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로 취직했습니다만.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R4
작품등록일 :
2021.05.22 03:27
최근연재일 :
2021.06.20 17:5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806
추천수 :
94
글자수 :
128,678

작성
21.05.29 23:56
조회
74
추천
2
글자
12쪽

<8> 그의 계획(2).

DUMMY

“나는 누구지?”


나는 데이터 리플렉서라고 불리는 종이쪼가리를 보며 물었다.

순간 빈 종이에는 선명한 문장이 나타난다.


[R14427, 휴머노이드(보급형). 2076년 8월 제조.]


지금이 86년 6월이니까...


“뭐? 11년이나 됬다고?”


[그렇다.]


완전 고물이잖아.

로봇의 경우 한 해만 지나도 말도 안되는 스펙 상향이 이루어진다.

하물며 10년이 넘었다면 얼마나 뒤쳐졌을까.


“후우... 그건 그렇다 치자. 내가 쓸 수 있는 모드가 몇 개나 되냐?”


[일반 모드, 자동 모드.]


“자동 모드는 또 뭐야... 전투 모드는 없어?”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A급 몬스터를 혼자 때려잡아?”


[몬스터와의 전투는 확장팩으로 교체 시 가능하다.]


“확장팩? 그게 뭔데?”


[구 모델은 모드 변경이 불가능하다. 다만 상황에 따라 오른쪽 가슴에 위치한 소켓에 필요한 확장팩을 갈아 끼우면 모드 변경이 가능하다.]


“호오? 무슨 변신 로봇이야?”


[그런 시답지 않은 농담은 받아주지 않겠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게 너.]


“장난하나!”


[다른 질문 받는다. 맘 변하기 전에 해라.]


“혹시 오늘 내가 잊었거나 기억해야 할 게 있었나?”


잠시 동안 종이는 침묵했다.

종이를 뒤집어도 보고 흔들어도 봤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뭐지?”

“왜? 뭐가 잘 안돼?


앤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갑자기 이게 말이 없어.”

“그래? 잠깐 줘봐.”


앤에게 리플렉서를 건내자 앤은 머리를 갸우뚱 거렸다.


“어? 이런 일이 없었는데...”

“고장이라도 난거야?”

“조금 기다려보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야... 혹시 ‘확장팩’이라고 들어봤어?”


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앤에게 했다.


“잘 모르겠는데?”

“아니 예전의 R이란 놈은 요기 오른쪽 가슴에 확장팩이란걸 갈아 끼우는 모양이더라고.”

“정말?”


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했다.


“몰랐던 거야?”

“전혀.”

“별로 안 친했던 거 아니야?”

“우린 뜻이 맞아서 함께 했을 뿐이야. 알게 된지도 3개월 밖에 안됐고.”

“겨우 3개월?”

“우린 하루도 안됐거든?”

“아 맞네.”

“R이 10년이나 된 휴머노이든건 알고 있었어?”

“아니... 듣고 보니 난 R에 대해 아는 게 없네.”


앤의 표정에는 수심이 어렸다.


“그런데 뭘 믿고 케이에게 소개시켜 준거야?”

“그건...”


[규정 휴식 시간을 초과했습니다. 잠시 후, 강제 로그아웃됩니다.]


순간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앤은 스크린에 비친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니 돈만 내면 접속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뭔가 착각하나본데.”


앤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아직 휴머노이드야.”

“그게 뭐 어때서?”

“휴머노이드는 왜 만들어졌지?”

“그거야 인간 대신 일을 시키기 위해서...”

“잘 아네.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야.”


얘써 밝은척하며 나서려는 앤에게 쪽지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이건?”


나는 순간 쪽지에 나타난 문장을 보았다.


[ID: Nemesis, Pass: 20760618. 오늘 밤 12시.]


“네메시스?”

“뭐가?”


앤이 말을 꺼내는 순간 종이에 적혀 있던 문장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아니야. 잘못 봤나봐. 하하.”

“싱겁긴.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자. 그럼.”


앤은 내 손에 들려있던 종이를 채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녀가 떠나자 햄버거 가게에 손님이라곤 나 하나 뿐이었다.


“네메시스는 그렇다 쳐도. 비번은... 내가 죽은 날이잖아!?”


그제서야 나는 내가 죽은 날을 기억해냈다.

그런데 12시는 또 뭐람?


[강제 종료됩니다.]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와 함께 모든 시야가 차단되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붉은 색 메시지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업무 시작까지 5분 32초 남았습니다. 자동모드로 전환됩니다.]


“자동모드?”


순간 내 팔다리가 빳빳하게 굳기 시작했다.


“이,이게 뭐아...”


