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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2021.05.26 20:5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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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152,981

작성
21.05.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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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7화

DUMMY

7.


“아직도 살아있네.....”


눈을 뜨고 처음으로 마주한 어느 집 천장을 보며 담은 중얼거렸다.


자신이 생각하더라도 바퀴벌레 급의 질긴 생명력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다쳤으니 분명 정상인으로는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멀쩡한 몸으로도 어느 것 하나 해내지 못했는데 불편한 몸으로는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문득 모든 것을 앗아간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된 자신에게도 다음에 뺏어갈 것이 있을지 궁금했다.


한숨을 푹 내쉬며 한동안 주인 모를 집의 천장을 바라보던 담은 용기를 내어 몸을 움직여보았다.


그런데.....


“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상반신을 일으킬 때까지.


정말 신기하게도 몸이 조금 뻐근한 것 제외하면 이때까지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통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또한 사고 때부터 쭉 입고 있던 후드 티와 청바지가 아닌 투박한 회 색깔의 한복이 입혀져 있었다.


끈을 풀어헤친 담은 몸에 남아있을 상처를 확인해 보았지만 있어야 할 멍 자국이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일어나셨습니까?”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담은 갑자기 들린 남성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뒤가 막힌 방구석에 기댔다.


목소리가 들린 곳에 눈을 주자 한 저승사자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신을 잃기 전에 본 것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담은 그가 자신을 구해준 사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을 잔뜩 경계하는 담에게 저승사자는 물이 담긴 잔을 건넸다.


이곳에 와서 물을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담은 의심할 새도 없이 물을 들이키다 이내 아차 싶어 입을 떼고 그를 흘겨보았다.


의도를 알아챈 저승사자는 또 다른 잔에 물을 부어 망설임 없이 마셨다.


“그냥 물입니다.”


그제야 담은 남아있는 물을 허겁지겁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있는 곳이 양반들이 살던 한옥의 방 안이고 위험한 물건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잔을 내려놓은 담은 일단 감사인사를 전했다.


“살려...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서인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목숨을 구해준 것치고는 시원찮은 반응이 돌아와 실망할 법도 한데 저승사자는 담보다 더한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제일가는 치유사를 불렀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급한 곳은 치료를 마쳤으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불편한 곳이 있다면 말씀하십쇼. 다시 부르겠습니다.”


‘치유사?’


치유사라는 말에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염라대왕의 궁에서 본 것도 있기에 납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화가 툭 끊긴 방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담의 질문으로 다시 이어졌다.


“구해주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승사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전의 그들처럼 저에게 대가를 원하신 거라면 전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부르튼 입술을 질끈 씹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의 입술은 조금의 충격에도 피를 불러왔고 곧 치아 사이로 피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 않고 더욱 더 세게 물었다.


그만큼 그가 해야 될 말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아까 그들처럼 저를 죽이시던지. 아님 놔주세요.”


절망에 가득 찬 그의 눈을 바라보던 저승사자는 의외로 빠른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분명 당신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당신만이 줄 수 있는 겁니다.”


“빈털터리인 제가 뭘 줄 수 있다는 거죠?”


“백영.”


그의 입에서 ‘백영’ 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담은 흠칫 놀랐다. 그 반응을 보고 확신을 마친 저승사자는 거침없이 제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이야기를 해도 될까?’


담은 잠시 망설였지만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는 생각에 이윽고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을 사실 그대로 얘기하였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저승사자는 백영이 죽었다는 대목에서 미간을 약간 찌푸렸으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 외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끝입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도 저승사자는 여전했다.


목숨을 걸고 구해낸데다가 치료까지 해주면서 들어야 할 정도라면 백영과 꽤 가까운 사이일 텐데도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감정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결국 그 녀석의 유언을 무시하셨군요.”

“멍청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담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질책 받기 싫어 스스로 쉬이 인정하였다.


“그 백영 이라는 분의 소재파악을 위해 저를 구하신 거군요.”


칼을 든 괴한 3명에게서 자신을 구해낼 정도라면 그만한 실력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반역죄인 백영과 가까운 사이이니 분명 관계가 있을 터. 목적은 달성했고 이제 앞에는 자신의 얼굴을 본 목격자밖에 남지 않았으니 죽이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담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목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의 행방은 덤. 볼일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정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당신을 구한 이유는...”


“꼬르륵”


이 와중에 눈치 없이 울리는 배꼽시계를 듣고 저승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식사하면서 얘기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괜히 미안해서 거절하려는데 이미 그는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부엌에는 방금한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국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고요한 밥상 앞,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서른 번 정도 나고서야 저승사자는 입을 열었다.


“100년 전, 선대 염라대왕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현 염라대왕이 그 뒤를 이어받으면서부터 저승에는 당신 같은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는 환생도 아닌 부활이라는 다소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며 이제 막 죽어 이승에 미련이 남은 영혼들을 함정에 빠뜨렸죠.”


“저 같은 사람이 많았다면 이전에 그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 있나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은 약간의 희망을 품고 물었으나 저승사자는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예외는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도전했고 그들의 최후는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세뇌와 훈련을 통해 오직 염라대왕만을 섬기는 무자비한 군사로 재탄생하게 됐죠. 아마 당신도 오는 내내 수 없이 보셨을 겁니다.”


