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하늘의 학교 파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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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TV안테나
작품등록일 :
2021.06.14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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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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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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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밤하늘의 별.

DUMMY

12. 밤하늘의 별.


“이미 끝난 거 아냐? 이 이상은 뭘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약한 소리 하지 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어딘가로 열심히 뛰어가지만 푸른하늘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관리인 아저씨 사건은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을 일은 없을 게 뻔했다.

불쑥.

“찾았다! 아린~! 여기다!”

“쿠요미!”

갑작스레 길가 수풀 더미에서 쿠요미가 반가운 얼굴을 드러냈다. 건물 밖으로 떨어지고 폭발까지 일어나면서 큰일이 난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쿠요미는 털 가닥 하나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쿠요미, 괜찮은 거야? 다치진 않았어?”

“5대 대 악마 중 하나인 이 몸이 쉽게 다칠 리 없지.”

“얘들아!!”

수풀 더미 속에서 쿠요미를 뒤따라온 누군가가 나의 머리 위로 튀어 올랐다. 아린이 짧은 교복 치마를 아슬아슬하게 휘날리며 나를 깔아뭉갤 듯이 추락하였고, 나는 가까스로 공주님 껴안기로 받아내었다.

“한참 찾았잖아!! 나만 두고 어딜 갔었던 거야!”

나에게 한 아름 안겨있는 자세에서 두 볼을 부풀리며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이로써 혁명단이 다시 한 번 모였다. 분명 시간상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게 아닌데도 오래간만에 보니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그간에 벌어진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내가 H동 건물을 들어가고 나서 주변을 에워싸던 학생회 무리를 확인하였고 그 사실을 알리려던 찰나, 학생회가 전파방해를 이용해 모든 휴대전화기를 먹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회에 위치를 들켰던 푸른하늘과 아린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멀리서 H동에서의 상황을 확인한 푸른하늘이 속전속결로 나를 빼내기 위해 접근했으나, 건물은 폭파되고 나와 푸른하늘이 S동까지 날아가면서 아린과 멀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럼, 역시 관리인 아저씨는 폭발에....”

“응? 아냐 아냐. 그 아저씨 살아있어.”

“진짜? 어떻게..?”

나란히 서서 어딘가로 가볍게 뛰어가면서 아린이 당연하단 듯이 내게 답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그 순간의 찰나에 구했던 모양이야. 물론, 썩 멀쩡해 보이지는 않지만 죽지 않은 건 확실해.”

그 짧던 시간에 아저씨까지 구하시다니, 역시 학생부장 선생님은 대단했다. 감탄의 의미로 아린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뒤, 이번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푸른하늘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야?”

“어디겠어? 그 관리인 아저씨를 학생회보다 우리가 먼저 잡아야겠지?”

“뭐? 무슨 소리야?! 이미 학생회에 잡혀간 거 아냐?”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잘 느껴봐. 아직도 들리잖아?”

“...뭐, 뭐가 들린다는 거야?”

“어휴, 모르겠으면 투덜대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가면 갈수록 서로 친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럴수록 푸른하늘은 나를 좀 막 대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단 관리인 아저씨를 아직 노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욱이 미리 사태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푸른하늘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꽈광!!

귀를 울려대는 폭발음! 달리던 우리는 일제히 멈춰 서서 어느 한 건물 너머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직접 겪었던 폭발이 트라우마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지만, 황급히 고개를 휘저으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좋았어! 이거 아주 신나겠는걸? 후후훗.”

아린은 먹이감을 노리는 고양이처럼 음흉하고도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마음껏 반짝였다. 이럴 땐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곳 자체가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여기엔 오직 자신의 정의만을 품고 나아가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잘 들어. 여기서 실적이란 건 오직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점수나 포인트를 뜻해. 즉, 아무리 개입한 사람이 많더라도 마지막에 침입자를 사로잡아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모든 실적과 공이 돌아가게 되어있어.”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관리인 아저씨를 제압해서 빼앗겠다?”

아린의 옆에서 비장하게 서 있는 푸른하늘이 회심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푸른하늘의 차분한 출발소리에 맞춰 우리는 일제히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번에도 마음 속에 걱정만이 한가득했지만, 어쩌면 이 둘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해내리라는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그 탓에 나도 옆에서 당당히 어깨를 펼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시작이다.


“오지마!!! 오지말라고~!!”

그것은 절규를 넘어선 비명이었다. 아직도 저렇게 힘을 쏟을 체력이 있다는 게 놀라웠지만, 아저씨는 이미 한계에 달한 듯 보였다. 그 역시 폭발과 화염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는지 누가 봐도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어느 운동장 한가운데 내몰려있었다.

화악!

그리고 야간의 운동장 사용을 위해 설치해놓은 조명이 일제히 켜졌고, 불빛은 스포트라이트처럼 운동장을 밝혔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은밀히 아저씨를 포위하던 학생회 소속 학생들 모습이 드러났고 우리는 이 모든 걸 운동장 한편의 건물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완전히 포위했네. 그런데 왜 가까이 가질 못하는 거지?”

“자세히 봐. 저 녀석,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있어.”

눈가를 찌푸리며 바라본 아저씨의 상체엔 조끼처럼 주렁주렁 붙어있는 폭탄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저 정도의 양이 얼마나 큰 폭발을 일으킬지는 몰라도 확실히 함부로 가까이 하기엔 부담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나로선 이미 폭발의 충격을 겪었던 탓에 어느새 오금이 살짝 저렸다.

“학생부장 선생님이다!”

“어디 어디?”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9시 방향, 그곳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로 학생부장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부장 선생님도 아저씨를 구해내면서 폭발에 휘말렸던 것인지 메이드복 일부가 그을리고 소실되어 조금은 민망한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엄격하고 근엄하게 서 있는 모습은, 눈앞의 어떤 일도 다 해결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이는 듯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어쩌려는 속셈이지?”

“글세...”

학생부장 선생님이 어떻게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학생회가 저렇게 아저씨를 둘러싸고 있으면 우리가 나설 기회조차 없어 보였다. 거기다 섣부른 접근으로 폭탄 조끼가 폭발한다면, 이번에도 누구 하나 다치지 않으리란 보장 따윈 없었다.

어느새 아저씨에게 조금씩 다가간 학생부장 선생님이 심호흡하듯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이곳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뿜었다.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 포기하세요! 지금이라도 좋으니 폭탄을 스스로 해제하고, 기폭장치를 넘기세요! 저는 그 누구의 목숨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하아, 하아.”

