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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모노케로스
작품등록일 :
2021.05.17 23:04
최근연재일 :
2021.08.0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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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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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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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25 베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그 뒤 베일은 자신이 선봉에 서서 싸운 얘기를 해주었다. 드넓은 평야의 끝까지 뒤덮은 병사들과 싸웠고 황제의 기마대와 함께 전선을 돌파했다. 기마대가 길을 뚫고 주춤하는 사이, 베일과 삼천 명의 바랑인 친위대가 앞장서서 길을 뚫었다. 모두가 무모하다 했으나 바이킹들은 비웃으며 온몸으로 놈들을 뚫고 지나갔다. 산 중턱까지 순식간에 돌파하여 명령을 내리던 적들의 왕과 신하들을 생포했다. 오백 명의 전사자가 생겼지만 적은 그 숫자의 열 배인 오천 명이나 죽었다고 했다.

그다음은 반란 진압에 가장 앞장섰다고 했다. 황제 디클리오무스의 명령에 불복종한 일부 가문이 황제의 배다른 형제 디루스를 옹립하며 도시는 난장판이 됐다.

디루스는 바랑인 친위대를 돈으로 유혹했으나, 단 한 명의 바이킹도 넘어가지 않았다고 베일이 자랑스레 말했다. 이후 반란을 제압하고 한동안 경비업무까지 떠맡은 뒤 편지를 받고 급히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베일은 우플란드에 있는 바이킹 의회의 한 사람이 되었다. 길에서의 연으로 어느 정도 친밀해졌지만, 결코 싸울의 죄를 좌시하지 않았다. 특히 붉은 까마귀 부족의 족장을 살해했을 때 베일은 앞장서서 의회를 소집했다.

의회의 반은 사형을, 베일과 다섯 명은 배상을 주장했다. 토론은 시작부터 팽팽했다. 사형을 주장하는 쪽은 싸울은 충분히 불명예스러운 사내라고 했다. 두 여자를 겁탈하고도 태연하게 살려두는 건 바이킹 전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베일은 죄인이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살아서 불명예를 씻을 기회를 주는 게 바로 필키르가 주장하던 법이라고 일갈했다.

베일의 주장 이후, 의회는 유족에게 얼마나 배상할지 정하는 회의로 바뀌었다. 결과는 전 재산이었다. 싸울은 자신이야말로 명예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케로디아의 분노에 못 이겨 수긍했다.

싸울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차라리 사형당하는 게 나았을까? 차라리 케로디아와 놀른, 더 나아가 부족 전체는 안전해졌을 게 분명했다. 그러자 운조가 비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렇다면 붉은 까마귀가 더 날뛰었겠지. 팔라드가 부족장인데 약해진 자를 그냥 둘리가 없지. 놈은 교활하며 포부가 큰 놈처럼 보였다. 그리고 싸울, 놀른의 대한 생각은 버려라.“

”놀른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맞다. 신중함은 때때로 도움이 되지만, 이 혹한의 땅에선 독이 된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몸이 얼게 되지. 그러니 된통 당한 거다.“

싸울이 헛소리 말라 일갈했다. 그러자 운조가 입을 다물었다. 싸울은 홀로 밤새 걸으며 운조의 말을 곱씹었다. 정말 놀른이 약했을까? 자신이 본 놀른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운조가 냉소적인 놈이니 그런 거겠지. 나의 형제이자 친구였던 놀른이 약할 리 없다며 애써 운조의 생각을 떨쳐냈다. 어느새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우플란드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마을 중심의 로부르 참나무였다. 위대한 필키르가 심은 첫 참나무, 번개의 신 토르가 종종 쉬어간다는 성스러운 나무였다.

우뚝 솟은 나무는 벽을 훌쩍 넘어 크고 우람했다. 싸울이 문 앞으로 다가가자 경비병이 싸울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오자 싸울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산에 가까워질수록 다쳤던 부위의 고통이 줄어들었다. 육체에 활력이 넘쳤으나 정신은 이상할 만큼 피로감을 느꼈다. 싸울이 두 걸음을 걷자 보라색 망토를 두른 사내가 싸울을 쳐다보며 걸어왔다. 머리를 짧게 깎은 베일이었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메마른 침을 삼키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여긴 무슨 일인가.“

”산봉우리에 볼일이 있다.“

”저 산에?“

베일이 뒤로 돌아서서 업보의 산봉우리를 쳐다봤다. 평소처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싸울이 말했다.

”그리고 의회에 전할 말이 있다.“

싸울의 말을 듣고 베일이 다시 그를 쳐다봤다. 싸울이 말했다.

”내 부족이 몰살당했다.“

베일이 끄덕였다.

”소식은 엊그제 들었다. 현재 이곳에 헤이무스가 와 있다.“

싸울이 의아한 표정으로 베일을 쳐다봤다. 베일이 자신을 따라오라며 걷기 시작했다.

”놀른의 부족과 화친을 맺기 위해 찾아갔다가 밤중에 습격당했다고 했다.“

”개소리를!“

”헤이무스가 증거로 벨로라의 시체를 가져왔다. 헤이무스와 다른 이들은 자기들을 습격한 범인으로 너희 부족을 지목했어.“

베일이 발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레 돌아서며 검을 뽑아 싸울에게 겨눴다. 주변에서 무장한 사내들이 싸울을 포위했다.

