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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킹이
작품등록일 :
2021.05.14 00:51
최근연재일 :
2021.05.26 20:5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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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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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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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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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4화

DUMMY

24.


강림을 필두로 산을 오르고 내리길 반나절,


“어? 저기...”


점심때가 되자 드디어 산 아래에 마을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초가집이지만 드문드문 기와집도 있는 것이 꽤나 규모가 큰 마을 같았다.


담에 뒤이어 마을을 발견한 곤과 아름이의 입 꼬리가 한껏 올라가는 와중, 강림의 한 마디가 그들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먼저 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보따리에서 얼굴을 가릴 삿갓을 꺼낸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몰골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기 때문.


실제로 강림은 마법을 부여한 보따리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 갈아입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때문에 담과 곤은 여기저기 찢기고 피가 낭자한 채였으며 아름이는 아직도 나뭇잎을 엮어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추격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 꼴로 마을에 내려간다면 나 여기 있으니 잡아가라. 라고 홍보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이제까지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해 모두가 지쳤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강림은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 눈대중으로 사온 옷가지를 나눠 주었다.


“곤.”


“으음.. 좋군.”


곤에게는 움직이기 편한 도복을,


“꼬맹아.”


“와.. 예쁘다.”


아름이에게는 척 봐도 비싸 보이는 비단 옷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담.”


“어어...”


담에게는 여기저기 기운 누더기 옷을.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별 말 없이 갈아입었지만 담은 꺼림직 한지 중간 중간 멈칫거렸다.


비단옷을 입다 여기저기 때가 낀 누더기 옷을 입으니 그럴 만도 했다.


불만은 없지만 의문은 있는 상황.


이를 눈치 챈 강림은 환복을 끝내고 내려가는 길에 그 이유가 포함된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먼저 그의 전제는 추격자가 있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졌다.


“옷은 갈아입었지만 이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면 금방 눈에 띌 거야.”


성인 둘에 거한 하나. 그리고 조그마한 어린아이.


물론 주민들에게 있어 그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여행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하지만 꽤 독특한 조합인지라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박힐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추격자들이 그들의 경로를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림은 둘씩 짝을 지어 나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자 옷이 다른 것도 그런 이유야.”


그리고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개개인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먼저 아름이와 곤이 한 팀으로, 비단 옷을 입은 아름이에게는 몰락한 양반가문의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 역할을. 도복을 입은 곤에게는 그런 아가씨를 지키는 호위무사 역할이 배정되었다.


“제가 부잣집 아가씨요?”


자신이 살아온 삶과는 정반대되는 배역이 부담되는지 설명을 듣던 아름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강림은 소녀의 손에 복주머니를 쥐어주며 말했다.


“괜찮아. 너는 평소대로만 하면 되니까.”


평소에 하던 대로, 낯을 가리면서도 특유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인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타인에게는 귀하게 자란 아가씨로 각인 될 것이리라.


다음은 담과 강림으로 강림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상인역을, 담은 강림에게 구매된 노예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담의 옷이 누더기였던 것.


‘그냥 돈이 부족했던 거 아니야?’


강림의 설명에 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합리적인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산 중턱에 도달하자 일행은 다시 한 번 각자가 맡은 역할을 상기하고 헤어졌다.


곤과 아름이는 길을 따라 곧장 마을로 향했고 담과 강림은 쭉 뻗은 능선대신 인적이 드문 산길을 탔다.


곧장 내려가면 마을이건만, 굳이 가파른 산길을 탄 이유는 옷을 바꿔 입은 것만으로는 구실이 부족하다는, 담의 의견이 수렴된 탓이었다.


하여 곤과 아름이가 곧장 마을로 들어서는 것과 달리 둘은 반대 방향에서 들어오기 위해 산을 빙 둘러갔다.


이렇게 되면 마을에 들어선 방향과 시간이 다르게 되니 같은 일행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제법 그럴 듯한 구실이 생긴다.