그에 반해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아저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에 쥔 기폭장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학생부장 선생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설마, 협상이 통한 건가?

“허튼...짓...하지 마...!!”

“...!!”

“난 다 알고 있어! 날 사로잡으면 배후세력부터 모든 정보를 깡그리 다 실토하게 한 뒤 더러운 실험재료로 내다 버린다는 걸 모를 것 같아?! 실적에만 눈이 멀어 인륜이라는 걸 다 갖다 버리는 학생회의 수장이자 개인 네 놈이, 인간인 척 나불대지 마라!”

어째 아까보다 훨씬 더 미쳐버린 모양이다.

“정신상태가 너무 불안하신데?”

그때, 나란히 옥상 담벼락에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있던 푸른하늘이 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청호, 지금 가야 해.”

“엉? 이 상황에 어딜..?”

그녀가 손가락으로 운동장 한복판을 가리켰다.

“....하하.”

“...??”

멋쩍게 웃으며 상황을 스리슬쩍 넘어가려 했지만, 오히려 그런 나를 푸른하늘은 세상 진지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냐?”

울상짓는 나를 가볍게 무시하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나의 발목을 잡아채더니 가차 없이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으아아~, 무슨 짓이야? 제발 이러지 마! 거짓말이지!? 지금 저 상황에 어떻게 끼어들겠다는 거야?!”

바닥에 질질 끌려가면서 추하게 발버둥 치지만, 그녀는 여전히 대꾸도 없이 나를 옥상 한가운데로 끌고 갔다.

“아, 아린! 보고 있지만 말고 도와줘. 지금 저기에 끼어드는 건 자살행위라고!”

“못 본 사이에 사이가 많이 좋아졌네. 그렇지, 쿠요미?”

“역시 인간들은 단순해. 남자와 여자를 같이 두기만 하면 금방 사이가 좋아지는군.”

“뭔 헛소리야~~~!!”

질질질.

결국, 푸른하늘은 옥상의 가장 넓은 공간에 나를 내팽개친 뒤 차갑게 내게 말했다.

“이럴 시간 없어. 저건 분명 장거리 저격이야.”

“끄응, 저격이라니...?”

“우리 학교에 협상 따위는 없어. 그런데 저렇게 나와서 말을 거는 것부터가 다른 뜻이 있다는 거지. 분명 장거리에서 아저씨를 저항불능으로 만들고 그 틈에 학생부장 선생님이 제압할 심상이야. 그래서 일부러 이곳으로 몰아넣은 거겠지. 만약,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면 저격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뿐이야.”

불어오는 바람을 확인하고, 운동장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는 것인지 한참을 서서 운동장 방향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나 무기가 없는데...?”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마. 너의 능력과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존재가 우리에게 있으니까.”

“...??”

꼴사납게 자빠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던 푸른하늘이 아린을 바라본 뒤 손짓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아린과 나는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운동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곤 결심을 세웠는지 다급히 지시했다.

“일단 자리먼저 잡아야 돼. 둘 다 나란히 이쪽에 서도록 해.”

나와 아린은 어영부영 푸른하늘의 지시에 따라 옥상 중앙에서 관리인 아저씨가 있는 운동장 방향을 바라보며 섰다. 반대로 그녀는 우리 뒤쪽에 멀찌감치 떨어져선 준비운동처럼 목과 어깨를 가볍게 풀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으니까 하면서 설명할게. 그러니까 잘 들어.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을 저기 운동장 한가운데로 날려 보낼 거야.”

“...??”

“그리고 청호 네가 아저씨를 기절시켜서 제압한 뒤 탈출하는 거야.”

“...????????”

“좋아, 이제 출발하자.”

“뭐가 좋아?!! 그걸 설명이라고 하는 거야? 납득이 안가잖아!”

그럴싸한 계획도 아닌 막무가내 계획에 하소연하지만, 푸른하늘은 묵묵히 팔을 돌리며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그런가? 그럼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한다면 못 이룰 게 없다고 격려해주면 될까?”

“전혀~!! 오히려 반감됐어!”

“너무 걱정하지 마. 어시스트는 나랑 아린이 충분히 할 거니까. 너도 알지? 원래는 혁명단이 이런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거. 특별히 청호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나서는 거야.”

“그, 그건...”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로선 반박할 주장이 없었다. 자연스레 말하는 사이 몸을 다 풀었는지 푸른하늘이 눈빛을 달리하며 조금은 저돌적인 자세를 잡았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이든 최선을 다하도록 해. 이건 절대 빈말이 아니야.”

여기까지 와서 그런다면 조금 어이없더라도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거부권도 통하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

분명, 하기 싫은 것투성이였고 아무 데도 나서지 않으리라 결심했었지만 결국 이곳에 서 있는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단 며칠 만에 나 자신부터 주변의 너무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준비 해!”

일순간 피눈물이라도 흘릴 듯이 푸른하늘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또한 그녀의 전신에서 이제는 익숙한 붉은 아지랑이들이 피어올랐다. 잔뜩 으스스한 아우라를 풍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마른 침을 연신 삼키던 중, 나의 옆에서 순수하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린에게 물었다.

“근데 말이야. 푸른하늘의 능력, 그게 정확히 뭐야?”

“어엉? 뭐야? 너 아직도 몰랐어?”

“그야,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으니까.”

“흐음, 쉽게 말하자면 그거지.”

“그거..?”

타앙~!!

“끄아아악~!!”

그때, 푸른하늘이 모든 준비를 끝낸 시점에 맞춰서 절묘하게 하나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이에 맞춰 아저씨의 고통 섞인 괴성도 울려 퍼졌다.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가 나와 아린에게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린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몸속의 피, 그 자체.”

“...?!!”

출렁!

강가의 거센 급류처럼 거세게, 그리고 축축하고도 묘하게 끈적거리는 감촉이 나의 등과 전신을 휘감았다. 푸른하늘의 몸에서 뻗어 나온 붉은 기운들이 마치 하나의 형태를 갖춘 뒤 폭발하듯 내뿜어졌고, 거기다 그녀가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우리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콰아앙!!

푸른하늘의 요란하고도 강력한 발돋움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정신없이 밤하늘 비행을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꺄하하하하하~!!!”

