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막심! 절망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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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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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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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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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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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DUMMY

확실했다. 방금 기사가 휘두른 검은 명백히 이전과는 다른 힘을 품고 있었다.


한 번이라면 몰라도 두 번 연속으로 같은 결과가 나왔다면 마냥 우연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용사는 기사의 대응이 바뀐 이유를 대강이나마 분석했다.


‘돌에 담긴 힘의 차이. 좀 더 파고들면 위험도의 차이겠지.’


그저 반응을 살피는 목적만으로 날아간 돌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처음부터 실험을 위해 주변에서 적당히 골라 던진 것뿐이니 당연했다. 더구나 전신을 갑주로 둘러싼 기사를 손목만을 이용해 던진 가벼운 돌멩이로 어찌해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기사도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여신에게 부여받은 역할이 있으니 의무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그 와중에도 손을 놓음으로써 경중을 확실하게 구별하는 여유 아닌 여유까지 보였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검조차도 가볍게 볼 수 없다지만 기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연히 손을 놓은 결과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용사가 힘을 담은 투석은 경우가 달랐다.


기사가 뽑히기 전까지는 세상 느긋했던 검이 물체를 인식한 순간 즉각 속도가 뻥튀기되었을 만큼 용사가 힘을 담아 던진 돌은 기사도 무시하지 못할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걸 맞은 기사가 어떻게 되진 않았겠지만 날아오는 짱돌을 맞고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용사가 던진 돌을 맞고 생채기 하나 없을 순 없었다.


용사가 적당히라고 여기고 던졌던 힘의 기준도 일반인 기준으로 속도는 눈을 떠보니 뭔가가 눈앞을 휙 지나갔다는 수준이었고, 위력으로 따지면 맞으면 어디 한군데가 반드시 박살이 날 정도였으니 한순간에 대응 강도를 수정한 기사의 판단은 실로 정확했다고 볼 수 있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용사는 또다시 작동을 멈춘 기사를 보며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딱히 노리고 던진 건 아니었지만 당초의 목적이야 어찌 됐든 괜찮은 걸 알게 되었다.


이거 잘만 하면 어떻게든 이용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괜찮겠는데. 한 번 해봐?”


새롭게 얻은 정보를 써먹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용사였지만 뭘 해봐도 딱히 손해를 보진 않으리라는 생각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부터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어째선지 눈앞의 기사를 내버려 두고 방향을 바꿔 무작정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 이거면 좀 더 빨리 달릴 수도 있겠는데?”


어느 정도 속력이 붙는다 싶을 때 조금 더 가속한 용사는 이내 지면을 긁어내며 급정지 후 발이 땅에 꽂힌 상태에서 몸을 반전해 그 방향 그대로 다시 달렸다.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용사의 무지막지한 신체능력을 이용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왕복하던 용사는 어느 순간 대강 감을 잡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이어서 발밑의 돌을 주워 담았다.


“최대한 단단한 놈으로.”


조금 전 실험에 사용하느라 주변에 돌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땅을 부숴서 만들기도 번거로우니 남은 것들 중에서 가장 단단한 녀석들로 고르고 골라 최상품만을 주머니 속으로 차곡차곡 쑤셔 넣었다.


혹여 수가 모자라진 않을지 걱정됐지만 주머니 채워지는 속도를 봐서는 걱정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았다.


“좋아. 이 정도 모았으면 됐겠지.”


발치를 굴러다니는 돌 중에 최대한 단단한 걸로만 추려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건만 얼마 안 가 양주머니가 빵빵해졌다.


흡사 다람쥐가 입 안 가득 도토리를 집어넣은 것처럼 올록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주머니는 살짝만 움직여도 터질 듯 불안하게 흔들렸는데, 담은 돌들의 무게도 무게인지라 움직이는 것만 해도 상당한 곤란을 겪을 것이 뻔해 보였다.


용사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겉보기에 당장 터질 것 같은 바지주머니라도 입고 있던 정장에까지 녹아든 에테르의 뛰어난 신축성과 내구성 덕분에 움직이다 찢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고, 돌의 무게 또한 틀을 벗어난 근력이 있어 마치 아무것도 들지 않은 것처럼 가벼웠기 때문이다.


