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로 취직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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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4
작품등록일 :
2021.05.22 03:27
최근연재일 :
2021.06.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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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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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 그의 계획(3).

DUMMY

누군가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기억이라면 차라리 낫다.

적당히 잊을 건 잊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니까.

그나마도 잊혀지지 않는것들은 무의식이라는 쓰레기통에 넣어두면 한참을 잊고 산다.

막상 죽을 때쯤 삶을 돌이켜보면 의외로 별거 없는 삶에 놀라곤 한다.

딴엔 열심히 살았다고 살았는데도 기억 속에 남는 거라곤 향수에 젖은 빵과 어느 바닷가에서의 추억 정도려나.


하지만 휴머노이드의 기억은 다르다.

휴머노이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저장한다.

그들의 기억은 좋고 싫음보다는 얼마나 유용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최적화’를 통해 감정과 같은 쓸모없는 기억들은 우선적으로 모두 삭제된다.


R14427의 기억은 기술의 보고였다.


그가 습득한 기술의 양만 해도 책 몇 권은 써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폴더별로 정리된 그의 기억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잘 분류되어있었다.


.inf

.exe


모든 정보는 이 두 가지 확장자로 저장 되어 있었다.

한 폴더에 저장된 정보량만 해도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배워도 다 써먹지 못할 정보였다.

이를 테면 [건축]이라는 폴더를 열어보면 기초공사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자재의 종류와 사용법은 물론 필요한 공학적 지식까지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정리된 주요 폴더만 정리해도 2천여개.

그 하위 폴더들까지 센다면 몇십 만개의 폴더가 존재했다.


다만 그의 마지막 3달 반 동안의 기억만은 예외였다.


[2086.03]

[2086.04]

[2086.05]

[2086.06]


3월부터 6월까지의 모든 기억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emt

.inf

.pln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3월에서 6월까지의 기억만은 .exe는 사라지고 .emt와 .pln이라는 새로운 확장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군.”


나는 허공에 떠 있던 여섯 개의 스크린을 닫았다.

R14427이라는 휴머노이드에 대해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내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이 몸과의 동조율 또한 높아질 것이다.

그럼 저 많은 능력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내 계획에는 반드시 그 능력들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익숙하진 않지만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정보들은 모두 로딩해두었다.


지금 시각 새벽 2시 21분.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


수백 개의 화면들로 가득한 가상의 방에 군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앉아있다.


“하암...”


어느새 군모를 거꾸로 뒤집어 쓴 임건무가 연신 하품을 해댄다.


“어제 또 밤샜어?”


눈이 꺼벙하게 생긴 김자건이 말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게임 좀 하느라.”


임건무는 눈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그 놈의 게임...”

“방구석에서 게임 말고 할게 뭐가 있냐?”

“얼마나 생산적인 일이 많냐. 음악도 좀 듣고, 요새 나오는 예술 영화도 좀 보고... 흐흐.”


김자건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술은 개뿔. 맨날 야동이나 쳐보는 것보단 게임하는 게 백배는 낫지. 뼈 삭아 이 자식아.”


임건무는 김자건의 뒷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가상 공간 속이었지만 그 고통은 현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김자건은 아린 뒷통수를 만지며 울먹이며 말했다.


“나도 벌써 스물 둘이야. 조선시대였으면 애가 둘이라구요.”

“지금은 조선 시대 아니구요. 2.0.8.6.년. 이거든요?”

“하아... 밖에 좀 나가 보고 싶다.”

“나도...”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했건만 기껏 한다는 일이 휴머노이드 감시다.

하지만 워낙에 다들 상향 평준화 되다 보니 이런 일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나 저나 우리도 일 좀 해야 되지 않냐?”


김자건이 모니터를 둘러보며 말했다.


“휴머노이드가 어련히 잘 자겠지. 그걸 우리가 꼭 확인해야만 아냐?”


임건무는 의자에 등을 젖힌 채 천장을 보며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니가 맨날 쫄보 소릴 듣는 거야 인마.”


다시 한번 임건무의 오른손이 김자건의 뒷통수를 강타하려는 순간 김자건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확인이나 해봐.”

“뭐, 확인해 보나 마나지.”


귀찮은 듯 앞쪽에 있는 모니터를 살피는 임건무.


