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의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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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k
작품등록일 :
2021.05.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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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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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5화

DUMMY

淸風 之 軍師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5화





“풀어 주십시오! 마을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회풍성 관영 내 옥사에서 란쿠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사 건물은 관영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지붕에 붉은색 기와가 얹혀져 있었고,


주변에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보초를 서고 있었다.


란쿠가 갇힌 독방은 옥사에서 유일하게 지상에 있는 감방이었다.


그래서 한쪽 벽에 밖과 통하는 자그마한 창이 나 있었다.


란쿠는 이 작은 창에 매달려 두 시진 가까이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보초를 서는 병사들은 란쿠가 무슨 소리를 하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란쿠가 무슨 소리를 해도 응하지 말라는 원창의 명을 받은 터였다.


결국 제 풀에 진이 빠진 란쿠는 독방의 침상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독방으로 끌려오기 전 원창이 해 준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원평군은 녹둔골의 사람들을 마수들의 먹이로 삼기 위해 끌고 갔네.”




사람을, 그것도 마계의 짐승에게 먹이기 위해 끌고 간다?


끌고 간 것이 동포가 아니더라도 같은 인간으로서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랜 벗인 무라카마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란쿠의 속은 검게 타들어갔다.




옥사 밖 복도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무장한 병사와 함께 별실에서 보았던 잿빛 머리의 사내가 들어왔다.


푸른 도포를 입은 사내는 머리에 란의 여성들이 착용하는


은 노리개를 달고 있었으며 뺨에는 검에 베인 흉터가 가늘게 나 있었다.


그는 옥사 앞에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진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는 스스로를


이곳의 군을 이끌고 있는 파견장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란쿠는 옥사 문에 달려와 매달렸다.


그리고 원창을 설득해서 자신을 내보내달라고 청했다.




“미안하지만, 그 청은 들어줄 수 없네.”




진혼의 단호한 태도에 란쿠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침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진혼은 안타까워 하는 표정으로 란쿠를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 일은 미안하게 됐네.”




진혼이 인상을 쓰며 란쿠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붙잡아 간 놈들은 란의 군병인데, 어찌 선생님께서 사과를 하십니까?”




란쿠가 금이 가 있는 독방의 벽을 보며 대꾸했다.


진혼은 이런 란쿠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네. 내가.”




진혼의 말에 란쿠가 고개를 돌려 진혼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렇게 몰아 붙였어.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마수들을 굶주리게 만들어서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려고.


그러니 내가······.”


“선생님.”




란쿠가 진혼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진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혼은 손에 쥐고 있던 연줄을 놓친 아이 같은 표정으로 하고 있었다.




“혼족이 비록 작은 무리이나, 저는 그곳에서 나름 군병이었던 자입니다.


이런 저조차 싸움의 선택과 책임은 적이 아닌 자신이 지는 거라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행동을 하신지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끌려간 것은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 선택을 하고 행한 자들의 몫인 것이죠.”




란쿠의 말에 진혼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크게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내뱉는 숨 속에 옅은 떨림이 섞여 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앉아 있던 진혼은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붙잡혀 간 마을 사람들의 수가 몇 명이었나?”




진혼이 조금 전과 달리 힘이 돌아온 눈빛으로 란쿠를 바라보며 물었다.




“달아난 사람이 없다면 여든 명 정도 될 겁니다.”


“여든 명······.”




진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란쿠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모두를 살리기에는 늦었네.


하지만 내 절반 이상은 구해 보겠네.”




진혼의 말에 란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방책이 있으신 겁니까?”


“있긴 한데······ 당장 이야기할 거리는 되지 못하네.


아무튼 자네 도움도 필요하니 내 이따가 다시 오겠네.”




진혼은 다급한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란쿠는 이런 진혼의 등에다 대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진혼은 기별도 없이 원창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무실 안에는 원창과 문진이 함께 있었다.


원창에게 혼족의 소식을 들었는지 문진의 낯빛이 어두웠다.


원창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켜 진혼을 맞았다.




“전에 제가 부탁했던 가축 피 말입니다. 지금 석빙고에 있습니까?”




진혼의 두서없는 질문에 원창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기억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 그때 서신으로 부탁하셨던 거요?


그때 가축들을 잡으면서 곧바로 석빙고에 넣어둔 이후 쭉 그대로 있을 겁니다.”


“그게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예?”




진혼의 말에 원창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어디에 쓰시려고······?”