먼저 마을에 도착한 곤과 아름이는 곧장 주막으로 향했다. 마을 내 유일한 주막이라 그런지 다섯 개의 방 중 벌써 세 개가 차있었다.


방 하나를 잡고 난 뒤, 곤은 아름이를 두고 혼자 옷가게로 향했다.


마을에 머무는 동안 강림이 산 옷을 계속 입고 있을 수도 없거니와 앞으로의 여정에는 여벌의 옷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 강림과 담이 주막에 도착하자 그들은 우연을 가장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재밌는 점은 담이 표면적으로 노예 신분이라 일행과 함께 겸상을 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노예의 처지를 잘 모르는 아름이가 극구 반대하며 간장 종지에 맨밥을 비벼먹을 뻔한 신세를 겨우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식사가 끝난 뒤, 강림은 아름이에게 엽전 몇 푼을 건넸다. 그리고는 자신과 곤은 따로 갈 곳이 있으니 담을 데리고 변두리에 위치한 엿 가게에 가보라고 했다.


누군가 본다면 귀여운 아이에게 간식을 물려주고픈, 인정 많은 어른의 씀씀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아름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숨겨진 속내를 찾아 가게로 향했다.


그렇게 물어물어 도착한 엿 가게 앞.


그러나 소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약 다섯 걸음을 더 걸어 바로 옆 가게로 향했다.


서걱! 서걱!


그리고 동시에 강림이 왜 이곳으로 자신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망의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나무를 깎아내는 목공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인기척을 느낀 그가 아름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 아씨?”


머리가 희끗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존대를 하자 아름이는 자신의 역할도 잊고 저도 모르게 존댓말로 답했다.


“잔.. 하나만 만들어주세요.”


“예?”


“아! 그...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가볍게.”


두서없는 요구지만 남성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질문을 건넸다.


“용도가 어찌 되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씨앗을 심을 것이다.”


“아!”


아름이의 당당한 대답에 남성의 입 꼬리가 대번에 올라갔다.


흙도 만져본 적 없을 것 같은 귀한 집의 아가씨가 체험을 하고파 직접 가게에 방문한 것이 여간 귀엽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


이후 약 세 번의 문답이 오가고 나서야 아름이의 의중을 알아챈 목공이 신음을 흘렸다.


“흠.. 아가씨께서 직접 들고 다니실 나무 화분이라...”


“불가능한 걸까?”


순식간에 아름이의 일자 눈썹이 폭 가라앉자 목공은 절대 아니라는 듯이 손을 힘차게 내저었다.


“어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원하시면 해드려야죠. 다만 나무로 만들어 드리는 것이니 주기적으로 교체해주셔야 합니다.”


“알겠어.”


“그럼 쇤네가 내일 오후까지 만들어 두겠습니다.”


끄덕-


“고마워.”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오자 아름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어느새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소녀의 우아함에 감탄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이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목공과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이제야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의식한 아름이가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푸우..”


인파가 흩어지기를 기다리며 어느 집 돌담에 앉은 아름이가 참아왔던 숨을 푹 내뱉었다.


대화도 매끄럽게 잘 이어가고 의견 피력도 곧잘 하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름 긴장한 모양이었다.


“아저씨, 저 괜찮았죠? 하나도 안 이상했죠?”


“어. 너 진짜 잘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밤에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축 쳐져있던 아름이의 어깨가 지나치게 올라와 있었다.


무리하는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스스로 잘 이겨낸 아름이가 대견했던 나머지 담은 자신의 신분도 망각한 채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엿 먹으러 가자.”


내포된 의미와 달리 어감이 좀 이상했지만.


“네.”


수줍게 웃은 아름이는 담의 의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



“이거 정말 맛있어요.”


“그래. 그래.”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르는 아름이의 극찬에 담은 헛웃음을 지었다.