심지어 안면근육까지 굳기 시작하더니 내 눈은 터널 시야가 되었다.

내 몸인데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극한의 공포가 스며 올 때 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 로봇의 파일럿이 된 느낌이랄까?

다만 모든게 자동이라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파일럿.

나는 그렇게 내 몸이 가는데로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장면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달리다 왼쪽으로 꺾고, 문을 열고 나서니 또다른 문이 나오고 다시 골목으로...


4분여를 쉴새 없이 달리고 나서야 나는 멈췄다.

내 눈 앞에는 주먹코의 대머리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뭐라 떠들고 있었다.

순간 내 터널 시야가 풀리면서 주위가 환해졌다.

온몸에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몸의 주도권을 되찾은 나는 그제서야 그 남자가 뭐라고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멍청한 휴머노이드 같으니라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맨날 늦나? 어서 가서 일이나해!”


남자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무래도 휴머노이드 R은 그리 성실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나저나 난 또 무슨 일을 해야 되는 거지?


쿵!


순간 내 뒤에 묵직한 뭔가가 떨어졌다.

뒤를 돌아봤을 때 방 하나를 가득 채운 박스 더미가 쌓여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박스들에는 바코드 같은 게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바코드를 보는 순간 내 눈에는 커다란 지도가 펼쳐졌다.

지도 안에는 수백개가 넘는 방들이 있었고 그 중 B145라고 적힌 방이 빨간 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다른 박스도 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B256이라고 적힌 방이 빨간 색으로 깜빡였다.


“하, 이것 봐라?”


나는 알 수 있었었다.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나는 제일 앞에 있는 박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R14427이라고 적힌 파란색 점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배송을 시작합니다.]



#


밖은 훤한 대낮임에도 오늘도 ‘죠스바(Joe’s Bar)’는 캄캄했다.

노란 조명이 비추는 바에는 네댓 정도 되는 손님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동공이 풀려 있었다.

마치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순간 죠가 커튼을 열고 나오자 모두가 미간을 찌푸린다.

오늘도 솜털 하나 허락지 않는 그의 스킨헤드가 빛을 흩뿌린 탓일지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한 여자.

짧은 커트 머리를 그녀는 도무지 이 바에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었다.

흰 티셔츠에 워싱 하나 없는 청바지, 게다가 흰색 스니커즈까지.

누가 봐도 영락없는 학생인데 벌써 세잔 째 연거푸 들이키는 중이었다.


“오늘은 얼마나 팔았나?”


죠는 이채의 빈 잔에 싱글몰트를 한 잔 따르며 물었다.


“9000크레딧”


이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술로 술잔을 가져갔다.


“와우! 오늘은 팁 좀 두둑하게 챙겨주려나.”


죠는 씨익 웃으며 빈 잔을 가득 채워준다.

하지만 이채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렇게 돈 모아서 뭐하게?”

“알잖아.”


그녀는 천천히 술을 한 모금 머금으며 말했다.


“케논에 가면 뭐하는데?”

“그건 몰라도 돼.”

“난 참 이해가 안간다.”


죠가 뾰로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가?”

“내 아버지가 앨런이면 이 지구에 평생토록 짱 박혀있을 텐데 말이지.”

“아니야!”


이채는 순간 딱잘라 말했다.


“갑자기 뭐가 아니야?”


어안이 벙벙해진 죠가 물었다.


“... 아니야.”


이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어쭈? 이것봐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거야?”


죠의 거대한 주먹이 이채의 머리를 강타했다.

순간 이채는 머리를 매만지며 화를 버럭 냈다.


“아, 쫌! 이제 나도 벌써 열일곱이라고!”

“그래서 뭐?”


죠가 씽긋 웃으며 말했다.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간다!”


이채는 나가려다말고 뒤돌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죠가 궁금한 듯 쳐다보자 이채는 말을 이어갔다.


“혹시 어제 레드라는 남자 여기 안왔어?”

“레드? 모르겠는데.”

“혹시 말이야. 레드라는 남자가 날 찾으면 꼭 좀 알려줘.”

“호오... 남자친구?”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죠를 보며 이채는 손서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뭐 오면 말해주도록 하지. 특징은?”

“그냥 딱 보면 알거야.”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 죠에게 이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휴머노이드거든.”


#


[택배를 완료하였습니다.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헥...헥..."


그 많던 박스를 다 나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1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장 5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박스를 날랐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해야되는거야?"


나는 있는대로 짜증을 내며 문을 나섰다.


"뭐... 첫날치곤 괜찮았지?"


나는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육체노동이란걸 해본적이 없는 나였다.

평생 연구실에 쳐박혀 논문만 보고있던게 전부였던 내가 택배배달을 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막상 이 많은 박스를 모두 나 혼자의 힘으로 날랐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체 난 어디서 자야되는거냐."


