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로 취직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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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4
작품등록일 :
2021.05.22 03:27
최근연재일 :
2021.06.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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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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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8

작성
21.05.2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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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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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2> 출근 첫 날(1).

DUMMY

“이름이 뭔가?”

“R.”


“나이는?”

“모른다.”


“사는 곳은?”

“모른다.”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반말이야?”

“모른다.”


따악!


순간 김민성의 묵직한 손이 내 뒤통수를 강타했다.

웬놈의 연구원이 이렇게 덩치가 좋은거냐.

고릴라 같은 김민성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반말하지 마라 쉐이야. 맞아 죽기 싫으면.”

“알겠다.”

“이게!”

“...요. 알겠다요!”


입은 손보다 빠르다.

전광석화 같은 나의 대응에 김민성은 머리 위로 올렸던 손을 거두었다.


“이제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알겠나?”

“알겠... 습니다.”

“너는 휴머노이드인가? 인간인가?”


나는 순간 고민했다.

분명 나는 휴머노이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휴머노이드이라고 볼 수 있는가?

하지만 나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휴머노이드입니다.”

“흐음...”

“분명 너는 인간의 명령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널 휴머노이드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군.”


그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나는 못다 한 말을 내뱉었다.


“...요.”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아무리 봐도 수상하단 말이지.”


김민성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뭐가 수상한 겁니까?”

“바로 이런 말투! 휴머노이드는 절대 너같은 말투를 쓰지 않아.”

“... ... .”

“정곡을 찔렀나?”

“다시 한번 묻는다. 넌 인간인가?”


곤란하다.

지금 내가 인간이라고 대답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모르긴해도 좋은 꼴을 보긴 힘들 것 같았다.

김민성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는...”


순간 여드름 투성이의 김 하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민성 박사님. 최 중사님께서 부르십니다.”


그의 말투는 다급했다.


“이제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


김민성은 귀찮다는 듯 김하사를 내치려 했다.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김하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데?”


김민성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김하사는 잠시 움찔했지만 김민성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 '요람'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김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민성은 벌떡 일어났다.


“안내하게.”


김민성의 단호한 한마디에 김하사는 문쪽으로 뛰어가 김민성의 앞길을 텄다.


“이쪽으로.”


김 하사는 허리를 굽힌 채 공손하게 문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가 보면 표지판인 줄.

어수룩한줄만 알았더니 김하사는 사회생활의 표본 같은 놈이었다.

문을 통과하기 직전 김민성은 순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쉽게 되었군. 뭐 시간은 많으니까... 조만간 보자구.”


다 잡은 먹이를 놓친 맹수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내비치고 있었다.

그렇게 문이 닫혔다.



“휴우...”


참아왔던 숨이 터져 나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분명 프레이아가 차원의 문을 연 것까지는 기억한다.

잊지 말라고 하면서 뭐라뭐라 했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반쯤 돌아있었으니까.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여기 오면 뭘 잃어 버리고, 또 뭘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정작 중요한 정보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얄밉게 웃는 프레이아의 표정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와중에도 프레이아는 참 이뻤지...


“흐흐...”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휴머노이드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웃는다면 이상하게 여길것이 분명하다.

주의해야지.


[띠링!]


순간 머릿 속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공책 크기만한 투명 스크린이 허공에 떠 있었다.


“뭐지?”


허공에 손을 휘저어 보았지만 스크린은 만져지지 않았다.


“내가 없는 사이 또 기술은 발전했군.”


나는 감탄하며 선명한 해상도로 구현된 첨단 문물을 가까이서 감상하고 있었다.

순간 스크린에선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영화에 출현시켜도 될 법한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얼굴의 사내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점이 있다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는 것 정도?


“누구...?”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화면 속 남자는 조금 당황한듯했다.

하지만 남자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근처에 누가 있는건가?”


딱딱한 말투로 남자가 물었다.


“없는데...요?”


순간 아까 맞았던 뒤통수가 아려온 탓인지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높였다.

역시 나란 남자, 배운 것은 꼭 써먹는다.


“그런데 왜 날 모르는 척하는 거지? 갑자기 어색한 존댓말은 또 뭐고...”


화면 속 남자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내가 이 세계에 도착하기 전, 이 몸의 주인이었던 R14427이라는 휴머노이드는 분명 이 남자를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이 남자를 모르는 척한다면?

쓸데없는 의심을 살 것이 뻔하다.