엿에 대한 칭찬이 벌써 스무 번은 족히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에 들린 엿은 반을 똑 떼서 복주머니에 넣고 남은 반을 먹는 것인데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산의 정령답게 소녀가 지금까지 먹어온 단맛은 꽃에서 채취하거나 벌꿀을 먹은 게 다라고 하니 그것들과는 또 다른, 자극적인 단맛을 영접한 것이 꽤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물론 이승에서의 더 자극적인 맛을 기억하고 있는 담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냥 딱 어릴 적 몇 번 먹어본 평범한 엿의 맛이었다.


이후에도 칭찬을 재잘재잘 늘어놓는 아름이의 손에 자신의 것을 양보한 담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소녀를 흐뭇하게 지켜보는데.


돌연 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미 한 번 겪어본 느낌.


뒤를 쓱 돌아보자 두 명의 남성이 시선을 급하게 피하며 딴 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자 담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름이의 손을 급하게 낚아채는 바람에 엿이 땅에 떨어져 울상이 되었지만 다시 사주면 그만이었다.


그보다 시급한 문제는 따로 있으니. 바로 마을길이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죄다 회색깔의 평범한 돌로 쌓은 돌담으로 이어진데다 대다수의 세대가 차이점이 두드러지지 않는 초가집이라 구분이 쉽지 않았다.


결국 추격을 피하고자 이러 저리 모퉁이를 돈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방향을 잃게 만들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소란을 피울 수도 없었다.


이곳이 염라대왕의 지배에서 자유롭다고 확신할 수 없는 데다 담의 신분이 현재 노예이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에서 노예의 입지는 진실을 말해도 거짓으로 치부될 정도로 좋지 못했다. 그러니 현재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던 사람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추격자들을 도울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담의 앞에 갈림길이 나타나자 그는 그때까지도 꽉 잡고 있던 아름이의 손을 놓았다.


“넌 왼쪽으로 가.”


“아저씨는요?”


“어서!”


잠시 머뭇거리던 아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담을 쳐다보다 이내 길을 따라 쭉 내달렸다.


직후 발소리가 지척에서 들리자 담은 일부러 그들을 기다리다 모습을 보이고는 우측으로 빠졌다.


“저깄다!”


“빨리 잡아!”


“허억! 헉!”


담은 그들이 자신을 놓치는 일이 없게끔 직선으로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마다 동반되는 서늘함에 몇 번이고 멈추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목에 걸린 은반지를 매만지며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갈림길에서 멀어지자 살짝 열린 어느 집 뒷간 문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확 찔렀지만 가을이라 그런지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후, 그와 마찬가지로 거친 숨을 내뱉는 두 명의 남성이 고개를 휙휙 돌리다 제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아이씨! 어디로 간 거야!”


“야, 어차피 노예야. 있는 거 다 털어봤자 밥 한 끼도 못 사먹을 걸? 차라리 여자애나 찾으러 가자.”


“근데 그 애 건드려도 괜찮을까? 괜히 일 커지는 거 아니야?”


“괜찮다니까 그러네. 곁에 있는 덩치 큰 호위무사는 그 노예새끼 주인이랑 딴 곳으로 갔어. 그동안 벌어진 일이니까 그 노예한테 다 덮어씌우면 돼.”


대화를 엿 듣던 담은 이들이 염라대왕이 보낸 추격자가 아닌 단순 강도임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노예가 무슨 말을 하든,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어?”


잠시 숨을 고르던 강도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 사라지자 눈치를 살피던 담은 조용히 뒷간을 빠져나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묻고 물어 도착한 주막.


황급히 방문을 열어젖혔지만 그의 시야에 담긴 것은 가지런히 정리된 이부자리뿐이었다,


이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억센 손아귀가 그의 어깨 위에 얹어졌다.


“돌아왔군. 근데 아름이 어디 있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각종 약재를 들쳐 맨 곤과 강림이 함께 서있었다.


“아름이.. 아직 안 왔어?”


“무슨 소리야? 너랑 같이 갔잖아.”


“““....”””


