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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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4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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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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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DUMMY

그 왕도에는 왕이 없다. 때문에 왕이 사는 성도 없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정전 이후 지속적으로 권위를 잃어가던 인간족은 결국 왕을 잃었다. 왕실이 사라지고, 중추가 되던 귀족들이 의회를 만들어 힘겹게 현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리가 있을 틈도 없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무너질 것이 자신들이라는 걸 아는 귀족들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잃지 않기 위해. 사라진 왕실의 터전에 아카데미를 건설하고, 전력으로 지원하고 있다.


“결전제라고 해요.”


수많은 인파를 헤집고 나아가며 레나가 말했다. 왕이 없다고는 해도 왕도는 왕도였다. 군인이 있고, 마차가 있고, 노점이 있다. 어느 나라이건 수도라면 당연해야 하는 풍경이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 수인에 팔란타까지. 다섯 종족들은 정전과 함께 결전제로 갈등을 해결하도록 조약을 맺었어요.”


말이 갈등이지 실은 절대적인 명령권과 다름없다고 레나는 덧붙였다.


“과도한 요구를 막기 위해 용족이 중재를 하지만, 인간은 계속 지기만 하니까요. 그들도 이제는 변호할 수 없는 처지에요.”

“그래서 토지를 뺏기고, 노예보다 조금 나은 처지라고 했구나.”

“네.”


그렇지만.


“이제는 달라지지 않겠어요?”


레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요한을 바라봤다. 결전제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짐작하고 있었다. 어째서 왕도에 왔는지, 어째서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하는지.


“나를 내보내는 건가.”

“요한이라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타국을 향한 절대적인 명령권. 토지를 원하면 토지를. 노예를 원하면 노예를. 도가 지나치지 않는 요구라면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승자의 권리. 그것이 필요하다고 레나는 말하고 있었다.


『편히 쉬도록.』


요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신은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용사는 분명 최강의 인간이다. 하지만 최강의 생물은 아니다.

엘프의 마법에 죽고, 드워프의 탄환에 죽는다. 아무리 막강한 파괴력을 지니더라도, 그 신체의 내구력은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인의 힘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팔란타의 주술에 저항하지 못한다.

가장 나약한 종족의 최강. 그것이 용사다.


“반드시라고는 못하겠네.”

“어머, 진짜요?”

“응.”


전쟁이 끝났고,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해서 타종족의 전력이 쇠퇴했으리라고는 도저히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발전을 거듭하지 않았을까.

엘프의 마법은 기발해졌고, 드워프의 기술은 한 층 더 정교해졌으리라. 수인의 무도는 간결해졌고, 팔란타의 주술은 확실해졌으리라.

그러나 인간은 발전하지 못했다.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소울웨폰의 한계였다. 끝없이 시대에 뒤쳐진다. 진보라고는 없다. 오로지 타고난 영혼의 소유자를 손꼽아 기다릴 뿐.

그러니 역사적으로 패배만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 왔네요.”


레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 차례 고개를 들어 풍경을 살폈다.

부서지고만 성의 터전을 이어받은 아카데미의 드높은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옥한 땅에서 태어난 덩굴식물들은 십 년이란 세월동안 회색의 벽을 녹빛으로 물들여놓고 있었다.

열려있는 성문. 레나는 그곳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봐요, 열려있죠? 새로운 입학생을 맞이하겠다는 의미에요. 아무런 소식도 없이 조용히. 재학생들을 불구로 만든 신입생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수상한 걸 넘어서서 위험해보이기만 하는데.”

“환영받는 거예요, 요한. 제가 뭘 위해서 지난 이틀을 밤새도록 뛰어다녔다고 생각하시나요?”


레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름없는 미소가 눈길을 받아냈다. 검은 눈동자의 아래, 또 하나의 검은색이 물들어있었다.

그런가, 하고 납득했다. 요한의 의식이 떠나있던 지난 이틀간, 레나가 애를 써준 모양이었다.


“전부 고발해서 퇴학시켰어요. 정당방위였다는 인정도 받았죠. 팔을 잃었다는 이유로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나름 통쾌했어요. 소울웨폰을 보지 못한 건 유감이었지만요.”

“고생했구나.”

“딱히 칭찬받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필요해서 한 거죠.”


