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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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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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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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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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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화

DUMMY

16.


이제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해가 산 옆의 그늘진 길을 조금씩 밝히고 있을 때, 뛰는 것인지 걷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속도로 이동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예상치 못한 도깨비의 등장에 산을 빙 둘러가고 있는 담과 강림이었다.


한동안 박자를 맞추며 일정한 소리를 내던 두 발소리는 이윽고 하나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사라진 담의 발자국 소리에 강림이 뒤를 돌아보자 심각한 표정을 한 담이 보였다.


“강림, 미안한데. 나 그냥은 못 가겠다.”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강림이 물었다.


“말해봐. 왜 자꾸 그 도깨비를 신경 쓰는 건지.”


“그 도깨비. 나랑 똑같아. 너와 만나기 전의 나.”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같잖은 동정심?”


“네 말이 맞아. 같잖은 동정심.”


그리 말한 담은 움츠린 어깨를 피고 강림과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야.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힘든 상황에서 도움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있다면 그건 진심을 숨기는 거지. 내가 잘 알아. 내가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데. 그리고 끝내 도움을 받았을 때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인데도 내 전부를 주고 싶을 정도였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고마움이 가득 담긴 시선을 건넸지만 강림은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했다.


감사보다는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듯 했다.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 속마음을 모르는 거 알아. 그래도 누군가 나타나서 마냥 도와주기를 바랬어. 당시의 내가 가진 그 모순이 저 도깨비한테도 보여. 무엇보다도 우린 도깨비방망이를 포함해 동료가 필요하잖아.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


설명이 끝났지만 강림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고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똑같은 표정이었지만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그 미묘한 차이를 담은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담의 추측대로 강림은 끊임없이 고민 중이었다.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담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곧장 이 산을 벗어나야 했다.


염라대왕과 단일로 붙는 것이라면 모를까.


도깨비까지 합세해도 포위당한 상태에서 자력으로 군대를 뚫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승산은 전혀 없고 돌아가면 다 같이 죽을 뿐.


그렇다고 해서 담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무엇보다 도깨비. 저 도깨비를 도와준다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긴 도깨비방망이에 닿을 지도 모른다.


또 담의 말처럼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만약 이 상태에서 무작정 돌아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이 여정은 거기서 끝.


모두가 손을 놓고 불행한 결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저도 모르게 이마를 구긴 강림이 신음을 흘리길 몇 분 째,


“그래. 가자.”


결국 강림은 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애초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염라대왕이 내건 조건을 절대 달성하지 못할테니까.



**********



점점 다가오는 담의 얼굴은 얇은 경계선에 의해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흡!”


그것의 정체를 뒤늦게 파악한 염라대왕은 가까스로 검을 들어 올려 자신을 두 동강 내려는 검을 막을 수 있었으나 뒤이어 날아오는 화살에 손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신경을 온통 검은 화살에만 집중하느라 저런 초짜가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니. 자만이 빚은 불찰이었다.


한편 몸무게에, 힘에, 중력에, 반동까지.


이용할 수 있는 힘이란 힘은 죄다 이용해 염라대왕을 찍어 누르려 했던 담은 검이 더 이상 꿈쩍도 하지 않자 미련 없이 놓고 뒤로 빠졌다.


“크윽.”


하지만 그를 순순히 보내기 싫은 염라대왕이 담의 복부에 주먹을 휘둘렀고 전보다 강한 통증을 느끼며 담은 나무에 부딪혔다.


손에 박힌 화살을 뺀 염라대왕은 허수아비마냥 제자리에서 잠자코 서있는 나장들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저 놈들은 언제쯤 쓸모가 있는 거야?’


전력이 되기는커녕 난입하는 적도 막지 못하는 천하의 쓸모없는 놈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이 순간, 죄다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끓어오르는 분노를 그는 참기로 했다.


그 온정에 정 따위는 없었다.


단지 훗날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막기 위해 날아오는 화살 하나라도 대신 맞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살려두는 것이었다.


물론 나장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담과 강림이 무명부대의 옷을 입고 있는데다 뒤에서부터 왕께 전할 급한 소식이 있으니 길을 비키라며 쩌렁쩌렁 소리쳐대는 바람에 길을 안 터줄 레야 안 터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사냥에 출정도 하지 않은 무명부대원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많은 병력들이 순순히 길을 내준 것은 명백한 잘못 이었기에 모두들 만회라도 하고자 나무 뒤로 숨겼던 몸을 내보이며 우르르 뛰쳐나왔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염라대왕은 겁도 없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담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자신감으로 돌아온 거냐! 겁쟁이가!”


하지만 대답은 말이 아닌 화살로 되돌아왔다.


도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것인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유심히 보자 담의 뒤편에서 감쪽같이 엄폐한 뒤 화살을 쏘고 있는 강림의 신영이 슬쩍 보였다.


“저놈들이 쌍으로...”


자신을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같잖은 영혼을 앞에 내세우고 뒤에서 엄호나 하고 있는 걸까?


“이제 상관없다! 모조리 죽ㅇ....”


대검을 이용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화살을 모두 튕겨낸 염라대왕이 몰려오는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순간,


무언가가 염라대왕의 발목을 붙잡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려던 그는 땅바닥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날.. 잊었군.”


