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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2021.05.26 20:5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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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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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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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DUMMY

18.


현망(現蝄)산.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 산의 원래 이름은 울목(蔚木)산이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자라는 숲.


그 숲이 울창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목호(엔트족)들과 나무 정령 목랑들, 그리고 기꺼이 대를 이어 산을 보살펴주는 산의 정령 산산동까지.


한 때는 낙원이라 불렸던 이곳이 언제부터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이라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해 그 흐름에 대한 기본적인 감조차 잊어 버렸으니까.


그저 시발점이라 할 사건이 있다면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인간들이 산에 올라와 무차별적으로 나무를 베고 있었다는 것이다.


숲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목호족의 주된 일이라지만 다른 생명과의 공존, 화합을 이루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다보니 조금의 희생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적정선에서 멈추지 않았고 곧 야산 하나가 민둥산이 되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우리는 숲의 구성원들을 모두 불러보아 오랜 시간 회의를 가졌고 그 결과 최대한 대화로 해결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는 인간들이 산에 올라오는 시간대에 맞춰 미리 그곳으로 각 종족들의 대표들을 보냈다.


처음 우리를 본 인간들은 들고 있는 연장과 무기로 공격해왔지만 이내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고는 그 날은 순순히 산을 내려가 주었다.


뜻을 전달받은 대부분의 이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다음날 약속한 장소로 이동하였다.


숲에서 가장 게으르기로 유명한 나를 데려가기 위해 내 오랜 친구들이 새벽부터 찾아와 재촉해댔지만 나는 귀찮다는 변명으로 끝내 움직이지 않았고 그들은 몇 마디의 쓴 소리를 내뱉고는 약속장소로 떠났다.


다른 종족들은 몰라도 목호(木護)족 중에서는 나만이 가지 않았는데 다른 종족들도 비슷한 상황인지 숲에는 고요함만이 맴돌았고 나른한 햇살에 꾸벅꾸벅 졸다 그만 단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코까지 골며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은 친구들도, 장난기 많은 목랑들도,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 코에 들어온 매캐한 냄새였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나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땅을 박차고 나와 교섭 장소가 보이는 언덕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한 곳으로 시선을 모은 채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나 또한 곧 그 이유를 보고야 말았다.


모두가 향한 교섭 장소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물밀 듯이 밀려오는 쾌쾌한 냄새를.


당장에라도 뛰어가려했지만 곁에서 지켜보던 목랑(木朗)들이 뜯어 말렸다.


결국 밤이 되고 인간들이 산을 내려간 뒤에야 그곳으로 간 우리는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가족과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이이....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왜애... 왜?”


“그... 흐윽.. 그게...”


곁에 있던 어린 목랑에게 물어봤지만 그녀는 터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더니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오는지 자꾸만 가슴을 쥐어뜯는 그녀의 가녀린 손을 뒤에 있던 누군가가 살며시 어루만져 주었다.


“숲을 떠나란다.”


“구희.”


이 주변 산에서 가장 오래 산 나무의 정령, 목랑 구희가 여느 때보다 싸늘한 말투로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이게 거절에 대한 대답. 더 놀라운 게 뭔지 아나? 오늘 산을 오른 인간은 한명 뿐이었다.”


“산산동(山産童). 산을 수호해야 하는 산산동은 어디서 뭘 하는 게야?”


말없이 한 쪽을 가리키는 구희의 고갯짓을 따라가자 한 남자의 시체를 껴안고 울부짖는 산산동 하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내 눈은 이제껏 살아온 그 어떤 순간보다도 커져있었다.


“아아......”


하름이의 품에 안겨있는 이는 그녀의 남편이자 나와 가장 친했던 목랑 아빈이었다.


많은 나이 차이는 물론, 나 못지않게 오랜 시간을 살아온 친구들도 감당하기 힘든 내 괴팍한 성격에도 숲의 구성원들 중 거의 유일하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아이다.


아빈이의 죽음을 확인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자 그제야 왜면하고 있던 친구들의 시체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펑펑 울고 있는 이곳에서 나 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 라고 다짐했건만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은 나는 까맣게 타버린 친구들의 사체를 어루만지며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렸다.


“우우아아아!!!”


당연한 것.


누구에게나 하나 혹은 그 이상 있을 것이다.


당연히.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그것, 그 사람.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이들은 그것을 잃기 전까지 당연한 것의 소중함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때문에 남은 삶을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있어 당연한 것은 영원과 유사한 삶을 곁에서 함께해주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 지금, 나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단념했다.


밤을 새서 죽은 이들을 모두 묻어준 다음날, 산은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산의 정령인 산산동 하름이가 자신의 책무를 내려놓고 어린 딸을 혼자 남긴 채 야밤에 도주해버린 것이었다.


