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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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1.05.3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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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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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DUMMY

손에 휘감긴 하얀색 기운이 이리저리 끈적끈적한 껌딱지처럼 달라붙으려고 하자 킬라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쟁이가 많이 노력했네. 독두꺼비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달라붙었는지 모를 만큼 은밀해. 알아채도 마력에 달라붙어서 떼어내기 쉽지 않겠어. 참 귀쟁이답네.’


권력을 탐하고 암투를 즐기는 엘프답게 음험하고 음습한 마법이라고 여겼기에 킬라간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발톱에 휘감아놓은 마법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귀쟁이들이나 헌터들이 몰려와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치워두면 나중에 기아나가 나타났을 때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비행기 내부를 킬라간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에 비석의 마법은 루키엔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잠시 고민하다가도 킬라간은 이태석의 시체에 시선을 주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내가 신경 쓸 게 아니지. 죽인 게 부끄럽지는 않으니 그냥 내버려 둬야겠다.’


설령 전 세계가 덤벼오더라도 귀찮을 뿐인 데다가 비석과 관련된 것들을 몇 명만 잘라낸다면 언제 시끄러웠냐는 것처럼 조용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킬라간은 발톱에 휘감긴 마력을 내버려 뒀다.


“진짜 음습하단 말이지. 이대로 놔뒀다간 너무 하찮아서 잊어버릴 것 같으니까 표시라도 해놔야겠다.”


원래대로라면 손톱이 아니라 심장에 달라붙어 중요할 때 폭발시켜 상대를 제압하는데 도움이 되는 용도였지만 킬라간의 마력을 감당할 수 없기에 손톱 끝에 겨우 달라붙었다.


게다가 너무나도 하찮았기에 신경을 거둔다면 이런 마법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얀색 줄로 손톱에 새겨놓으면 되겠지. 가끔 눈에 띄면서도 엄청 걸리적거리지는 않을 테니까.”


킬라간의 손톱 가운데를 따라 새하얀 줄이 희미하게 새겨졌다.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에 킬라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왔다.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어마어마한 바람 소리가 킬라간의 몸을 때렸지만 킬라간은 시원한지 한참이나 미소를 짓다가 가볍게 발을 굴러 그대로 떨어졌다.


‘넓긴 넓어.’


주변을 둘러보자 그야말로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기에 킬라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근래에 자주 본 광경이라 지루하기도 했고, 바다를 지나면 달라붙는 소금기가 짜증 나기도 했지만 새파란 물결이 넘실거리는 모습이나 파도가 치는 모습은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기에 느긋하게 바다를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긴 킬라간은 다시금 보금자리로 돌아왔고, 평범하게 일하던 김형태를 보고선 슬그머니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 오랜만에 뵙습니다.”


갑작스럽게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서류를 뒤적이던 김형태는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는 곧장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그래. 오래간만이야. 내일 시간 내서 둘이 함께 와라. 알려줄 것도 있고 가르쳐줄 것도 있으니까 일찍 오면 좋고.”


짧게 할 말을 마친 킬라간은 자리를 비워두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밭부터 확인했다.


그래도 씨앗만 심어놓은 상태인 만큼 전멸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척박한 땅은 물도 주지 않은 채 일주일 가까이 방치해뒀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며 킬라간을 비웃었다.


단 하나의 씨앗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전멸해버렸고, 킬라간은 실의에 빠져 다시금 땅을 뒤엎었다.


“위스키를 만드는 것도 힘들 텐데 보리 재배부터 막막하네. 그래도 이제는 딱히 할 일이 없을 테니까 기운 내서 다시 심어야지.”


이번에는 지난번에 실패한 땅과 이번에 실패한 땅까지 한꺼번에 갈아엎어서 크게 구역을 나누더니 다양한 방식으로 보리를 재배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씨앗이 남았나?”


크게 네 구역을 만들어내고서는 곡괭이를 가져오더니 힘차게 곡괭이를 치켜들었다.


단 한 번의 곡괭이질로 땅을 모조리 갈아엎겠다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다가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하늘 높이 들어 올렸던 곡괭이를 내려놓고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씨앗이 없네.”


밭을 열심히 갈아도 싹을 틔울 씨앗이 없다면 헛수고였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얀 머리에게 보리 씨앗 좀 넉넉하게 가져오라고 연락해야겠네.”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설화를 떠올리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겼는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책이 떠오르긴 했어도 자신은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에 다시금 게이트 밖으로 나가더니 김형태에게 다가갔다.


“걔한테 하얀 머리한테 연락해서 보리 씨앗이나 좀 넉넉하게 들고 오라고 해.”


“하얀 머리가 누구입니까?”


갑작스러운 등장에 익숙해졌는지 몸을 흠칫거리기는 했어도 조금 전처럼 소스라치게 놀라진 않았다. 하지만 하얀 머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기에 질문했고, 킬라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걔는 알 거야. 아무튼 넉넉히 가져오라고 전해.”


고개를 끄덕인 김태형은 곧장 정대현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대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킬라간의 말을 거역할 생각은 없기에 곧장 서리꽃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무원은 곧장 서류로 작성해내고서는 보고서를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입니다. 태백 부대의 정대현 소위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아침 9시까지 보리 씨앗을 듬뿍 가져와달라는 말만 남겼습니다. 무슨 암호입니까?”


서리꽃의 회계 담당이자 평소에는 잡무까지 맡고 있는 박철준은 오늘 들어온 정보를 취합하다가 이상한 정보를 보고선 곧장 이설화에게 질문했다.


