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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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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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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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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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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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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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칠흑의 소녀

DUMMY

한 남자가 묶여있다.

단두대에. 목을 내밀고.


“네 녀석만 없었으면······!”


칼날이 떨어졌다.

머리가 분리됐다.


풍경이 바뀐다.


시체가 쌓여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풍경이 바뀐다.


재가 흩날린다.

까맣게 탄 불기둥이 넘어진다.

매캐한 연기가 아지랑이에 뒤섞인다.

피가 흐른다.


“편히 쉬도록.”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본다.

수많은 사슬이 날아온다.

팔, 그리고 다리를 속박한다.


풍경이 바뀐다.


...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눈을 뜬 요한은 주위를 살폈다. 처음 보는 기계들이 널려있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병원은 아닌 것 같았다. 전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살아있을 적에 이러한 연명장치들은 없었다.


‘지금도 살아있기는 하지만···’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자각했다. 그리고는 서서히 의식을 복구해갔다. 소실된 기억들이 다소 있었으나, 대부분은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름은 요한. 용사였다. 지금도 그러한지는 알 수 없었다. 나이는 기억나지 않았다. 영겁 같은 숙면에 빠지기 전부터 잊고 살아왔다.


“일어나셨네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바라보니 흑색의 여자가 있었다. 허리춤까지 기른 검은 머리칼과 허무를 집어삼킨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가까우면서도, 조금 먼 거리. 손을 뻗더라도 닿지 않을 그곳에 그녀는 멈춰섰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매에 칼은 빼줘.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그걸 어떻게 믿죠? 당신이 제게 욕정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잖아요.”


그녀는 태연하게 농담을 내뱉었다. 그것은 지어낸 여유였다. 살면서 저절로 배어든 습관인지, 아니면 끝없이 스스로를 기만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할 작정이었다면 진즉에 했어. 네가 날붙이 하나 지니고 있는다고 해서 바뀌는 일도 없을 거야. 너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어.”


요한은 무덤덤하게 직고했다. 자만도 허세도 아니었다.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다만,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자존심을 죽이고, 상황에 따를 수 있는가.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내려놔.”


요한은 처음 보는 소녀의 성격을 찬찬히 파악하고 있었다. 호흡, 시선의 처리, 손짓, 허리의 뒤틀림. 그밖에도 그녀에 대한 온갖 정보를 끌어모았다.


“······알겠어요.”


한참을 망설인 소녀가 칼을 내려놓았다.


“허······”


칼의 모습을 본 요한은 짧게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려놓은 칼에는 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타원형의 쇳덩이였다.


“이제 됐나요?”


칠흑의 소녀가 싱긋 웃어보였다.


“서프라이즈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마땅히 예산이 남질 않아서요.”

“출전식보다 훨씬 재밌었어.”

“그거 다행이네요. 감히 용사를 환영하는데 같잖은 장난질이냐고 화내실까봐 걱정했거든요.”


요한은 입을 다물었다. 소녀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용사 중에 그런 녀석은 없다고. 정정하는 것은 망집이었다.

달력의 숫자들은 요한의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150년이 넘는 세월을 더해놓았다. 요한이 알았던, 요한을 알았던 인물들은 전부 세상을 떠났다. 죽은 자를 논해봤자 기뻐할 이는 없었다.


“이제 질문해도 될까?”


화제를 넘겼다.


“좋아요. 모르는 것 말고는 전부 알려드릴게요.”

“원초적인 것부터 시작할게. 여기는 어디지?”

“제 개인 연구실이에요. 구하려고 빚까지 냈죠.”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은 없었다.


“국가가 간섭했나?”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았어요. 전부 제가 하고 싶어서 벌인 일이랍니다.”


이 또한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위화감은 떨쳐낼 수 없었다. 애매했다. 과연 그녀는 하고 싶었던 게 맞을까.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요한을 되살려놓은 걸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일어선 요한을 본 순간 희미하게나마 기뻐했어야 했다. 그러나 소녀는 그러지 않았다. 서프라이즈라는 명목으로 요한을 시험했다.


‘사정이 있다는 건가······’


그녀에게는 무언가 목적이 있다.


‘나는 그걸 이루기 위한 도구겠지.’


연구와 도전에 열과 성을 다하는 열혈의사의 손에 걸려 기적 같이 되살아날 수 있을 정도로 요한은 재수 좋은 인간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그 순간조차도 하나의 도구로서 서있던 사내였다. 처지가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생명의 은인이었다. 은혜는 갚아야 한다고, 몹시도 짧았던 유년 시절의 부모에게 배웠었다.


“내가 할 일은 뭐지?”


그것이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요한은 제법 현세에 적응했다. 가벼운 재활로 장을 보러 갔다 오는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굳어있던 움직임이 점차 부드러워졌고, 물가와 상식의 변천에 적응했다.

여러 가지로 익숙해져가고 있는 그였으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넘쳐나는 노숙자와 지나친 인구밀집 현상만큼은 오랫동안 의아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전쟁 당시보다도 굶주린 이가 많았다.


‘무엇을 위해 싸웠던 걸까······’


허무가 차올랐다.


“인류는 정전이 되고나서부터 계속 빼앗기기만 했어요. 토지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도. 지금은 농사지을 땅도 남아있고, 노예보다 조금 나은 처지지만······이대로 가다가는 그마저도 잃겠죠.”


저녁의 식탁에서 그녀가 말했다. 알려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아마 그녀의 목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만을 묻어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났다. 그녀는 요한에게 설거지를 부탁했다. 요 일주일간 그녀가 내린 지시는 전부 가사였다. 청소와 빨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요한에게 설거지를 맡긴 소녀는 언제나처럼 때 묻은 매트릭스에 드러누워 낡은 문서들을 읽었다.

아무래도 빚을 갚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가정부가 필요한 거였다면, 그냥 고용하는 편이 더 싸게 먹혔을 텐데.”

“나름의 배려예요. 전장에 일생을 바친 용사님에게 일상을 맛보여주는 거라고요. 제법 달콤하지 않나요?”

“그건 고맙지만, 설마 나보고 빚을 갚아달라고 하는 건 아닐지 걱정돼서. 아무 일도 안하잖아, 너.”

“걱정 마세요.”


그녀가 히죽 웃었다. 시계를 바라보며.


“설마가 사람 잡으니까요.”


-쾅쾅!


“야! 이년아! 빚 갚아라! 오늘도 없으면 기어코 창녀로 만들어주마! 아주 없기만 해봐!”


성난 남성이 소리쳤다. 쉴 새 없이 두드리는 주먹은 안 그래도 허술한 문을 부수려는 기세였다.

치욕적인 욕설을 두 귀로 듣고 있음에도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싱글벙글 웃으며 문서들을 가지런히 앉혀놓았다.


“자, 그럼 실력을 보여주세요. 소울 이터.”


작가의말

 미흡하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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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2 2 11쪽
14 필연 21.06.02 37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7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2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4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0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5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6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 칠흑의 소녀 +1 21.05.14 221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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