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차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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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넷
작품등록일 :
2021.05.20 10:50
최근연재일 :
2021.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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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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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가 보이는군요.

DUMMY

알코올은 알코올을 부른다. 이것은 진리.

그리고 지나친 음주는 새벽을 힘들게 한다. 이것도 진리.

타는 듯한 갈증과 울렁거리는 뱃속, 그리고 침대가 주는 아늑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는, 결국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새벽 세시 반.

세상이 아직 어둠에 잠긴 시간.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꿀맛이다. 그 어떤 감로수가 이보다 맛있을까.

일어난 김에 화장실에 가서 변기와 함께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고, 손 씻는 김에 세수도 하고, 세수만 하기 그래서 머리도 감고.

그랬음에도 아직 네시.

세상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다.

다시 술을 마시면 내가 개...

관두자. 벌써 수십 번은 개가 되었겠다. 당장 오늘 밤에도 또 개가 될지 모르고.

정신이 드니 어제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62만원. 어제 고깃집에서 계산한 금액이다. 둘이 먹었는데 62만원. 고기 한 접시 가격이 무려 15만원이라고 했다. 안창살은 원래 비싸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괜찮아. 신에게는 아직 5천만원이 있사옵니다. 하늘이 주신, 아니 빨간머리가 주신 선물!

그리고 백만원짜리 두꺼비...

‘아. 맞다.’

그러고보니 두꺼비가 사라져 버렸다.

반으로 쪼개져서 조수석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두꺼비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 귀신?

사슬처럼 이어진 생각의 고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존재를 끄집어 내는데 성공했다.

저승사자.

‘혹시 제가 보이십니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끝까지 못본 척, 못들은 척 외면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인에게 카드를 내밀었을 때, 주인은 이제 술 그만 마시고 건강 좀 챙기라면서 무려 2만원씩이나 깎아주었다. 그 와중에도 저승사자는 내 눈앞에 머리를 들이밀고 계속 자기가 보이냐고 물었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잠깐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하아, 생각을 말자.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결국 난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가 아침 일곱시라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주차장에 다소곳하게 세워진 티마를 본 순간 뒷 범퍼에 제일 먼저 눈이 갔다. 볼썽사납게 찌그러진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티마야... 쏘리.

오빠가 아주 예쁘게 고쳐줄게. 믿기 힘들겠지만 오빠한테는 오천만원이 있단다.

새벽 도로는 역시 한산하다. 평상시 같았으면 30분은 족히 걸릴 거리를 불과 10분만에 주파했다.

사랑신용정보.

이 곳이 내가 근무하는 회사다.

흔하디 흔한 채권 추심회사이지만, 그래도 이쪽 업계에서는 나름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왜냐하면, 페이가 후하니까.

우리회사는 기본급이 월 2백만원이다. 누군가는 그게 뭐 별거냐고 물을 테지만, 별거 맞다.

이 업계에서 추심원에게 기본급을 챙겨주는 회사는 없으니까.

비록 입사 1년차까지만 받을 수 있는 기본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사무실에 출근해서 탱자탱자 놀아도 매월 2백만원은 받을 수 있다는 얘기.

거기에 추심수수료가 무려 30%나 된다. 다른 회사는 회수금액의 15% ~ 25% 정도가 보통이다. 추심수수료를 30%씩이나 챙겨주는 신용정보회사는 전국을 다 뒤져봐도 찾기 힘들다.

백만원을 회수하면 그 중 삼십만원은 내 몫이라는 소리다. 천만원을 회수하면 삼백만원. 한 달에 천만원 짜리 채권 한 건만 회수해도 먹고 살 수 있다.

이러니 꿈의 직장 소리를 듣는다.

명성에 걸맞게 입사가 무척 힘든 곳이다. 애초에 신입사원을 잘 뽑지 않을 뿐더러, 뽑는다 해도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넘어온 경력직들이 대부분이다. 나 같은 생짜 신입은 거의 드물다더라.

사실, 나도 내가 이 회사에 어떻게 합격했는지 잘 모르겠다.

업계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다. 남들에게 쉽게 얘기하기 힘든 아픈 과거도 있다.

토익?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토익 시험을 여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자랑거리인데.

회사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추심업무와 그다지 큰 상관이 없다는 걸.

변강한 팀장도 진지하게 물었었다.

도대체 무슨 빽을 가졌길래 생짜 초보가 그 많은 경력직 베테랑들 다 제끼고 입사했냐고.

열정만큼은 세계 최고, 우주 최고라고 했더니 박카스나 먹으라면서 배를 잡고 웃더라.

텅 빈 주차장 구석에 홀로 서 있는 흰색 소나타.

눈에 익은 구형 소나타, 변강한 팀장이다.

‘이 인간은 도대체 몇 시에 출근하는 거야?’

우리 회사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변강한 팀장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자타공인 성실의 아이콘.

‘아무리 그래도 일곱시는 좀 너무하네. 오늘은 내가 일등일 줄 알았는데 말이지.’

변강한 팀장이 회사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매월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꼬박꼬박 들어가는 베테랑 팀장이다.

변강한 팀장 밑에서 연수한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잘 보고 배우라고 하더라. 변강한 팀장이 달천 클럽 죽돌이라고.

달천이면 이거 떼고, 저거 떼고 다 떼도 실 수령액이 연간 일억원은 된다는 소리다.

그런 사람이 어제 새파란 후배에게 안창살 62만원어치를 뜯어먹었다.

안창살을 생각하니 두꺼비가 떠올랐고, 두꺼비를 생각하니 저승사자가 떠올랐다.

머리를 흔들고, 생각을 지웠다.

