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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2021.05.26 20:5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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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152,981

작성
21.05.14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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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화

DUMMY

4.


남자의 말이 있고 난 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담은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참동안이나 대답이 없자 결국 남자는 재차 물어왔다.


“하겠느냐?”


방금 전까지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던, 백영의 유언을 따르겠다는 의지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딱히 그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담은 남자의 제안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겠다는 말은 선뜻 나오지 않았다.


사고 직후, 그는 계속 생각해왔다. 분명 자신과 은지를 죽인 것은 운전 중 한눈을 판 택시기사였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다른 택시를 잡았다면. 혹은 데이트 하자고 조르지만 않았다면. 이라는 조건부 의문들이 계속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결국 담은 은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런데 살릴 수 있단다.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저승에서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그가 직접 말했으니 막연한 기대를 가지는 것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옆에 서있던 은지가 담의 옆구리를 툭 쳤다.


“하지마.”


남자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일단 말렸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은지에게도 있어 남자의 제안은 쉽사리 거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 그런 엄청난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해줄 리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는지 결국 은지가 우려하던 말이 담의 입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할게요.”

“담아!”

‘걸렸군.’


남자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였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내 제안은 간단하다. 너를 포함한 10명. 아무나 상관없으니 10명을 모아 데려 오거라.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이 저승의 주인, 시왕(十王)들을 이긴다면 약조대로 살려주마.”


조용해진 장내가 비웃는 소리로 다시금 시끄러워 졌지만 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직 은지를 살릴 수 있다는 소식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더 자세히요.”

“대련은 승점제고 한번 나온 자는 승패와 상관없이 다신 나오지 못한다. 순서는 상관없지만 네놈은 마지막에 짐과 붙어야 하며 다른 이들의 승점이 1점인 반면 우리는 2점을 가져간다. 그리하여 승점이 더 높은 곳이 이긴다.”


“그게 끝인가요?”

“대련을 하기 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네 놈이 가져와야 할 게 몇 개 있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이건 네가 정식으로 수락하면 알려주도록 하마. 마지막으로 기한은 오늘로부터 61일이다.”


“왜죠?”


남자는 그것도 모르냐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가 저승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영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설명에 돌입했다.


“이승에서의 1시간은 이곳에서 1일이다. 그러니 61일. 너희가 이겨도 시신이 없다면 살려줄 수 없으니 그 전까진 이곳에 도달해 승부를 내야 될 것이야.”


긴 설명이 끝나자 남자는 옥좌에서 내려와 내시가 건네준 두루마리를 가지고 담의 앞에서 무어라 읊조렸다. 그러자 두루마리에서 스스로 빛이 나더니 텅 빈 종이에 글자가 저절로 써졌다.


“뭐하시는 거에요?”


은지가 잔뜩 날이 선 음성으로 묻자 남자는 중얼거리다 말고 대답하였다.


“우리의 내기를 확실하게 할 뿐이다. 일종의 서약서지.”


그리고 나서 담에게 자신을 따라 말하라고 하였다. 꽤 오랫동안 말했지만 결론은 절대 내기를 물릴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흐흐흐. 크하하하!!!”


서약이 끝나자마자 남자는 폭소를 터트리며 손에 든 두루마리를 저 멀리 집어 던졌다.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서약도 끝났으니, 이제..”


그가 손짓을 하자 대기하던 나장들이 갑자기 담과 은지를 붙잡았다.


“은지야!!”

“뭐하는 거야!! 이거 놔! 담아아아!!”


그러더니 순식간에 은지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담은 자신을 붙잡는 나장들을 밀쳐냈으나 그것도 잠시 오히려 머리가 박히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놔! 이거 놓으라고!”


제압당한 와중에도 거세게 저항하는 담의 앞에 남자가 쭈그려 앉았다.


“지금 대체 뭐하는 거야! 은지를 왜 데려가!”


“나쁘게 생각하지 마.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니까.”


고귀한 혈통임을 증명하듯 써대던 그의 고상한 말투는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게 왜 당연한 건데!”


“너희 둘을 이곳에서 같이 내보내주면 그대로 도망갈 수도 있잖아? 그러니 네가 돌아오기 전까지 저 계집은 내가 보살피도록 하지.”