“암호랑 비슷한 거예요. 철준 씨도 오늘 고생 많았을 텐데 푹 쉬어요.”


보리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꼬리가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서류를 확인하느라 얼굴을 묻고 있었기에 박철준에게 보이지는 않았고, 이설화는 빠르게 표정을 수습하더니 고생한 그를 퇴근시켰다.


하지만 옆에서 놀고 있던 리펑산이나 함께 서류를 검토하던 이준익은 표정의 변화를 두 눈으로 봤기에 박철준이 나가자마자 곧장 질문했다.


“뜬금없는 연락이 왔구나. 엄청난 비밀이라도 담긴 암호더냐?”


서리꽃과 대한민국 군대의 일이라면 자신이 아무리 두 사람과 친하더라도 들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지만 이설화 대신 이준익이 고개를 저었고, 리펑산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천안에서 온 연락입니다. 그런데 보리라니 무슨 말이냐.”


킬라간의 존재는 이준익도 알고 있었지만 보리 씨앗을 처음 보낼 때는 이설화 혼자 조용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보리 씨앗이 무슨 말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진짜 말 그대로 보리 씨앗이에요. 키워서 맥주를 만들거나 보리밥을 해먹을 수 있는 진짜 보리의 씨앗이요.”


괴수와 보리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세가 점점 무너지더니 책상에 얼굴을 파묻을 것처럼 내려앉은 이설화가 손을 더듬거리며 휴대전화를 가져와 주문을 시작하자 진짜 보리 씨앗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두 사람 모두 벙 찔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해요. 뭘 더 못하겠네요. 저는 가서 보리 씨앗을 받아올 테니까 두 분은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주문을 마친 이설화는 비척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유령이나 다름없어 보였기에 두 사람은 곧장 이설화를 따라갔고, 축 늘어진 이설화를 대신해 직접 보리 씨앗을 차에 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여전히 유령처럼 움직이는 이설화가 걱정되었기에 두 사람은 일정을 취소하고서는 함께 천안으로 향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 세 사람을 일찍부터 나와 있던 정대현과 김형태가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제 여동생을 부른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준익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간단하게 질문했지만 두 사람은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초대한 것이 아니기에 그 질문에는 대답해드릴 수 없겠습니다.”


이준익 역시 킬라간의 초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서리꽃에 연락한 두 사람이라면 자신들보다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리라고 여겼기에 질문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 사람도 갑작스러운 호출에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정대현이 마석을 쥐어 연락을 넣었고, 다섯 사람과 보리 씨앗이 순식간에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


“제대로 챙겨왔네. 많아서 좋아. 그리고 오늘은 많이들 왔네. 지난번에 봤던 영감도 있고,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지.”


킬라간은 가장 먼저 보리 씨앗 무더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야 뒤따른 이들의 면면을 보더니 보리 씨앗만 가지고서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이준익과 리펑산은 들고 있던 보리 씨앗 무더기를 들고 있던 팔이 갑작스럽게 가벼워지자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짓다가도 이런 일이 익숙한지 먼저 들어가는 세 사람을 보며 얌전히 따라 들어갔다.


황량하다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곳이었기에 리펑산과 이준익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게이트 안을 둘러보느라 바빴지만 세 사람은 익숙한지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수고 많았어. 일단 너희 넷은 좀 기다리고 있어봐.”


씨앗을 집 안에 옮겨놓은 킬라간은 다시금 되돌아오더니 정대현만 데리고 사라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갑작스레 허리에 팔이 휘감기는 감촉에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킬라간의 초가집이 제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킬라간은 언제 앉았는지 벌써 양반다리를 한 채 자신에게도 앉으라고 손짓했기에 정대현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고서는 마찬가지로 양반다리를 한 채 자리에 앉았다.


“지성우 대위의 죽음에 대해 전부 파악했다. 네가 원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해주마.”


지성우의 죽음이 무겁게 다가온 만큼 전말을 알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대위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처음 임관했을 때부터 돌봐주신 대위님이라면 굳이 알려고 하시지 않았을 거야. 슬픔은 혼자 감내하고 무덤에 술을 올리자.’


하지만 킬라간의 이야기를 들으면 떨쳐낼 수 없다고 여겼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알겠다.”


킬라간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젓는 모습에 정대현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돌아가서 수련할 준비부터 해. 아무래도 너무 재미 삼아 가르쳤나 봐. 제대로 가르칠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그러자 정대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을 먹었지만 쉽게 떨쳐낼 수 없는지 얼굴이 복잡했지만 킬라간은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빨리 가.”


킬라간의 손길은 거칠었다. 하지만 정대현은 거친 손길 속에 자신을 위로하는 마음이 작게나마 담겨있다고 여겼다.


‘착각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네.’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린 정대현은 억지로나마 기운을 내며 다른 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렇게나마 기운을 낸 정대현과는 다르게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들이 있었다.


“흐르는 잎사귀의 사제 루키엔이 사망했습니다.”


“위치는 어디입니까.”


“태평양 한가운데였으니 아마도 비행기 안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막으로 둘러싸여 서로의 정체조차 확인할 수 없는 이들은 태평양 한가운데라는 말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그들의 침묵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원탁회의에 소속된 것도 아니며, 개인적으로도 훌륭한 엘프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협정에 의거하여 루키엔을 살해한 이의 말살을 요청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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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1 21.08.12 663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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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3 21.08.08 700 16 12쪽
» 66화 +1 21.08.07 691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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