짧은 침묵이 흐르고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세 남자는 너나 할 것 없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



숨바꼭질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아니 어쩌면 날이 일찍 어두워져서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의 밤은 여름보다 일찍 찾아오니까.


“아가씨~ 어디 계세요?”


“야! 징그럽다. 징그러워.”


점점 범위를 좁혀오는 강도들의 발소리에 아름이는 입을 틀어막고 호흡을 정리했다.


헐떡이는 소리를 그들이 듣지 못하도록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는 몸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모래가 섞인 땅바닥과 몸이 만나 생긴 마찰음을 들었는지 여기저기로 퍼지던 발소리가 방향을 바꿔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망가기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곧게 편 그때, 아름이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와.]


성을 구분할 수 없는 의문의 목소리에 아름이가 주변을 살피자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는 다시 한 번 아름이를 불렀다.


[여기야.]


목소리는 초가집과 높은 담벼락 사이, 좁은 틈새에서 들리고 있었다.


외진 곳이라 다른 곳보다 유난히 어둡지만 신기하게도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홀린 듯이 다가가 몸을 끼워 옆으로 걷자 곧 소녀의 앞에 벽의 한 면을 전부 뒤덮은 덩굴이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목소리는 덩굴에서 파생되고 있었다.


“네가 나를 부른 거야?”


8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숲에 살았지만 목호족을 제외한 식물이 말을 건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하여 묻는데.


[내 밑으로 들어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못 들은 것인지 덩굴은 자기 할 말만 하였다.


저벅- 저벅-


“아가씨~”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얘기한 것처럼 가까웠다. 아마 모퉁이를 돌면 바로 보일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아름이는 몸을 쭈그리고 벽에 머리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무성한 덩굴에 가려져있던 개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한참이나 사용하지 않았는지 모서리에는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었다.


의도치 않게 그들의 집을 망가트린 아름이는 몸이 완전히 통과되자마자 벽에 허리를 기대고 숨을 죽였다.


“뭐야? 어디 갔어?”


“야, 네가 여기 있다며. 어떻게 할 거야?”


“아니, 분명 여기에 있었어... 봐! 그 애가 들고 다니던 복주머니잖아.”


적잖이 당황해하는 강도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소해하는 것도 잠시 그들 중 한 명의 입에서 나온 복주머니라는 말에 아름이는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분명 달려있어야 할 복주머니가 만져지지 않았다.


‘어떡하지?’


사실 복주머니 안에 든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곧 강도들의 깊은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뭐.. 뭐야 이거.”


“아니, 뭐 이런 걸 들고 다녀?”


그도 그럴 것이 돈이 한 가득 들었을 것만 같은 고급진 복주머니 안에는 중지 손가락정도 되는 엿 한 개와 도토리만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름이에게 그것들은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혹여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해하며 잘 때도 도토리를 움켜쥐고 자던 자신을 위해 강림이 사다 준 복주머니와 엄마와 다름없이 자신을 키워준 구희가 남긴 도토리.


그 둘에 남겨진 따스함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던 아름이가 몸을 돌려 다시 구멍을 빠져나가려는데...


“ㅅ... 어.”


별안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대를 쥐어짜듯 내는 신음과도 비슷한 소리에 공포에 질린 아름이가 떨리는 눈동자로 고개를 들자 툇마루에 한 남성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눈을 까뒤집고 흰자위를 드러낸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몇 초간 남자를 응시하던 아름이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만보고 싶은데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온 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여주지 않은 탓이다.


“끅-”


그런데 죽음을 목도하고도 모른 척한 대가인지 돌연 아름이의 입에서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숨도 참아보고 가슴을 콩콩 쳐보기도 했지만 결국 딸꾹질은 눈치 없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소리에 반응한 누군가의 인영이 툇마루에 나타났다.


인기척을 느낀 아름이가 눈꺼풀을 밀어내자 소녀의 시야에 담긴 푸르스름한 하늘은 곧 짙은 어둠으로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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