“나장이라 불리던 병사들이요?”


“나장은 그들이 속한 집단의 최말단. 그들은 통칭 사성(仕聖)군이라고 불리며 현재 염라대왕이 가진 권력의 핵심입니다.”


“사성군. 그럼 그 사성군만 어떻게 한다면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아뇨. 사성군은 그의 권력 기반 핵심. 반대로 힘의 핵심은 염라대왕 본인입니다. 타고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을 통해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군림하던 다른 대왕들은 모두 제쳤죠. 게다가 역대 왕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평가가 있고요.”


담은 염라대왕과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최소 100년 이상을 산, 역대 최강의 왕과 겨우 5~6년 정도 복싱을 배운 자신의 대결.


애초에 모든 걸 알고 있던 그 쪽 입장에서 결과는 불 보듯 뻔했기에 발버둥 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꼴불견 이었을지 담은 생각하려다 더 비참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저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막고자 사자들 중 능력 있고 정의로운 자들을 추려 도움을 청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부담을 느끼고 거절했지만 고맙게도 뜻을 함께해주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을 모아 저는..”


“제각단을 만드셨군요.”


담의 말에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비밀리에 활동하며 현재까지도 많은 영혼들을 그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염라대왕도 어느 정도 저희의 존재를 눈치 챘는지라 조심하라 일렀지만 일이 이렇게 된 것이죠. 이번 일로 상황은 급변할 겁니다.”

저승사자의 얼굴에는 급격하게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럼 백영 이라는 분도....?”


“뜻을 같이 해주던 아이였습니다.”


“...”


“언제까지고 미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은 묵묵히 걷는 아이였으니 저와도 함께 해줬던 것이겠죠.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 녀석도 후회는 없을 겁니다.”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 원흉이라는 생각에 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제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네에???”


원망을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저승사자가 건넨 뜻밖의 제안에 바람에 담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이대로 포기하실 겁니까?”


저승사자의 질문에 담은 입을 꾹 닫았다.


한순간의 섣부른 판단으로 궁에 갇혀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 여자친구 은지.


설령 죽더라도 그녀만큼은 꼭 구해낸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담이었다. 결국 그 과한 마음이 독이 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러니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담은 은지를 떠올리며 목에 걸린 은반지를 매만졌다.


그러자 마음 속 꺼져버린 불씨가 다시금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당연히 아니죠.”


이전과 달리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그럼 제가 당신의 첫 동료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도와주시면 제각단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차피 제각단의 존재여부가 확실해진 지금. 염라대왕은 저희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감시 할 것입니다. 앞으로 당분간의 활동은 힘들겠죠. 그렇다고 제각단의 전력만으로 정면승부를 하기에는 규모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럼 제각단 분들 중 강한 분들을 추려서 도전하는 건가요?”


“불가능합니다. 이름만 왕인 자들이 아니라서. 게다가 가져와야 되는 물건도 있고요.”


“그럼?”


“밖으로 나갈 겁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이곳은 우물 안에 불과하니까요.”


그 이후에도 저승사자는 부연설명을 이어갔지만 담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저승에 온 뒤 처음으로 아군을 만났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솟았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이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못하는 자신이 도리어 짐만 되지 않을까.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가는 담을 본 저승사자가 말길을 돌렸다.


“저는 이제껏 많은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꽤나 강한 자들도 있었고 머리가 좋은 자들, 그리고 남들보다 특출 난 것을 하나 혹은 두개 씩 가진 이들도 있었죠. 허나 결국에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분명 당신은 그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당신을 돕는 데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왜요?”


정말 궁금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을 도대체 왜 돕는 것인지. 그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듣게 된 대답에 담은 가슴 속 울컥거림과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투지(鬪志). 싸우고 이기고자 하는 그 굳센 마음이 있었기에 당신은 그들 중 처음으로 염라대왕의 피를 본 겁니다.”


비웃음을 이겨내며 매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비극적 일만이 연달아 일어났다.


아무리 일어나려해도 절망의 늪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종국에는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내놓던 이때에 누군가의 한마디가 이토록 따스하고 힘을 줄 수 있다. 라는 것을 담은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낯선 이의 말 한마디에 사람이 눈물을 흘리기란 쉽지 않지만 그 정도로 담은 지쳐있었다.


“....감사합니다.”


많은 말이 있겠지만 담은 꾹 눌러 담아 한 마디로 감사를 표했다.


자신의 진심이 그에게 부족함 없이 닿길 바라며.


“마저 식사하시죠. 모든 일에는 체력이 받쳐줘야 되니까.”


무표정한 얼굴에 일정한 톤의 말투.


언뜻 냉혈인 이라 느낄 수도 있겠지만 담은 그가 자신이 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입안으로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던 담은 잠시 숟가락질을 멈췄다.


“도담밉니다! 아프로!! 자알 부타악 드림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는 밥풀이 가득 차 매우 추잡한 모습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저승사자는 비웃지 않고 무표정을 고수하며 대답했다.