극명하게 나뉘는 나와 아린의 비명과 웃음소리가 하늘 곳곳에서 청아하게 퍼져나가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었다.

“으그그극..!!”

거센 공기저항에 입도 못 다문 채 잘 돌아가지도 않는 목을 돌려 지상을 내려다보자, 확실히 푸른하늘의 예상대로 팔에 피를 흘리며 있는 아저씨의 모습과 근처로 다가서고 있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보였다.

“아린~! 저쪽이야!!”

“꺄하하하, 좋아!! 마음껏 뿜어줘. 쿠요미~!!”

“맡겨 두라고~!”

아린의 짧은 지시에 머리 크기만 한 쿠요미가 성인 남성보다 더 큰 크기로 배를 부풀렸다. 그러곤 운동장 아래쪽을 향해 부풀린 배를 터뜨리며 수많은 먼지와 솜뭉치, 보풀이나 실오라기 같은 물건들을 폭우처럼 쏟아냈다. 거기다 쏟아진 물건들이 내뿜어진 공기 바람과 뒤섞여 운동장을 뒤덮을 폭풍을 만들어 냈다. 만들어진 폭풍의 중심부가 그대로 학생부장 선생님과 관리인 아저씨에게 쏟아졌다.

쑤욱!

이어서 낚싯바늘처럼 굵은 실에 묶인 푸른빛의 단검 하나를 아린이 쿠요미의 등에서 과감히 빼 들었다. 그리고 화산재처럼 휘날리는 먼지와 솜뭉치로 시야가 좁아진 학생부장 선생님이 뒤늦게나마 관리인 아저씨를 끌고 먼지로 뒤덮인 포화 속을 벗어나려는 순간, 아린은 날카로운 단검을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날려 보냈다. 뒤를 노리고 들어오는 단검을 몸까지 날려가며 피해내지만, 실에 묶인 단검을 다시 빠르게 당겨서 손에 잡아챈 아린이 계속해서 단검을 내던지며 그녀를 압박했다.

“하하하~!! 아직입니다! 윤 신아 선생님~!!”

추진력을 잃고 사이좋게 수직 낙하하는 와중에도 아린은 행복에 겨운 얼굴이었다. 이어서 아린이 허공에 손짓하자, 쿠요미는 수천수만 개의 바늘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이 또한 먼지 폭풍과 뒤섞여 닿는 순간 온몸을 바늘구멍으로 장식해줄 지옥을 만들어져버렸다. 아린의 실력을 의심한 건 아니지만 너무 강력한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놀랄 즈음, 학생부장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아저씨를 포기하고 폭풍을 피해 운동장 밖으로 빠르게 물러났다.

포옥~!

나와 아린은 땅에 떨어지기 직전 쿠요미가 만들어준 막대한 솜뭉치 더미에 착지했다. 편하게 착지하기는 했으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쓴 먼지에 연신 기침을 해대며, 다급히 관리인 아저씨를 찾아갔다. 쿠요미는 태풍의 눈처럼 나와 아린, 그리고 관리인 아저씨의 위치만 안전지대로 만들어놓고 자연스레 아린의 옆에 위치했다.

“좀 무섭긴 했지만, 아린 너도 참 대단하다...”

“헤헤, 완전 멋있지?”

습관적으로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아린과 함께 아저씨의 상태를 살펴봤다. 여러 이유로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지만, 위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부턴 내가 아린의 푸른 단검과 단의 능력을 이용해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완벽한 탈취 작전이었다.

“아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폭풍우를 운동장 바깥으로 이동시킬 수 있겠어?”

“나를 뭘로 보고! 당근 가능하지~.”

완벽 그 자체였다. 아린과 쿠요미가 만들어 낸 이 먼지 폭풍이라면 밖에서 저격하고 있을 저격도 무용지물이고 아무리 학생회라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거 생각보다 식은 죽 먹...

후웅~! 쿠와아악~!!!

“....!!??”

그때, 그 누구도 반응할 틈 없이 어디선가 일직선으로 돌풍과 같은 강력한 충격과 바람이 마치 세상을 일도양단할 기세로 나와 아린의 바로 옆을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강렬한 충격으로 인해 나의 옆에 서 있던 쿠요미가 바닥에 처참히 짓눌려 있었다.

“쿠요미~!!!!”

황급히 아린이 쿠요미를 불러보지만, 그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거기다 그토록 강렬했던 먼지 폭풍이 일격 하나에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 버렸고 든든하게 날 지켜주던 먼지들은 허무하게 사방으로 꽃날리 듯 사라졌다.

충격파가 날아온 자리에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아주 멋들어지게 칠흑빛으로 도금해놓은 육중한 강철봉을 강렬한 기세로 움켜쥐고 있었다. 자세를 풀어헤치고 휘두른 봉을 바닥에 가볍게 찍어 보이자, 봉에서 난다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길이는 어림잡아 150cm가 넘어 보이는 장봉에 재질은 최소한 철로 되어있는 듯했다. 가시적으로만 봐도 20kg은 더 나가 보였지만 학생부장 선생님은 아주 가벼운 목봉처럼 다루었다,

“.....망했다.”

우리, 아니 내가 너무 학생부장 선생님을 얕잡아봤다.

저벅저벅.

헝클어진 앞머리에 야구방망이나 쇠파이프보다 더 압도적인 강철봉을 들고 우리에게 걸어오던 선생님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뗄 때마다 감당하지 못할 분노의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식은땀 범벅이 되어서 손끝이 떨려왔지만, 아직 나에겐 아린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었다. 비록 쿠요미가 없더라도 혁명단의 2인자 아린이라면, 이 사태를 해결할 비책을 분명 갖고 있으리라 믿었다.

“후우, 아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삐질삐질.

“너도 흘리냐?!!!”

나보다 더한 땀을 흘리며 아린은 오히려 나에게서 해답을 갈구하고 있었다. 실력에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 설마 단 일격에 전세가 역전될 줄은 몰랐다. 역시 학생부장은 괜히 하는 게 아닌걸까?

“신 청호, 그리고 이 아린 학생? 엄연히 학교와 학생회의 교칙 집행을 방해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스윽.

학생부장 선생님이 무거운 철봉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큰일이다! 저 봉에 스치기라도 한다면 팔다리가 부서지는 게 아니라, 터져나갈 것이다.

“당분간만 보건실 신세를 지는 게 좋겠네요.”

“히익..!!!”