다시 안창살을 생각하고, 어제 그 발랄했던 이모님을 떠올렸다.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고깃집을 빠져나가던 변강한 팀장과 이모님의 다정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을 시종일관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던 저승사자가 생각나버렸다.

제기랄.

1층 무인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뽑아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무인커피숍이 커피 맛은 그냥 그렇지만, 24시간 어느 때나 이용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가격도 한잔에 천원. 내 얄팍한 주머니와 궁합이 딱 맞다.

아니다. 딱 맞았었다.

나, 한선재. 이제는 통장에 오천만원이 있는 남자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오올, 이게 누구야? 어제 하루에 천만원 벌었던 한선재 아냐?”

아닌데? 천만원 아니고 오천만원인데?

“큭큭. 커피나 한잔 드세요.”

“니가 왠일이냐? 이렇게 일찍?”

“그러는 팀장님이야말로 도대체 몇시에 출근하시는 겁니까?”

“일찍 일어나는 닭이 모이를 더 먹는 법이지.”

새가 벌레잡는 스토리겠지.

“모닝담배나 한 대 태우러 가시죠.”

변강한 팀장과 커피를 한 잔씩 나눠들고 옥상 하늘정원으로 향했다.

“이야, 역시 새벽 공기가 좋아. 그렇치?”

변강한 팀장이 좋은 새벽 공기에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아직까지는 괜찮네요.”

“아침에 회의 끝나거든 병원부터 다녀와. 교통사고는 어디가 어떻게 아플지 모르는거니까.”

“네.”

“이참에 정밀검사도 한 번 받아 봐.”

우리 변강한 팀장,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자상할까? 이런 사람이 아닌데.

“어제는 잘 먹었다. 많이 나왔지?”

이거였구나. 소고기 약빨. 62만원짜리.

“많이 나오긴요. 먹은 만큼 나왔죠.”

빨리 얼마 나왔냐고 물어봐라.

62만원씩이나 나왔다고 대답해 주겠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금액은 처음 결제해봤다고 대답해 주겠다.

하지만, 변강한 팀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우리는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댔다.

“참. 어제 그분은...”

“촌스럽게 뭘 묻고 그래? 그냥 원나잇이야.”

“왜요? 그 분 이혼하셨다고 하시던데, 잘 해보시지 그랬어요.”

변강한 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 말을 믿냐?”

“그럼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지. 만약 이혼했으면 고깃집에서 접시나 나르고 있을 사람 아니다. 물장사라면 혹시 모를까.”

그랬구나. 거짓말이었구나.

변강한 팀장은 잠시 어제를 회상하는지 눈을 감고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어젯밤에 택시 태워 집에 보냈다.”

그에게서 노련한 사냥꾼의 향기가 난다.

“실례지만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실례인 줄 알면 묻지 마.”

“네...”

“이혼은 안했다.”

그랬구나. 이혼은 안했는데, 가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다, 딱 그 정도 뉘앙스를 가진 대답이다. 하긴 이렇게 이른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다, 일년 내내 술 마시는 사람 가정이 멀쩡할 리 없지.

생각해보니까 변강한 팀장과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고,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정작 서로의 가정에 대한 얘기는 한 적이 없었다.

변강한 팀장이 필터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내려가자. 춥다.”

아직 4월. 아침은 쌀쌀하다. 특히나 옥상은.

“봄비가 오려나?”

왠지 꿉꿉한 기분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

두둥!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검은색 신발 한쌍.

‘헉.’

머리카락이 쭈뼛해지고, 온 몸에 털이란 털은 모조리 곤두서는 느낌.

‘저승사자!’

얼마나 놀랬는지,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면 보통 이럴 땐 혓바닥을 깨물더라.

그래서 나도 혓바닥을 깨물었다.

“아악!”

너무 세게 깨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공중부양하고 있던 저승사자가 유유히 다가왔다.

밀가루처럼 하얀 얼굴을 내 눈 앞에 들이밀었다.

[제가 보이십니까?]

전설의 고향에서 그랬었지.

저승사자가 눈에 보이면, 그건 곧 죽을 때가 된 거라고.

내 나이 이제 스물아홉.

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들지 않던 쥐구멍 인생.

요즘 운이 좀 좋다 싶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회사에 취직도 하고, 좋은 사수도 만났다.

희망이라는 녀석을 알게 되었고, 그 녀석이 얼마나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10년 뒤의 나, 20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이제 막 궁금해지려는 차였다.

아직은,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이를 아드득 깨물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변강한 팀장.

저승사자를 보지 못하는 변강한 팀장, 그의 평온한 두 눈에는 의아함만이 가득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혀를 깨물었습니다.”

“사람 참. 깜짝 놀랐잖아.”

나는 팀장님보다 백 배, 천 배 놀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 그만 내려가시죠.”

[제가 보이십니까?]

저승사자는 파리지옥처럼 끈질겼다. 내 주변을 알짱거리며 자기가 보이는지를 계속 물었다.

물론 나는 보이지 않는 척,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눈 앞의 저승사자도 무섭지만, 인정하는 순간 저승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아브라카타브라...’

“선재야. 너 정말 병원 한번 가야겠다.”

“아닙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가보라면 가 봐.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리는 왜 그렇게 떨어?”

변강한 팀장의 말에 시선을 아래로 떨구니,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고 있는 내 두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허탈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을 때,

[제가 보이는군요.]

저승사자가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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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21.06.27 88 9 13쪽
42 한선재 사원은 오늘부로 21.06.26 90 8 12쪽
41 개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21.06.25 91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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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그냥... 좀 피곤할거야. 21.06.23 97 7 11쪽
38 왜 또 그집이냐? 21.06.22 93 8 11쪽
37 월척이 걸렸다. +2 21.06.21 99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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