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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2021.05.26 20:5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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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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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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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20화.


어두컴컴한 동굴의 입구를 지나 바깥으로 나가자 먼저 나간 소녀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갈까?”


담이 나오는 것도 몰랐는지 화들짝 놀란 소녀는 이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길도 잘 모르면서.”


‘뭐지? 소심하면서도 공격적이네. 은지한테 처음 말 걸었을 때랑 똑같잖아?’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은 볼 수 없는 여자친구 은지.


자신과 만나기 전, 그녀는 이미 학교에서 유명 인사였다.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뺏겨본 적 없는 초초초! 우등생이자 또래 여자애들과 달리 sns나 화장 등은 일체 하지 않으며 오직 낡은 머리띠 하나로 긴 머리를 묶고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는 그녀에게 동성들은 시기와 질투를, 이성들은 또래와는 다른 매력을 느끼고 접근했다.


하지만 은지를 향한 그들의 호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가면을 쓴 것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무표정과 단답식의 대답이 그 이유였다.


뭘 물어봐도, 놀려도, 시비를 걸어도, 농담을 던져도, 그녀는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하고 딱 자기 할 말만 하였다.


“미안. 나 공부해야 돼.”


덕분에 여자애들은 그녀를 어려워하거나 거만하다는 이유로 따돌렸고 남자애들은 그녀의 표정을 바꾸고 싶어 짓궂은 장난도 스스럼없이 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주변을 정리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다.


이런 그녀가 걱정이 된 담임선생님이 반장이자 그녀를 제외한 반 누구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나에게 부탁을 하였고 그렇게 우리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걸었을 때랑 얼추 비슷했다.


“하아.. 되게 쪽팔렸는데.”


숲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회상에 빠진 담을 한동안 지켜보던 소녀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소심한 손길로 담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늦으면 구희언니한테 혼나.. 빨리.”


그제야 회상에서 빠져나온 담은 작은 키의 소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구희언니? 그게 누군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담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휙 하고 고개를 돌린 소녀가 말없이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아, 저 분 이름이 구희시구나. 하하.. 가자! 가! 빨리 가.”


방금 전, 협박당한 기억이 떠오르자 소름이 돋은 담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숲을 돌아다니며 약초와 먹을거리를 구할 동안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채집만 하였다.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담이 다가가 말을 걸 타이밍을 쟀지만 그럴 때마다 소녀는 저 만치 멀어졌다.


일부러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돌아가는 길, 어김없이 저 만치 앞서나가는 소녀의 품에서 과일 하나가 빠져나오자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담이 달려가 대신 주워주며 말을 걸었다.


“넌 이름이 뭐야?”


말없이 과일을 받고 다시 앞서가는 소녀의 옆에 착 붙어 묻자 잠깐의 침묵 후, 작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아름이.”


‘다행이다. 대답은 해주는 구나.’


처음 은지에게 말을 걸었을 때는 무시당했었는데. 그때보다는 시작이 좋았다.


“아름이라 하는구나. 그럼 아름이도 사람이 아니라 정령이야?”


그러자 갑자기 아름이가 고개를 팍 치켜들었다.


“왜... 왜?”


“정령도 사람인데.”


“어.. 어. 그래. 그렇구나.”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넘어가겠지만 은지와 몇 년을 함께한 담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저건 소심한 사람들이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 중 하나임을.


만약 저 신호를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갈 경우, 어떤 이들은 한 번에 폭발하여 분출하거나 아님 어느 순간 거리를 두고 사라진다.


그것을 눈치 챈 담은 이유 모를 아름이의 적대적인 태도에 일단은 한 발 물러났다.


“그.. 아름아. 내가 먼 곳에서 와서 여기를 잘 모르는데. 설명 좀 해줄 수 있니?”


그러자 그를 노려보던 아름이가 한숨을 푹 쉬더니 앙증맞은 손으로 주변에 있는 돌을 두드렸다.


신호를 알아들은 담이 돌 위에 앉자 아름이가 옆에 앉으며 물었다.


“아저씨는 뭘 하고 살았길래 이런 것도 몰라요?”


‘아저씨.....’


17살의 나이에 아저씨라 불리다니.


마음에 상처가 났지만 그렇다고 이런 어린애한테 오빠라고 불러 달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는 티내지 않고 못들은 척 넘어갔다.


