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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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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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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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4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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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하트

DUMMY

그곳에는 한 여자가 서있었다. 하늘색이라는 독특한 색감을 지닌 머리칼을 가진 여자였다. 그 외의 특징은 곧장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쐐액!


검이었다. 날이 몹시 얇은 세검. 복도의 한가운데 서있는 주인의 모습을 감추려는 듯, 요란한 경고음으로 요한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콰직!


뺨을 스쳐지나간 세검이 어딘가의 벽에 꽂혔다. 요한은 자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생채기 하나 없이 감촉만이 남아있었다.


“수컷은 데려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살기를 띤 목청이 으르렁거렸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발성이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또 하나의 발성기관에서 우러나오는 울림.

몹시 깊고, 사납다. 자연스레 용을 연상토록 하는 소리였다.


‘드래곤하트인가.’


피부와 뒤섞이듯 돋아난 비늘. 세로로 가늘게 찢어진 눈동자. 용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고서는 지니지 못할 특징들이었다.

요한은 생애 단 한 번, 그녀와 같은 드래곤하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었고, 검을 맞대어보기도 했다. 그러니 이 눈이 틀릴 일은 없다.


‘저건 진짜다.’


드래곤하트의 수명은 대개 300년. 어쩌면, 도서관에서조차 얻지 못한 해답을 그녀에게서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묻고 싶은 질문들이 불현듯 머릿속을 포화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물을 상황이 아니다. 일단 접어둔다.

레나가 앞으로 나섰다.


“어머, 수컷이라뇨. 말이 심하시네.”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꺼져라.”

“레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요한은 레나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눈앞의 용인(龍人)은 손을 뻗었다.

허공이 물결쳤다. 풍경을 일그러뜨리는 물결들의 가운데서 칼날은 고개를 내밀었다. 중력을 망각한 검들은 그녀의 손짓 한 번에 정렬되었다.


“뭐야.”


요한은 당황했다. 현세에 깨어난 이후로 처음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곁을 맴돌며 무수한 끝을 겨누고 있는 각양각색인 검들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전부 소울웨폰인가.’


터무니없다. 그리고,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10초를 주마. 열, 아홉······”

“일단 검은 거둬줘.”


-쐐애액!


입을 열기가 무섭게 한 자루의 검이 날아왔다.

방금 전의 세검과는 달리 날이 예리했다. 하지만 두 번째도 단순한 위협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가벼운 생채기만 나는 정도로 끝나리라.

하지만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옆으로 빗겨가는 검의 손잡이를 덥석 붙잡았다.


“큭······!”


여자가 얼굴을 구겼다. 그녀의 눈빛에 담긴 증오가 한결 짙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한은 붙잡은 검을 흥미롭게 살펴봤다. 어째서 그토록 많은 소울웨폰을 동시 운용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제아무리 드래곤하트라 할지라도, 영혼은 하나. 그러니 한 번에 구현 가능한 무기의 수 또한 하나밖에 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스무 개가 넘는 검과 창을 동시에 운용하고 있었다.


‘영혼으로 구현하는 게 아닌, 이미 만들어진 무기에 영혼을 부여하는 건가.’


검의 구조를 파악한 요한은 감탄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재주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문득 그런 문구가 떠올랐기에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걸로 조금은 상황이 풀어지리라 기대했다.


“대단하네.”

“지금 놀리는 건가?”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듯 여자가 이를 악 물었다. 수치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요한, 지금 그 말은 좀 어땠나 싶은데요.”


등 뒤에 숨어있던 레나가 아하하, 난처하게 웃었다. 역시 인간관계는 어렵다고 새삼스럽게 깨닫는 요한이었다.


“10초. 시간초과다.”


그걸 세고 있었네.


"경고는 했으니 죽어도 할 말은 없겠지."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대화로 해결······”


-쐐애애액!


무수한 파공음이 고막을 울렸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검의 파도는 매서운 살기를 휘감고 있었다.

이래서야 죽이겠다는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가능하면 대화로 풀고 싶었는데.’


말이 통하질 않으니 남은 수는 없었다. 요한은 붙잡은 검의 손잡이를 고쳐쥐었다.

앞을 향하는 것은 검날도, 검의 옆면도 아니다. 휘두를 방향을 고려해서 비스듬하게 각도를 수정한다. 검끝은 하늘을 향해도, 땅을 향해도 상관없다. 아무래도 좋다. 단 한 가지만 명심하면 그만인 기술이다.


“파도잡이.”


-촤아악!


메마른 공기에 파도소리가 울려퍼졌다. 필살의 위력을 지니고 있던 무수한 검의 파도가 단 한 자루, 단 일격에 휩쓸려 떨어져나갔다.

베기 위한 기술이 아닌, 최대의 면적을 긁어 떨쳐내는 기술. 파도는 베고 찌르는 것으로는 잡을 수 없다고, 기술의 창시자는 말했었다.


“······.”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요한은 저릿한 손을 훌훌 털었다. 자신의 기술이 아니다보니 정밀도가 떨어졌다.