숲의 구성원들 대다수가 죽어버린 지금, 존재자체만으로도 산의 생사여부를 가린다는 유일한 희망마저 사라져버리자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항전의지는 급속도로 와해되었고 숲은 금세 시들어 결국 산 전체가 죽어가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전처럼 시끄럽게 재잘대며 산을 활보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인간들이 내릴 죽음을 기다릴 뿐.


나 또한 이제 곧 닥칠 죽음에 대한 초조함에 뿌리만 동동 구를 뿐,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물론 자신이 태어난 나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목랑들과 다르게 목호족인 나는 도망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먼저 떠나버린 친구들을 생각하자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떨면서도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방해꾼이 사라진 인간들의 작업속도는 점점 빨라져 곧 내 코앞까지 이르게 되었다.


죽음을 앞둔 그날 밤, 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어차피 곧 죽을 목숨. 살아있다는 느낌을 조금 더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도중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숲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인간들이 오기엔 이른 시간.


게다가 최근 들어 나무를 베러오는 인간들을 제외하면 이 숲을 방문하는 이가 거의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낯선 이를 지켜보았다.


그러자 조금 뒤, 보통의 인간들과는 다른 큰 덩치에 머리에 4개의 뿔이 나있는 도깨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듣기만 했을 뿐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낯선 이의 정체가 도깨비라는 것을 안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젊은이”


아무도 없는 숲에서 말이 들리자 화들짝 놀라 주변을 경계하던 도깨비는 이내 나를 보고는 다가와 예를 갖췄다.


“목호족을 뵙니다.”


그런 도깨비를 보자 사라졌던 자신감이 차오른 나는 그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이미 이전에 수없이 거절당한 기억이 있던 지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데 뜻밖에도 그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그는 어김없이 나무를 베러 숲에 들어온 인간들을 몰아내주었다.


다음날, 또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


여러 날이 지나도 도깨비는 숲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산을 지켜주었다.


힘든 상황에서 어떠한 요구도 없이 도와준다는데 그런 호의를 거절할 이가 몇 있으랴?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나와 남아있는 숲의 구성원들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그를 대접해주었고 도깨비는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철벽이 되어 산을 보호해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어느덧 인간들은 산에 올라오는 것을 포기했다.


이때다 싶었는지 구희도 하름이의 어린 딸이 산산동의 책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고 산도 회복에 나섰다.


그동안 도깨비와 나 사이의 관계도 진전되어 우리는 서로를 어르신과 아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숲이 점점 활기를 되찾아가던 어느 날, 완전 무장을 한 인간 두 명이 숲에 들어왔다.


자신들을 왕이라고 칭한 둘은 산 도처에 깔려있는 도깨비불들의 환각을 떨쳐내고는 기어코 아이에게 칼을 겨눴다.


며칠 동안이나 이어질 만큼 팽팽한 혈투 끝에 아이는 힘겹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두 명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그 힘도 힘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승리 후, 아이가 취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진심으로 앗아가려던 둘을 산 아래로 순순히 내려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한 건 없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나는 그 이유를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몸을 신음소리와 함께 내 품에 뉘인 아이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기회는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잠에 빠져든 아이의 얼굴을 나는 한참동안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잘 버티고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하~아아 쩝쩝.”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에 아이가 입맛을 다시며 몸을 뒤척이자 나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애걸복걸하며 이 아이를 어떻게든 붙잡아두려던 내가 숲을 떠나라며 슬며시 권유한 것이.


하지만 아이는 끝내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우려하던 그 때가 오고야 말았다.



**********



살짝만 힘을 주어도 부서질 것 같은, 건조한 나무껍질에 파묻힌 작지만 초롱초롱한 눈이 곤에게서 담으로 시선을 옮겼다.


“너는 이 아이를 어찌할 생각이냐?”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고목에 담은 흠칫 놀라면서도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그의 두 눈을 마주보고는 말했다.


“살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돌아온 거니까요.”


기합이 잔뜩 들어간 담의 두 눈을 잠시 노려보던 고목은 티 나지 않는 미소를 짓고는 홀가분한 말투로 말했다.


“됐다. 그거면 됐어.”


그러더니 서서히 굽혔던 허리를 펴 슬금슬금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나장들을 둘러보다가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소년! 아이를 데리고 가거라. 어서!”


그와 동시에 휘두른 굵은 나뭇가지 서서히 구축되던 포위망을 삽시간에 무너뜨렸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줘어~”


““아아아아악!!”“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과 허공에 떠있는 사람의 숫자가 엇비슷한 아수라장 속,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던 담은 곤을 부축해 뻥 뚫린 포위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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