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박스 크랙이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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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리
그림/삽화
샘바리
작품등록일 :
2021.05.19 23:46
최근연재일 :
2021.06.20 23:41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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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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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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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파비오 칸나바로 (2)

DUMMY

“감독님, 여기 라면..”

“오 고마워! 역시 이걸 먹어야 축구장 온 것 같다니깐?”


패딩 점퍼를 입은 갈색 눈의 외국인이 익숙하게 사발면을 들이키며 졸린 눈을 비볐다. KFA 엠블럼이 박혀있는 걸 보고 몇몇 어린 축구팬들이 다가와 셀카를 찍자고 모여들었다.


“응! 컴온. 좋아! 김치!”


포페스쿠 감독은 선수 시절 루마니아의 월드컵 8강을 이끈 크랙(Crack)이었다. 존재 자체로 경기의 흐름을 뒤바꾸고, 상대 파괴하는 유형. 말 그대로 천재였다. 감독 커리어 역시 천재성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했다. 강팀이 아닌 유망주가 많은 자국 리그 2부리그부터 시작해 승격과 우승을 거두는 모습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핫한 젊은 지도자를 데려온 건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축구협회의 강력한 러브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독님, 이호종 이제 몸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조금 있으면 한골 터질 것 같으니깐, 슬슬 준비해야겠지.”


통역사의 센스있는 체크에 기다렸다는 듯 포페스쿠는 대답했다.


“지금도 충분히 재밌어. 저기 20번 키는 작아도 단단하네. 눈빛이 좋아. 신체 능력도 훌륭하고. 이탈리아 칸나바로 전성기같네 완전. 그런데 조금 있으면 저기 의정부 9번이 하나 할 거야 아마.”

“20번은 음. 예비 명단에도 없는데, 전력강화팀 쪽에 문의 해두겠습니다. 처음 보는데 자신감 있네요! 유병주 묶을 정도면 제법인데?”

"개인기도 개인기인데, 수비 라인을 영리하게 끌어주네. 옆에 덩치큰 수비수랑 호흡도 괜찮고. 대학교 리그에서는 압도적이겠는데?"

"네. 현제대가 지금 권역 1위구요. 아 그런데 20번은 출전수가 별로 없는데.. 누구지? 연령별 대표 경험도 하나도 없고."


의정부FC는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슈팅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후반전이 시작하고 10분이 지났음에도 답답한 흐름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저돌적인 유병주가 너무 조용한 게 의외였다. 그저 등을 지고 공을 키핑해서 측면으로 벌려주거나, 헤딩 경합을 하며 안전하게 미드필더에게 공을 리턴해주는 게 전부였다.


“미스터 킴. 프로랑 아마추어가 어디서 제일 차이가 나는 줄 알아?"

"뭐 개인기량도 있고, 전술수행능력? 음 아니면 뭐 피지컬 차이도 크니깐 슈팅이나 스피드? 뭐에요 감독님?"

"멘탈. 그리고 체력. 내가 보기엔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줄 체력과 멘탈이야. 예전에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 준비할 때 한국 대표팀을 그렇게 평가했어. 개인기나 전술수행능력은 훌륭한 편이라고. 게다가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고 쓰는 선수들, 포지션 한두개 이상은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들도 많아서 놀랐고."

"아 기억나요. 그런데 체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서킷 트레이닝, 그 공포의 셔틀런도 엄청 많이 했었죠. 기억나요."

"그랭. 프로라면 상대가 지칠 때 한번쯤 나올 수밖에 없는 실수를 놓치지 않지. 그리고 아마추어는 실수를 만회할 힘이 부족한 거야.”


후반 20분 드디어 U20 월드컵 원톱 1순위 이호종의 교체 사인이 떨어졌다. 사이드라인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바로 그라운드로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볼이 나가지 않아 경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상당히 좋은 센스를 가졌구나. 충분히 잘 버텼어. 그래도 이 정도면.”