과연 최상급 아티팩트. 어지간한 불편함은 힘으로 어떻게든 해버린다는 거겠지.


“이걸로 대강 준비는 끝. 바로 가볼까.”


용사는 이쯤에서 대강 점검을 마치기로 하고 자신 있게 앞으로 걸어갔다.


마음 같아선 조금 더 주머니를 채우고 싶었지만 역시나 이 이상은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에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양주머니가 가득해서 그런지 그 무시무시한 기사에게 싸움을 걸러 가는 데도 용사의 걸음걸이는 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단숨에 들어가는 건 무리였는지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처음 기사의 바로 앞에서 멈췄던 때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지점이었다.


얼핏 보면 용사가 겁을 먹고 다가가는 것을 꺼린 모습으로 비치겠지만 실상 용사의 얼굴에 신중함은 있어도 두려움은 없었다.


“이쯤이면 되겠지.”


용사는 눈대중으로 기사와의 거리를 가늠하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양손 가득 돌을 쥐고서 빼냈다.


꺼내다가 몇 개인가가 벌어진 손가락이나 주머니 틈으로 흘러내렸지만 그 정도야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많이 날아가기만 하면 돼.’


중요한 건 머릿수. 날아갈 때 머릿수만 충당된다면 손 안에서 몇 개가 굴러떨어지든 상관없었다.


“그럼......”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용사가 팔을 힘껏 뒤로 젖혔다. 동시에 어깨와 팔뚝, 허벅지가 순간적으로 한 단계 크기를 부풀린다.


크고 작은 돌을 빈틈없이 쥔 손은 손가락 하나하나가 날이 선 듯 빳빳해졌으며, 동시에 전신의 근육이 한계까지 팽팽하게 당겨졌다.


“가, 랏!”


파바바바바박!


용사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대량의 돌이 총알 같은 속도로 일제히 튀어나갔다.


개중에는 사출 각도가 어긋나 지면을 향해 곧장 떨어진 것도 존재했는데, 그것들은 고작 돌이 떨어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폭발을 일으키며 바짝 마른 지면을 가차 없이 마구 부숴댔다.


‘이건 이것대로 상상 이상......’


분명 적당히 힘 있게 던지긴 했지만 뭐가 됐든 돌이잖은가? 부딪쳤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에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더 힘이 좋았던 탓에 명중률은 형편없어서 던진 돌의 대다수가 넘치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지면을 파헤치며 멋대로 폭사하고 말았다.


개중 운 좋은 것들이 기사를 향해 날아갔지만 저 정도 수로 원하는 결과가 나오긴 턱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그 사실을 간파한 용사는 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재빨리 다른 한 손에 든 것까지 날려 보낸 뒤 주머니에서 새로 돌을 빼내 손에 장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번에 하나가 아니라 양팔을 한꺼번에 휘둘러 손에 든 것을 모조리 투척했다.


이번에는 급하게 양쪽을 다 던지려다 보니 실수로 아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 위력이 몇 배나 널뛰었지만 그럴 것까지 감안해서 한꺼번에 많이 던진 덕분에 이전보다 명중률은 확연히 증가했다.


사방팔방으로 쏘아진 돌들이 폭탄처럼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성대하게 지면을 날려버리며 황폐화를 더욱 더 가속화시켰고, 그 중 가장 운 좋은 것들이 허공을 찢으며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이거라면 너도 힘 좀 써야 할 걸?’


기사는 무시할 수 없는 힘과 속도로 날아오는 수많은 돌을 인식하자마자 아까처럼 검을 뽑아들었다.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대응할 방침인지 그 속도는 잔상조차도 여럿으로 분리되어 보일 정도로 빨랐다. 그럼에도 전력은 아니다. 기사의 검놀림은 여전히 용사의 눈에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지금이다!’


용사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마지막까지 날려 보낸 즉시 기사의 측면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 해도 발끝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 순식간에 후방으로 꺾어 들어 기사의 뒤를 잡았다.


‘역시 빈틈투성이야!’


용사는 훤히 드러난 기사의 등을 보며 무심코 주먹을 꽉 쥐었다.


뒤에서 바라본 기사는 ‘적당히’ 위험을 느낀 돌을 ‘적당히’ 쳐내느라 이전에 보이지 않던 허점을 다수 보이고 있었다.


