 어떤 종족인지를 안다면 필시 그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평범한 고양이와의 차이점을 찾으려 해도 무엇이 다른 지조차 알 수 없을 그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나 인간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고, 오히려 그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여금 신성시되기도 하였다.

지독한 오만함 끝에 멸종해버린 켄타우로스들과는 정반대의 길인 셈이다.


"..귀찮구나 꼬마야"


한참이나 딴청을 부리던 캐트 시, 샤트라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청아한 울림이 느껴지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룽겔이 그 그립기까지 한 기시감에 혼란을 느낄 정도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다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 했을 텐데"

"스승님!"

"그런 호칭은 그만해. 내가 왜 너의 스승이야?"


샤트라는 냉정한 어투로 잭을 밀어냈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마치 인간처럼 두발로 선 채 몸 여기저기를 두드리다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는 다리를 꼬며 담장 위에 걸터 앉아 잭을 내려다보았다.


일말의 감정도 없는, 냉혹한 눈빛이었다.


"너에게 진 빚은 다 갚았다. 내게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마"

"저에게..저에게 검술을!"

"알려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 사라져"


샤트라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대충 던져준 아티펙트에 홀려 전능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굴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티펙트는 어떻게 하고 저 꼴을 하고 찾아 온 거지?


'뺏겼나? 그럼 왜 이 아이를 죽이지 않았지?'


그것은 샤트라의 냉혹함 때문이 아닌 당연한 의문이었다. 도둑의 아티펙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남에게 들켜서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가 훔치지 않았다 할 지라도 의심을 받으며 살아가던 이들을, 샤트라는 무척이나 오랫동안 보아왔으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샤트라는 머지않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비밀스런 힘을 얻은 사람은, 자신이 그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저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은 필시 둘 중 하나의 이유일 테지.

그 힘이 필요가 없거나, 그 힘의 출처를 찾고 있거나.


그리고 그런 샤트라의 생각은 적중했다. 룽겔에게는 아티펙트가 필요하지 않았고, 하녹에게는 정보가 필요했으니까.

하기야 어느 쪽이던 간에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귀찮은 일을 벌였구나. 꼬마야"


제법 똑똑한 아이라 생각해 변덕삼아 주었건만, 설마 자신들이 이 도시를 떠나려 하기 직전에 들켜버릴 줄이야.


"설마하니 쫒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잭의 몸이 움찔거렸다. 급한 맘에 무작정 뛰어왔지만,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렸던 까닭이다.

룽겔과 마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망각이었다.


"..괜한 걱정이었나 보군"


다행히도, 마검의 힘은 샤트라에게도 꿰뚫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설령 아티펙트라 할지라도 찾아낼 수 있는 그녀였지만 룽겔과 마리의 기척은 조금도 감지해내지 못하는 눈치다.

혹여나 그녀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웠던 잭은 내심 안도하며 이번에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식상하구나. 걸핏하면 꿇는 무릎에 무슨 가치가 있는 거지?"


하지만 그것조차도 샤트라에게는 흔한 광경이었을 뿐이다.

샤트라는 한 때 비루한 거지의 몸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고양이를 구해 준 잭의 모습을 보며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세계의 의지가 응집되어 생겨난 것이 정령이라면, 고양이들의 의지에서 탄생한 것은 바로 캐트 시였으니까.

초월자인 정령들과 비교할 정도로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근원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구해주었다. 곧 죽어 없어질, 굶주리고 구타당해 꺼져가는 목숨을 이어가게 해 주었다.

칼에 맞을 뻔한 아이의 앞에 정체를 들키는 것을 감수하고 나타나 그들을 쓰러트려 주었다.

남은 삶을 편히 지내도록 아티펙트를 건네주었다.


무려 세 번에 이르는 도움이었다. 샤트라는 그것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보답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건 이것뿐이에요!"

"그런 건 가졌다 하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버리고 있는 거지"


샤트라는 걸핏하면 무릎 꿇는 잭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거만하게 굴었다면 처음의 도움을 끝으로 사라져버렸을 테지.

하지만 그 다음의 도움들은 이런 비굴한 모습들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준 것이었다.


"검술을 배워 뭘 하려 하지? 기껏 내가 준 아티펙트를 갖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네가, 다른 종류의 힘을 갖게 되면 바뀔 거라 생각하나? 멍청하고 어리석은 아이야. 너는 내가 준 모든 기회들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렸어. 그러고도 내게 더 많은 무언가를 주기를 바라는 거야?"

"저는 결코..!"

"그럼 왜 내가 준 아티펙트를 갖고 있지 않은 거지? 흘리기라도 했나?"

"그건.."


잭은 대답이 궁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자신의 뒤에 있는 룽겔에게 돌려받을 약속을 했노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서야 말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려받을 수 있으리란 것 자체가 지나친 낙관일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은인인 사트라의 정체를 타인에게 발각시켰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저는 힘이 필요해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티펙트처럼 잃어버리지 않을 힘이요!"

"그럼 그냥 이 도시를 나가지 그랬어? 무엇이 문제지? 아티펙트가 있는 이상 굳이 이곳에서 살아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우리는!"


