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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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
글자수 :
53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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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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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싸우는 역할

DUMMY

범헌과 최민의가 사라지고 나서도 여전히 비는 내렸다.


그리고 주동화는 방금 그가 본 것들을 믿기가 힘들었다. 한복을 입은 장신의 두 남자. 천국은 뭐고 고려성은 뭔가.


그리고 무엇보다 룩시온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활소라고, 한국어로 정정히 부르기까지 했다.


최민의라는 사람은 룩시온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비를 뿌린 것도 룩시온으로 한 것일 테고, 비행도, 아마 모습을 없앤 것도, 룩시온의 힘일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 광장을 걸어 나오는데, 권채선을 만났다.


"요즘도 저 미행하시나요?"


주동화의 말에 권채선은 씨익 웃었다.


"내가 그렇게 한 사람한테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럼 이 비 때문에 여기 계신 거군요."

"응."


그리고서 권채선은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사람을 만났어요."

"사람? 누구?"

"룩시온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요."


이에 권채선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룩시온의 추출 방법을 찾아낸 게 자기들이라고 했어요. 룩시온을 사용하기도 했고요."

"그럼... 다른 차원에서 왔단 말이야?"

"그럼 것 같아요. 말은 통하는데 쓰는 단어가 이상했거든요. 황제라느니 고려라느니..."

"상황이 좋지 않구나."


권채선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누구라도 그럴 것이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들. 말만 통할 뿐이지 외계인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들은 대통령과의 대담을 요구했다.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대통령을?"

"정확히는 이 나라의 지존이요."

"대통령이 나라의 지존이라고 할 수는 없지."

"예? 왜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몰라?"

"아하, 네."


주동화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권채선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서 말했다.


"나라의 지존을 찾는다라..."

"협상을 하려는 모양인데요."

"목적이 뭐지?"

"잘 모르겠어요. 물어보기도 전에 사라져 버려서."


권채선은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자들이 우리에게 이로운 협상을 제안할 것 같지는 않구나."


주동화는 아버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다른 차원에서 지구를 침략하러 올 것이라고 했다.


정말 허무맹랑하고 영화에나 나올 것 같던 그 말이, 정말 현실이 된 것이다.


아버지는 저쪽 세계에서 이미 본 것일까. 저 자들이 지구를 침략하려고 준비하는 것을.


"일단 경찰에 알려야 되지 않을까요?"


주동화의 말에 권채선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 이건 정부가 해결할 만한 사이즈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공권력 위에 있는 어르신들의 힘을 빌려야지."


마스터. 주동화는 권채선의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권채선은 피스메이커의 마스터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해결할 생각인 것 같았다.


"룩시온과 결합한 자들과 싸워서 이기는 건 쉽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말로 해결해야 해."


주동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권채선이 핀잔을 주었다.


"너는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되지. 아닙니다, 제가 싸워서 이기겠습니다! 해야 할 것 아니야."

"제가 왜요?"

"너는 싸우는 역할이잖아."

"제가요?"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주동화가 되묻자 권채선은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지구에서 너만큼 강한 사람이 있어?"

"반신이요."

"반신들은 인간이 죽든 말든 상관 안 해."


권채선은 피식 웃고서 말했다.


"그러니까 저 침략자들과 싸우려면 네가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이에 주동화는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저보다 훨씬 강해요. 힘도 더 세고 룩시온 컨트롤도 능숙하고.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러자 권채선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룩시온 모드로 봐도 사라져 있었니?"

"아니요. 룩시온 모드로는 확인 못했어요."


주동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당황해서 룩시온 모드로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만약 룩시온 모드로 봤을 때도 형태가 사라졌다면, 그건 신체의 분자들을 전부 해체한 거겠지."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하다고요?"

"이론적인 가설을 세워 보는 거야. 룩시온은 분자들을 움직이니까. 몸을 구성하는 것도 분자들이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와... 그게 말이 쉽지..."


주동화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백 보 양보해서, 신체의 분자들을 모두 해체해서 퍼뜨릴 수는 있다. 그건 자기 몸을 구성하는 분자를 하나하나 선택하여 이동시키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어려운 건, 그렇게 해체시킨 분자를 다시 사람의 모양으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해체한 분자가 어느 위치에 어떤 모양으로 들어가야 하는지를 일일이 기억해서 다시 배열해야 하는 건데, 인간의 몸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권채선은 이어서 말했다.


"다른 한 가지 가설은, 가시광선을 조작한 거야."

"가시광선 조작..."

"그래, 메타물질 같은 걸로 말이야. 그럴 경우 룩시온 모드로 보면 실체가 그대로 보이겠지. 신체의 본질이 변한 게 아니니까."

"메타물질이 뭐예요?"


주동화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권채선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물리학 공부를 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물리학이라니..."


대체 왜 룩시온을 다루려고 하면 공부부터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명호 박사가 화학을 공부하래서 고등학교 과정을 겨우 뗐더니, 이번에는 물리학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여기는 광화문 광장. 바로 옆에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이 있다. 권채선은 서점을 향해 턱짓을 했고, 주동화는 서점 쪽으로 걸어가며 한숨을 쉬었다.



