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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2021.05.26 20:5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59
추천수 :
13
글자수 :
152,981

작성
21.05.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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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7화

DUMMY

17.


쐐애액!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에 담이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었다.


자신의 눈앞까지 날아온 검기를 막기는커녕 가까스로 본 그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리자...


콰앙!


검이나 사람의 몸에 부딪혔을 때 나올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질끈 감은 두 눈을 천천히 뜨자 어느새 두꺼운 흙의 장벽이 자신의 앞에 우뚝 솟아있었다.


“고마워요. 도깨비.... 씨?”


“곤이다. 편하게 불러라 인간.”


“아.. 나는 담이야. 도담. 저쪽은 강림.”


서걱!


공을 세울 생각에 눈이 멀어 자신에게 덤비는 나장 한 명을 가볍게 처리한 강림이 첫인사 치곤 서늘한 시선을 건넸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등을 맞대고 있는 셋. 그들을 둘러싼 수백의 병사들. 그리고 그들을 가르며 이쪽으로 걸어 나오는 독기 품은 염라대왕.


거리낌 없이 살기를 드러내며 화염에 휩싸인 검을 든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와 다름없었다.


검을 고쳐 잡은 강림은 곤을 옆으로 밀었다. 다 같이 빙글빙글 돌기를 반 바퀴.


강림이 걸음을 멈추자 그의 시야에 염라대왕이 들어왔다.


그 자리는 담이 서있던 곳.


피하고픈 현실이지만 당장 염라대왕과 맞설 수 있는 전력은 자신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다른 대안을 찾아보려 해도 전력이라 부르기 애매한 영혼 하나와 서있기도 버거워 보이는 도깨비만이 눈에 들어올 뿐.


“퇴로를 뚫어.”


말을 마친 강림은 악마가 따로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는 염라대왕에게 달려가 검을 맞댔다.


캉! 카가가각!


검을 맞대며 힘겨루기를 하던 둘 중, 우위를 점한 이는 염라대왕이었다.


힘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더니 곧 극명해져 강림의 뒷발은 밀려나기 시작했고 검은 장검은 적이 아닌 자신의 주인을 상처 입히려 하였다.


양날이 모두 벼려진 장검이 강림의 쇄골을 파고 들었다. 그 위로 눈부시게 타오르는 화염까지 더해지자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강림이 전개한 검은 마력이 불꽃을 상쇄시켜 몸에 옮겨 붙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


‘아직..’


당장에라도 떨쳐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시키며 강림은 때를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가지 않아 점점 무너져가는 그를 보던 염라대왕이 승리를 굳히고자 한순간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지금.’


순간적으로 검자루를 왼쪽으로 밀어붙이자 대검의 날이 장검의 검격에 밀려 미끄러지듯 땅에 머리를 쳐 박았다.


한순간에 공백상태가 된 염라대왕의 가슴에 강림이 곧장 검을 휘둘렀으나 본능적으로 앞구르기를 시전한 그는 몸을 비틀어 땅에 박힌 대검을 빼내었다.


상대가 안정적인 자세를 갖추기 전, 승부를 보고 싶던 강림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달려들자 염라대왕은 땅에서 빼낸 대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지옥(地獄)검술] 지평선(地平線)


평평하면서도 넓은 범위의 시뻘건 검기가 매섭게 날아왔다. 강림은 무릎을 땅에 대고 몸을 최대한 뒤로 젖히는, 슬라이딩 자세를 취해 가까스로 피하고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목표물을 잃었으나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검기는 결국 그대로 날아가 강림의 뒤편에 서있던 나장들을 베는 것과 동시에 불태웠다.


두 가지 고통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나장들을 보며 강림은 혀를 찼다.


잔혹성에 대한 경악?


아니었다.


단지 아군을 의식하지 않으니 숫자가 많은 그들을 인질 삼아 방패막이로 쓰려했던 자신의 계획이 무너진 데서 나온 탄식이었다.


또한 자신이 명백히 불리한 상태임을 인지한데서 나온 탄식이기도 했다.


상대는 행동에 제약이 없다. 반면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의 실력이 대등하니 이기려면 자신 또한 누군가를 걱정하며 싸워서는 안됐다.


이때 훙 소리와 함께 대검을 어깨에 들쳐 멘 염라대왕이 말을 건넸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 강림.”