“그런 말은 없었잖아! 빨리 데려와. 아니면 제안은 무효야.”


“흐음.. 우리가 방금 한 게 서약이라는 건데. 그렇게 네 마음대로 동네 땅따먹기 하듯이 물릴 수 없어.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저 여자를 구하고 싶다면 나가. 나가서 뜻을 같이 할 자들을 모아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제야 담은 자신이 속은 것을 알았지만 팔다리를 구속당한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속이고는 즐거워하는 남자에게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은지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그리고 또 화가 났다.


은지가 잡혀가는 데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던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다.


“아아아아아아악!!!!!”


결국 잔혹한 현실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고 담은 끊임없이 자신을 탓하며 한 맺힌 절규를 내질렀다.



**********



“그래. 아주 좋은 눈빛이야. 그 정도는 돼야 나도 즐길 수 있지 않겠어?”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담에게 희열을 느낀 남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약한 이들을 짓밟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은 남자의 삶에 있어 거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담처럼 저항은 거세면 거셀수록 좋았다.


앞으로 자신에게 여러 즐거움을 줄 것 같은 담을 위해 남자는 옆에 서 있는 나장에게 무언가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자 곧바로 검은 천으로 뒤덮인 탁자가 담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에게 거는 기대가 커. 그러니 내 친히 조금의 아량을 베풀도록 하지.”


천을 걷어내자 책상에는 형형색색의 예쁜 돌들이 열을 맞추어 진열 되어 있었다.


“이곳은 이승에서 허구라고 불리는 것들이 실존하는 세상.”


그는 여러 개의 돌들 중 다른 돌과는 달리 무척이나 평범해 보이는 돌을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이런 평범한 돌에 마력을 주입시키면 속성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의 돌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이렇게 말이야.”


말을 마친 남자는 몸에서 마력으로 보이는 적색 기운을 뿜어내더니 돌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회색 빛깔의 돌은 어느새 짙은 빨간색이 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돌의 이름은 주마암. 평소라면 장식품 외에는 쓸데가 없지만. 딱 하나. 자신의 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탁월한 효과가 있지.”


완성된 주마암을 빈자리에 채워놓은 남자가 물러서자 나장들은 담을 책상 앞에 질질 끌고 가 7개의 돌들을 차례로 만지게 했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여기 있는 일곱 개,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음(陰), 양(陽)을 가지고 태어난다. 서로 물리고 물리는 관계의 이 여섯 속성 중 너 또한 하나를 가지고 있을 거야. 만약 해당 속성의 돌에 손을 갖다 대면 빛을 내며 반응...”


하지만 남자는 하려던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담의 손을 거친 돌들 중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다시 천천히 돌을 만져보게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조금은 가엾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던 남자가 입꼬리를 비죽 올리고 비웃자 편전에 있던 이들도 슬슬 눈치를 보다 그를 따라 웃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해방된 나장들이 방심하던 그때, 때를 기다리던 담은 오른발을 높이 들어 제 우측에 위치한 나장의 발가락을 짓밟았다.


“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뗀 나장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고 난 뒤 담은 보지도 않고 허리를 숙여 좌측에서 날린 주먹을 피했다.


팔꿈치를 정확히 꽂기 위해 꺾은 주변시야에서 보지 못했다면 그대로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빠른 속도였다.


그가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만약, 즉 if일 때의 이야기이지만.


자만이 만든 너무나 정직한 궤도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사이, 담은 때리기 좋은 푸짐한 얼굴에 주먹 두 방을 연달아 꽂아 넣었다.


맷집이 좋은지 코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우측 병사에게도 다시 어퍼컷을 날려 그가 근무 중 편히 누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할 시간이 없어. 당장이라도 끌려간 은지를 찾아와야 해.’


하지만 그의 각오는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나장들이 달려오면서 금세 무산되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닫자 담은 짧은 고민 끝에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야! 따까리들 세워 놓고 뒤에서 나불대지만 말고 나와!”


그러자 무서운 속도로 그에게 달려오던 나장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곁눈질로 남자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이 무언가를 건드렸다고 직감한 담 또한 남자를 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만 해도 능글능글한 미소를 띠던 그의 눈매가 어느새 차갑게 얼어 붙어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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