“봐봐. 여기 다 잘자고 있...”


순간 임건무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없어.”


임건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뭐가?”

“휴머노이드 한 놈이 없다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임건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이런 미친! 그럼 빨리 지원 요청해야지! 다른 데서 찾을 수도 있잖아.”


김자건은 이미 가상의 새 창을 띄워 비상연락망을 뒤지고 있었다.

임건무는 그런 김자건의 창을 억지로 닫으며 말했다.


“미쳤냐? 12시부터 아무 일도 없이 다 잘 잔다고 보고 다 해놨는데 이제 와서?”

“그럼 어떡해...”


김자건은 이미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찾아!”


버럭 소리를 지른 임건무는 카메라 하나하나에 의식을 집중했다.

고정되어있던 시야는 임건무에 의해 자유자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임건무는 출근한지 5시간만에 처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알았어! 찾으면 바로 말해! 어?”


김자건 역시 반대쪽 카메라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어서 찾기나 해. 아오! 재수가 없을 라니까...”


김자건은 R14427이라고 적힌 빈 캡슐을 바라보며 짜증 아닌 짜증을 내고 있었다.



#


R의 기억을 되찾고 내게는 새로운 감각이 생겼다.

육감이랄까?

나는 지금 카메라의 시선을 느끼고 있다.

수백 개의 보이지 않는 카메라들이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오늘따라 카메라가 열일하네.’


R의 기억에 따르면 카메라는 보통 한 곳에 고정되어있다.

카메라가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면 그건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뜻.


‘날 찾고 있는 건가? 더 서둘러야겠군.’


나는 카메라의 렌즈 각도에 따라 볼 수 있는 모든 시야를 순식간에 계산해냈다.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카메라는 0.3초마다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내 눈앞에 생긴 가상의 필터는 그 사각지대를 붉은색 음영으로 시각화해주었다.


나는 벽에 딱 달라붙어 그 사각지대만을 집요하게 지나다니며 신속하게 이동했다.

그렇게 나는 휴머노이드 수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흰 벽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개의 캡슐이 들어있다.

휴머노이드들은 그 안에서 적게는 2시간 많게는 4시간까지의 수면시간이 허용된다.

충분한 수면을 마친 휴머노이드들은 남은 시간 동안 주로 ‘위스퍼’에 접속해 자유시간을 즐기던지 체력단련을 하곤 한다.


지금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후자였다.

체력단련실로 가는 휴머노이드는 매우 성실한 축에 속하므로 카메라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지금 나를 찾으며 똥줄 타고 있을 놈들은 아마도 그 반대쪽 길만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카메라의 사각지대만을 밟으며 수면실을 지나 신속하게 체력단련실을 향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들 아는 체력단련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왜냐면 우리는 휴머노이드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붉은 액체가 담겨있는 수십 개의 투명한 수조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몇몇의 부지런한 휴머노이드들이 여기저기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수조가 있었으니.


‘역시 있었군.’


왼쪽에서 세 번째 있는 수조 속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검은 중력복을 입은 케이가 붉은 수조 안에서 이소룡이라도 된 듯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


“찾았어?”


김자건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찾는 중이야.”


임건무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찾았냐고.”


10초를 못넘기고 다시 묻는 김자건.


“아씨! 못 찾았어! 못 찾았다고! 아... 미치겠네.”


임건무는 그런 김자건으로 보며 짜증을 냈다.


“이제 곧 보고 해야 된다고! 혹시라도 없으면 니가 책임질 거야?”


김자건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임건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아... 미치겠네. 진짜. 이 새낀 대체 어딜 간거야?”


임건무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없어진 휴머노이드를 찾는 수 밖엔...


“어!??”


순간 김자건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뭐야? 찾았어?”

“체력단련실에서 나오는데?”


김자건이 가리킨 모니터에서는 두 명의 휴머노이드가 나오고 있었다.

잘생긴 놈 옆에 말도 안되게 잘생긴 놈 둘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뭐!? 이런 미친... 수면실에 들어가는 것도 못 봤는데 어떻게 체력 단련실을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임건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보고해?”


김자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임건무을 쳐다보며 말했다.


“미쳤냐!? 걍 돌아왔으면 됐지, 뭔 보고를 해! 생각 좀 해라 생각 좀!”