***



"이해가 안 가네. 제가 왜 아저씨 쇼핑을 따라다녀야 되죠?"


하단우는 양복점에서 걸어 나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백규빈이 주말 아침부터 끌고 나와서 옷가게와 패션 매장을 돌고 있는 것이었다.


"너도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사라니까?"


백규빈이 말했다. 하지만,


"양복점에서 제가 뭘 사요? 정장 입지도 않는데."

"그래? 그럼 어느 매장 가고 싶어?"

"왜 저한테 뭘 사주려고 하는데요?"

"명호 딸인데 선물 하나는 사서 보내야지."

"거짓말. 지금 아저씨 본인 쇼핑하고 있잖아요."


백규빈은 벌써 본인 옷만 세 벌을 샀다. 백규빈은 그게 뭐 어쨌냐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사야지."


당당하게 말하는 백규빈을 보며 하단우는 한숨을 쉬었다. 쇼핑이고 뭐고 백규빈을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저 사람 때문에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지낸 지 벌써 일주일째다.


"저쪽 스트릿에 괜찮은 액세서리 가게가 있는데. 거기 갈래?"

"액세서리 같은 거 안 해요."


그러자 백규빈이 말했다.


"그럼 간식이나 사러 가자. 근처에 맛있는 집이 있어."

"여기저기 단골집이 많으시네요."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단우는 백규빈의 뒤를 따라갔다. 백규빈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베이커리 주인은 백규빈을 반갑게 맞았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주인과 백규빈을 보며, 하단우는 문득 공통점을 발견했다.


백규빈은 가게들을 돌면서 주인과 점원을 가리지 않고 말을 걸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동네에 떠다니는 소문이나 뉴스에 나오지 않는 자잘한 사고들.


단골 손님의 질문을 받은 점원들은 즐겁게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백규빈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려는 듯 집중하고 있었다.


"저렇게 알아낸 거구만."


아마 그가 백인 남자를 쓰러뜨리고 도주했던 일도, 이런 식으로 알아냈을 것이다.


하단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동네 군기반장도 아니고. 오지랖은..."


베이커리 주인과 백규빈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하단우는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한국 포털 사이트 메인에는 광화문의 이상기후가 아직도 뜨거운 이슈였다. 하단우는 가장 최신 영상을 눌러 보았다.


‘잠시 그쳤던 광화문의 비가 다시 쏟아지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반짝 그쳤다가, 전보다 더 거센 호우로 바뀌었는데요. 현장 보시겠습니다.’


현장 영상은 정말 쾌청하게 개인 광화문의 풍경으로 시작했다. 기자는 환하게 웃으며 비가 그쳤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동화?"


기자의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우비를 쓰고 있는 주동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상은 곧 중지되어 버렸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이었다.


"주동화가 왜 저기에 있지?"


그가 도망치듯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몇 번인가 주동화에게서 문자가 왔었다.


할아버지가 사람들의 몸을 치유결계로 감싸 룩시온으로부터 보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서 그날의 일을 전해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옥소원과 주동화도 할아버지 장례식에 왔을 테니.


주동화는 문자로 할아버지에 대한 조의와, 사람들에게서 룩시온을 더 빨리 빼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물론 하단우는 주동화에게 답장은 하지 않았다. 니가 미안할 게 뭐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아무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커서 관두었다.


하단우는 다시 핸드폰의 뉴스 영상을 보았다.


주동화는 광장에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기상학과 관련도 없는 바이오 회사 연구원이 무슨 볼일이 있어서 저기에 있단 말인가.


주동화를 본 하단우는 광화문의 이상기후 현상이,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단우는 바로 친구인 이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광화문의 비 말이야. 원인이 뭔지 알고 있어?"

‘아니. 아직 밝혀진 게 없어.’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닌 거야?"

‘그럴 가능성이 커. 근데 너 왜 국제전화...’


이필영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하단우는 전화를 끊었다. 역시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주동화도 룩시온으로 뭔가 해보려고 저기에 가 있는 것이리라.


그때 백규빈이 불렀다.


"단우야, 먹고 싶은 거 골라."

"아, 네."


하단우는 진열장으로 걸어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케이크 몇 개를 가리켰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광화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단순히 비가 내리는 것만으로는 큰 피해가 없겠지만,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면 어떤 형태로 상황이 바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곧 하단우는 고개를 가로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내가 알 바 아니지."


광화문이 물에 잠기든 어쩌든,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인간들이 피해를 입든 말든 알 게 뭐란 말인가.


빵과 케이크를 사서 밖으로 나오니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스피커 울리는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길 건너편에서 들리고 있었다.


하단우는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넓고 조용한 시카고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피켓을 든 사람들은 둥근 대형으로 움직이더니, 마이크를 체크하며 연설을 준비하는 듯했다.


옆에서 백규빈이 말했다.


"아... 저거 설마."

"왜요?"

"랠리를 하려는 거야."

"랠리요?"

"응. 인종차별 반대 집회."


백규빈의 말처럼 건너편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전부 동양인이었다. 그리고,


"어? 저거 서중모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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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51구역 (1) 21.09.27 18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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