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정부 살인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terryku
작품등록일 :
2021.05.16 19:19
최근연재일 :
2021.09.17 17:16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300
추천수 :
168
글자수 :
185,619

작성
21.05.17 17:33
조회
185
추천
7
글자
11쪽

#4화 교도소는 지옥?

DUMMY

나는 설정우에게 교도소에 오게 된 경위를 묻기 이전에, 먼저 그의 인생에 관해서 묻기 시작했다.

그게 설정우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순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정우는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75년생으로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설정우는 의정부에서 태어나 의정부 공업고등학교를 마치고 육군 27사단 이기자 부대를 전역한 후, 혈혈단신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외인부대서 7년 8개월을 복무하였다고 말했다.

거기에서 그는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지옥 같은 훈련 그리고 다른 나라 특수부대와 연합훈련 등을 거치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 즈음엔 외인부대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여동생에게 편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설정우는 내가 뉴스에 접했던 내용들과 비슷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동생의 소개로 진여사를 소개받아, 진여사의 보디가드 겸 정켓 카지노의 투자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정우가 말했다.

“제가 필리핀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2005년 8월이었고, 그때 진여사는 카지노 이권 사업에 크게 개입되어 있어 주위에 적이 될 만한 건달들이 많았습니다.”

진여사가 그런 신변보호의 목적으로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의 설정우를 보디가드로 선택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묵묵히 계속 들었다.

“저는 영어도 잘 모르고, 이곳 지리도 잘 몰라서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었지요. 그냥 진여사만 따라다니면서 돈 심부름이나 하고 저녁에 일끝나면 가끔씩 술 마시는 일 외에는 그리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설정우가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설정우의 살기를 느꼈다.

설정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제가 투자한 8천만 원에 대해서, 매달 10%의 이자인 8백만 원을 받는 조건에서 일하기로 했지만, 진여사는 이 투자금에 대한 이자는커녕, 기본적으로 주기로 약속한 월급 500만 원에서도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진여사와 손님이 가끔 주는 팁으로 생활을 했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가 준 그 투자금은 진여사가 도박으로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과 함께 설정우는 입술을 깨뭄과 동시에 자신의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우두득 뼈마디의 소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설정우는 진여사의 행동에 많이 화가 났고, 그 이후로 갈등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예,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나는 그가 말을 하는 중간 중간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온 목적, 즉 사건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설정우는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를 끝까지 빨더니, 길게 연기를 내뿜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마침 제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한국으로 나가려고 공항에 갔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여자 친구에게 공항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걸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차 두 대가 내 앞으로 다가와 멈춰 섰습니다, 그러더니 그 차에서 나온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느닷없이 달려들었고, 위협을 느낀 나는 본능적으로 그들과 싸워 결투 끝에 그들을 제압했어요."

설정우는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자신의 뒷목을 손으로 잡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한 순간, 제 목덜미에서 뭔가 섬뜩한 것이 느껴졌는데······.누군가 총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설정우가 아까 두 남자와 싸우고 제압을 하는 사이에, 설정우의 시야에서 미묘하게 벗어나 기습을 노리고 있던 또 다른 남자의 소행이었다.

설정우는 고개를 떨구었다.

면회 이후 나는 처음으로 그가 힘이 없어 하는 모습을 보았다.

외인부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설정우 라고 해도, 뒷목에 총이 딱 달라 붙어있는 것은 엄청난 공포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그리하여 설정우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잡혀 그들의 차에 강제로 틀어박힌 후 어딘가로 끌려갔다고 했다.

“그런데 놈들이 나를 태우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나의 집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내가 뉴스에서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놈들은 나를 거실문밖에 세워둔 채로, 집안에 들어가 여러 가지 물건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단출한 살림밖에 없는 그의 집에서 남자들이 특별히 건질 물건이 없는지 그냥 빈손으로 나왔다고 설정우는 덧붙였다.


“놈들은 내 휴대폰의 심 카드를 뺏어서 부숴 버리기만 했습니다. 아마 내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것을 사전에 막으려는 행동이었겠지요.”