임건무의 눈은 화면에 꽂혀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냥 잘생긴 놈.

R14427이라는 휴머노이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 저 새끼 얼굴 꼭 기억한다. 아오!”


#


“네가 체력단련에 관심이 있는지는 몰랐군.”


나는 젖은 머리가 순식간에 마르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케이가 그렇다.

그의 머리에서는 풍선 바람빠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 카락이 건조되고 있었다.


“뭐, 궁금해서 한 번 와봤어. 역시나 열심히더군.”


나는 그런 케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내게 수면은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남은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하하. 케이, 너 다운 대답이군.”

“나 다운?”


케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다가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까 나올 때 보니 수면 캡슐에도 없던데 어디 갔었나?”

“어디 좀 갈 데가 좀 있어서.”


사실을 말해야되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조심하도록 하지.”


나는 그정도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들 여기 있었네? 나만 빼고 둘이 뭐하고 있었어?”

언제 나타났는지 앤이 밝게 웃으며 나타났다.


“운동?”


내 물음 같은 대답에 앤은 신기한 듯 쳐다보마 물었다.


“니가?”

“왜? 안 믿겨?”

“케이는 몰라도 니가 운동을 할 리가 없잖아.”


앤의 표정을 보니 정말인가 보다.


“난 그런 놈이었군.”

“아... 네가 아니지...”


순간 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앤이 나에게 집착했는지.


“찾았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뭐?”

“원래 네가 아는 그 R의 기억을 찾았다고.”

“정말!?”


내가 봤던 앤의 표정중 가장 기쁜 표정이었다.


“그렇게 좋아?”


순간 앤이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좋을 수 밖에.

원래 휴머노이드 R과 앤은 사랑하는 사이였으니까.


“아, 아무 말도 하지마 너!”

“뭘 말인가?”


앤의 격한 반응에도 케이는 무덤덤하게 물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넌 참 좋겠다.

잘생긴 게 눈치까지 없어서.


“그럼 우리 계획은 예정 대로인 거지?”


앤이 웃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아니, 그의 계획대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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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 불편한 진실(1). 21.06.20 14 2 9쪽
30 <29> 위험한 임무(3). 21.06.19 20 1 8쪽
29 <28> 위험한 임무(2). 21.06.18 20 1 9쪽
28 <27> 위험한 임무(1). 21.06.17 23 2 7쪽
27 <26> 케인(6). 21.06.16 26 1 7쪽
26 <25> 케인(5). 21.06.15 32 1 7쪽
25 <24> 케인(4). 21.06.14 28 1 8쪽
24 <23> 케인(3). 21.06.13 42 1 8쪽
23 <22> 케인(2). 21.06.12 45 1 10쪽
22 <21> 케인(1). 21.06.12 28 1 8쪽
21 <20> 로스트 월드(3). 21.06.10 42 2 12쪽
20 <19>로스트 월드(2). 21.06.09 24 2 11쪽
19 <18> 로스트 월드(1). 21.06.08 48 3 8쪽
18 <17> 앤의 기억. 21.06.07 47 4 9쪽
17 <16> 위험한 시험(3). 21.06.06 58 3 9쪽
16 <15> 위험한 시험(2). 21.06.05 53 2 10쪽
15 <14> 위험한 시험 (1). 21.06.04 52 2 7쪽
14 <13> 재회(2). 21.06.03 53 2 9쪽
13 <12> 재회(1). 21.06.02 59 2 9쪽
12 <11> 그의 계획(5). 21.06.01 34 2 11쪽
11 <10> 그의 계획(4). 21.05.31 64 2 14쪽
» <9> 그의 계획(3). 21.05.30 66 4 12쪽
9 <8> 그의 계획(2). 21.05.29 75 2 12쪽
8 <7> 그의 계획(1). 21.05.28 64 3 11쪽
7 <6> 출근 첫 날(5). 21.05.27 55 3 10쪽
6 <5> 출근 첫 날(4). 21.05.26 69 3 9쪽
5 <4> 출근 첫 날(3). 21.05.25 80 4 10쪽
4 <3> 출근 첫 날(2). 21.05.24 84 6 8쪽
3 <2> 출근 첫 날(1). 21.05.23 123 5 12쪽
2 <1> 나쁜 소식. 21.05.22 159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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