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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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1.05.3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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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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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DUMMY

부드럽게 미소 지은 킬라간은 차분하게 정보를 캐냈다.


물론 정보를 토해내는 쪽은 죽기 직전까지 시달리며 눈물과 콧물을 쏙 빼내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지만 킬라간은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정보를 캐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내 집 주변을 시끄럽게 만든 놈이 테오린이라는 귀쟁이라 이 말이로군. 그렇지?”


“그렇습니다. 황금가지의 사제 테오린님의 지시에 따라 저자와 헌터들을 이끌고 이곳에 왔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뱉었지만 킬라간이 되묻자 그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세한 정보를 내뱉었다.


수도꼭지라도 튼 것처럼 땀이 줄줄 흐르는 데다가 잠깐 사이에 썩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눈빛이 피폐해졌지만, 더 말하게 해달라는 것처럼 애원했다.


“알고 있는 것은 전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돌아가게만 해주십시오.”


얼마나 가혹한 고문이었는지 킬라간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면서 애원했다. 그러자 킬라간은 작게 고개를 젓더니 엷게 미소를 지었다.


“넌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서 약하게 했으니까 우는 소리는 그만 해. 죽은 귀쟁이는 너보다 심하게 다뤘어. 자꾸 우는 소리 하면 얼굴부터 땅에 묻을 거야. 땅에 머리부터 처박혀서 숨을 쉴 수 있다면 계속 말해도 좋고, 아니라면 내가 물어볼 때만 대답해.”


킬라간이 으르렁거리자 그는 처음부터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처럼 입술을 굳게 닫더니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킬라간은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만족스러운 눈빛과 함께 엘프를 바라보더니 그가 내뱉었던 정보를 다시금 정리했다.


“그리고 테오린이라는 귀쟁이는 한 달 전부터 갑자기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고, 원탁회의라는 이들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러다가 때마침 루키엔이 죽자 배후에서 움직여 전사단을 조직했다.”


정리를 마친 킬라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습관처럼 턱을 긁었다.


“전사단을 조직한 이유가 제법 괜찮아.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도 있어. 그런데 굳이 저런 것들을 앞에 내세운 이유가 궁금하네.”


킬라간의 시선에 여전히 기절해있는 루다간이 담겼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루키엔보다 나은 구석이 단 하나도 없는 멍청이건만 이런 것을 보필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귀쟁이들의 계략이 담겨있는 건가? 얘를 여기서 죽여도 독이 터지거나 마법진이 발동하진 않을 텐데.”


킬라간은 전쟁이 아닌 만큼 엘프도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모와 계략을 즐기는 엘프라면 이런 멍청이를 보냈을 때 꿍꿍이가 있다고 여겼기에 던져내며 그의 몸을 확인했지만 너무나도 깨끗했다.


게다가 자신에게 정보를 토해낸 엘프 역시 테오린의 심중마저 꿰뚫어 볼 만큼 가까이서 일하던 사이는 아니었는지 정보를 더 캐낼 수 없었다.


“그래도 귀쟁이의 일이라면 귀쟁이에게 물어보는 편이 빠르겠지.”


작게 중얼거린 킬라간은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어대는 엘프의 머리를 가볍게 건드렸다.


“네가 테오린이라고 치자. 원탁의 이름으로 나서는 것이 편할 텐데 굳이 저런 멍청이들을 앞세운 이유가 뭘까?”


킬라간의 두꺼운 손가락이 제 머리를 건드리는 감촉을 느꼈지만, 그는 여전히 공포에 질린 만큼 함부로 머리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제 머리로는 그분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만 방패막이를 내세울 필요가 있거나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역시 같은 귀쟁이답게 대답이 바로바로 나오네. 계속해봐.”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엘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렵기도 했지만, 정치나 계략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먼 삶을 살아온 만큼 손톱만큼의 흥미가 없었기에 제대로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볍게 질문했음에도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엘프끼리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처럼 흥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도 목소리에 담긴 흥미를 눈치챘는지 조금 잘못 말해도 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기며 제 숨구멍을 조금이나마 더 키우기 위해 말을 이어나갔다.


“테오린님께서는 저들이 자멸하리라고 예상하셨습니다. 자멸하지 않더라도 자멸한 것처럼 꾸밀 생각이셨으니 애초부터 저들로 루키엔의 일을 처리할 생각은 없으셨을 겁니다.”


제 앞에서 테오린을 높이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봐줄 만 했기에 킬라간은 계속 말해보라며 손짓했다.


“그런데도 저들을 내세웠다면 국제적인 단체를 먼저 만들어 원탁회의가 겉으로 드러나도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 토대를 다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원탁회의를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기에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말은 빨랐지만, 흥미가 없는 킬라간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간결했다.


“그러니까 원탁회의라는 것을 장악하고 그걸 밖으로 끌어냈을 때 자연스럽게 세계정복까지 이어가려고 수작을 부린다는 말이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킬라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테오린이라는 귀쟁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권력이겠고, 권력을 무너트릴 것을 턱밑에 들이밀면 반응하겠지. 턱밑이라.”