냉담한 목소리와 달리 어깨가 올라가는 레나였다. 그녀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분명 살랑이고 있었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솔직한 걸?”

“······뭐죠?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그 문장은.”


별 생각 없이 말한 문장에 레나가 몸을 떨었다. 그 반응에 꾸밈은 없는 듯했다. 돋아난 소름을 녹이고자 몇 번이고 팔을 쓰다듬는 그녀였다.

요한은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순수함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악의는 없었어.”

“알아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삼가해주세요.”


일단은 알겠다고 답해두었다. 그리고는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낯선 이의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활짝 열린 철창문의 너머로 금발의 남성이 걸어왔다. 요한과 비슷한, 어쩌면 요한보다도 적은 연령의 겉모습을 지닌 청년.

가식적인 미소를 띠운 채로 푸른 눈동자를 올곧이 향한다. 차분한 걸음에는 기품이 깃들어있고, 반갑게 흔드는 한 손에는 굳은살이 배겨있다.


‘상당히 강해.’


그리고 잘생겼다.

분하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

요한은 가만히 기다리는 레나의 앞으로 나섰다.


“뭐하시는 건가요?”


레나가 물었지만 답해주지 않았다. 그녀를 등 뒤에 놔두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소울 아카데미는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거리가 좁혀지자 청년은 손을 내밀었다.


“학생회장인 밀리엄이라고 합니다.”

“입학지원자인 요한입니다.”


요한은 악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대로 응했다.


‘창술사인가. 특기는 중거리에서의 견제, 그리고 연속적인 공격에 상당히 익숙해. 공방전의 흔적도 많아. 근접전이라고 해서 약하지는 않을 테고, 주로 사용하는 전법은 들어오는 상대를 받아치는 것이겠지. 마지막으로······’


소울웨폰은 변칙공격에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굳은살의 위치와 형태만으로 대부분의 실력은 가늠할 수 있었다. 과거의 전장에서 수많은 전사들과 면식을 가졌던 요한의 잔재주였다.


“당신······”


자신을 밀리언이라 소개한 청년은 말끝을 흐렸다. 잠시간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며 시치미를 떼었다.

그러자, 뒤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레나가 불쑥 요한의 등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

“우와아악?!”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꼴사나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깜짝 놀란 밀리언은 넘어질듯 뒷걸음질까지 쳐가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어라······?”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는지 레나가 드물게 당황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라도 보지 않고서는 지르지 못할 괴성이었다.

그것을 바로 앞에서 들은 요한은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못생긴 마녀도 아닌 흑색의 미녀가 튀어나온 것이다. 반하는 것은 이해해도, 기겁하는 건 도저히······


『솔직해지는 마법을 걸어드리죠.』

『숨 쉬어요, 숨. 그러다 진짜 죽어요.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저한테 감사하셔야겠네요. 비염 치료해줬으니까요.』


도저히······


『솔직하게 말해요. 멀쩡하게 돌아가고 싶으면. 내일이 아내 기일인데, 꽃 한 송이는 갖다 줘야죠. 안 그래요?』


도저히 납득해버렸다.

놀란 새가슴을 부여잡고 헐떡이는 미청년을 향한 호감이 생겨났다. 그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이해한다.”

“뭘요?”

“그런 게 있어.”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요한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 실상을 알지 못했다. 밀리엄이 놀란 것은 순전히 레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단순한 기폭제에 불과했다. 죽음이라 부르기 충분한 괴물을 목전에 두고 간신히 추스른 마음을 찌른 자그마한 바늘밖에 되지 않았다.


“아아······”


심호흡을 거듭하며 진정한 밀리엄이 실성을 내뱉었다.

조금씩 핏기가 돌아오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요한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가식적인 웃음은 지어본 적 없는 그였다.

광대조차 흉내내지 못할, 실로 기이한 표정이 완성되었다.


“히익······!”


이제는 품위도, 기품도 남아있지 않았다. 밀리엄은 그저 몸을 떨었다. 찔끔 흘러나온 눈물이 날카로운 눈매에 맺혀 글썽였다.


“요한, 당신 뭔가 오해하고 있어요.”


레나가 지적했다.


작가의말

 역시 가벼운 분위기가 좋네요... 점심을 나가서 먹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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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4 1 11쪽
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3 2 11쪽
14 필연 21.06.02 37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7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2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4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1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5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6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1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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