“혼족 사람들을 구하는 데 쓸 겁니다.”


“무슨 방책을 떠올리신 겁니까?”




어리둥절해 하는 원창을 대신해 문진이 물었다.




“방책이라기보다······ 수시변통(隨時變通: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책) 정도로 해 둡시다.


성주님은 사람들을 시켜 피 항아리를 꺼내어 살림채로 옮겨다 주십시오.


길이 잘 들은 말도 서른 필 정도 준비해 주시고요.”




진혼은 지금까지 회풍성에서 보였던 모습과 달리 날이 선 눈빛으로 필요한 것들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원창은 진지한 얼굴로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좌장군은 다른 장군들께는 말하지 말고,


군병 중 믿을 만한 자들을 골라 스무 명 정도만 준비해 주시오.”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일입니까?”




원창이 목소리를 낮추며 진혼에게 물었다.




“예. 조용히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적게 골라내는 것이 좋겠네요.


좌장군님께서는 군병 열 명만 준비하십시오.


나머지 열 명은 제가 조용히 준비해 놓겠습니다.”




원창의 말에 문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집무실 문으로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진이 나가자 원창이 진혼에게 물었다.




“정말로 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늦었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미 죽은 자들은 못 구합니다.


그저 아직 산 사람들을 구해 보려 하는 것입니다.”


“아직 산 사람이라 하면······?”




원창은 진혼의 말뜻을 헤아리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절반 정도입니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예, 마수들에게 먹혔을 겁니다.”




진혼의 말에 원창이 어금니를 깨물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진혼은 이런 원창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한 시진 내로 부탁한 것을 준비해서 살림채에서 뵙도록 하지요.”




진혼은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관영 밖 피난민들이 묶고 있는 병막으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 머물고 있는 소치를 찾아갔다.


진혼이 찾아갔을 때 소치는 가족들과 함께


이고이가 입던 저고리의 헤진 부분을 바느질하고 있었다.


병막 공터에 펼쳐져 있는 저고리의 크기는 나룻배의 돛보다도 커 보였다.


상의를 탈의한 이고이는 공터 한쪽에 쪼그려앉아


소치 가족이 바느질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게, 소치!”


“아, 파견장 님.”




소치가 붓대 만한 바늘을 손에 든 채 진혼을 반겼다.




“진혼, 안녕?”




이고이가 진혼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며 큰소리로 인사했다.




“이고이! 파견장 님이라고 불러야죠!”




옆에 있던 도치가 인상을 쓰며 이고이에게 소리쳤다.




“어? 진혼, 이름이 파견장 님이야?”


“아니, 이름은 진혼이고요······.”


“도치, 괜찮아. 이고이가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진혼은 도치의 꾸지람을 끊고는 소치에게 돌아섰다.




“자네, 지금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예?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소치가 아내와 도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진혼은 소치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를······ 대무덤까지 안내해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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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82화 21.12.21 55 1 15쪽
81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81화 21.12.16 52 2 8쪽
80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80화 21.12.13 68 1 10쪽
79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9화 21.08.13 100 2 8쪽
78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8화 21.08.11 95 2 8쪽
77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7화 21.08.09 80 1 8쪽
76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6화 21.08.06 84 2 8쪽
75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5화 21.08.04 86 1 7쪽
74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4화 21.08.02 93 2 8쪽
73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3화 21.07.30 99 1 8쪽
72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2화 21.07.28 104 1 7쪽
71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1화 21.07.26 121 2 7쪽
70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70화 21.07.23 122 2 8쪽
69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9화 21.07.22 106 1 8쪽
68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8화 21.07.20 112 1 10쪽
67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7화 21.07.19 111 1 7쪽
66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6화 21.07.16 123 2 8쪽
65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5화 21.07.15 122 0 10쪽
64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4화 21.07.13 123 3 8쪽
63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3화 21.07.12 121 5 9쪽
62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2화 +2 21.07.09 161 3 9쪽
61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1화 21.07.08 131 3 9쪽
60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60화 21.07.07 137 3 8쪽
59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9화 21.07.06 135 4 8쪽
58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8화 21.07.05 134 4 8쪽
57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7화 21.07.02 141 4 8쪽
56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6화 21.07.01 155 5 10쪽
»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5화 +3 21.06.30 162 4 9쪽
54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4화 21.06.29 151 5 10쪽
53 청풍의 군사: 북방의 유랑자- 53화 21.06.28 153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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