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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레벨 흡입하는 뱀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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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박무창
작품등록일 :
2021.05.20 11:39
최근연재일 :
2021.07.30 06:3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9,419
추천수 :
327
글자수 :
348,774

작성
21.06.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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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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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3화

DUMMY

게이트 너머 트란실의 광장은 한밤중이었지만, 낮보다 인파로 가득했다.

원래라면 고요한 달빛만이 내려앉아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아우성이 고요함을 지워버렸다.


광장 중앙에는 처형대가 세워져 있다.

그 위에는 한 소녀가 묶여 있었다.

아름다운 금발은 피로 얼룩지고, 보석 같은 눈에서는 빛을 잃은 소녀였다.

소녀는 저 멀리 있는 한 소년을 알아보고 힘없이 미소 지었다.


“역시... 와주셨어...”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는가 싶더니, 의식을 잃고 고개를 떨구었다.

십자가에 묶여 축 늘어진 소녀를 보고도 사람들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깨우고 싶은 것인지 욕지거리와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병사 한 명이 소녀의 발밑에 쌓인 지푸라기에 불을 붙이려 다가갔다.


“마창.”

“크헉!”


그러나 붉은 빛줄기처럼 날아온 창에 맞고 처형대에서 떨어졌다.


“뭐야!”


병사장은 훼방꾼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겁먹고 움츠러들며 창이 날아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소년.

그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그늘져 있었지만, 소년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이미 인간으로 의태한 몬스터라고 온 도시에 알려진 상태였다.


성녀로 위장한 마녀를 섬기며, 낮에는 거리에 수백 명의 인명피해를 낳기도 했다.

개인의 입맛대로 왜곡된 사실이었지만 시민들에게는 이미 진실로 각인 되어있었다.


소년은 한 걸음씩 처형대를 향해 걸어갔다.

시민들은 모두 물러서 길을 열었다.

병사들은 무기를 들고 전열을 갖추어 처형대를 지켰다.


그런 그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카닌은 폭력적인 충동에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카닌은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눈에 보이는 인간 전부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델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어째 인간은 세대가 바뀌어도 하는 짓은 똑같군.”


레비아는 시민들을 보며 그렇게 말하다가, 카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럴 땐 분이 풀릴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레비아는 광장 구석에서 카닌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가 여기 있는 인원을 전부 죽여도 그녀와는 상관없으니 딱히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멈춰라! 마녀의 수하놈!”


그때 병사인지 헌터인지 모를 남자가 카닌의 앞을 막아섰다.

전신에 번쩍이는 갑옷을 두른 거구의 남자는 철벽을 연상케 했다.

남자는 왼손으로는 방패를 들어 자신의 몸을 가리고, 오른손으로는 창을 들어 카닌을 겨누었다.

반면, 현재 카닌의 개체값은 디아블로에 의해 절반 정도 감소한 상태였다.

게다가 지상에 올라오면서 흡수한 레벨도 증발해 버렸다.

해는 지고 없었지만, 달빛의 밝기만으로도 악마의 존재를 지우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전과 같이 다수의 적을 상대로 홀로 싸우기는 힘들 터였다.


“그냥 지나가면 안 될까요?”


카닌은 그렇게 작고 힘없이 자신의 희망을 내뱉었다.

그러나 남자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카닌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당치도 않는 소리다!”


남자는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지만, 내지른 창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에도 닿지 못하였다.

그곳에는 희미하게 안개가 어른거릴 뿐이었다.

남자는 경험해 보지 못한 현상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느껴지고, 오싹한 기운이 남자의 몸에 엄습했다.

그리고 그 직후 남자의 갑옷 사이를 파고든 송곳니가 그의 목에 박혔다.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고, 남자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


남자가 쓰러지면서 빈 깡통 소리가 울렸다.

분명 광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그 소리만이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시민들도, 병사들도, 병사장도 숨소리조차 잠겨 있었다.


쓰러진 남자는 꽤 높은 직급이었는 듯했다.

병사들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공포심으로 가득 찬 머리는 생존을 위해, 혹은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잊게 하였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병사들은 무기를 들고 서 있되, 누구 한 명 먼저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닌은 발소리를 남기며 병사들을 지나 처형대를 올라갔다.

그리고 묶여 있는 아델을 풀어주고 그녀를 조심히 바닥에 눕혔다.

그런 뒤 자신의 피를 그녀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아델의 외상이 아물기 시작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호흡이 안정되는 것이 보인다.

꿈속에서나마 안녕을 되찾았는지, 그녀의 표정 또한 풀어졌다.

그 소소한 변화들이 카닌의 얼굴을 뒤덮은 어둠을 거둬주었다.


“다행이다.”


카닌은 안도하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머. 머... 뭘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이냐!!! 어서 막아라!”


병사장이 소리쳤지만, 그 누구 한 명 선뜻 나서지 못하고 발을 구를 뿐이었다.


“막으라니까!!! 지금 도망치려고. 히이이익!”


소리치는 병사장을 카닌의 갈라진 적안이 직시했다.

살해당한다.

병사장은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는 생각에 다리에서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카닌은 굳이 그의 상상을 실현할 마음은 없는 듯했다.


“게이트.”


카닌이 말하자 검은 판이 그의 발아래 생성되었다.

게이트 스킬은 가본 적 있는 곳에만 쓸 수 있었기에 처형대까지 올라왔었지만, 집에 갈 때도 굳이 게이트를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카닌의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그런지 게이트가 연결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이제 돌아가자.

카닌은 집에 돌아가 침대에 아델을 눕히고 잠시나마 쉬고 싶었다.


카닌은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횃불을 든 채 겁에 질린 시민들이 보였고, 카닌은 자신도 모르게 노려보게 되었다.