“언어를 사용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종족 전체를 사람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정령인 저도 사람. 인간인 아저씨도 사람이죠. 인간만이 사람이 아니라구요.”


이 세계의 상식을 가만히 듣던 담은 마지막 문단에서 아름이가 자신을 적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정령임을 밝혔다.


그리고 교역로를 핑계로 이 산을 잿더미와 민둥산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염라대왕.


‘하긴 산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게 인간인데. 호의적이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거지.’


명확한 두 사실을 나열해 놓고 보니 너무나 쉬운 문제였다.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근데 산에 박혀있는 저도 아는 사실을 아저씨는 왜 몰라요?”


‘사실대로 말하면 믿어주긴 할까? 아니, 애초에 이해도 못하겠지.’


꽤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담은 저도 모르게 피식 코웃음을 쳤다.


이런 어린 애한테까지 사정을 떠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진심, 즉 불안하고 약한 모습을 터놓고 내보여줄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과 이것이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물론 그런 속사정을 아름이가 알 리는 없었다.


“왜 비웃어요?”


“아냐! 내가 언제 비웃었어. 아저씨가 좀 멀리서 온 몸이라 그래.”


“멀리서? 설마!”


손뼉을 짝! 치더니 전과 다르게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아름이가 부담스럽게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서쪽에서 왔어요?”


“서쪽? 아, 으응! 거기서 왔어.”


“와아!”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표현이 그저 만화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담은 그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아저씨, 제가 책에서 봤는데 진짜 사실이에요? 서쪽에는 날개 달린 거대한 도마뱀이 막 불 뿜으면서 날아다녀요?”


“그..렇지.”


“달이 뜨면 평범한 인간이 갑자기 짐승으로 변하고?”


“으음.”


“한 쪽은 깃털로, 다른 쪽은 막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단 두 종족이 서로 대립도 하고!”


“으어..”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열변을 토해내는 아름이의 모습은 참으로 아이다운 반응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름 명확했던 담의 대답은 양심에 찔려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좋으면 한 번 가보지 그래?”


더 물어볼까 무서워진 담이 화제를 돌리고자 꺼낸 말.


그런데 그 말이 문제였는지 아름이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고 담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럴 수 없어요.”


아름이의 어깨가 눈에 띄게 축 쳐졌다.


“왜?”


“전 이 산을 떠날 수 없으니까요. 아니, 떠나서는 안 돼요.”


그 뒤 아름이의 얼굴에는 어린아이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무거운 책임감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담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잠시 내려놓았던 수확물을 집어든 아름이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아름이를 잠자코 지켜보던 담은 불현 듯 달려가 소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많이 놀랐는지 크게 뜬 눈이 보였지만 들어오지 않았다.


과거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얼핏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본, 눈 밑으로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 때문이었다.


“....엄마가 흑... 저를 버렸어요.”


자랑스럽던 엄마가 도망간 시점부터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다.


“산의 정령인 엄마가! 흐윽... 전부 버리고 도망갔어요. 근데 저까지 도망 가버리면 이 산은요? 이 산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떡해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해내는 아름이를 앞에 두고 담은 입을 꾹 닫았다.


쓸데없는 조언보다는 잠자코 들어주는 것이 낫다는 판단 하에서였다.


‘너도 고생 좀 했구나.’


그리고는 놀라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아름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자...


퍼억-


“엌!”


아름이가 그의 단전에 머리를 박았고 그 충격에 밀려 담은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야! 너 무슨....”


“흐윽.. .... 흐그.. 흐아아아아앙!”


“....흠, 괜찮아. 괜찮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애매한 아픔이 몸에 머물렀지만 담은 자신의 품에 안겨 엉엉 우는 아름이의 머리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이 작은 소녀가 잠시나마 보호자의 공백을 느끼지 못하도록.



**********



현망산.


최근 도깨비가 나타난다고 하는 이 산은 하나가 아닌 여러 산봉우리들이 이어진 산맥이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나무들 중 단연코 제일 큰 떡갈나무 앞에 목랑 구희와 곤을 부축한 강림이 멈추어 섰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이 나무는 나무의 정령인 그녀의 탄생지이자 집이었다.


구희가 앞으로 나서 두꺼운 줄기에 손을 대고 영창하자 곧 숨겨진 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들어 온나.”


안으로 들어서자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의 아늑한 공간이 보였다. 덕분인지 가구가 별로 없는데도 썰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구희가 익숙한 손길로 한 쪽에 잘 개진 이불을 피자 강림이 그 위에 곤을 눕혔다.