자신을 붙잡은 것이 도깨비라는 것을 안 염라대왕이 발을 힘차게 뻗었으나 제 얼굴을 때리는 발길질을 무시한 그는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내 그를 내던졌다.


다가오던 나장들이 의도치 않게 몸으로 막아주어 영비처럼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계속 수모를 겪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자신을 일으키려는 손길을 뿌리치고는 온 몸에 마력을 거칠게 둘렀다.


저승 최강이자 시왕들 중 유일한 정통계승자라 불리는 자신의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의 꼴불견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반면 흐름을 탄 담과 강림은 몰려오는 나장들을 견제하며 도깨비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왔다.


서로 등을 맞댄 상태에서 강림은 뒤에 있는 담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여기까지 온 건 좋았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여기까진 생각을 못해서......”


대책 따윈 없다는 담의 대답에도 강림은 흔들리지 않았다.


기대를 안했으니 실망도 없다.


단지 후회가 막심할 뿐.


그러던 도중 도깨비의 넓은 등이 강림과 담의 사이를 갈라놓더니 그 틈에 끼어들었다.


천 너머로 전해지는 미끌미끌한 감촉에 강림이 옆을 힐끗 보자 불쾌할 정도로 땀에 잔뜩 절어있는 도깨비가 보였다.


맨살은 아니었으나 얇은 모시옷 이다보니 별 소용이 없어보였다.


“왜 돌아온 것이냐? 인간. 보아하니 저들과 한패는 아닌 것 같은데. 여기 있으면 죽는다.”


땀이 빨리 마르기를 바라며 도깨비에게서 살짝 등을 뗀 강림이 대답했다.


“저한테 묻지 마시죠. 제 의견은 아니었으니까. 아! 참고로 전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눈칫밥을 먹이는 강림의 말투에 담은 그를 째려보았다.


“그럼..”


도깨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담은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아니 그럼 사람이 죽는다는데 그냥 지나가요? 세상에 그런 매! 정!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은근슬쩍 강림을 쳐다보다 시선이 마주치자 담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도깨비에게 말했다.


“도움 받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네요.”


“난 필요 없다. 그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불쌍하네요.”


“인간,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도깨비씨. 당신, 준적은 있어도 받아본 적은 없죠?”


“!”


“이번 기회에 한 번 받아 봐요. 다음부터 저절로 떠오를 테니까.”


“지금 그런 말이나 주고받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강림의 말에 담이 정면을 쳐다보자 창을 겨눈 나장들과의 사이가 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팔을 쭉 뻗는다면 창끝이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


하지만 그때까지도 도깨비의 눈은 담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겉으로나 속으로나 명백하게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지쳐 쓰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기대와 관심을 등지고 떠났을 때만 하더라도 느껴지는 해방감에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했는데 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뭘 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만큼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만 하고 있던 그때, 어릴 적 소소하지만 아주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비가 대차게 내리던 날이 있었다.


집으로 가던 도중, 우연히 우산도 없이 느린 걸음으로 비를 쫄딱 맞는 할아버지를 보았고 걱정이 되어 집까지 업어다 드린 일이 있었다.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고마우이. 젊은이.”


어머니를 제외하면 받아본 적 없는 진심어린 따스한 마음에 그날 나는 다짐했었다.


미약한 힘이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어려운 이들이 있으면 반드시 돕자고.


하지만 너무나 무거운 숙명이 나를 옥죄었던 탓일까?


언제부턴가는 기억도 하지 못한 잃어버린 꿈이었다.


꿈을 되찾은 그날. 나는 미친 사람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그 꿈을 행동에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비단 남을 위한 일만은 아니었다.


행복이란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을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았던 나에게 있어 그들이 보여주는 미소는 전염성이 강해 도리어 나까지도 행복해졌으니까.


하지만 그 꿈은 잔혹한 현실 앞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도움을 받은 이들은 처음에는 고마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력해보지도 않고 빈번하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게다가 더 좋은 결과를 원했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나를 질타하기까지 했다.


결국 나중엔 나의 호의가 당연한 것으로 전락했고 나는 어느새 그들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며칠 후, 견디지 못한 나는 그 마을을 뛰쳐나왔다.


저 마을사람들이 이상한 것이겠지.


그리고는 또다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종족을 떠나 결과는 똑같았고 나는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시간이 지나 실망은 절망으로 바뀌었고 나는 정처 없이 걸음이 닿는 대로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이 산에 도착해 머무는 것이었는데..


처음이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 주겠다고 말한 이는.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믿었다가는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이들 또한 내가 겪었던 이들과 같이, 하지만 방도는 달리 해 조금 더 교묘한 수를 쓰는 것이라면 정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고장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적인 생각을 해도 빠르게 뛰는 심박수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반응은 뭐지?


내 진심은 뭘까?


무의식적으로 밀쳐내고 피하기만 하던 내 진심을 제대로 마주하자 나는 너무나 쉽게 내 진심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바랬다.


단지 그 뿐인가?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


아니었다.


최종적으로는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 행복을 뿌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여태 깊이 숨어있던 내 진심이 말했다.


그 꿈을 같이 이루어줄 이들이 바로 옆에 있다고.


살아서 이들과 함께 하라고.


흐릿해진 눈의 초점을 앳된 인간에게 맞춘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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