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무적 소환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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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리
작품등록일 :
2021.05.3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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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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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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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 피어오르는 번뇌의 굴레(2)

DUMMY

「칼리도르 왕국 영광의 거리」


대다수의 마물이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마계에는 인간종이 없기에 모두가 자신을 마물이라 부른다.

'루이스의 가면'과 '루이스의 귀'를 착용한 상태라 아직까지 나를 인간으로 인식한 마물은 없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성장이 덜 된 마물로 보일 것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또다시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의 현자를 찾는 게 우선순위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테오의 행방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인 상황.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현지인에게서 정보를 얻는 게 확실하다.

사교성이 최악이라 잘 성공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부딪혀 봐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행동을 개시했다.

마침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흐리멍덩하게 생긴 마물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상대방에게 접근했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게 만든다.

자, 어떻게 나올 것이냐 마물.


"누구슈?"


입에 착 달라붙는 말투가 특징이며 행동거지에서 시골 농부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깎았으며 입 주변에 덥수룩하게 돋아난 수염과 상당히 다부진 체격이 곰 같은 인상을 주는 외견이었다. 오른손에는 철퇴(鐵槌)를 쥐고 있고, 반대편 손에는 갈색 쌀가마처럼 생긴 것을 어깨 위에 올려 중심을 지탱하고 있었다.

종족명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드워프 상위종이 아닐까?


"그, 시간 있으시면 잠시 말씀 좀 물어봐도 될까요?"


"빨리 말해보슈, 어깨에 올려놓은 보따리의 무게가 상당하니."


"칼리도르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마물이 누구인가요?"


"음? 그런 건 알아서 뭐 하려고유?"


"다름이 아니라 '그린빌리지'의 촌장님께서 중요 거래 건으로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와 접선해 관계를 만들라고 지시를 받아서요, 하하."


"그린빌리지? 최하위 빈민층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웬일로 왕국을 다 찾아왔대유?"


"비즈니스 관계요! 이건 비밀인데요..."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가까이 오라고 신호를 보낸 뒤 마물의 귀에 속삭였다.


"인간을 잡았어요, 그것도 무려 두 명이나."


"뭐, 뭐라구유!?"


"쉿! 마계에서 인간은 엘프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 건에 대해 왕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찾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관계를 만들기 위해."


"호, 혹시 알려준다면 나에게도 떨어지는 게 있나유?"


"당연하죠~! 이 정도면 말해주실 수 있나요?"


주머니에서 월계수 잎 5장을 꺼내 마물에게 보여주었다.

월계수 잎은 마계의 화폐로 고기를 제외한 음식은 1장, 고기와 의류는 2장, 전투에 필요한 무구는 최소 3장부터 시작이기에, 월계수 잎 5장은 막노동하는 마물의 하루치 일당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받는 월계수 잎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이다.


예상대로 마물의 눈동자는 월계수의 잎에 유혹당해 무엇이든 말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역시 정보를 확실하게 얻으려면 돈이 최고다.


"저, 정말로 주는 게 맞는 거쥬!?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예유!"


"얼른 말해주세요, 서로 갈 길이 급하잖아요~."


"제가 왔던 방향으로 쭉 가시면 분수가 보일 거예유! 거기서 서쪽으로 10m 이동하면 두 갈래 길이 보일 텐데 왼쪽으로 가셔서 동쪽으로 3m 직진하면 여러 저택이 보여유, 그중에서 양쪽 대문 위에 살찐 개구리 석상이 놓여 있는 곳이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마물의 집이에유! 이름은 뜨랑···?뭐시기인디 까묵어부렸네."


흐리멍덩하게 생긴 마물이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며 머쓱했다.


"혹시 헷갈리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유, 추가 비용은 따로 지불해야 하지만유."


"괜찮아요, 이미 다 외웠어요. 여기, 약속한 금액입니다."


"고, 고마워유!"


"그리고 혹시 종족이 어떻게 되나요? 아까부터 궁금했거든요."


"종족이유? 아~ 그 드워프종, 엘프종 말하는 거 맞쥬? 겉으로는 이렇게 생겼어도 요정이에유."