그러나 딱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아델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복수는 그녀가 깨어났을 때 생각하자.

지금은 그녀를 안전한 곳에 옮겨주고, 안정을 취하게 하는 게 먼저였다.

그렇기에 오늘은 그냥 조용히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한 남자가 그것을 제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투명화 스킬로 자신의 모습을 지운 체이스였다.

누구의 눈에도 비춰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그는 거리낌 없이 처형대로 올라와 칼을 꺼내었다.

그리고 역수로 쥐어진 그 칼로 카닌의 목을 베려 했다.


퍽!


그러나 다음 순간, 옆구리에 찾아온 충격과 함께 날아갔다.

카닌이 체이스를 눈치채고 그에게 발차기를 날린 것이었다.


카닌이 체이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발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접근해왔으며,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카닌의 감각은 이러한 자잘한 정보들을 놓치지 않았고, 직감이라는 형태로 바꾸어 카닌의 몸을 움직이게 해주었더 것이다.


“혈류조작.”


카닌은 방해를 막기 위해 스킬을 사용해 연막을 만들었다.

붉은 안개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광장을 뒤덮었다.

시민과 병사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닌은 아델과 함께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


게이트를 넘어 도착한 곳은 카닌의 집 현관이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온 달빛이 집 내부를 어스름하게 비추고 있다.

정든 소파와 식탁,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방, 그리고 석상이 된 부모님.

일상으로 되돌아온 감각은 카닌의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다.


카닌은 아델을 소파에 내려놓고 벽난로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냄비를 올려 물을 데운다.

잠시 후 물이 끓기 시작하자 카닌은 수건을 적셔 아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입가와 볼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고, 익숙한 얼굴을 보며 그녀에게 했던 말을 상기시킨다.


제 꿈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처럼 되는 거예요.


항상 가슴 속에 품어왔던 말.

그 말은 가시가 되어 카닌의 가슴에 파고드는 것 같았다.

좀 더 능숙하게, 좀 더 치밀하게 대처했더라면 아델이 이런 경험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력감은 카닌 자신이 그저 영웅 놀이에 취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게 하고, 그 자책감은 카닌의 고개와 어깨를 짓눌렀다.


카닌은 용서를 구하는 어린아이처럼 아델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티 없는 그녀의 얼굴이 더럽혀진 의복과 대비되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와 옷에 남아있는 오물과 핏자국이 그녀가 지나온 수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카닌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는 아이처럼 아델의 겉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


카닌이 아델의 얼굴을 닦고 있을 때, 아델은 이미 깨어있는 상태였다.

의식을 잃기 전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아델은 일단 자는 척하며 소리와 냄새로 상황을 살폈었고, 장작 타는 소리만이 들려왔기에 일단 처형대 위는 아니라 짐작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과 따뜻한 감촉이 얼굴을 타고 흐르며 피로를 걷어내 주는 감각에 몸을 맡긴다.


아마 카닌이 무사히 자신을 구해낸 것이리라.

아델은 확인차 실눈을 떠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괴로운 듯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카닌의 얼굴이 보였다.

카닌이 자신을 구해 주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그의 얼굴을 보는 건 괴로웠다.

그렇기에 아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려 했다.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어 그를 안심시킬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 직전, 카닌이 갑자기 아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머... 뭐야!!! 카닌? 서... 설마... 날?! 카닌도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질 나이긴 하지만... 이렇게 지금 갑자기?’


아델은 카닌의 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거세지는 것 같았다.

반면 카닌의 손길에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저도, 죄악감도, 수치심도 없이 그녀의 앞섶을 풀고, 등에 손을 넣더니 상체를 들어 올려 상의를 걷어냈다.

아델은 그저 두 눈을 꼭 감고, 카닌의 손에 몸을 맡겼다.

이윽고 하의가 벗겨지자, 얼굴을 비롯한 전신이 달군 철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델은 속옷 차림이 되었지만, 그러면서도 저항하지는 않는다.

자고 있을 때 덮치는 건 괘씸하지만, 카닌이라면 용서할 수 있었다.

처음이라 조금 두렵지만, 그가 원한다면 참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카닌은 아델의 예상과 달리 속옷 차림이 된 그녀의 몸을 청결히 닦아줄 뿐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천벌이 내려질 것 같은 고결한 피부를 아무렇지 않게 데운 수건으로 문지른다.

무심하게, 그러면서 피부에 자극이 가지 않도록 조심히, 또 얼룩 하나 남지 않도록 세심히 손을 움직였다.


카닌의 그런 행위는 아델을 수치심에 시달리게 했다.

첫 경험에서부터 아이 이름까지 생각하고, 함께 늙어가는 노후까지 망상한 자신이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신에게 명확한 실망감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자신은 이 상황에 무엇을 기대하고, 또 무엇에 실망했다는 말인가?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어!’


오늘 있었던 이 치욕을 평생 가슴 속에 담아두기 위해 아델은 얼굴 근육의 경련을 억제하며 자는 척을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에 카닌의 손이 멈추었다.

아무래도 아델의 몸을 다 닦은 모양이다.

아마 이제 새 옷을 입혀줄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한 아델은 이어지는 침묵에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아주 잠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아델의 이마에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이 느껴졌다.

촉촉한 수분을 머금은 살결이 두 가닥.


‘입술?’


자신의 이마에 지금 카닌이 입을 맞추었다고 생각한 아델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그리고 카닌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의 거리감에 아델은 자신의 이마에 닿고 있는 것이 그의 입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야를 올리자 카닌의 엄지손가락이 보인다.

아무래도 손등에 돋아난 핏줄의 굴곡 때문에 착각한 모양이었다.


“정신이 드셨어요? 열이 좀 있어 보였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아델은 더욱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추고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그렇게 대답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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