“하.. 물어본 내가 바보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무엇이든 알려주지 않겠다는 강림의 고집에 염라대왕은 헛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어깨 너머로 배웠구나. 라고 생각했어. 말이 안 되지만 내 눈으로 봤잖아. 염라대왕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이 검술을 네가 쓰는 걸. 근데 또 이상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배운 것인지 알아내려 해도 명부에서는 네 과거 흔적 하나 찾을 수가 없어. 기껏 알아낸 거라고는 이름 하나. 대답해봐. 넌 도대체 누구지? 강림.”


“그거 하나.”


“뭐?”


“강림. 이 두 글자가 내가 나에 대해 아는 전부야.”


모처럼 진실 된 대답을 해주었건만 그 안에 다른 뜻이 숨어 있다고 착각했는지 염라대왕은 그의 대답을 곱씹으며 해석에 들어갔다.


그가 딴청을 피우자 강림도 곁눈질로 잠시 잊고 있던 두 사람을 보았다.


생각보다는 잘 버텨주고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스산한 기운이 온 몸을 덮쳤다.


누군가를 걱정하면서 싸울 상대가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방금 전, 강림 본인이 스스로에게 했던 충고였으나 이를 망각한 그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참혹했다.


위험을 본능적으로 느낀 강림이 검을 들어 올렸으나 이미 어깨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 대검이 살을 파고 들어왔다.


콰드득!


치이이이-


그나마 막은 덕분에 더 깊숙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방금의 일격으로 뼈에 손상이 갔는지 좀처럼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을 집어 삼키려는 화마까지.


“... 어깨를 상당히 좋아하네.”


“무기를 들지 못하는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해지니까.”


여느 때 보다 환한 미소를 지은 염라대왕은 대검에 힘을 실어 강림의 어깨 자체를 잘라내려 하였고 그의 의도를 간신히 막고 있는 강림의 두 팔은 조금씩 안쪽으로 굽혀졌다.


한편,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곤과 담도 다를 바가 없었으니...


퍼져있는 도깨비불들을 불러 모아 다시 한 번 대규모 환각을 일으킨 곤이었으나 그런 얕은 환각에 걸릴 정도로 정신이 나약한 자들은 이미 입구에서 낙오됐기에 효과는 전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 썼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만약 이라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고위직에 위치한 이들이 죄다 인간들의 우두머리 곁에 붙어있어 잔챙이들만 상대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는 검술을 배워본 적 없지만 나름 오랜 시간 복싱을 배운 담이 그들을 상대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아직 여러모로 어색하지만.


쿵! 쿵! 쿵! 쿵!


전방위에서 달려드는 나장들을 막기 위해 곤은 양 옆에 좁은 틈새를 가진 높은 토벽을 세웠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틈새를 지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


척 봐도 함정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구경만 할 수는 없기에 몇몇은 틈새 사이로 몸을 구겨 넣었고 밖에 있는 이들은 단단한 토벽을 붕괴시키기 위해 가지고 있는 무기로 벽을 긁어내었다.


좁은 폭에 낑낑대며 겨우 안쪽에 도착한 나장들이 몸을 다 빼내기도 전,


“아!”


콰직!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던 곤은 피로 물든 커다란 주먹으로 그들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고 담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다음 상대가 오기 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해도 그것이 끝없이 밀고 들어오는 물량공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니었다.


한 명을 베자 또다시 한 명이 들어왔다. 그마저도 베어버린 담은 눈가에 튄 핏방울을 소매로 닦으며 다음을 준비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강림의 말을 되새겼다.


[상황을 타개할 정도의 강한 힘이 없다면 너도 같이 잡아먹힐 뿐이야.]


당연히 그 정도의 강한 힘은 자신에게 없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독하게 먹어 짐이 되지는 말아야한다.


자꾸만 약해지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한 그가 낑낑 거리며 이제 막 틈새를 빠져나오는 상대를 베는 사이,


산을 쌓을 수 있을 정도로 쌓인 시체더미에서 나장 한 명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정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던 그의 눈에 무방비로 노출된 담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마침 그의 손에 또 다른 동료 한 명이 세상을 달리하고 있다.


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누군가의 검을 주었다. 눈도 감지 못한 그들을 잠시 애도하다 복수를 다짐하며 힘껏 검을 내리치는데..


“컥!”


그가 돌연 단말마 비명을 질렀다.


고개를 내리자 뻥 뚫린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훤히 드러난 내부 모습에 스스로가 고개를 돌릴 정도.


담의 상황을 보기 위해 뒤를 돈 곤이 우연찮게 그를 발견하고 요술을 쓴 것이었다.