잭은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차마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이, 응어리진 감정들이 피처럼 가슴 속을 맴돈다.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도는 그것들은 가슴을 찢어야만 쏟아질 비밀들이었다.


"..스승님?"


그리고 샤트라는 사라졌다. 잭은 허탈한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으나,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듯 했다.

메리가 잭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본래라면 뿌리쳤을 동정이었다. 뿌리 없는 자존심만이 그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스스로의 초라함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떠날 수가 없다구요. 우리는"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이 힘없이 맴돈다. 잭과 메리는 이를 악물었다.





*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니야?"


골목을 나서는 샤트라에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가로수 나뭇가지에 앉은 채 동그랗게 눈을 뜬 체셔 캣이었다.

샤트라는 잠시 그에게 향했던 눈을 그대로 돌려버렸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봐 샤트라. 이래뵈도 난 장로야.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렇지 무시하는 건 심하지 않아?"

"저리 꺼져. 꼰대 녀석"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겠군"


체셔 캣은 그대로 폴짝 뛰어내려 샤트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중년 남성처럼 단단한, 그러면서도 탁한 목소리가 웃음을 터트린다.


"꽤나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지? 매일 같이 그곳에서 그 아이를 기다렸잖아? 안 그래?"

"..꺼지라고 했잖아"

"그래도 알고 있지? 검술은 안 된다는 거 말이야"

"내가 만든 검술에 간섭하는 거야?"

"지금은 캐트 시의 검술이 되었으니 그렇지"


채셔 캣은 그렇게 말하며 샤트라를 앞질렀다. 샤트라의 걸음이 멈춰섰다.


그래, 그랬었지.


"괴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인간만을 상대할 검술을 만든 건 바로 너잖아. 안 그래, 샤트라?"

"..넌 너무 말이 많아"


체셔 캣의 동그란 눈동자가 반달처럼 접혔다. 우스꽝스러운 눈빛이었다. 한껏 구겨진 얼굴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샤트라는 그가 사실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서나가던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갈기처럼 일렁이는 털들이 뾰족하게 샤트라를 겨눈다.

거대해진 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투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사백 년 전의 마왕을 따랐던 이들은 결국 실패해버렸지. 약속은 남아 그들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런 건 보험 축에도 못 들어. 애초에 우리는 마왕과의 거래에 응하지도 않았고 말이야. 그래서 너는 그 검술을 만든 거잖아?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야. 안 그래?"

"..그래"

"그런데 그걸 인간에게 알려주겠다고? 제 정신이야 샤트라? 적에게 패를 공개한 채로 싸우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지?"

"나는 알려주겠다고 한 적 없어"


체셔 캣은 웃었다. 명백한 조롱이 담긴 웃음이었다. 샤트라는 그 웃음에 괜히 마음 한 구석을 찔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넌, 알려주지 않겠다고 한 적도 없잖아? 안 그래?"


샤트라는 침묵했다. 무어라 답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계산적이었지만, 동시에 솔직한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잊어버려 샤트라. 나는 지금 경고를 하러 온 거야. 처음엔 네 검술이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것이 되어버렸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 배운 건 잊지 않아. 잊을 수 없어. 그렇잖아?"


체셔 캣은 그녀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듯 했다. 그 역시 딱히 캐트 시 최강의 검사와 대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어차피 그 아이들은 오래 살지 못해"

"..무슨 뜻이지?"

"모르고 있었어? 어쩌면 그게 더 좋을 지도 모르지. 네가 손 쓸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알려줄게. 나는 네가 싫지 않고, 알게 되었다 한들 변하는 건 없으니까"

"닥치고 대답이나 해!"

"흐흐. 무서운 걸? 그 아이들이 조금 부러워졌어. 그래, 말해줄게. 지금 이 도시에 흉내쟁이 녀석이 들어와버렸어. 너도 알지? 도플갱어 말이야"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왜 그 아이에게 위험이 된다는 거야? 그 녀석들은!"


쉬이-


체셔 캣은 샤트라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귀를 쫑긋하고 들어올리며 시선을 옮겼다. 샤트라는 그제야 무언가를 눈치 챈 듯 그것을 눈에 담았다.


"..예언이 있었던 거야?"

"그래. 사백 년 만에 처음으로"


체셔 캣의 배에 붙은 채로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낡고 녹이 슨 회중시계였다.

캐트 시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진 것은 오직 장로이자 최초의 캐트 시 뿐이었다.

다름 아닌 체셔 캣, 그의 권능이자 신에게서 하사받은 선물.

한 때 멈췄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것.


허나 다름 아닌 지금, 분명 그 시계의 초침은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봐도 잡을 수 없는 시간처럼, 거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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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0 0 10쪽
74 간파 21.07.15 19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4 0 10쪽
71 성국 21.07.12 32 0 9쪽
70 인어 21.07.11 20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8 0 11쪽
67 예언 21.07.08 24 0 11쪽
66 선동 21.07.07 25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19 0 12쪽
64 맹약 21.07.05 28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3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6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5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5 0 12쪽
58 엠버 21.06.29 31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0 0 12쪽
» 캐트 시 21.06.27 28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8 0 11쪽
54 단서 21.06.25 25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2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5 2 12쪽
51 하녹 21.06.22 22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6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1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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