"네? 네!? 네에에!?"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놀라더라고유···. 여기를 보세유, 등 뒤에 날개가 있잖아유."


정말로 날개가 있다.

동화에 나오는 팅커벨 크기의 작은 날개가 그의 큼지막한 등 뒤에 붙어있다.

전혀 크기가 안 맞는 날개가 더 기괴하게 느껴졌다.

분명 드워프 상위종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밉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여기에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칼리도르 왕국 동쪽 외곽에 있는 바그너의 오두막으로 오셔유, 저는 언제나 거기 있어유."


그는 자신을 '바그너'라 소개했다. 종족은 엘프.

필요하거나 궁금할 때 찾아오라는 말은 아마 돈을 주면 무엇이든 말해준다는 뜻일 것이다. 역시 자본주의가 낳은 세상이다.

바그너와 대화를 마무리하고 작별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가 설명한 장소를 기억으로 되살려 지리의 퍼즐을 맞추며 이동했다.

완전히 목적지에 도착하자 정말로 살찐 개구리 석상이 보였다.

다만,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가 머무는 저택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세르덴 마을'에서 처형 부대 대장인 퐁듀가 노먼의 저택을 습격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현관은 부서진 상태였으며 저택의 창문들이 모조리 깨지고, 2층 외벽이 포탄을 맞은 것처럼 뚫려 있었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게 아닐까.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안 된다.

철창으로 이루어진 대문을 가볍게 넘어 대문 바로 뒤로 착지했다.


그때, 현관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아마 저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조금씩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두운 그림자는 움직이려는 기색이 없었다. 어떠한 미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자 어두운 그림자의 모습도 선명하게 보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거리까지 도착한 나는 그림자의 정체를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왜소한 체격과 창백한 얼굴, 그리고 잦은 상처로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까지···

모든 게 변했지만,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녀석이었으니까.


"보고 싶었어, 미나."


"테오."


"나, 나를 구하러 온 거야?"


"아니, 널 없애기 위해 온 거야."


생각했던 대로, 역시 테오의 상태는 불안정하다.

예전부터 느꼈던 최악의 경우가 지금 벌어졌다.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나오는 주인공이 악에 물들어 타락해졌다.'라는 막장 전개가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럴 때 히로인의 진정한 사랑이나 동료가 고생해서 직접 정신 차리게 만드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겠지만 그 과정이 정말로 역겹다. 특히 겉은 미소녀지만 알맹이는 남자인 내가 그 역할을 하는 건 절대 무리다.

차라리 뒤끝이 없도록 지금 처리하는 게 좋다.

근본이 썩어버리면 답이 없으니까.


"그럴 리 없어···. 부끄러워서 그런 걸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보듬어 줄게."


"후, 애초에 '너'라는 녀석이 싫었어."


나는 약간의 상냥함도 없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서 무기를 들어, 마침 마검(Evil Sword)도 가지고 있네. 결판을 짓자."


"무, 무슨 소리야? 우리는 친구였잖아!"


"지금은 아니야."


"그래! 분명 마왕이라는 나쁜 놈한테 세뇌당한 걸 거야! 내가···."


"<크리마>,"


염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합치고 강력한 불꽃을 가진 소환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테오는 절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결과는 똑같다.

내 판단은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

여기서 처리하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내 마음속 위험 경보가 울리고 있었으니까. 약간의 정(情)도, 동정(同情)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 타협점이 보이지 않았다.

둘 다, 조용히 침묵하며 서로의 시선을 주고 받을 뿐.


마계의 하늘은 오늘도 하염없이 짙은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


또각또각.

그녀가 신은 굽이 높은 가죽구두 소리가 넓은 복도에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녀의 얼굴은 웃음을 지었다.


"정말 굉장해."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환희로 넘쳤으며 혼잣말을 할 정도로 기분이 몹시 좋을 수 밖에 없었다. 모두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마왕성에서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이 보였을 때, 마법을 사용해 그 문을 열며 밖에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에 심취했다.


"하아~"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두 번 다시 없을 마왕과 마왕을 따르는 간부의 숨 막히는 대결.