또다시 허공에 일으키는 충격파로 우릴 제압할 속셈인지, 더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봉을 우리에게 겨냥했다. 발버둥 칠 틈도 없이 학생부장 선생님의 봉이 우리 쪽을 향해 떨어졌다.

꽈앙~!!

“....!!!”

“...어? 오오옷! 좋았어!! 푸른하늘!!”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쾌재를 불렀다. 너무나 절묘하게 등장한 푸른하늘이 그 무거운 철제봉을 아래팔 하나로 막아냈다. 다행히도 맨팔이 아니라 특유의 붉은 기운을 잔뜩 둘렀기 때문에 막아낼 수 있었던 걸로 보였다.

“왜 이제 왔어?! 죽는 줄 알았잖아! 너도 바로 따라오는 거 아니었어?”

말은 매정하게 했지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나였다. 그것은 마치 인생 종 칠뻔한 순간에 등장한 전설의 영웅에게 구해진 여주인공의 기분이었다.

“주변의 저격수는 전부 처리했어! 이제 이쪽은 내가 맡을 테니까. 여기서 알아서 벗어나!”

서로를 밀어붙이는 힘겨루기로 미세하게 떨리는 팔을 꽉 부여잡고 그녀가 소리쳤다.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내야만 했다. 나는 아린에게서 건네받은 푸른 단검을 손에 쥐고 푸른하늘과 선생님의 반대편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학생회 소속의 학생들과 대치했다.

알게 모르게 푸른하늘 쪽이 걱정되긴 했으나, 당장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린의 푸른단검 덕에 나의 눈동자가 푸르게 변했다.

그리고 미처 몰랐지만, 학생부장 선생님의 눈동자도 반투명한 푸른빛으로 탈바꿈하였다.

“전학생이 왔다고 들뜬 겁니까? 무슨 꿍꿍이로 전학생을 데리고 다니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푸른하늘 학생...!!”

헝클어진 앞머리 사이로 옅게 빛나는 푸른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던 선생님은 양손에 움켜쥔 철제봉 휠 정도로 푸른하늘을 압박했다. 단순히 팔로만 막아섰던 푸른하늘이 그 무게에 짓눌려 몸이 밀려나지만, 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맞섰다.

“그건 끝까지 해보기 전까지 모르는 거죠. 항상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제가 하려는 일은 끝까지 해내는 대단한 학생이라고..!!”

“허튼소리 하지 마세요. 이건 푸른하늘 학생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된 사상에 찌들어 흉내 내는 것뿐이잖아요!”

“....”

그 사람이라는 말에 여유 있게 맞서던 푸른하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곤 여세를 몰아 학생부장 선생님이 다시 몰아붙였다.

“이제 과거의 잔재는 내다 버리세요! 이제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은 명백히 사라졌단 걸 깨달으세요!!”

“....선생님도.”

“....??”

“그치만 선생님도 아직 그분을 잊지 않으셨잖아요?”

“크윽, 조용히 하세요!!!”

가볍게 미소짓는 푸른하늘에게 정곡을 찔린 탓인지, 역으로 감정이 흐트러진 선생님은 거칠게 자신에게서 그녀를 튕겨내었다. 거세게 밀려난 푸른하늘이 차분히 숨을 고른 뒤 다시 맞서 싸울 자세를 잡았다.

“특기인 검도 없이 저에게 맞서는 건 불가능합니다. 물러나세요.”

“그렇죠. 하지만 진검이 없어도 급한 대로 만들면 되겠죠?”

허공에 손을 뻗은 푸른하늘의 손아귀로 붉은 오라가 모여들었다. 모여든 오라는 단숨에 길고 새빨간 검의 형태로 굳어졌고, 완성된 검을 붙잡아 허공에 휘두르자, 영롱한 핏빛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검만큼은 아니지만 쓸만한 건 만들 수 있거든요.”

“...여전히 피를 활용하는 능력은 대단하군요. 아무래도 승부가 길어질 것 같으니, 다른 방법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가볍게 손짓하자, 선생님의 뒤쪽에 따로 대기하던 학생회 학생들이 주변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운동장을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실랑이 중인 나와 아린에게 모여들었다. 상황은 꽤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느긋하게 두꺼운 철제봉을 푸른하늘에게 겨누었다.

“...갑니다.”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푸른하늘과 선생님은 각자가 들고 있던 서로의 무기를 무자비하게 격돌시킨다. 그 충격으로 거대한 바람이 몰아치던 순간도 잠시, 눈 깜작할 속도로 서로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푸른하늘 학생은 어리석습니다!!”

외침과 함께 휘두른 철제봉이 푸른하늘 핏덩이로 만든 검의 한 곳에 집중되자, 빠르게 금이 갔다.

“누구보다 현명해야 할 학생회장으로서, 학교의 미래와 비전에 대해 생각지 않고,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린 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학생회장이 그런 자리라면 전 관심 없어요!”

꽝! 와장창!

철제봉의 막강한 일격에 유리 조각 흩어지듯 푸른하늘의 검이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연스레 나머지 공격을 피한 그녀가 다시 손아귀에서 핏빛 검을 만들어 냈다.

“전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아니에요. 이게 바로 나의 길을 가는 겁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철 지난 행동일 뿐입니다! 사춘기라 감안해도 도가 지나쳐요!!”

꽈광~!!!

둘의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붉고 푸른 오라가 아무렇게나 뒤섞이며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미친 듯 뿜어댔다.

살벌한 현장에서 나와 아린은 아직도 학생회 학생들을 상대로 고군분투 중이었다. 가장 큰 전력이 되던 아린의 쿠요미가 재기불능인 상태가 되면서 아린은 진짜로 초등학생 꼬마가 되어 버렸다.

“진짜 아무런 능력도 쓸 수 없어?!”

쉴 새 없이 나를 덮치는 학생회 학생들을 잡아 밀치며 아린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미안~. 쿠요미를 깨우고 힘을 끌어내는 게 바로 그 사념 담긴 단검인데 그 단검이 다시 매개체를 만나지 못하는 이상은 그냥 단검일 뿐이야. 결국, 단검을 다루는 건 나보단 네가 훨씬 잘하니까, 나로선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네? 히히히.”