휴머노이드로서의 재능은 오직 일할 때만 발휘되는듯 했다.

정작 내가 필요할때는 안내문구 하나 없었다.

그 누구도 내 집이 어딘지 알려준적이 없기에 나는 자정이 다되가는 야심한 밤에 홀로 텅빈 복도를 걸어야만했다.


여전히 기분 나쁜 곳이다.

번호도 없는 방안에는 문고리조차 없었다.

그런 문만 수백개다.

각각의 문 안에는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

대체 그들은 뭘하며 사는걸까?


'내가 무슨 남걱정이냐... 방이나 찾자."


한참을 돌다가 결국 내가 돌아오게 된 곳은 바로 식당이었다.

아는 곳이라곤 여기 밖에 없으니...

뭐 잘 데가 없으면 위스퍼에라도 접속해서 자면 될거 아닌가?

오늘 받은 보너스로 돈이야 충분할테고.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잘 수 있을것 같았다.


케이는 쉽게만 꺼내더만 나는 홀로그램으로 위장되어있는 캡슐을 낑낑대며 직접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치익.


다행이도 캡슐의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나는 캡슐 안에 노곤한 몸을 뉘웠다.


'그래 이제 좀 자자.'


눈을 감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캡슐안이었다.


'어라? 왜 접속이 안되지?'


나는 태양권이라도 쏘듯 관자놀이 두손을 올리고 집중했다.

안될땐 뭐라도 해봐야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접속 자체가 안되는듯했다.


'위스퍼엔 통금시간이라도 있는건가.'


씁쓸하게 웃으며 캡슐을 열고 나가려는데...


[접속하시겠습니까?]


그제서야 접속문구가 떴다.

그런데 이런게 있었나?


"접속!"


나는 아무 생각없이 접속을 외쳤다.


[ID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뭐지?


순간 쪽지에 써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디가 네메시스, 패스워드가... 이거였나?"


ID : Nemesis

Pass : 20760618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순간 머리에 번개라도 맞은것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으아아악!"


순간 찾아온 미칠듯한 고통에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이리저리 굴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손으로 밀고 발로 차보아도 캡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뇌세포 하나하나를 태워버리는듯한 고통은 이대로 끝날것 같지가 않았다.


순간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수많은 영상들이 지나갔다.


'이건...'


그것은 휴머노이드 R14427의 기억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휴머노이드로 취직했습니다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30> 불편한 진실(1). 21.06.20 14 2 9쪽
30 <29> 위험한 임무(3). 21.06.19 20 1 8쪽
29 <28> 위험한 임무(2). 21.06.18 20 1 9쪽
28 <27> 위험한 임무(1). 21.06.17 23 2 7쪽
27 <26> 케인(6). 21.06.16 26 1 7쪽
26 <25> 케인(5). 21.06.15 32 1 7쪽
25 <24> 케인(4). 21.06.14 28 1 8쪽
24 <23> 케인(3). 21.06.13 42 1 8쪽
23 <22> 케인(2). 21.06.12 45 1 10쪽
22 <21> 케인(1). 21.06.12 28 1 8쪽
21 <20> 로스트 월드(3). 21.06.10 42 2 12쪽
20 <19>로스트 월드(2). 21.06.09 24 2 11쪽
19 <18> 로스트 월드(1). 21.06.08 48 3 8쪽
18 <17> 앤의 기억. 21.06.07 47 4 9쪽
17 <16> 위험한 시험(3). 21.06.06 58 3 9쪽
16 <15> 위험한 시험(2). 21.06.05 53 2 10쪽
15 <14> 위험한 시험 (1). 21.06.04 52 2 7쪽
14 <13> 재회(2). 21.06.03 53 2 9쪽
13 <12> 재회(1). 21.06.02 59 2 9쪽
12 <11> 그의 계획(5). 21.06.01 34 2 11쪽
11 <10> 그의 계획(4). 21.05.31 64 2 14쪽
10 <9> 그의 계획(3). 21.05.30 65 4 12쪽
» <8> 그의 계획(2). 21.05.29 75 2 12쪽
8 <7> 그의 계획(1). 21.05.28 64 3 11쪽
7 <6> 출근 첫 날(5). 21.05.27 55 3 10쪽
6 <5> 출근 첫 날(4). 21.05.26 69 3 9쪽
5 <4> 출근 첫 날(3). 21.05.25 80 4 10쪽
4 <3> 출근 첫 날(2). 21.05.24 84 6 8쪽
3 <2> 출근 첫 날(1). 21.05.23 123 5 12쪽
2 <1> 나쁜 소식. 21.05.22 159 1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