나는 화면 속 남자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난 너를 시험했다.”

“뭐?”

“분명 나는 널 알고 있지만 화면 속의 네가 진짜 네가 아닐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완벽한 논리였다.

내가 살아있던 시절만해도 딥페이크(인공지능을 이용한 이미지 합성기술)가 만연하고 있었다.

기술의 발전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것은 범죄자들이다.

이건 필시 미래형 보이스 피싱이 분명하다!

남자는 잠시 생각에 빠진듯하더니 다시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R, 역시 너는 이런 상황에도 신중하군. 앤의 말을 듣길 잘했어.”


이게... 먹혔다고?

그리고 앤은 또 누구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깐 왜 그랬지?”


화면 속 남자가 물었다.

이건 무슨 스무 고개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단어말고 정확하게 말해줬으면 좋겠군. 나는 확실한 게 좋아서 말이야.”

“흠흠! 미안하군. 아직도 널 잘 모르겠단 말이지.”


나도 널 전혀 모른다만...

이제 차차 알아 가도록 하자.


“아까 점호 시간에 왜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 거린거지? 너답지 않게.”


남자는 내 부탁대로 ‘정확한’ 명사를 사용해 질문했다.


“그건...”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최대한 그럴듯한 말이 필요했다.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셔 말이지.”

“호오...”


먹혔다!

남자는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조금은 경계가 풀린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자신감을 얻은 나는 말을 덧붙였다.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군. 잠시 동안이라도 널 의심했던 점 사과한다.”


남자는 고개를 푹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아, 아니... 괜찮아. 우리 사이에! 하하!”


갑자기 미안해 지려고 한다.


“사과의 의미에서 내가 점심을 사도록 하지.”


밥 사는데 왜 저렇게 진지한거냐.

남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점심?”

“10분 뒤, 식당에서 보도록 하지.”


툭.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화면이 꺼졌다.

남자는 그렇게 자기 할말만 하고 화면 속에서 사라졌다.



“후우...”


어찌 되었든 잘 넘겼다.


자, 상황을 정리해보자.

나는 휴머노이드고 현재 인간임을 의심받고 있다.

그리고 내게는 저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놈과 ‘앤’이라는 동료가 있다.

아니, 내가 이 몸을 차지하기 전, R14427이라는 휴머노이드에게는 말이지.

그렇다면 원래 이 몸의 주인인 R14427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조용히 문 옆에 있는 거울을 향해 걸어갔다.


180cm까진 아니어도 준수한 키에 제법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다.

코까지 내려온 앞머리가 거슬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외모였다.

나는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잘생겼잖아!”


겁나 잘 생겼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대체 왜 앞머리로 덮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아까 그 남자가 조금 더 잘 생기긴 했지만, 지금의 나 역시 아침드라마의 주인공 정도는 가볍게 꿰찰 수 있을 정도로 잘생겼다.

새하얀 피부에 오똑한 콧날, 무쌍이지만 크고 깊은 눈 때문인지 신비감마저 자아내는 얼굴이었다.


‘고맙다. 프레이아!’


나는 진심을 다해 프레이아 여신님을 찬양하며 문을 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와 양쪽으로 끝없이 늘어서 있는 똑같은 문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분명 이 길을 쭉 따라가면 계단이 나왔지?’


나는 주어진 길을 천천히 걸었다.


판에 찍어낸 듯 똑같은 문들.

그 문에는 아무런 번호도 표식도 없었다.


만약 저런 곳에 산다면 어떻게 찾아가야할지 상상도 안간다.

제일 끝에 문까지 도달한 다음에 하나,둘씩 헤아려서 가야되는건가?

기술 발전에 비해 꽤나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번호만 매겨놨어도 찾기가 편할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큰 공간이 펼쳐졌다.

아까 내가 서있던 그 넓은 강당이다.

분명 저 위에서 최 중사가 열심히 떠들고 나는 저 아래 서있었지.

그리고 식당이 어딨더라...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순간 무언가에 부딪혔다.


“아아...”


바닥에 엉덩방아를 찢고 나니 고통이 엄습해왔다.

휴머노이드는 기계가 아니던가?

이런 고통이 휴머노이드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지...

몸을 일으키려하는데...


“괜찮아?”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엘프가 환생한다면 딱 저 모습일 거다.

금빛 머리칼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어어...”


나는 마지못해 그녀의 가녀린 손을 잡았다.


우지끈!