아린에 반쯤 기절한 관리인 아저씨까지 지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각자의 능력을 의식하느라, 대치하는 시간만 잦아졌고 체력도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나마 전력에서 도움이 되는 건 학생회 쪽은 날붙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다는 거였고, 나 같은 경우 단검이라는 악당다운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으아아, 이게 뭔 상황이야. 나 하나도 지키기 힘든 판국에 너무 불리한 거 아니냐고!”

“별수 없지. 쿠요미가 당한 순간부터 난 게임 끝이야.”

“방법을 찾아야 해. 이대로 가다간 우리 둘 다 붙잡힐 거야.”

나의 하소연에 나란히 나의 옆에 붙어있던 아린은 눈동자를 한 번 슥 굴리더니 작은 한숨과 함께 내게서 멀어졌다.“이거 참, 어쩔 수 없지. 내가 미끼가 될 테니 넌 그 틈에 아저씨만 데리고 도망가.”

“뭐? 널 두고 그냥 가라고?”

“그럼 어떡할 거야? 네가 아무리 단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여기서 나까지 데리고 나가는 건 무리란 거 알잖아?”

“....”

양 손바닥을 위로 펼치고 시큰둥한 표정에 어깨를 으쓱이던 아린이 내게서 멀어져갔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쿠요미랑 나는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긴 해도 도망칠 틈 정도라면 충분히....”

하지만 나는 그런 아린의 목덜미 쪽 옷깃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런 나를 보며 황당해하는 그녀에게 단호히 말했다.

“업혀.”

“에엥?”

“내 등에 업히라고!”

“에에....? 뭐야 그게..? 진짜로?”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능력도 없는 상태의 아린을 홀로 보낸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비록 실질적으로 지금의 그녀가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유일하게 나를 위해 앞장서서 도와줬던 존재가 아린과 푸른하늘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아린, 내가 왜 널 두고 가야 하는데? 기왕 할 거라면 함께 가자!”

“....”

“너랑 찢어질 게 아니라 오히려 힘을 합쳐서 빠져나갈 거니까! 빨리, 업혀!”

“...흠, 웬일이야? 여태까지 찐따인 줄 알았는데 멋있는 구석도 있네.”

“야! 무슨 기운 빠지는 소릴 하고 있어.”

“뭐긴, 뭐야! 우리 바보 같은 청호가 찐따미라도 있으니 다행이란 뜻이지! 캬하하~!”

가볍게 얼굴을 붉히고 배시시 웃던 아린이 나의 등 뒤로 폴짝하고 매달렸다. 업혀있는 채로 해맑게 발을 버둥거리는 아린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는 단검을 고쳐잡았다. 이렇게까지 했으면 이제 발 빠르게 따돌리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니 이제부턴...

“꽉 잡아! 전부 제압한다!!”

혼자 무기를 들고선 기세 좋게 나섰다. 하지만 수십 명이 넘어가는 학생회 학생들도 당당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마음먹은 일, 그렇다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식은땀 범벅에 두려운 눈빛과는 다르게 나는 알 수 없는 웃음을 띄우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퍽~! 파앗!! 퍼억! 쿠웅~!

하나씩, 흥분한 듯하지만, 차분히 그들을 상대하고 쓰러뜨린다. 즐거움이란 감정을 처음 찾아낸 미친 사람처럼 도파민을 넘어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최고조에 달했다.

어쩜, 이게 바로 희열이라는 걸까?!

거침없이 단검의 손잡이 부분으로 목덜미나 복부를 가격하거나, 가볍게 팔다리를 꺾은 뒤 밀어붙이고 밀치는 걸 지속했다. 뒤나 옆에서 기습하는 녀석들은 아린이 나에게 귀띔하거나 업혀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눈을 찌르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싸움을 도왔다. 모든 게 난장판을 넘어 대 환장 파티로 뒤바뀌었다.

빠악~! 퍼버벅!

“청호, 집중해! 거의 다 했어!”

“나도...알아!!”

퍼억! 뻐억~!

몇 명을 밀쳐내고 몇 명을 쓰러뜨린 걸까? 정신없이 눈앞의 적들만을 무너뜨릴 때, 빽빽이 나를 에워싸던 학생회 놈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조금만 더 해내면, 아주 조금이라도 내 몸이, 다리가, 팔이 버텨준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삐끗.

“크윽...!!!”

“청호!!! 앞에..!!”

퍼억~!!!

옷깃까지 붙잡으며 끈질기게 들러붙는 학생들을 밀치던 중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발목을 접질렀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학생 한 명이 나의 무방비한 턱에 큰 반동의 훅 하나를 꽂아 넣었다. 그것은 얼얼하다거나 쓰라린 수준이 아니었다. 실낱같은 정신줄 하나만 붙잡은 채 전신의 신경이 무기력하게 차단되며 세상의 시간도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미친녀석이...!!!”

자연스러운 욕설과 함께 등 뒤의 아린이 잽싸게 튀어 올라 나를 공격한 학생의 얼굴에 올라탔다. 몸이 옆으로 천천히 쓰러져가면서, 아린의 모습을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으로 바라보았다.

아, 역시 쉬운 일은 없구나. 근데 지금 쓰러지면 안 되는데. 아직, 아직....

진작 이런 일에 엮이지 말았어야 했나..? 차라리 이런 곳에 오지 않았어야 하는 걸까..? 이런 능력 따위 애초에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 나아가야 할 길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 줄 알았으면 말이나 좀 해주지 그랬어요.

‘청호야. 앞으로 남은 자신이 삶이 괴롭고 슬프다면 어떻게 하겠니?’

어머니의 모습이 희미하게 펼쳐진다. 어머니에 대한 유일한 기억. 여름 하늘 아래, 마당과 집 사이의 마루에서 나눴던 이야기. 어리고 철없던 나는 어머니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분명 많은 걸 부정하며 힘들어하겠지. 하지만, 그런데도 네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주길 바란단다.’

나긋나긋한 부드러운 그 목소리는 여름의 풀냄새처럼 티 없이 맑았다. 정오의 마루 그늘로 어머니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말씀만이 나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고난 가득한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포기하지 않고 네 눈으로 지켜보렴.’

깊은 물에 잠긴 것처럼 모든 기억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고운 미소가 아득히 저 너머로 멀어져 갔다.

‘분명 그 끝에....’

화악~!

환상과 같은 과거의 기억이 저편으로 사라진 순간, 나의 두 눈은 그 어떨 때보다 푸른기운이 범람하고 있었다.

꽈앙!