험상궂은 얼굴 킬라간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설화나 정대현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악당의 얼굴이라고 말했겠지만 지금 킬라간에게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엘프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데다가 루다간은 여전히 기절해있기에 아무도 킬라간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킬라간은 음흉한 미소를 더욱더 진하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쟁이의 권력 기반은 헌터 협회에서 나오는 거겠지. 그럼 헌터 협회를 부수면 어떨까.’


헌터 협회를 부순다면 너무나도 간단하게 몰락하겠지만 테오린이라는 엘프 뒤에 썩은 귀쟁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킬라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목표가 귀쟁이라면 헌터 협회를 당장 부숴버리겠지만 진짜 사냥감은 그 뒤에 숨어있단 말이지.’


적이 숨어있는 상황에서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멋대로 움직이다가 썩은 귀쟁이가 더욱더 깊숙하게 숨어버린다면 부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킬라간은 눈살을 찌푸리고서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다시금 엎드려있는 엘프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가 테오린의 자리에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싫겠냐.”


그러자 그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것처럼 곧바로 입을 열었다.


“권력의 상실입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권력을 잃는 것을 더 싫어한다는 말에 킬라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족속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제 귀로 듣자 더욱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질문은 구체적인 상황을 물어본 것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상황. 뭐 때문에 권력을 잃는 게 가장 싫겠냐고.”


그러자 엘프는 말을 멈추더니 한참이나 고민했다. 물론 바로 떠오르는 대답이 있었지만 자기 목숨을 쥐고 흔드는 킬라간의 입맛에 맞는 대답을 골라야 하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권력의 근간이 무너진다면 권력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싫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말처럼 들렸지만 묘하게 다른 말이었기에 킬라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앞에 나서서 전부 쓸어버리는 게 편하지. 이런 말장난은 귀찮네.’


물리적으로 헌터 협회를 분쇄하고 테오린을 죽이는 것까지는 쉬웠다. 하지만 제집을 소란스럽게 만든 그를 쉽게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권력의 근간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헌터 협회란 말이지.’


제국 기사단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엘프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세력도 미약해졌기에 헌터 협회 말고 그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단체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전사단이 있긴 했지만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미약했기에 가볍게 넘겼다.


생각을 계속 이어갔지만 결국 루티엔을 잡기 위해서라면 헌터 협회를 흔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게다가 루티엔을 잡아야 뒤에 숨어있는 흑막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헌터 협회를 어떻게 흔들지 고민했다.


‘헌터 협회. 헌터가 뭐지? 게이트를 처리하잖아. 그래. 게이트를 처리하는 놈들이었지.’


킬라간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조금 전에 짓던 미소보다 더욱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재밌는 의견을 들려줬으니 살려는 줄게. 대신 나가려면 조금 기다려야 할 거야. 여기 얌전히 있어. 다른 귀쟁이가 들어오면 너부터 나가게 될 거야.”


엘프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킬라간은 두 엘프가 앉을 곳에 마법을 사용하더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어라? 가까이 있네.’


지난번처럼 이설화에게 말하고 떠날 생각이었던 킬라간은 익숙한 냄새를 찾기 위해 코를 쫑긋거렸다.


그러자 정말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냄새를 따라 움직이자 차가운 물로 세수하는 정대현을 볼 수 있었다.


“뭐하냐?”


“!!!”


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연락을 받았기에 킬라간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격렬하게 놀랐지만 킬라간의 커다란 손이 어깨에 얹어지자 급속도로 냉정을 되찾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자리를 비울 일이 있어서 그런데 하얀 머리한테 게이트 안에 진입하라고 전해줘. 지금 당장은 아니고 며칠 뒤에.”


킬라간에게는 변덕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틀 동안 잠을 설친 데다가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일에 휘말린 정대현의 머리는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너도 안으로 들어가는 편이 좋겠네. 물론 엄청나게 고생하겠지만 바깥에 있다가 여기 있다가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안에 있는 편이 좋을 거야.”


킬라간이 누구를 배려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다. 게다가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자신들을 배려할 만큼 커다란 일을 저지른다는 말처럼 들렸기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실례가 아니라면 차가운 물 좀 만들어서 제 얼굴에 뿌려주시겠습니까?”


뜬금없는 요청이었지만 킬라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신이 번쩍 들다 못해 몸이 으슬으슬 떨릴 만큼 차가운 물을 정대현의 얼굴에 뿌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차가운 물을 맞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정대현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킬라간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볍게 발을 굴러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정대현의 전화를 받은 이설화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천안으로 내려왔다.


전사단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도착하자 수많은 기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이설화는 눈썹 하나도 깜짝이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시죠?”


“안으로 들어간 헌터들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만.”


“그럼 제가 들어가서 확인하라는 말씀이신가요? 당신들 대신?”


어물거리며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자 이설화는 더욱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그들을 압박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자신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일은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고, 성공해야만 한다고 여긴 이들은 겨우 사흘의 기다림조차 참지 못했기에 이설화의 무례한 태도를 감내했다.


그러면서도 결코 부탁할 생각은 없는지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멍청하고 오만한 이들의 모습에 이설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다는 것처럼 그들에게 쏘아붙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일은 똑똑히 기억해두겠어요. 커다란 빚을 만들어주신 만큼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홱 소리가 날 만큼 거칠게 몸을 돌린 이설화는 간이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전사단에게 들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해결한다. 서리꽃 앞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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