설정우는 나에게 담배 한 개비를 더 요구했다.

아무래도 사건 당시의 일을 계속 이야기하자니, 본인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의도적으로 진정시켜야 할 모양이었다.

띵-!

나는 그에게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이후 놈들은 창고 같은 곳으로 나를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의자에 나를 묶어 두고 몽둥이로 패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설정우의 눈빛은 종전과는 다른 살기와 분노, 억울함 등의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가 유일하게 알아들었던 말은 ‘Why Kill?(왜 죽였어?) why kill? why kill?(왜 죽였어? 왜 죽였어?) 였습니다. 저는 그 뜻이 뭔지 알았기에 ’I’m not kill. I’m not kill‘(나는 안 죽였다, 나는 안 죽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설중사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진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구타와 린치를 당했던 설정우는 당시의 상황을 가감 없이 고백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그 고문과도 같은 린치에 죽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튼 설정우는 보통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하네.’

당연히도 그것은 그가 외인부대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훈련과 실전에 비롯된 육체의 단련과 인내력과 정신력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설정우라고 해도 지속적인 린치는 당해낼 재간이 없을 터였다.

“내가 정신을 거의 잃기 직전에 한 놈이 어떤 서류를 가지고 와서, 강제로 제 지문을 찍어갔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이 있고 난 후, 그는 놈들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다고 했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 후에 한국 대사관에서 영사가 도착했는데, 영사는 설정우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고 한다.

“영사는 나를 보고, 거기 경찰서에 있는 경찰들한테 맞았냐고 물어 보더라 구요. 나는 그래서 영사에게 얼굴 보면 모르겠냐고, 죽도록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영사가 물어본 것과 설정우가 대답한 것이 그 대상은 달랐지만, 설정우는 엄청난 린치를 당했다는 것을 영사에게 표현했다고 했다.

아무튼 영사는 설정우를 한심하다는 듯 눈빛을 보내고 마닐라 경찰서장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마음이 좀 놓이더라고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영사까지 왔으니 내 억울함이 풀리겠지, 어리석게도 저는 그렇게 믿었었습니다. 그때까지는요······”

설정우는 담배 연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다시금 복잡한 감정으로 뒤얽힌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30분 정도 지나고, 영사, 그 개새끼가 하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부릅뜬 그의 눈이 마치 짐승의 눈빛으로 번들거렸다.

“그 개새끼가 하는 말이, 당신은 필리핀 국민 살인에, 강도 그리고 차량 절도범인입니다, 이러더라고요!”

크게 화를 내고 있지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을 하는 것이, 그때 영사의 말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내가 살인죄라니! 저는 항변했습니다. 영사님 좀 잘 알아 봐주세요! 전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도와주세요! 영사님!”

그는 마치 당시의 상황에 있는 것처럼, 크게 외치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애원을 했는데도 그 개새끼, 아니 그 영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더라고요. 그 이후로 이렇게 미결수로 4년 7개월을 이 쓰레기 같은 감방에서 썩고 있습니다.”

설정우는 회한의 눈빛으로 연신 담배를 빨아대며 억울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나도 그사이 그의 이야기에 몰입된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미결수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재판도 못 받고 교도소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아니 근데 미결수라고?’

미결수는 아직 죄인인지 아닌지 가려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미결수의 신분으로 5년이나 가깝게 이곳에 있는 것일까?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에선 수감 후, 3개월 이내에 재판이 이루어져 무죄인지 유죄인지, 가려진다 들었는데 4년 7개월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긴 시간이었다.

‘필리핀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나는 사건에 대해 하나하나 꼼꼼하게 묻고 싶었지만, 너무 사건에만 치우쳐 분위기가 우울한 것 같아 다른 질문을 했다.

“설중사님, 지금 가장 힘든 게 뭡니까?”

설정우는 한참을 땅을 바라보다 대꾸했다.

“경제적으로 가장 힘드네요.”