돌아서지 못하게 바짝 붙어 수비를 하고 있는데 유병주가 조용히 읊조렸다. 확실히 65분까지 무실점으로 버틴 건 현제대 입장에선 대단한 일이었다. 유병주 말고도 의정부FC 대부분이 베테랑이니 말이다. 대부분 연령별 대표는 한번쯤 해보고, K리그1, K리그2 출전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에이스라 불리던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래서일까? 이상하리만큼 의정부FC는 차분하고 당황하지 않았다.


“의정부FC 이러면 위험해지는데요? 현제대 입장에선 0대 0도 나쁜 결과가 아니거든요? 거의 반코트 게임을 하면서도 골이 터지지 않으면, 조급해지는 건 공격하는 팀입니다."

"그렇죠. 승부차기까지 가면 어차피 50대 50 싸움인데요. 이변이 많이 나오는 FA컵에서 오늘 경기에 왠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아 말씀드리는 순간, 의정부FC 빠르게 올라옵니다!”

"어? 센터백빼고 전부 다 올라오는데? 역습 상황도 아닌데, 이게 뭐죠? 갑자기! 아, 아닙니다. 최후방 수비수 하나 남겨두고 전부 뛰기 시작합니다."


중원에서 천천히 패스를 주고 받으며 하프라인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던 의정부FC가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오른쪽 측면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6명 가까이 골문을 향해 우르르 뛰어들어갔다. 측면 1대1 싸움에서 공을 뺏기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완전 공격적인 움직임이었다.


“뚫리면 안돼! 맨마킹 하나씩 잡고! 들어오잖아! 집중!”

“동찬아, 내가 따라갈게, 측면 봐줘! 달려들지 말고, 기다려! 왼발잡이니깐 접을거야, 더더!! 올려!”


현제대 주장 최현빈 역시 경기 내내 동료를 다독이며 중앙, 측면을 오갔지만, 갑작스러운 의정부FC의 공세에 당황했다.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라인을 내리고 빠른 협력 수비로 버텨내던 현제대도 사이드라인에서는 1대1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개인기나 환상적인 스피드도 아니었다. 마치 약속된 플레이인 것처럼 2대1 패스로 뒷 공간을 순식간에 뚫었다.


‘젠장, 유병주 어딨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어.’


최전방에서 어슬렁거리던 유병주는 순식간에 오른쪽 윙어와 자리를 바꾸며 페널티 에어리어 뒤로 물러났다. 측면이 뚫리고, 여럿이 밀려오는 통에 정신없이 따라 내려갔던 우리 수비진의 허를 찌르는 움직임이었다. 의정부FC 선수 하나가 이미 나와 어깨를 부딪히며 자리를 잡았기에 무작정 유병주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현빈! 동찬! 뒤에 유병주! 비었어!! 아니다, 미드필더가 붙어줘!”


하지만 다른 수비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씩 선수를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버린다면 곧바로 노마크 찬스였기 때문이었다. 공격수의 수비 가담을 기대하기엔 다들 너무 많이 뛴 탓인지 미처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측면 윙어가 머리를 향해 크로스를 올려서 경합이라도 해볼 여지가 있길 바랄 뿐이었다.


“아, 의정부FC 아주 짜임새있는 움직임인데요.”

“네, 저건 미리 약속된 플레이, 세부 전술입니다. 측면을 개인기량으로 공략하고, 다같이 전방으로 올라왔어요. 이러면 현제대도 당황할 수밖에 없죠?”

“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의정부FC 선수가 스리백 말고 전부 들어와 있어요! 6명이나요! 아, 낮고 빠른 크로스!! 아 유병주, 노마크입니다. 슈우우우웃!!!!!!!! 골!!!!!!!!!!!!!!!!! 이게 바로 스트라이커죠!”


단 한번 찾아온 기회를 유병주는 놓치지 않았다. 주춤거리지 않고 논스톱으로 정확하게 슈팅을 날렸다. 발등에 묵직하게 얹힌 공은 엉켜있는 선수들 다리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골키퍼 정병근이 미처 다이빙을 하지도 못할 완벽한 골이었다. 시야에서 공이 사라진 것도 한몫했지만, 너무나 빠르게 깔려들어온 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60분 넘게 집중력 있게 협력 수비를 펼치던 현제대의 발이 무거워진 틈에 나온 단 한번의 실수가 골로 연결됐다.