정면에서 맞붙었을 때였다면 저런 빈틈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당면한 위험요소는 용사가 아니라 ‘적당히’ 위험하게 날아오는 다수의 돌이었다.


용사를 상대할 때의 힘과 대응력을 발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는 영역 밖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기사의 특성이 만들어낸 허점이었다.


영역에 들어온 적성존재만을 인식하다 보니 그 밖에선 누가 뭘 하던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탓에 기사는 용사가 돌로 어그로를 끈 사이에 뛰어난 신체능력을 백분 발휘해 무방비한 자신의 뒤를 잡았음에도 기계처럼 돌을 쳐내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딱 예상한 대로였다.


‘이겼다!’


용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사의 성가신 점 중 하나는 한 번에 무수히 많은 수의 공격을 퍼붓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눈으로 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검기를 쏟아내는데, 이는 상대하는 입장에선 시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이나 큰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하나를 피하면 또 하나가 날아오고, 그걸 피하면 또 다른 곳에서 여럿이 날아온다. 그것을 매순간 반복하다 보면 몸은 괜찮아도 어느 샌가 정신이 피폐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계속해서 도전하면 언젠가는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나름 긍정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적응하기 전까지 어딘가 한군데는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에테르의 방어력을 확인한 뒤에도 느끼는 정도는 달라도 여전히 존재하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것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역에 내에서만 사물을 인식하는 점을 이용해 돌을 던져 확실히 어그로를 끌어두었고, 위험도를 구분해 힘을 가감하는 기사의 출력이 돌에 맞춰 떨어질 때를 노려 후방도 잡았다.


그리고 현재 기사는 날아오는 돌 외에는 완전히 관심 밖.


물론 영역 안으로 들어선다면 당연하게 반응해올 테지만, 당면한 위험도에 맞춰 의도적으로 출력을 낮춘 기사는 설령 용사가 영역 안으로 파고든다 해도 다시 출력을 올리고 이쪽으로 방향을 틀기까지 어쩔 수 없는 시간지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즉, 아까처럼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은 없다 이거지!’


더는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줄타기하듯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 그저 달려가서 저 훤한 등짝에 제대로 한방 먹여주면 되는 것이다.


‘완벽해!’


용사가 되기 전의 자신이라면 뭐가 됐든 절대 속단하지 않았겠지만 이렇게까지 조건이 맞춰지니까 저도 모르게 우쭐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다만, 이런 절묘한 상황에서도 불안 요소가 아주 없진 않았다.


제아무리 단단한 것으로만 선별했다지만 그럼에도 돌이라는 재질의 특성상 강철조차 간단히 가르는 기사의 검에는 잠깐도 버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탓에 시간적으로 따져서 용사에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해봐야 돌이 전부 사라지기까지의 정말로 한순간에 불과했고, 제아무리 보통사람과 인지하는 시간감각이 달라진 용사라도 열심히 움직이지 않으면 자칫 때를 놓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도 있을 수 있다 정도지 이미 반환점을 넘어선 지금에 와서는 굳이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단순히 주먹을 찔러 넣으면 이기는 마당에 다른 변수가 있을 리가 없고 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변이란 언제나 이런 순간만 노려서 나타나는 법.


막 주먹을 내지르려던 용사는 돌연 기사의 움직임이 멎는다 싶더니 한순간에 자신을 향해 돌아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돌이 날아가는 것은 여전했으나 용사가 영역에 들어온 순간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반전해버린 것이다.


실제로 기사의 눈엔 돌 따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더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기사가 가장 우선해야 할 목표이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된 용사를 인식한 순간 아주 약간의 시간차도 없이 전력을 끌어올린 기사의 검이 찰나 빛으로 화해 거슬리는 것들을 모조리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용사를 향해 검의 머리를 돌렸다.


기사의 손에서 잔상마저도 남기지 않는 수십, 수백 가닥의 마나를 담은 검기가 미끄러지듯 용사의 목덜미까지 뻗어나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별다른 준비 동작도 없이 휘둘러진 검이었지만 그 속에 맺힌 수많은 빛의 궤적을 본 순간 용사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고, 저도 모르는 사이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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