뭐, 결과는 안 봐도 모두가 알 것이다.

결국 최후의 드래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간부인 '데스'도 휘말리고 말았지만, 애초에 그는 하나가 아닌 다수의 존재니까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최후의 드래곤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마왕에게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히는데 성공했고,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룬 표정을 지으며 소멸했다.

드래곤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은 마왕은 현재 자신의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 지금의 상태라면 마계에 전이 당한 '인간'이라는 종족이 그를 물리치기에 딱 좋은 시기가 아닐까.


"마침 칼리도르 왕국에 '인간'종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 한 번 가볼까."


회색의 현자로 불리는 절세의 미녀가 미미하게 홍조를 띠었다.

변덕스럽게 흘러가는 이런 상황이 너무 짜릿하게 느껴진다.

흥분(興奮)이란 분명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감정이 분명하다.

그녀는 마왕성 꼭대기에 위치한 테라스 난간에 올라가 마계의 세상을 관찰했다.

그리고 허공에 발을 갖다 대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마왕도 참 불쌍하지. 간부 중 두 명이 배신자라는 사실을."


충성이란 무엇일까?

윗사람을 향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마음속에서 참되고 성실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행하는 것.

어떻게 보면 참 웃기는 일이 아닌가.

어느 누가 정신이 나갔다고 목숨을 바쳐 충성을 하겠는가.

확실히 지능이 떨어지는 잡종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충성이란 얍삽하게 붙어 꿀을 빨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빼는 그런 관계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처음부터 마왕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는 극소수 밖에 없다.

대부분 '공포'라는 감정으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일 뿐.

가끔가다 '데스'처럼 광기에 빠져 마왕을 신처럼 따르는 정신 나간 얘도 있지만, 그건 별개의 일이다.


"어차피 마왕도, 용사도 한낱 생물일 뿐이야. 곧 막을 내릴 시간이네."


그녀는 우아한 자태로 허공을 걸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사회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의 광상곡이 말이야."


전혀 이해하지 못 할 말만 하며 달콤한 밤의 축제가 펼쳐진 곳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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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 피어오르는 번뇌의 굴레(5) 21.06.25 20 0 14쪽
24 23화 - 피어오르는 번뇌의 굴레(4) 21.06.24 17 0 12쪽
23 22화 - 피어오르는 번뇌의 굴레(3) 21.06.23 16 0 13쪽
» 21화 - 피어오르는 번뇌의 굴레(2) 21.06.21 18 0 11쪽
21 20화 - 피어오르는 번뇌의 굴레(1) 21.06.20 17 0 12쪽
20 19화 - 메이의 가능성(3) 21.06.19 18 0 12쪽
19 18화 - 메이의 가능성(2) 21.06.18 18 0 10쪽
18 17화 - 메이의 가능성 21.06.16 18 0 11쪽
17 16화 - 아이샤 나일 샬드론 (4) 21.06.15 19 0 10쪽
16 15화 - 아이샤 나일 샬드론 (3) 21.06.13 21 1 15쪽
15 14화 - 아이샤 나일 샬드론 (2) 21.06.12 23 0 11쪽
14 13화 - 재회 +1 21.06.09 28 0 15쪽
13 12화 - 용은 마왕을 싫어한다 21.06.05 23 0 14쪽
12 11화 - 복잡한 일과 21.06.04 27 0 11쪽
11 10화 - 표적 (2) 21.06.03 26 0 17쪽
10 09화 - 표적 21.06.02 24 1 15쪽
9 08화 - 정보 21.06.01 26 1 14쪽
8 07화 - 변색 21.06.01 27 0 9쪽
7 06화 - 여로 21.05.31 30 2 10쪽
6 05화 - 대격변 +1 21.05.31 43 2 13쪽
5 04화 - 전설의 시작 (2) 21.05.30 46 1 9쪽
4 03화 - 전설의 시작 21.05.30 51 1 11쪽
3 02화 - 입학식 21.05.30 62 3 9쪽
2 01화 - 내가 여주인공이 되었다 21.05.30 99 7 10쪽
1 00화 - 프롤로그 +1 21.05.30 138 1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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