몸이 중력선을 벗어나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직전, 사선으로 뻗어내린 강한 발돋움이 작은 흙먼지를 일으켰다. 허리가 과도하게 꺾인 그 자세에서 상체의 힘으로만 고개와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최선을 다한 삶의 끝이 무엇인지 보고 싶어졌다. 모든 에너지를 모아 피를 쏟을 만큼의 최선을 다한 그 인생의 끝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졌다. 비록 비루한 삶일지라도 나는 이제 포기하지 않고 그 끝에 도달하려 한다.

총명해진 눈을 번뜩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차분해져 버린 나는 아린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를 공격하려는 잔당들을 빠른 속도로 물리쳤다. 그리고 이에 멈추지 않고 발 빠르게 주변에 서성이는 학생회 학생들을 하나하나 격파해나갔다. 그 모습을 아린이 벙찐 얼굴로 지켜보았다.

몸은 한층 더 가벼워지고, 손에 쥔 이 단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넘어 상대의 사소한 움직임을 읽고 물 흐르듯 빈틈을 찾아내었다.

일곱 명, 여덟 명, 그리고 아홉 명!

마지막으로 열 명 명째 되는 학생의 복부를 가격하여 앞으로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여태까지 쓰러뜨린 학생회 학생을 제외하고도 추가로 열 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전부 쓰러뜨린 것이다.

“대박!! 대박이야!! 청호 너 완전 멋졌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를 반기는 아린이 환호성과 함께 나의 등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진짜 해냈다는 실감과 함께 품었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아냐. 아린, 너 덕분이야. 네가 없었다면 안됐을 거야.”

“엣헴, 그건 당연한 거지! 청호는 말이야. 나 아니었으면 벌써 끌려가고도 남았어. 아무렴!”

예의 삼아 던진 말을 진담으로 받아치는 아린의 모습에 웃음 지으려는 순간, 거센 싸움의 충격음이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콰아앙~! 쩌어억!

“푸른하늘...!”

푸른하늘과 학생부장 선생님은 아직도 거센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막상막하의 싸움처럼 보였지만, 한층 더 강해진 이 눈에는 어느 누가 더 유리하게 싸움을 이끄는지 알 수 있었다.

채앵~! 쿠쿠궁!

“....”

두려운 마음에 주먹을 아무렇게나 움켜쥐었다. 이대로 간다면, 푸른하늘의 패배가 확실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특화된 도 형식의 칼을 능력으로 만들어 냈지만, 능력으로 급조된 칼은 경도와 질에 한계가 있었고, 그것이 움직임을 경직되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학생부장 선생님은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무기를 활용 중이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부분이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하겠지만 분명, 이 미세한 차이가 결국 푸른하늘에게 빈틈을 만들 것이고 그것이 그녀의 패착이 될 것이다.

“청호, 뭘 멍하니 있어? 이 틈에 이 아저씨 데리고 빨리 도망가자!”

“....”

갈 수가 없다. 그녀가 위험해진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도저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두고 갈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린, 아저씨를 대신 데리고 갈 수 있겠어?”

“뭐? 미쳤어?! 내가 이런 무거운 아저씨를 어떻게 데리고...가 아니라 너 저길 끼어들 셈이야?”

“부탁해.”

아린은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나를 쏘아붙이지만 나는 그저 애절한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에게 아저씨를 맡겼다.

쨍그랑~! 퍼어억!!

“....!!!”

그때, 붉은 유리조각이 산산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곳에서 산산이 부서져 휘날리는 붉은 검 조각,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 움큼의 피를 머리에서 쏟으며 쓰러지는 푸른하늘을 목격하고 말았다. 나는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술을 앙다문 채 말없이 달려나갔다. 아린이 뒤에서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들을 여력 따위 없었다. 내 것도 아닌데 손에 쥐고 있는 푸른 단검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짙은 빛을 내뿜었다.

파앗! 쩌어엉!!

쓰러져가는 푸른하늘을 뒤에서 한쪽 팔로 껴안듯 받아내고, 단검으로 학생부장 선생님의 철제봉을 밀쳐냈다. 적당히 가볍게 놀린 움직임이었지만 철제봉에 전해진 충격이 상당했던 탓에 학생부장 선생님은 몇 미터나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하늘, 푸른하늘! 정신 차려~!”

“으윽, 뭐야. 네가 여기에 왜 왔어...”

피가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의 부축과 함께 몸을 세우지만, 불안한 걸음걸이로 내 곁에서 떨어졌다.

“구하러 왔어.”

“뭐? 구하긴 누굴 구한다는 거야. 여긴 나한테 맡기고 어서 도망가기나 해..! 어? 잠깐만...”

“....”

“너, 눈이..?”

도우러 왔음에도 까칠하게 툴툴대는 푸른하늘을 바라보던 중 일부 달라진 나를 알아챈 그녀가 조금은 커다래진 눈으로 나의 눈을 세심히 바라보았다.

“정말 똑같구나. 네 어머니랑...”

푸른하늘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시답잖은 소리를 해댔다.

“그, 그것보다 너도 어서 빨리 도망가자.”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면서까지 귀중품 검증하듯 눈동자를 바라보는 푸른하늘의 손을 슬그머니 밀어냈다. 그런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까지 도망치면 아무도 여길 벗어날 수 없어. 난 절대 도망치지 않아.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거야.... 맞지?”

“훗, 너 말이야. 내 대사를 대체 몇 번이나 뺏는거야?”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조되는 우리였지만 서로가 이미 결심한 듯 한 곳을 노려본다. 우리는 학생부장 선생님의 이글거리는 또 다른 푸른 눈과 대적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푸른 바다와 같은 눈동자 탓에 그녀가 손에 든 철제봉이 유난히 더 서늘하게 빛나 보였다.

“...신 청호 학생,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학교 내 유일한 변절자이자, 지상 최악의 학생인 푸른하늘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건가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선생님.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되었네요.”

“전학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문제아라 엮인 걸 알면 어머니도 실망하실 겁니다.”

“글쎄요. 비록 제가 어머니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그래도 이게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아마, 어머니도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요?”

“신 청호 학생은 그래선 안 됩니다. 적어도, 신 청호 학생은 그래선 안 되는 겁니다...”

“....”