“우와, 빠따 진짜 좋네요. 저 거리에서 도움닫기도 없이 그냥 차는데 그대로 꽂혀버리네요.”

“응. 저 선수가 신인왕이랬지? 확실히 포텐이 있네. 20번 잘하는 거 보고 무리하지 않고 약한 곳을 노리잖아. 계속 1대1 싸움했으면 한번쯤 뚫을 수 있었겠지. 그런데 확률 높은 수싸움을 걸었어. 팀 전체로 놓고 보면 결국 자기네가 우위인 걸 아니깐.”

“1대 0이면 이제 의정부FC는 숨통 좀 트이겠네요.”

“이호종이 이걸 뒤집는 게 빠를지, 아니면 현제대가 한 골 먹히고 멘탈 회복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는지 한번 보자구.”


1대 0.

내심 무승부, 연장전, 승부차기를 기대했던 현제대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에 잠겼다. 나름 프로를 상대로 잘 버텨내왔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대의 패스에 반응하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특히 센터백 백동찬은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지만, 체력 부담이 너무나 컸다. 등지고 버티는 유병주의 힘은 대단했고, 계속 헤딩 경합을 하면 할 수록 점프는 지쳐서인지 손가락 한마디씩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권정훈, 최현빈의 쉬지 않고 외치는 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몸을 날리던 게 바로 백동찬이었다.


"정훈아. 방금 유병주 내 마킹이었.."

"정말 미안해. 동찬아. 내가 놓쳤어. 내가 순간적으로 빠지는 걸 못봤어. 아니다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자. 그냥 우리 다같이 먹힌거야. 괜찮아 이제 1골이야! 괜찮아! 괜찮아!"


권정훈은 고개를 푹 숙인 덩치 큰 백동찬을 향해 긍정적인 말을 건넸지만, 사실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반코트 게임을 전반 시작부터 계속 해왔고, 유효 슈팅, 아니 슈팅 1개 없었는데.. 과연 뒤집을 수 있을까? 어쩌지?'


칸나바로가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헤더골을 넣던 모습이 떠올랐지만, 불가능해보였다.


'세트피스라도 나와야 공격을 올라갈 건덕지가 있을텐데. 하. 어쩌지.'


주장 현빈 선배를 바라봤지만, 이미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그리워져 있었다.


"야, 뭐하냐 다들! 고개 들어. 골 안 넣을 거야?"


선수 교체! 9번 이호종 IN, 18번 원종탁 OUT.

그렇다. 우리에겐 아직 에이스 스트라이커가 있었다.


후반 20분. 남은 시간 25분.

초특급 유망주 이호종이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추천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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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동상이몽 21.06.17 182 4 12쪽
26 카카 (4) 21.06.16 203 5 14쪽
25 카카 (3) 21.06.15 222 4 14쪽
24 카카 (2) 21.06.14 231 8 16쪽
23 카카 (1) 21.06.13 248 5 17쪽
22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니? +4 21.06.12 299 13 14쪽
21 웨인 루니 (2) 21.06.11 296 12 14쪽
20 웨인 루니 (1) 21.06.10 301 10 15쪽
19 필리포 인자기 (2) +2 21.06.09 314 9 14쪽
18 필리포 인자기 (1) +2 21.06.08 343 12 15쪽
17 경우의 수 +2 21.06.06 340 13 14쪽
16 안드레아 피를로 (4) +2 21.06.06 353 12 15쪽
15 안드레아 피를로 (3) +2 21.06.05 355 13 16쪽
14 안드레아 피를로 (2) +2 21.06.03 384 12 14쪽
13 안드레아 피를로 (1) +2 21.06.02 386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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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르헨 로벤 (3) 21.05.30 382 13 14쪽
10 아르헨 로벤 (2) 21.05.29 366 12 13쪽
9 아르헨 로벤 (1) 21.05.27 416 1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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