뒤쪽에서 비명이 들리자 뒤늦게 돌아본 담은 이제 막 쓰러지는 나장을 볼 수 있었다.


동선을 보니 아마 자신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상대일터. 곤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그대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라도 건네기 위해 곤을 쳐다보는데 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곤!”


마력을 한계까지 짜내서인지, 계속되는 출혈의 영향인지 그의 몸이 기우뚱거리며 넘어갔다.


그리고 이때를 놓칠 리 없는 나장 한 명이 그의 옆구리에 칼을 꽂았다.


“내.. 내가!! 도깨비를 잡았ㄷ....”


뻐억!


자신의 옆구리에 칼을 꽂아놓고 환호성을 내지르는 나장을 꽉 쥔 주먹으로 한 대 친 곤이 곧바로 그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묻어버렸다.


미동도 없이 얌전해진 나장에게서 저절로 떨리는 손을 떼고 옆구리에 깊숙이 박힌 칼자루를 잡은 곤은 고민 끝에 그냥 두기로 하였다.


지금 빼내면 더 심해진 출혈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뜬 채 비몽사몽한 상태로 버텼으나 결국 얼마가지 못해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


“곤! 정신 차려! 곤!”


담이 애타게 곤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잠시 상체를 일으킨 채로 가만히 서 있다가 곧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쿠우우웅~ 콰콰쾅!


누군가는 말한다.


불행은 연이어 찾아온다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후의 보루라 여기던 토벽마저 무너져 내려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던 수많은 나장들이 잔해를 뛰어넘고 우르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쓰러졌다! 저 놈부터 죽여라!”


“놈의 숨통을 최종적으로 끊는 자가 대왕님께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성가신 존재가 쓰러지자 신이 난 나장들은 공을 세울 생각에 앞 다투어 곤에게 달려들었고 담이 그들을 막으려했지만 전방위에서 달려드는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으극!”


누군가의 것인지도 모를 수많은 칼날 중 하나가 담의 팔에 이어 다리까지 베었고 결국 자세가 무너져 내린 담의 목에 칼이 들어오며 그 또한 제압되고 말았다.


‘끝났다.’


만화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너무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자신을 믿고 이곳까지 따라와 준 강림에게 담은 미안함을 넘어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챙! 카카칵!”


주변의 환호성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지만 격렬하게 부딪히는 쇳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이라도 혼자 도망갔으면 하고 담은 진심으로 바랬으나 강림이 그럴 리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그랬으니까.


어느덧 희마하게 들리던 쇳소리마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결판이 났겠지만 좋은 소식일 리는 없다.


만약 그랬다면 저들이 환호성을 지를 이유는 없을 테니까.


양쪽 모두에서 승기를 잡은 나장들은 여러 의미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안도감에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모두가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 이 와중에 뒤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상황을 관망하던 한 나장이 있었다.


눈을 번뜩이며 앞으로 슬그머니 치고 나오던 그가 모두의 방심을 틈 타 곤의 목에 칼을 꽂아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굵은 나뭇가지가 세찬 바람을 형성하며 수십의 나장들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땅이 흔들리며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더니 거대한 고목이 뿌리를 드러내며 스스로 땅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가 놀라 내지르던 환호를 멈추고 검을 들어 전투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굵은 나뭇가지는 다시 수십의 나장들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고 살아남은 자들은 겁에 질려 저 멀리 도망가거나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직 살아남아 있었나? 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마에 손을 얹어 내리쬐는 햇빛을 가리며 거대한 고목나무를 응시하던 염라대왕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게 뭐야.”


담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옆에 있던 곤이 감기는 눈을 끔뻑이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ㅇ.. ㄹ신.”


“곤! 정신이 들어?”


곤의 목소리에 담이 상태를 살피려는데 따갑게 내리쬐던 햇살이 다가오는 나무의 그림자에 의해 서서히 가려지기 시작하였다.


점점 다가오는 나무를 보며 뻣뻣한 줄기를 굽히면 부러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드는 담이었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유연하게 허리를 굽힌 고목은 쓰러져 있는 곤을 향해 생기라고는 없어 보이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뻗었다.


그리고는 마치 부모가 아이를 들어 올리듯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쓰러져있는 곤을 감싸 안았다.


잠시 후, 거칠지만 정겨운 목소리가 산에 가득 울려 퍼졌다.


“한심하군. 겨우... 이 늙은 목숨 하나 부지하고자 나는 이 아이를 사지로 내몬 것인가.”


나무껍질 틈에 파묻힌 작지만 초롱초롱한 눈이 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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