반쯤 흐느끼며 탄식을 자아내는 학생부장 선생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녀는 항상 감정 대부분을 억누르며 우리에게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었으나, 이젠 마음속 충동을 감출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신 청호 학생, 잘 들으세요.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비록 저는 당신이 무엇을 봤고,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절망을 보여줄 겁니다...!!”

그것은 정말 학생에 대한 애정일까? 학생부장 선생님은 왜 이리 그토록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것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청호, 온다. 준비해.”

“그래.”

나와 푸른하늘은 무기를 쥐고 있는 각자의 팔과 어깨를 데칼코마니처럼 대칭 있게 맞추며 그 날카로운 칼끝을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겨눴다.

나란히 달라붙은 어깨와 팔에서 서로의 온기를 조금씩 느끼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굳은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그 순간, 푸른하늘의 능력이었을까? 의지하던 어깨에서 그녀의 온기뿐만 아니라 붉은 기운도 전염되듯 내게 넘어와 내 눈동자 하나를 붉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학생부장 선생님이 파르르 떨려오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문 채, 아주 오랜 기간 조절해 온 분노라는 감정을 마구 터뜨렸다.

“붉은 눈, 그 핏빛과도 같은 눈은..!! 학교, 아니 세상을 멸망시킬 악마입니다!!”

이 순간, 나와 푸른하늘 그리고 학생부장 선생님을 포함해 모두의 마음속 깊숙이 틀어박힌 무언가가 영문도 모른 채 소용돌이치듯 폭발하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하세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잃어도 상관없단 듯이..!!”

학생부장 선생님이 얼음과도 같이 싸늘한 철제봉을 앞에 겨누자, 운동장 바닥에서 솟아난 목재 봉 5개가 선생님 주변을 호위하듯 현란하게 날아다녔다.

“전부를 내거십시오!!!”

그러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목봉들이 철제봉 근처에 모여들어 드릴 혹은 송곳처럼 변했다. 두텁고 육중한 철제봉, 그리고 다섯 개의 목재 봉의 끝은 역시나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선생님의 푸른기운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샘솟아 지면을 태우고 있었다.

“좋습니다, 선생님!! 저희의 최선..!!!”

“사양 말고 받아주세요...!!!”

모든 이유와 이성은 깡그리 사라지고 오직, 모든 걸 이 자리에서 쏟아내어야 한다는 사실 하나에만 휘어 잡혔다.

일제히 쏟아지는 고함. 막힘없이 서로를 향해 뛰어가는 선생님과 우리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붉고 푸른 빛의 향연처럼 빼어난 장관을 그려냈다. 방향 없이 떠다니던 모든 기운이 자신의 무기 끝으로 블랙홀처럼 모여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이루어진 거대한 충돌은 일반적인 폭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단적인 소음과 빛을 마구잡이로 내뿜어댔다. 세상이 대낮으로 바뀌었다는 착각을 넘어 흰색으로 도배된 세상에 갇혀버렸다 믿어버린 나는 가슴 한편에서 온몸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지배되었다. 코앞에 있을 서로조차 보지 못하고 온 신경을 그저 밀어붙이는 것에 집중하려 하지만, 어느새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감각에 사로잡히며 나는 정신을 잃고 만다.


후우우웅~.

“....”

‘청호..!! 신 청호~!!!’

세찬 바람 소리, 얼굴에 느껴지는 차디찬 공기의 마찰이 나의 정신을 서서히 일깨웠다. 몽롱한 정신으로 게슴츠레 눈을 뜨지만, 아직도 세상이 어두운 걸 보니 아주 잠깐 기절한 모양이다. 전력을 다해 부딪힌 뒤로 기억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당장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뿐이지만,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신 찌르는 두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자, 겨우 눈의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먼저 반기는 것은 밤하늘에 수 놓은 수천 개, 아니 그 이상의 별들이었다. 마치 별들만이 가득한 세상 속에 던지진 것처럼 쓰러져 있는 나의 위, 아래, 좌우 모든 게 별이었다. 아름다운 은하수를 마주하자, 오므리고 있던 입도 멍하니 벌어졌다.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별들의 설연을 직접 보니,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몸에 돌아온 감각이 늦게나마 가장 중요한 상황을 전달했다. 분명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째선지 등에 무언가 닿아있는 감각을 느낄 수 없다는 걸.

“....!!!!”

놀란 표정과 함께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둘러보자, 땅도 건물도 없었다. 오직 보이는 거라곤 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뿐이었다.

“....이게...뭐야~!!”

“진정해 청호..!!”

“으악, 뭐야?!!!”

귓가에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스라쳤다. 뻣뻣해진 목을 돌려 고개를 돌리자, 나와 두세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몸의 정면을 바닥으로 향한 채 능숙하게 바람을 가르는 푸른하늘이 보였다.

“하, 하늘아!!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우리....”

실컷 당황하고 있는 나를 조금은 한심하다는 듯이 보면서도, 바람에 실어 보낸 나의 질문에 푸른하늘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의 머리에 난 상처로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하늘 높이 사라져갔다.

서로가 전력으로 부딪혔던 강한 충격으로 나와 푸른하늘은 구름보다 높은 이곳까지 튕겨져 날아올랐고, 지금은 끝도 없이 바닥을 추락하는 상황이었다.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현실을 부정했으나, 나의 몸에 더해지는 중력가속도가 야속한 현실을 지속해서 상기시켰다.

“아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썩 나쁜 인생이었다.”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 어서 빨리 손이나..”

“나, 잘한 걸까?”

“....”

“이렇게까지 힘들고 어려운데 나아가야 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런 모습을 어머니가 본다면 분명 실망하시겠지?”

나는 깊은 바람은 단순했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그리고 언제나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바랐다. 하지만 결국 내가 마지막에 내몰린 이 학교마저 내가 바랐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결국,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은 없었고 세상 모든 게 허탈해지기 시작했다. 잊어버리려 해도 잊어버릴 수 없는 비참한 기분에 나의 두 눈동자는 환하게 빛나는 별들과 달리 그 빛을 서서히 잃어갔다.

“청호...!!”

나는 무기력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화가 난 건지 슬퍼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밤하늘처럼 검게 변한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길을 잃은 기분이겠지.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소중한 것 하나 가질 자격 없다고 여겼던 탓에, 너는 이따금 기분 내키는 대로만 행동하고 방황해왔어. 하지만 그런데도 넌 자신을 더욱 옥죄며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어.”

