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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2021.05.26 20:5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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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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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152,981

작성
21.05.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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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5.


100년 전, 시체가 즐비한 어느 궁궐의 앞.


한 남성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검에는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피가 묻어있었다.


그의 뒤로 대검을 든 거구의 남성이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의 거대한 몸집.


언제나 든든했던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곧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무릎을 꿇었고 그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었다.


나를 지키던 나장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친 지 오래였고 오직 나의 호위무사 수연만이 검을 들고 서있었다.


“전하, 제 뒤에 계소서.”


잔뜩 긴장한 수연이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남자의 보폭에 맞춰 자세를 잡았다.


캉!


카캉!


팅!


단 세 합.


고요한 궁궐에는 3번의 마찰음이 들렸고 이후 검을 놓친 수연은 남자의 검 앞에 쓰러졌다. 하지만 누구보다 충직한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 필사적으로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든 그녀는 제 주군인 나에게 도망가라 외쳤지만 야속한 다리는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무의미한 희생마저 끝나고 남자는 다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발걸음 한 번. 뒷걸음질 한번.


발걸음 한 번. 뒷걸음질 한번.


멀게 만 느껴지던 남자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마침내 그의 시퍼런 검날이 내 목에 닿았다.


“네놈은 다르더냐?”


어떠한 감정도 섞이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



내 아비의 원수. 청산하고픈 과거.


지금이야 그렇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잊고 싶은 끔찍한 기억이었다. 매일 밤 잠에 들지 못했고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기억을 지워 달라 신에게 빌고 또 빌었을 정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의 응답인지.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기억은 점점 흐릿해져갔고 덕분에 죽을힘을 다해 힘을 기르는 데에만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왕(十王)을 호령하던 염라대왕의 자리에 걸맞은 힘을 갖췄을 때에는 안타깝게도 남자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갈라질 듯한 메마른 목소리로 내게 다르냐고 묻던 것을 제외하면.


그래서 잊고 살았다.


대상을 모르니 복수는 할 수 없고 떠올리면 괴롭기만 할 뿐이니까.


그런데 그런 기억을 저 애송이가 끄집어낸 것이다.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잊고 살던 괴로운 과거가 떠오르자 남자의 몸에서는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참으며 가만히 숨을 죽였다.


고요해진 편전에 낮고 차가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내가.. 숨었다?”


그 직후 남자는 순식간에 뒤로 돌아 옥좌 옆, 거치대에 놓인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를 집었다.


뱀의 비늘모양으로 장식 된 검자루를 잡고 빼낸 그가 시퍼런 날을 담의 목에 겨눈 것은 일순간이었다.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고교 입학 전까지 나름 복싱을 해왔던 지라 동체시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던 담은 반응할 수 없는 속도에 소름이 쫙 돋았다.


살을 비집고 들어온 날을 타고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 눈을 감은 그때,


태애애앵~


검자루를 꽉 움켜쥔 남자의 손아귀가 풀리며 검은 두 번의 반동 이후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담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남자가 말했다.


“잡아.”


담은 눈치를 살피면서도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생각보다 무거운 검의 무게에 속으로 놀랐다.


‘이렇게 무거운 걸....’


조금 전 이 검을 장난감마냥 가볍게 휘두르던 남자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확연한 격차가 느껴지자 자꾸만 손에서 땀이 나 검이 미끄러졌다.


“원래대로라면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하지만. 뭐, 됐어. 기회를 줄 테니 네게 이겨 봐. 특정한 무기를 원한다면 말해. 내줄테니까. 나는 맨손으로 임하지. 그리고 만약 네가 날 이긴다면. 너와 저 여자 둘 모두 이승으로 보내주마. 염마의 이름을 걸고 약조하지.”


“염마?”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남자가 덧붙였다.


“네놈들은 멋대로.. 염라대왕이라 부르더군.”


염라대왕. 한국 신화 속, 가장 유명한 존재 중 하나. 그런 아득한 존재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자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됐어.’


이기면 둘 다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절망 속 비친 한 줄기의 희망에 담은 몰려오는 두려움은 철저히 외면하였다.


자꾸만 기적이 상상되어 감정이 벅차올랐지만 겨우 추스르며 검을 들어올렸다. 여전히 무겁지만 전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날붙이라고는 요리할 때 썼던 식칼밖에 없고 칼싸움이라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한 장난감 칼싸움이 전부였지만 지금 이 순간, 담은 왜인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올랐다.


해야만 했다. 아니, 해내야만 했다.


“와라.”


염라의 말에 담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어 그의 가슴을 횡으로 베었지만 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면서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검의 무게에 힘이 실리며 무거워지자 담은 남은 왼손으로도 손잡이를 마저 잡은 뒤 나아가며 허리를 베었지만 이 역시도 그가 뒤로 빠지며 닿지 않았다.


담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검을 곧게 내리찍었다.


허나 그가 오른발을 왼발과 같은 선상에 옮기며 몸을 살짝 틀어버리는 바람에 검은 부웅- 소리를 내며 바닥을 갈랐다.