베일이 말했다.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가둬야겠다. 무기를 버려라. 싸울.“

싸울이 이를 갈며 베일을 노려봤다. 싸울은 자신이 피해자라 소리쳤다. 베일은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전까지 모른다고 일갈했다.

싸울이 곁눈질로 사내들을 쳐다봤다. 창과 양손 도끼, 운조의 힘이 있으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천천히 단검을 뽑자 운조가 속삭였다.

”공격하는 순간, 놀른과 부족민 모두의 명예는 없어질 텐데? 죽어서도 불명예스럽게 만들 생각이라면. 잘 싸워봐라.“

운조의 말을 듣고 싸울이 베일에게 무기를 넘겼다. 운조가 다시금 속삭였다.

”얌전할 때와 날뛰어야 할 때를 구분 못 하는 바이킹이라니···“

운조가 한숨을 쉬곤 다시 침묵했다. 베일은 싸울을 자신의 집을 데려갔다. 발에 둥근 쇳덩이가 달린 족쇄를 채우고 말했다.

”넌 죄인이 아니지만, 도주 우려가 있고 감옥이 가득 차서 말이야. 우리 집에서 구금할 생각이다. 필요한 게 있다면 남부 노예에게 부탁해라.“

베일이 싸울을 2층에 방을 하나 주며 말했다.

”두 시간 뒤 취조하겠다.“

그가 문을 닫던 중 잠시 멈추며 말했다.

”케로디아 님은 어떻게 되셨지.“

”독수리형을 당하셨다. 그런데도 살아계셨어. 내가···“

싸울이 말을 잇지 못했다. 베일이 알겠다고 말하고 쉬라며 방을 나섰다. 싸울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헤이무스, 어머니와 누나를 겁탈당한 바이킹. 젊은 날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약탈 때 납치나 잔뜩 해서 첩이나 두고 살걸. 싸울이 혼자 한숨 쉬었다. 침대에 누워 헤이무스를 죽여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놀른과 케로디아를 죽게 만든 놈들이었다. 용서 따윈 없다며 싸울이 홀로 작정했다.

두 시간이 지나고 베일이 빵과 연어를 들고 방으로 찾아왔다. 식탁에 차려주며 베일이 소금까지 가져왔다. 그걸 보며 싸울이 말했다.

”감금하지만 손님으로 대접해주겠다고 받아들여도 되겠나.“

베일이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어디까지가 죄가 없을 경우다. 만약 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각오해라.“

말을 끝내고 싸울이 식사를 끝내자 베일이 그때의 상황을 물었다. 싸울이 말했다.

”난 케로디아와 함께 방책 밖으로 나갔다.“

베일이 왜냐고 묻자 싸울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놀른이 적이 나를 죽이기 위해 왔다며 알려줬지. 그 말은 사실이었지. 하지만 놀른이 놈들과 내통했다.“

그 뒤 케로디아는 창을 맞고 자신은 도끼와 화살에 맞았다고 말했다. 상처를 회복하고 돌아오니 사내들은 대부분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답했다. 그 얘기를 듣고 베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헤이무스가 한 얘기와 극명히 달랐다. 베일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 놀른이 자네를 배신했다고? 솔직히 믿기 어려운데.“

”케로디아가 그러더군. 놀른은 나 때문에 자기를 팔았다고. 놀른은 부족장이었다. 나와 부족 중 저울질한 끝에 부족을 선택했겠지. 하지만 팔라드 그놈이 배신했다. 놀른을 죽였다.“

팔라드란 이름을 거론하자 싸울은 머릿속에 참살하던 때를 떠올렸다. 마음속에 기이한 즐거움이 차올랐다.

베일이 알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를 정리해야겠다며 베일이 방을 떠났다. 싸울이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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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 후일담-고통 完 21.08.03 2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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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3 후일담-로키의 전조 21.07.30 16 1 12쪽
54 2 후일담-방패 처녀의 여행 21.07.29 18 1 9쪽
53 1 후일담-생존자 21.07.28 17 1 5쪽
52 52 대지를 적시다. 21.07.27 14 1 6쪽
51 51 으깨기 21.07.26 12 1 7쪽
50 50 줄기 거인 21.07.23 13 1 7쪽
49 49 꼬챙이 21.07.22 12 0 7쪽
48 48 사투 21.07.21 16 1 8쪽
47 47 시작 21.07.20 12 0 7쪽
46 46 연어 21.07.19 12 1 8쪽
45 45 죽기까지 21.07.16 12 1 8쪽
44 44 붉은 도끼 21.07.15 14 1 9쪽
43 43 고심 21.07.14 13 1 8쪽
42 42 9일 21.07.13 14 1 8쪽
41 41 불 21.07.12 13 1 7쪽
40 40 살리 21.07.09 16 1 7쪽
39 39 교란 21.07.08 15 1 8쪽
38 38 숲에서 21.07.07 18 1 8쪽
37 37 구전 21.07.06 17 1 7쪽
36 36 결합 21.07.05 15 1 7쪽
35 35 정상에서 21.07.02 16 1 8쪽
34 34 산으로 21.07.01 16 0 7쪽
33 33 판결 21.06.30 15 0 10쪽
32 32 결투 재판2 21.06.29 20 0 8쪽
31 31 결투 재판 21.06.28 18 0 7쪽
30 30 이사즈리미르 21.06.25 14 1 9쪽
29 29 헤이무스 21.06.24 16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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