그녀의 말은 점점 고조되어, 물방울처럼 피어오르던 이마의 피뿐만 아니라 온몸에 붉은 기운을 드러나며 부드럽게 흩날렸다.

“그렇게 슬프기만 한 네가, 왜 이루고 싶은 미래를 순수히 내다 버리려 하는 거야? 희망을 품고 있다고 해서 슬픈 게 아니야. 네가 가지고 싶었던 소망이 널 고통 주는 게 아니야!! 더이상...!! 더이상 네가 가지고 있는 바람마저 잃어버리려 하지 마!”

“....”

“그렇게 바보처럼 모든 걸 놓아버렸으면서 정작 내일이 오길 무서워하고 오직 어머니가 있던 옛 과거에만 집착하고 매달리지!”

그녀의 연속적인 작은 외침과 더불어 봇물 터지듯 퍼져나오는 붉은 기운의 피 알갱이가 별빛에 반사되면서 하나의 유성우처럼 반짝였다.

“왜 모든 걸 어머니한테 떠넘겼으면서! 아직도 자신을 원망하고! 비참해진 자신을 탓하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되뇌는 거야!!”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천사의 날개형상이 한꺼번에 돋아났다. 하늘로 올라가던 핏방울 사이로 그녀의 자그마한 눈물방울도 춤을 추듯 어우러졌다.

“...청호, 언제나 하루는 저물고 야속하게도 내일의 해는 떠올라. 어쩌면 너의 고민도 평생을 간직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네가 원하면 나는 너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거야. 그러니깐...”

그녀가 내게 손을 뻗는다.

“어서 내 손 잡아!!!”

“....!!!”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하늘에 흩뿌려진 어둠, 그 어둠 속을 밝히는 수십만 개의 별. 하지만 나의 마음속 진짜 어둠을 걷어내는 건 그녀의 목소리였다. 칙칙하기만 했던 나의 눈동자에도 하늘의 별들이 찬란히 비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붉은 별처럼 빛나는 푸른하늘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이젠 제대로 내일을 향해 가자. 적어도 내일이 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 과거를 탓하며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안일한 생각은 그만두자. 이젠 너와 함께 매일매일 의미 없고 견디기 힘들었던 하루를, 원하는 걸 찾아내는 행복한 여정으로 뒤바꾸자.’

나와 푸른하늘, 서로의 손을 꼭 마주 잡은 우리는 구름을 지나 붉은빛을 지상에 비추며 그렇게 내려갔다.

명확히 이날을 기점으로 나의 세상은 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미래라는 것은 예측불허에 잔혹하기 짝이 없다. 밤하늘에 갇혀 길을 잃은 것처럼.

하지만 그런 밤하늘에 아래에서 너와 내가 바라본 별들과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너와 함께 바라본 세상만이 이렇게 아름답다면 항상 내일이 분명 오늘보다 더 즐거울거야, 그러니까.

언제나 지금처럼 웃어줘.


“....”

같은 시각, 나와 푸른하늘이 있던 곳과는 별개로 천체관측부가 위치한 건물의 옥상에 있던 현정이가 망원경의 접안렌즈에서 천천히 눈을 떼며 하늘을 응시했다.

“붉은 혜성....”

짙은 밤하늘에 크고 작게 피어난 별들 사이로, 망원경을 통하지 않고도 훤히 드러나는 적색 광채 하나가 혜성의 꼬리를 연상시키듯 하늘에 드리워지는 장관을 현정이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후, 모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푸른하늘의 능력으로 안전히 지상에 착지했을 때, 운동장은 이미 본연의 모습조차 없이 박살이 나 있었고 그 주변 일대는 그을릴 대로 그을려 황폐하기 짝이 없었다. 근처의 건물은 창문과 창틀이 박살 나 아수라장이었다. 그것은 흡사 운석 충돌과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이번 외부침입자 검거 에피소드에 대해선 나에게 좋은 쪽으로 해결되었다. 보수적이고 굳건했던 학생회가 이번 침입자 검거 건에 관한 실적을 전부 나에게 돌리기로 한 것이다. 사실 혁명단 제압 과정에 발생한 피해가 너무나 막심했고 그간 학교 내에서 겪었던 고초를 학교 윗선에서 참작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내게 실적을 넘김으로써 전학생에 대한 학교적응을 지원하겠다는 게 공식적 입장이지만 사실 속셈은 따로 있었다.

첫 번째 속셈은 실적을 넘기는 호의를 보이며 순순히 한발 물러섬으로써, 앞으로 내가 혁명단의 일에 끼어들 명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학교의 뜻을 절대 따르지 않는 혁명단에게 학생회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게 하는 전달책의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 번째로 혁명단과의 접촉을 어느 정도 묵인하면서 지속적으로 혁명단의 동향과 방식을 파악할 속셈이었다.

얄팍하게도 학생회가 뒤로 숨긴 목적은 진작 알아차렸지만, 나는 일단 이 정도의 조건에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에 장단을 맞췄다.

이제 나는 학교 내 주적과 어울리지만, 누구 하나 건드리거나 미워할 수 없는 명예 학생이 되었다. 이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자, 모두가 나를 떠받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그런 나를 통해 자신도 명예 학생이 되고 싶은 마음을 품었고, 언제든 학교 문제에 대해 발 벗고 나서려는 소속감과 충성심을 견고해 지면서 학생회의 네 번째 속셈이 이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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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의 학교 파괴 일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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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3. 푸른하늘의 일기.(완결) 21.06.20 17 0 9쪽
» 12. 밤하늘의 별. 21.06.19 23 0 49쪽
13 11. 괴담과 진실. 21.06.19 24 0 65쪽
12 10. 삼각관계. 21.06.18 16 0 31쪽
11 9. 천체관측부. 21.06.18 19 0 30쪽
10 8. No, 900. 21.06.17 13 0 41쪽
9 7. 푸른하늘과 혁명단. 21.06.17 18 0 28쪽
8 6. 반역자. 21.06.16 18 0 33쪽
7 5. 2학년 3반. 21.06.16 18 0 17쪽
6 4. 교무실. 21.06.15 16 0 7쪽
5 3. 새로운 학교. 21.06.15 15 0 7쪽
4 2.교문과 관리인. 21.06.14 16 0 9쪽
3 1. 남학생과 메이드. 21.06.14 17 0 10쪽
2 0. 보호수. 21.06.14 29 1 9쪽
1 프롤로그. 21.06.14 50 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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