교도소에 있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힘든 게 뭘까? 하고 내가 의문을 가질 때였다.

“제가 아들놈이 하나 있는데,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병원 갈 돈이 없습니다.”

설정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도 한숨을 쉬었다.

‘마음이 아프네.’

동질감이랄까. 나도 아기가 있어, 설정우의 마음이 어떤지 자연스레 전달되었다.

“내가 여기서 굶거나, 거지같은 밥을 먹는 건 참을 수 있는데 애기가 아픈데도 병원에 못 보내는 건 정말······.”

설정우는 내가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처음의 살기를 내뿜었던 기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나도 살면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 죽을 생각도 해봤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의 과거, 그래도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내 자식은 버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이를 악물고 3살 된 아기를 엄마도 없이 혼자 키우고 있었다.

또한 나도 해병대 출신으로 강한 남자로서의 동질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무심코 설정우의 눈을 쳐다보았다.

날카롭게 찢어진 작은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그를 진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나도 힘든 형편이지만, 이 사람의 기구한 인생보다는 나을 테지.’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사이,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설정우 등을 두드리며 콜라를 권했다.

콜라 한잔을 쭉 들이켠 그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콜라 때문인지, 아니면 시원하게 눈물을 쏟아낸 덕분인지 어느새 활력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나는 이 분위기를 타며 중요한 질문을 이어갔다.

“진 여사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 여사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설정우의 눈빛이 급변했다. 당장에라도 누군가를 죽일 것 같은 살기가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교도소.jpg

교도소2.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필리핀 가정부 살인사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프롤로그 21.09.17 66 2 2쪽
32 #32화 그 사건의 진실 (완결) 21.09.17 74 3 19쪽
31 #31화 마지막 판결 21.09.17 55 2 13쪽
30 #30화 마지막 재판 21.09.17 54 2 9쪽
29 #29화 꿈같은 사건 21.09.17 51 2 16쪽
28 #28화 출소후 첫 재판과 변호사의 협박. 21.09.17 50 2 13쪽
27 #27화 배신의 시작 21.09.17 51 2 15쪽
26 #26화 출생의 비밀 +1 21.07.10 96 3 15쪽
25 #25화 국가 존재의 이유 +1 21.06.28 115 4 14쪽
24 #24화 출옥 후 생활 21.06.23 95 3 12쪽
23 #23화 설정우 세상으로 나오다! +2 21.06.22 101 4 14쪽
22 #22화 김구열 선장과의 첫 만남 +2 21.06.18 101 3 10쪽
21 #21화 올리브유안 변호사와의 만남 21.06.18 89 3 12쪽
20 #20화 정사장과 카지노 +2 21.06.10 111 5 12쪽
19 #19화 롤란도 멘도사 +3 21.06.02 118 4 12쪽
18 #18화 알렌의 시신과 홍콩 관광객 납치 사건의 주범 21.05.31 123 7 12쪽
17 #17화 홍콩 관광객 납치사건 21.05.28 126 6 14쪽
16 #16화 죽음의 교도소 +2 21.05.28 145 7 13쪽
15 #15화 교도소의 삶. 21.05.26 129 4 15쪽
14 #14화 그의 속임수 21.05.25 120 4 13쪽
13 #13화 야마시타 골드4 21.05.24 139 4 11쪽
12 #12화 야마시타 골드3 21.05.23 127 4 12쪽
11 #11화 야마시타 골드2 21.05.23 131 5 10쪽
10 #10화 야마시타 골드 21.05.22 137 5 13쪽
9 #9화 증거품은 어디 갔을까? 21.05.21 126 5 12쪽
8 #8화 SBS 뉴스추적 21.05.21 151 5 14쪽
7 #7화 권사장과의 만남 +1 21.05.19 155 7 14쪽
6 #6화 비리의 시작? 21.05.19 159 7 11쪽
5 #5화 교도소는 지옥2 21.05.18 168 6 14쪽
» #4화 교도소는 지옥? 21.05.17 186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