“네는 쪼매 기다려라. 이놈, 저놈. 어중간하게 치료하는 것 보다 차라리 한 놈에게 몰아주는 게 낫지 않겠나?”


“저는 괜찮습니다.”


“??”


의미심장한 말에 구희가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강림의 어깨를 유심히 보았다. 분명 피가 철철 흐르던 어깨였건만 어느새 벌레처럼 작은, 검은 입자들이 뭉쳐있었다.


게다가 단순 뭉쳐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미세하게나마 움직이는, 그것들이 훑고 간 자리에는 흉터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검은 색이라면 음(蔭)속성. 하지만 제 아무리 음(蔭)속성이라 해도 치유 능력까지는 없을 터.


이때 시선을 의식한 강림이 옷을 끌어당기며 감추자 구희도 더 이상은 묻지 않고 못 본채 넘어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힘과 음 속성의 조화라 불안한 느낌도 들었지만 현재 상황만 놓고 보자면 할 일이 줄어든 것이니 나쁠 것은 없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손을 움직이려는 그때, 강림의 한 마디가 다시 그녀를 멈춰 세웠다.


“탐색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뭐가?”


“저희를 구해주신 이유의 전부가 그 도깨비만을 구한 것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 다 알고 있었나? 언제부터?”


“그 아이를 봤을 때부터였습니다.”


“쯥, 쪼매 기다려봐라. 야는 먼저 살려야 하지 않겠나?”


잠시 후, 치료를 마친 구희가 세숫가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 꿀떡꿀떡 마셨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몸을 타고 흐르며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들을 뻥 뚫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푸하~ 들어봐라.”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강림이 잠자코 있자 구희는 입을 벌렸다.


“이대로 죽치고 앉아 있으면 다 개죽음 당하는 기다. 맞나? 안 맞나?”


끄덕-


“대답이 빨라서 좋네.”


씩- 웃어 보인 그녀가 덩굴을 엮어 만든 둥지모양의 의자를 치웠다. 특색 없는 나무 바닥에 마력을 흘리자 금세 개구멍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불규칙한 입구로 보아 만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산 밖까지 이어지는 땅굴이다. 거기로 나가면 괜찮을 끼다.”


“그렇다면 저희가 해야 것은 무엇입니까?”


강림의 긍정적인 대답에도 무슨 이유에서 인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던 구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입을 열었다.


“아름이도 데려가라.”


“그 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제 앞가림 할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지켜줘.”


“하지만 산의 정령이 대체자도 없이 떠난다면....”


식물은 마르고 동물들은 떠나 결국 산 전체가 죽을 것이다.


“지금도 여기저기 눈치보고 다니는 어린 애한테 그런 무거운 책임까지 지게 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겠나?”


그 순간, 강림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정령이 그녀 자신과 삶의 터전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는 사실을.


“안전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프흡...”


강림의 꺼림 직한 승낙을 들은 구희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까지 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꼭 그러겠다. 나만 믿어라 등 듣기 좋은 말이라도 했으련만 눈앞의 남자는 너무 솔직했다.


물론 그런 점이 오히려 믿음직하기도 했다.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마냥 달콤한 말을 내뱉는 사람보다는 현실적으로 말해주는 이들을 더 선호하게 된다.


“금마들이 그 정도 병력을 갖고도 여까지 못 오는 이유는 딱 하나다. 다 죽였다고 생각한 목호족이 나타났으니까. 그래서 저리 꼼꼼하게 수색하는 기다. 근데 그런 놈들이 이리 큰 나무를 보고 그냥 지나가겠나?”


그리 말하며 잠시 숨을 돌린 구희는 삶은 놓은 이들 특유의 초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산은 가망이 없다.”


그런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깔끔해서 좋았다. 괜히 미련을 갖고 갈팡질팡하기 보다는 포기할 건 포기하고 지킬 수 있는 것은 지킨다.


그것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며 그녀가 배운,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입술을 앙 다문 구희가 강림의 앞으로 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렸다.


“잘 부탁한 데이. 우리 아름이.”


그런데 구희가 말을 마친 그 순간,


툭-


그녀의 시야에 여러 종류의 약초와 꽃을 엮어 만든 왕관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 놀란 구희가 숙였던 머리를 들자 곧 그녀의 눈에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아름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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