“좋은 검이네.”


흠집 하나 남지 않은 검신을 바라보며 요한은 다시 한 번 칭찬했다. 반응을 살펴본 결과, 불쾌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다만 기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요한에게는 헤아리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풍기를 어지럽히는 일은 없게 하도록.”


적의를 거둬들인 그녀는 이내 등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복도에 남은 소울웨폰들은 그녀가 모습을 감춤과 동시에 희미해져 사라졌다. 하지만 어째선지 요한의 손에 들린 한 자루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질 않았다.


“선물인가?”


요한은 낙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언젠가 감사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해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낙천은 불과 3초도 지나지 않아 부정되었다. 꿈도 희망도 용납해주지 않는 레나에 의해서.


“아뇨, 라일 씨는 남성 혐오증이셔서 당신이 만진 물건과는 닿고 싶지도 않다고 여기셨을 거예요.”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될 것을.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 굳이 몰라도 될 사실을 알려준 레나가 원망스러웠다.


“어라, 지금 삐지셨어요?”

“아니.”

“뭐가 아니에요, 입술 나왔으면서.”

“······.”


요한은 입을 가렸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니 남이 보기에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웃음을 참지 못한 레나가 쿡쿡 웃으며 앞을 걸어갔다.

요한은 레나가 미웠다.


...


한산한 밤이었다. 어쩌면 새벽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의 애매한 시간대였다.

침대의 맞은편에서 작은 뒤척임에 요한은 깨어났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전장의 후유증이었다. 레나를 원망하지는 않으나, 오늘따라 뒤척이는 빈도가 잦았다.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창문으로 흘러들어온 달빛이 그 눈가의 작은 이슬에 갇혀있었다. 그녀가 아닌 요한은 그저 슬픈 꿈을 꾸고 있다는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구해줄게요, 내가······!”


레나는 두 손을 허적였다. 무엇을 붙잡으려는 건지, 요한에게는 감도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이 오고, 잠에서 깨어나면 그 부질없는 환상이 허무해질지라도. 한순간이나마 안식을 취했으면 했다.

쉬어야 할 때에 쉬지 못한 마음은 언젠가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지론이었다.


"내가 반드시······!"


끝내 요한은 고개를 돌렸다. 레나를 계속 바라보자니 이유없이 애처로웠다. 그녀가 아닌 어딘가의 어둠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가지마······!”


덥석. 변변찮은 악력이 요한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라.’


이때부터 요한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부드러운 감촉에 파묻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저항할 여지도 없었다.

손목을 붙잡힌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력이 요한을 끌어당겼다. 앉아있던 자세가 무너지고, 강제로 드러눕혀졌다.

레나의 손이 넝쿨처럼 팔을 옭아맸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두 다리까지 동원하여 매달리는 그녀였다.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자신의 손이 끼워질 때, 요한의 이성은 한 차례 흔들렸다.


‘에반데.’


나이는 잊었다 한들, 한창 때의 청년임은 틀림없는 요한. 그는 현재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남자로서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생물학적 본능이 용사로서 살아왔던 요한의 뇌리에 새롭게 탄생하려 하고 있었다.


‘진짜 에반데.’


레나에게는 약혼자가 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한들, 임자 있는 몸에 닿고 있다는 건 변명할 여지없는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무방비한 이성의 몸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인 행위였다.

끝내 요한은 견뎌내지 못했다. 곧바로 자신의 손을 되찾고, 침대로부터 도망쳤다. 닫혀있던 창문으로 돌진해, 열자마자 뛰어내렸다.


"요한?"


홀로 남은 레나는 잠결에 눈을 비비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생겨난 건지도 모를 한 가닥의 바람만이 대신하여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


한산한 밤이었다. 아니, 이제는 새벽이라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확연하게 구분되는, 애매하지 않은 시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있을 새벽. 잠을 자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떼우기에는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요한은 수련장으로 향했다. 별 의미는 없었다. 그곳이라면 누군가 만날 수 있겠거니 싶었다.

터벅터벅 걸으며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이성과 맞닿아본 것이라고는 손, 그리고 주먹과 발과 박치기밖에 없었던 요한에게는 지나치게 강렬한 자극이었다.

아직도 그 감촉이 잊혀지질 않는다.


"태초의 땅에 생명신님 강림하사,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열 척의 용을 창조하시옵고······"


언젠가 들었던 성경을 중얼거렸다. 잔존하던 번뇌가 민들레씨 날아가듯 사라졌다. 실로 엄청난 효과였다.


'종교의 힘은 대단하군.'


괜히 믿는 게 아니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걷다보니 어느 샌가 수련장에 도착해있었다. 그곳에는 한결같이 밀리엄이 서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비슷한 생김새의 누군가와 마주보고 있었다.


'형제인가.'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가문의 수치가!"


요한은 차마 흘려듣지 못했다.


작가의말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반성하는 의미로 이번 주말에도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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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4 1 11쪽
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39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 드래곤하트 21.06.04 43 2 11쪽
14 필연 21.06.02 37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7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2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4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0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5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6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1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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