순간 뼈에 금이 간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그런 생각이 듦도 잠시 그녀의 손에 잡힌 나의 몸이 붕떴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내려옴과 동시에 나는 바닥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커헉!”


순간 내 입안에서 짭쪼름한 철분 맛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바닥에 꽂히면서 혀라도 씹은 모양이다.


“너 대체 뭐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그녀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약자의 생존 제 1 법칙은 언제 어디서든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나는 방금 제 1 법칙을 어겼다.

그래서 당했을 뿐이다.


“아, 미안. 일반 모드로 전환시키는 걸 깜빡했지 뭐야.”

“일반 모드?”

“방금 ‘사냥’ 갔다 왔거든.”


사냥은 또 뭐야?

일단 확실한 건 저 여자도 나를 아는 눈치다.


“해제했어.”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순간 나 역시 다시 무장해제 될 뻔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되지?

고민했다.

내가 아는 이름이라곤...


“앤...”


일단 운을 띠웠다.

이 여자가 진짜 앤이면 대답할 것이고 진짜 앤이아니라면 앤이 어딨냐고 물으면 될 것이다.


“왜?”


정답!


“후우... 아까 그놈한테 연락왔어.”

“그놈?”

“왜 있잖아. 우리의 소중한 동료이자 잘생긴...”


제발 말해줘!

그 놈이 누군지.


“아... 케이?”

“그래! 케이! 케이 그놈이 점심 먹자더라고. 하하!”

“아... 나도 마침 식당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고오맙다!!!

앤, 넌 정녕 환생한 엘프가 분명하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잘 헤아려주니 말이야.


“혹시 바쁜 일이 있으면 먼저 가도 돼...”


앤이 말 꼬리를 흐렸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난 그녀와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가야만 한다.


"꼭 같이 가자!"

"응!"


앤이 만족한듯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꼭을 꼭! 붙였어야만했냐.

조금 없어보이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잊기로 했다.


잠시 동안의 정적.


“안 가?”


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레이디 퍼스트.”


나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어어...”


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은듯 나를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당황했을테지.

지금의 나는 말도 안되게 잘생겼을 테니...


그녀를 따라 왼쪽 모퉁이를 돌아 한참을 걸어서야 나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이게... 정말 식당이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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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 불편한 진실(1). 21.06.20 14 2 9쪽
30 <29> 위험한 임무(3). 21.06.19 20 1 8쪽
29 <28> 위험한 임무(2). 21.06.18 20 1 9쪽
28 <27> 위험한 임무(1). 21.06.17 23 2 7쪽
27 <26> 케인(6). 21.06.16 26 1 7쪽
26 <25> 케인(5). 21.06.15 32 1 7쪽
25 <24> 케인(4). 21.06.14 28 1 8쪽
24 <23> 케인(3). 21.06.13 42 1 8쪽
23 <22> 케인(2). 21.06.12 45 1 10쪽
22 <21> 케인(1). 21.06.12 28 1 8쪽
21 <20> 로스트 월드(3). 21.06.10 42 2 12쪽
20 <19>로스트 월드(2). 21.06.09 24 2 11쪽
19 <18> 로스트 월드(1). 21.06.08 48 3 8쪽
18 <17> 앤의 기억. 21.06.07 47 4 9쪽
17 <16> 위험한 시험(3). 21.06.06 58 3 9쪽
16 <15> 위험한 시험(2). 21.06.05 53 2 10쪽
15 <14> 위험한 시험 (1). 21.06.04 52 2 7쪽
14 <13> 재회(2). 21.06.03 53 2 9쪽
13 <12> 재회(1). 21.06.02 59 2 9쪽
12 <11> 그의 계획(5). 21.06.01 34 2 11쪽
11 <10> 그의 계획(4). 21.05.31 64 2 14쪽
10 <9> 그의 계획(3). 21.05.30 65 4 12쪽
9 <8> 그의 계획(2). 21.05.29 74 2 12쪽
8 <7> 그의 계획(1). 21.05.28 64 3 11쪽
7 <6> 출근 첫 날(5). 21.05.27 55 3 10쪽
6 <5> 출근 첫 날(4). 21.05.26 69 3 9쪽
5 <4> 출근 첫 날(3). 21.05.25 80 4 10쪽
4 <3> 출근 첫 날(2). 21.05.24 84 6 8쪽
» <2> 출근 첫 날(1). 21.05.23 123 5 12쪽
2 <1> 나쁜 소식. 21.05.22 159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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