이후 상단, 중단, 하단. 베고 찌르기를 반복했지만 검은 염라대왕에게 닿을 듯 닿지 않았고 담은 점점 지쳐만 갔다.


‘이대로는 안 돼.’


밀어 붙이느라 어느새 많이 가까워진 염라대왕과의 거리에 담은 뒤로 물러나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검 끝을 바닥에 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대로라면 검이 닿기 전, 자신이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거야. 나를 농락하고 있어. 지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해.’


고심에 빠진 담을 반대편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염라대왕이 말했다.


“뭐해. 벌써 지친건가? 아까의 그 오만함은 어디로 갔지?”


다분히 자신을 깔보는 질문에도 담은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고 지긋이 그를 노려보았다. 질문에 대답하는 힘조차 아끼고 싶기 때문이었다.


“오지 않으면, 내가 가지.”


예고된 행동에 담은 온몸을 긴장시켜 최상의 반속을 낼 수 있게 준비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친 찰나의 순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담의 옆에 온 염라대왕은 피할 새도 없이 주먹으로 배를 강타하였고 담은 그대로 2미터 정도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우우욱. 우에에에웩!”


속에 있던 음식물들이 그대로 올라와 뱉어낼 수밖에 없었고 2차례 더 반복한 후에야 위장이 텅 비었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담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염라대왕을 향해 있었다.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담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되지?’


점점 다가오는 염라대왕을 보며 검을 지지대로 삼아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다시, 다시, 또 다시. 일어서기 위해 몇 번이나 힘을 주었지만 끝내 몸을 일으키진 못했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자 극한의 두려움에 빠진 담은 뒤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팔을 앞 뒤로 내저으며 버둥거렸다.


“저리가! 오지마!! 이 괴물! 제발... 저리가아!!!”


“이 정도 밖에 안 되다니. 잠시나마 너를 다르다고 생각했던 내가 멍청했군.”


퀭한 눈으로 뒤집힌 물방개마냥 버둥거리는 담의 모습에 염라대왕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부하들에게 보라는 듯 비켜섰고 그들은 화답으로 소리 내어 담을 비웃었다.


모두가 꼴불견인 담을 비웃느라 정신이 없던 그때 담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이다!’


방심을 유도해 때를 기다리던 담은 재빠르게 자신이 쥔 검으로 염라대왕의 발목을 베었다.


베는 순간까지도 어느 곳을 노려야 할지 고민했지만 하체를 노려 그가 보인 기민한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이는 것 같았다.


발목에 통증을 느낀 염라대왕은 신속히 물러났지만 이미 크게 베인 후였고 깊게 베인 발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와 하얀 버선을 붉게 적셨다.


자신이 당한 것이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님 담의 기개에 놀란 건지 염라대왕은 깊게 베인 자신의 발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뒤에서 깔깔 거리던 신하들은 화들짝 놀라 지혈 할 수 있는 천을 가지고 자신들의 왕을 향해 뛰어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뚫어져라 발목만을 쳐다보는 염라대왕의 모습에 담은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코 일어나 그의 얼굴에 검을 휘둘렀다.


가까스로 피하긴 했으나 얼굴에는 약간의 상흔이 생기며 피가 흘렀고 자신의 공격이 먹히자 자신감이 차오른 담은 마지막 일격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그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살을 파고들 듯이 움푹 들어가는 느낌에 성공이라는 예감이든 순간, 염라대왕은 왼손을 들어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부하들을 저지시켰다.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담이 검 끝으로 시선을 두자 자신을 노리던 검을 검지와 중지, 단 두 손가락만으로 잡아낸 그의 모습이 보였다.


염라대왕은 손가락 사이로 검을 밀어 넣고자 낑낑거리는 담의 모습을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다 그것마저 지겨워졌는지 자신의 옆구리로 검을 가볍게 흘렸다.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담이 엎어지려는 찰나, 무언가가 담의 목을 거칠게 조르며 높이 들어올렸다.


“크읍, 커어으헉”


담은 오른손에 들린 검을 휘둘러 저항했지만 의도를 알아챈 염라대왕이 그의 오른손목을 붙잡아 무자비하게 비틀어 부러트렸다.


검은 챙그랑-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커어아아악으읍.”


손목이 부러지는 고통에도 목이 졸려 신음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얼굴이 벌게지고 초점마저 흐려지며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때맞춰 염라대왕의 억센 손아귀가 그의 목을 놔주었다.


“인정할게. 넌 운도 좋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영혼들과는 확연히 달라. 간절함이 있어. 그 간절함만으로 다시 내 앞에 설 수 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 정도야. 물론...”


“이 시발xx야아!!!!!”


염라대왕의 말을 툭 끊은 담은 부러진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땅에 떨어진 검을 집어 던지고는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날아오는 검을 가볍게 피한 염라대왕의 얼굴에 담이 팔을 뻗으려는 순간, 오히려 그의 주먹이 담의 얼굴을 강하게 타격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세상에 저항하며 그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코앞에서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여기서 살아나갔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퍽-


그것이 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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