“강림 입니다.”


그렇게 길고 긴 저녁 식사시간이 끝이 났다.



**********



식사를 마치고 막 씻고 나온 담은 마루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강림에게서 피로 얼룩진 꼬질꼬질한 두루마리 하나를 건네받았다.


“이게 뭐야?”


“당신... 아니, 네 품속에 있던 거야. 염라대왕이 요구하는 물품의 목록인데. 상당히 난해한 것들만 적혀있어.”


밥을 먹을 때만 해도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던 둘의 말투는 어느새 굉장히 가까워져 있었다.


그 과정을 알기 위해서라면 시간을 과거로 돌려야 한다.


20분 전, 미지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뜨겁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의 물에 나른하게 퍼져있던 담은 대뜸 옆 탕에 있던 강림에게 물었다.


“그... 저희 서로 호칭을 정리 해야겠죠?”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왜... 그.. 그렇잖아요? 앞으로 쭉 같이 다닐 텐데 언제까지 서로한테 존칭 써가면서 불러요. 게다가 급박한 상황에서는 비효율적이기도 하고요.”


“....”


강림이 침묵을 지키자 담은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강하게 밀고 나갔다.


“그쵸? 그래서 그러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외모는 아니지만 말투나 하는 행동을 보면 저보다는 나이가 많아보이시는데. 제가 형이라고 부를까요? 아! 혹시 제가 알아둬야 될···”


다! 다! 다! 다! 다!


기관총 마냥 질문이라는 이름의 총알을 퍼붓는 담을 보던 강림은 무거운 말을 가볍게 던졌다.


“저는 제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에 대한 모든 것을요. 단지 눈을 떴을 때 이곳에 있던 거라 지금까지 살아온 거죠.”


“.....”


“.....”


“아.. 그~러시구나. 하하.”


“괜찮습니다. 오래 전일이라.”


“그럼 서로 반말하죠.”


“그건...”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짝거리던 담의 눈빛이 그의 무미건조한 반응으로 점점 시들해져 갔다.


“그러지.”


“아~ 다행이야.


반강제적인 강림의 긍정에 한시름 놓은 담의 표정이 차차 밝아졌다.


사실 담이 이렇게나 무리하게 밀어붙인 까닭은 백영 때문이었다. 어디까지 각별한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아니던가.


그 상심을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의 빈자리가 조금이나 자신으로 채워지길 담은 진심으로 바랬다.


그리고 다시 현재,


“처음 보는 문자들인데. 뭐라고 써져 있는 거야?”


강림에게서 건네받은 두루마리에는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 읽을 수 없는 이상한 문자들이 써져 있었다.


“네가 가져와야 하는 물건은 총 10개. 그중 대표적으로는 도깨비의 방망이, 여우구슬, 달두꺼비의 알 등이 있어..”


“그거 다 실존하는 거지?”


게임 속 아이템으로 나올법한 단어들이 나열되자 그것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음에도 담은 되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염라대왕의 말대로 이곳은 이승에서 허구라 불리는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야. 여기에 적힌 물건은 모두 존재해. 다만 주인들이 하나같이 목숨보다 귀히 여기는 거라 구하기는 매우 힘들 거야.”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었다. 유일한 선택지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어떻게든 구해야지. 어떻게든. 그래서 언제, 어디로 출발할거야?”


“염라대왕은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배제하기 위해 내기를 받아들인 영혼들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기를 원했어. 그래서 너한테 감시자를 붙여놓은 거고.”


“감시자? 나한테 감시가 붙어 있었다고? 설마 그 건달들 말하는 거야?”


“그 건달들은 아니야. 혹독한 훈련을 받은 데다 조용히 네 뒤만 밟았으니 알아차리지 못한 게 당연해. 이 얘기는 여기까지. 나중에 천천히 말해줄게. 지금은 시간이 없어.”


“알겠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으나 강림이 서두르는 것 같기에 담은 순순히 호기심을 감추고 물러났다.


“지금 바로 동쪽으로 출발할 거야. 간단한 물품만 챙기고 나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척척 정해주는 강림의 믿음직한 모습에 담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강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깔끔하게 발린 문풍지문을 열어젖히고 방 안으로 사라졌다.


달빛을 머금어 한층 더 아름다워진 정원의 소나무를 구경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봇짐을 진 강림이 나왔다.


가죽으로 만든 목이 긴 신을 신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담의 어깨에 손이 올려졌다.


“이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꽤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만 한 마디로 각오 단단히 하라는 말이었다.


“후회는 이미 많이 했어. 이 이상으로는 눈물도 안 나와.”


아까처럼 질질 짜지 않겠다는 각오에 강림은 뒷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침울하면 되겠어? 우리 이제 시작이야.”


그때까지도 어깨 위를 차지한 강림의 손을 내친 담은 걸려있던 나무기둥을 치우고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가자!”


“잠깐!!!”


문이 열리는 순간, 강림은 담을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대문은 활짝 열린 뒤였고 기다렸다는 듯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여러 개의 화살이 그 사이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투-툭


땅바닥에는 여러 개의 핏방울이 흩날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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